EBS 위대한 수업2(힌두학 개론) 1강~2강 요약정리
위대한 쉰 세 번째 강연 '힌두학 개론'(시즌2 열한 번째)
힌두교 : 인도 역사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종교
웬디 도니거 종교학자
2008년 미국 종교학회 마틴 E. 마티 상 수상
2015년 미국 학술단체협의회 찰스 호머 호킨스 상 수상
<힌두교: 또 다른 역사>, <암시된 거미> 등 집필
<리그베다>, <카마수트라> 등 번역
1강 힌두교가 사는 이유
- 힌두교가 갈등을 다뤄온 방법
· 힌두교는 인도에서 발전한 여러 종교 중 하나이다
힌두라는 단어는 거대한 강 인더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 인더스강은 인도 북서부에 있는 사실상 파키스탄에 속한 거대한 강이다
그리스와 페르시아인이 인더스 땅에 살던 사람들에게 힌두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인도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힌두라고 불렸다
·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하면서 힌두의 의미가 바뀌었다
· 힌두교가 가진 갈등은 고대 인도에서부터 시작됐다, 힌두교와 불교가 함께 성장하던 시기
오늘 강의에서 힌두교의 기본 개념은 불교의 개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힌두교에선 다르게 발전돼 왔다
· 힌두교에서 삶의 의미는 네 가지 3 + 1로 구성돼 있다
세 개는 세속적 목표이고 한 개는 내세의 목표이다
인간에게는 네 가지 목표가 있다, 삶을 완성하기 위해선 죽기 전에 이 목표를 이뤄야 한다
'힌두교도의 네 가지 목표
1. 도덕적 삶(다르마)
정의, 종교, 자연의 법칙과 도리를 지키고 옳은 일을 하는 삶
2. 물질적 성공(아르타)
정치적 지위와 돈처럼 실재하는 것도 가져야 한다
3. 쾌락(카마)
성적 쾌락뿐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달밤에 음악을 듣는 풍요로운 삶
오랫동안 힌두교는 세 가지 목표를 가진 종교였다, 3은 마법의 숫자라 많이 등장한다(충분한 숫자)
그런데 기원전 6세기에 사건이 벌어진다(인도에서 불교가 성장하던 시기)
세 가지 세속적 목표가 영적 목표의 도전을 받은 것
모크샤, 해탈, 해방 등의 표현이 있는데 불교에서 니르바나라고 한다
4. 해탈(모크샤:해방, 해탈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해탈은 세 가지 세속적 목표를 상쇄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걸 포기하고 다른 무언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힌두교는 이 모순을 바로 잡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돈을 벌지 아이면 포기할지
힌두교에는 항상 이런 분열이 존재한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세속적 삶과 수행자의 삶 사이의 갈등은 인도 역사 내내 존재했다
· 고대 인도 사람인 붓다는 당연히 힌두교도였다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모든 걸 포기하고 붓다가 되어 불교를 창시했다
힌두교에는 왕위를 내려놓고 속세를 떠난 왕 이야기가 많은데 힌두교에선 그런 이야기를 부정적으로 본다
이야기 속에서 왕들은 모두 수행자가 되길 포기하고 다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린다
가족을 떠나려던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전통 힌두교 경전에 따르면 이건 잘못이다, 원래 삶으로 돌아간다
오늘날까지 인도에는 수행자에 대한 불편함이 남아있다
· 인도의 수행자들은 때로 자신을 학대하며 떠돌아다니는데 사람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준다
이건 수행자가 되지 못한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이다
수행자가 위험해서 쫓아내려는 이유도 있다, 그들은 긍정적인 힘만큼 부정적인 힘도 갖고 있다
· 인생의 단계도 세 가지에서 네 가지로 늘어났다
첫 세 단계는 유럽인의 삶과 비슷하다
힌두교의 인생 단계
1. 학습기
사제라면 경전을 공부하고 고대 인도 언어인 산스크리트 언어를 배운다
2. 가주기
가정을 꾸리는 시기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손주를 본다
3. 임서기
손주를 본 후 혹은 처음으로 흰머리가 나면 숲에 들어가 은둔해야 한다
평범한 삶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사치 없이 소박하게 살고 종교에 대해 생각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삶을 정리하고 가업을 자손들에게 물려주는 단계
4. 유행기
해탈이라는 네 번째 목표가 생기면서 수행이라는 네 번째 삶의 단계도 생겼다
그저 숲에 들어가 사는 게 아니라 모든 걸 포기하고 수행자가 되는 것이다
네 번째 단계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손주를 본 후 안락한 삶을 누리다 죽는 데 만족한다
하지만 수행자가 되고 싶은 욕구는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그래서 힌두교도는 네 번째 단계를 택한 소수의 사람에게 늘 존경을 표했다
