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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위대한 수업2(국제 인권 오디세이) 1강~3강 요약정리

by 상팔자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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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위대한 수업2(국제 인권 오디세이) 1강~3강 요약정리

 

위대한 예순두 번째 강연 '현실주의자들의 정치'(시즌2 스무 번째)

 

 

베스 시몬스 

법학과, 정치학과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수

2011 칼 도이치 상 수상

2012 구겐하임 페로우십 선정

인권을 위한 동원: 국내 정치에서의 국제법(2009)

- 2009 미국 정치학회 우드로 윌슨 상        

- 2010 미국 국제법학회 올해의 책 선정    

- 2010 국제 사회과학협회 올해의 책 선정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_플라톤

 

 

 

 

1강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 국제 인권의 개념과 탄생

 

  · 국제 인권이란 늘 흥미로우면서도 쉽게 규정하기 힘든 문제였다

 

  ♣ 국제 인권 :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기준

 

    단순해 보이지만 어려운 개념이다

    인간 존엄성의 필수 요소가 무엇인지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생명권이 그중 하나라는 건 모두 동의할 것이다

    생명권에 낙태권이 포함될까? 생명권에 사형제도를 시행할 국가의 권리도 포함될까?

 

    사람들은 신체보전권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고문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그러나 테러범이나 국가의 적에게도 신체보전권이 보장될까?

 

    인간 존엄성을 위해선 기초생활권도 보장받아야 한다

    음식, 여가, 일자리는 물론 기본적인 의료권 같은 것

    가난한 나라는 이런 권리를 보장하기 힘들다

    심지어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에선 이런 권리를 사회주의로 본다

 

    바꿀 수 없는 특성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도 중요하다

    국적, 종교, 인종, 성 같은 것들

 

    이런 민감한 사안을 어떻게 다룰지 의견이 다르다 보니 인권의 가치를 인정하고 실현하는 게 어렵다

 

    예를 들어 종교 선택의 자유는 가족 제도 같은 사회 권위와 충돌하기도 한다

    사람이 자신의 성별을 선택할 수 있을까? 이것도 논쟁적인 주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 인권은 지지할만한 근사한 주제이고 바람직하며 또 그로부터 혜택을 입을 거라고 믿는다

 

 

  ◐ 그런데 왜 인권을 실현하려는 싸움은 이렇게 힘든 걸까? ◑

 

       인권권력 및 그 관할권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반드시 누려야 할 권리국가가 침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즉, 국제 인권은 사회적, 정치적 위계질서에 도전한다

       (차별, 독단적 통치, 사회적·정치적 배제, 극단적 박탈감 위에 세워진 질서들)

       그래서 특권층은 국제 인권 실현을 방해한다

       

 

  · 역사적으로 모든 문화권에서 인간이 타고난 권리에 대해 논의가 있었다

    유교는 모든 사람이 교육으로 계발할 수 있는 소양이 있다고 했다

    불교는 이타심과 선천적 연민을 강조했다

    살인하지 말라는 유대교의 가르침은 생명권을 함축하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동등하다고 말하며 

    이슬람교는 두 가지 기본 원칙으로 존엄과 평등을 내세운다

 

  · 인권 발전의 역사적 배경

    1) 계몽주의

        문화, 전후 상황, 종교에 따른 인권이 아니라 한층 세속적이면서 보편적인 인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계몽주의는 아주 억압적인 군주제 시절에 시작됐다

        왕권신수설은 물론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중세 교회가 있던 시절이었다

       

    2) 산업혁명

        산업혁명 시기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커다란 불평등이 드러났다

        노동 착취가 만연해지고 불평등도 심화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새로운 권리를 요구했다

        완전히 자유로운 재산권이 함의하는 불평등에 저항했다

        자유 시장과 무역만인의 인권을 신장한다는 개념을 거부한 것이다

        재산 소유에 따른 참정권이 아닌 보통선거를 요구했다

        노예제와 노예에 가까운 노동 환경에 반대했다, 여성도 정치와 사회적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이 막바지로 접어들 땐 아등 노동을 법으로 보호하고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졌다

 