· 인간도 세 계급으로 나뉜다, 그리고 다른 종류의 네 번째 계급이 생겨 3 + 1이 됐다
더 낮은 계급도 있다, 오랫동안 불가촉천민이라 불렸던 달리트 계급이다, 천민보다 더 낮은 계급
· 계급들 사이에는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다, 기본적 계급 사이는 물론 네 번째 계급과의 관계에도 그렇다
· 힌두교가 발전하면서 오염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졌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규칙이 점점 늘어났다
접촉하면 안 될 사람이 생기고 계급 간 장벽도 높아졌다
· 물론 특정 계급과 말도 안 섞는 사람이 여전히 있지만 오늘날 인도에 존재하는 계급제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 직업이 그 사람의 본성을 바꾸고 상종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고대 인도의 규칙은
특히 화장터나 도살장에서 사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적용됐다
힌두교도를 포함한 인도인 중에는 여전히 도축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점차 불결히 여겨지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됐다, 이게 바로 접촉할 수도 없다는 불가촉천민의 개념이다
· 20세기에 여기에 반대하는 다양한 운동이 일어났다
마하트마 간디(인도의 정치적 지도자)도 불가촉천민 학대 관습을 바꾸려 애쓴 걸로 유명하다
· 1948년 인도가 독립하고 민주주의 국가가 됐을 때 소위 불가촉천민에 대한 학대를 방지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요즘은 인도 정부에서도 달리트 공직 할당제를 실시한다
교육기관도 달리트 계급을 위한 혜택을 주고 있다
고대 인도의 심한 계급 차별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뤄져 왔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 다르마를 가지고 사는 게 가능한 이유는 힌두교가 정통보다는 정행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정이라는 것은 곧다는 것이다, 통은 가르침, 행은 행동하다
정통 종교란 옳은 걸 믿고 규칙을 암송하는 것(신과 삼위일체와 같은 가르침을 믿는다)
정행 종교에서 중요한 건 신앙심이 아닌 행동,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정행 종교에선 무엇을 믿는지보다 규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 힌두교와 유대교는 정행 종교이다, 그래서 행동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음식에 대한 금기가 있을 뿐 아니라 음식을 담는 그릇에 관한 금기가 있는 유일한 종교이다
힌두교와 유대교는 식습관이 굉장히 까다롭다
힌두교도는 언제나 행동에 신경을 쓴다, 다른 종교에선 믿음에 대한 다르마가 중요하지만 힌두교에선 유연하다
카스트와 음식에 관해 바른 행동만 한다면 문제없다
2강 카르마에서 벗어나는 법
- 힌두교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
· 고대 인도 종교의 흥미로운 점은 개념을 혼합하는 방식이다
인도 최초의 경전에 담긴 죽음의 개념도 전혀 다른 두 개의 근원에서 왔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죽음의 개념은 기원전 1,500년 베다 시대에 생겨났다
이 세계에서 죽음은 전사의 삶 마지막 순간에 발생한다
전사 문화에 기반해 전사가 죽으면 천국에서 가장 좋은 곳으로 간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이곳을 발할라라고 불렀다
고대 인도-유럽과 베다 문화는 천국에서도 삶을 향유한다고 생각했다
◐ 천국이 있으니 지옥도 있었을까? ◑
사실 알려진 게 별로 없다
초기 인도 경전 리그베다에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 망자를 천국으로 보내는 장례식 이야기
천국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아주 많다, 천국에서는 새로운 몸도 얻는다
좋은 삶을 살면 천국에 가고 나쁜 삶을 살면 다른 곳에 가는데 그곳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 불교와 자이나교가 인도에서 중요한 종교로 떠오른 기원적 6세기에 재죽음(Redeath)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재죽음은 재탄생보다 더 오래전에 생긴 개념이다
'재죽음이란 사람이 거듭해서 죽는 것'_우파니샤드 경전
인생을 살다가 죽고 다시 태어나서 또 죽는다, 죽음과 탄생 사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죽음은 끔찍하고 고통스럽고 슬프다, 그런데 이번 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에서도 계속 죽는다
경전은 재죽음을 언급하고 한참 뒤에야 재탄생에 대해 얘기한다
재탄생은 재죽음을 암시하지만 훨씬 긍정적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이번 삶은 별로였지만 다음엔 더 잘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경전에서는 재죽음과 재탄생을 모두 부정적으로 설명한다
· 인간의 고통이 무한히 반복되고 거기서 절대로 해방되지 못한다고
그래서 등장한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모크샤이다
모크샤는 새가 새장에서, 죄수가 감옥에서 풀려남을 뜻하는 긍정적 단어이다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간다는 뜻이 있다
불교에서는 니르바나라 부르고 다른 은유를 사용한다
힌두교는 모크샤를 감옥에서의 탈출에 비유하지만 니르바나는 불을 끄는 것에 비유한다
· 힌두교도의 진정한 삶의 목표는 재탄생에서 벗어나는 것
하지만 모두가 이 생각을 받아들이진 않는다, 대다수는 다시 태어난다고 믿는다
일부 힌두교도는 죽어서 천국에 갈지 다시 태어날지 선택할 수 있다거나
잠시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죽음에 대한 다른 개념들이 여러 방법으로 혼합됐다
·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카르마(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즉 업보로 쌓인다
카르마는 단순히 행위라는 뜻이었는데 살면서 행하는 모든 행동의 총합을 뜻하게 되었다
선행과 악행을 기록한 결과물이다
삶이 끝나면 한 사람의 모든 선행과 악행이 합계되고 그 결과에 따라 몇 가지 다른 결말을 맞는다
대부분 좋은 카르마를 쌓았고 나쁜 카르마는 조금이라면 당신은 먼저 지옥에 있다가 천국으로 간다
천국과 지옥에 간 다음에도 여전히 카르마가 남아 있다
그게 당신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지 얼마나 오래 살지 등을 결정한다
원래 고대 인도-유럽인의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은 비교적 간단했다(천국 or 지옥)
한 힌두 경전은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 설명한다
많은 경전이 자궁 속의 태아가 전생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는 순간 두 가지 일이 벌어진다
자신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는 것
그다음엔 전생의 기억을 잊어버린다
◐ 다시 태어나면 어떻게 무엇으로 태어날까?
각각의 영혼은 본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영혼은 아트만이라고 하는데 나 자신을 뜻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평범한 대명사로도 사용된다
그런데 이게 개인의 영혼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A가 단음이면 개인의 영혼을 뜻하지만 A를 장음으로 발음하면 우주적 영혼이라는 뜻도 된다
무한한 것 혹은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리킨다
우리 개인의 영혼은 우주적 영혼의 작은 조각이고 우주적 영혼은 살아 있는 모든 걸 담는다
만약 죽을 때 해탈이나 열반에 이르면 존재가 소멸하는 게 아니라 재탄생을 멈추고
세계의 영혼에 통합된다
· 힌두교에는 두 가지 기본적인 삶의 형태가 있다고 했다
1. 세속적 삶 2. 수행하는 삶
· 카르마도 두 가지 관점으로 본다
대다수의 교도가 따르는 세속적 형태의 힌두교에서는 좋은 카르마는 좋은 것으로 나쁜 카르마는 나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는 선행을 해서 좋은 카르마를 쌓는 것이다, 좋은 카르마를 쌓아 천국에 가는 것이 목표
하지만 어떤 힌두교도와 대다수의 불교도는 카르마가 없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성자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고 전해져 세상에 살지만 세속적 존재가 아니고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죽지 않은 이 세상에 머무르지만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이런 사람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모크샤 즉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 카르마의 이동
힌두교에 깊이 뿌리 박힌 음식, 성, 오염의 개념이 여기서 드러난다
힌두교도는 타인과 접촉할 때 카르마가 이동한다고 믿는다
만약 누군가를 만나 그 사람을 때리고 모욕하면 내 좋은 카르마가 그 사람에게 옮겨간다
그 사람의 나쁜 카르마는 나에게 온다, 카르마는 다양하게 재조정된다
카르마의 이동은 음식을 교환할 때 잘 일어난다, 그래서 집에 온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만약 대접하지 않으면 손님이 당신의 좋은 카르마를 가져간다
굶주린 사람으로 변신한 신에게 없는 살림에 먹을 걸 나눠준 사람이 좋은 카르마를 쌓았다는 설화가 많다
타인과 교류할 때 아주 조심해야 한다, 카르마가 사람 사이에서 쉽게 이동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의 카르마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개념도 믿는다
"카르마는 봉인된 세계 안에서 관계와 세월을 넘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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