    3) 대공황

        대공황은 근대 이후 최악의 불경기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불황이 극심했던 1993년 실업률이 25%에 달했고 구직자가 1,100만 명을 웃돌았다

        중요한 건 당시 구직자들에게 뚜렷한 생계 수단이 없었다는 것이다

        극심한 공포를 동반한 이 결핍은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줬다

 

    4) 2차 세계대전

        수많은 민간인사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약 6,000만 명이 전쟁통에 목숨을 잃었다

        이 수치는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에서는 전쟁으로 민간인 1,500~2,000만 명, 한국에선 약 50만 명, 즉 민간인의 2%가 사망했다

        일본은 총 75만 명이었는데 대부분이 핵폭탄 때문에 죽었다

        홀로코스트도 인권에 큰 교훈을 줬다, 전쟁을 경험한다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줬다

        열강은 체계적이고 끔찍하게 다양한 사람의 인권을 짓밟았다(특히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 집단의 인권)

        이런 경험의 교훈으로 세계인권선언의 여러 조항이 만들어졌다

        생명권, 자신의 문화를 누릴 권리, 노예제 금지도 포함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 열강은 인권이라는 개념을 대중 연설에 끼워 넣기 시작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이렇게 짜인 전시 화법으로 국민이 전쟁을 지지하게 부추겼다

        1914년 루스벨트의 '네 가지 자유' 연설처럼

        이는 미 의회가 유럽 전쟁 개입을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진주망 공습이 있기 훨씬 전의 일)

 

        이 '네 가지 자유'는 대서양 헌장에도 담겼다

        루스벨트와 처칠이 만든 전시 원칙을 담은 성명서인데 전쟁에서 싸우는 이유와 그 목적을 강조하고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민족자결권 보장을 포함하고 있다

        연합군이 계속 함께 싸우도록 자극제 역할을 하려고 썼다

        중요한 건 이 전시 화법의 결과가 전쟁 이후 나타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 이후의 삶에서도 인권 보장을 기대하게 됐다

    1940년대 유엔 인권 위원회가 이 문제와 씨름했다

    이들은 1930~40년대에 만연했던 잔혹 행위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

    먼저 추가적인 논의를 위해서 일반적 원칙을 정했다

    이해하기 쉽고 전 세계에 적용 가능한 인권의 명확한 기틀을 잡았다

    여기에 참여한 많은 사람 중 몇몇이 중요한 기여를 했다

    유엔 인권 위원회가 협의할 때 이렇게 다양한 사상이 뒤섞여 있었다

    다양한 견해 속에서 여러 쟁점을 수개월간 협의하다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은 권리가 명확히 반영돼 있다(자유주의 서방 국가의 헌법에 이미 포함된 내용이기도 하다)

 

    <세계인권선언>    

    - 개인의 권리

    - 법적 권리

    - 시민의 자유

    - 정치적 권리

 

    세계인권선언은 거대한 협력의 결과물이다

    수많은 권리를 포괄하고 시민권과 정치권을 인정하는 한편

    경제적·사회적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다

    이게 유엔에서 통과된 것이다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반대표는 하나도 없었다(기권이 8표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역사상 최초로 국제 사회가 인권 규범을 열거한 문서가 탄생했다

 

  · 세계인권선언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고

    타국의 내정 문제에 간섭할 수 없다는 기존 원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권리는 유엔의 법적 구속력 없는 결의에 맡겨졌다

    나약해서 인권을 강요할 권한조차 없는 국제기구와 함께 말이다

    인권은 자리를 잡기도 전에 짓밟힐 것만 같지만 세계인권선언은 건재하다

    초국적 단체가 생겨나서 더 많은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법적 구속력 없는 이 선언문을 구속력을 갖춘 다자간 조약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다

    덕분에 1970년대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2강  인권 발달의 역사

 

 

- 국제 인권의 법제화와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된 과정

 

  ·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됐다

    전 세계의 다국적 합의를 통해 세계 최초로 인권 규범이 만들어졌다

    세계인권선언은 국제적 약속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미 반대 세력이 형성돼 있었다

    정치적 권리를 두고 서구권과 동구권 사이 큰 이견이 있었다

    인종 차별을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헤이트 정책을 실행 중이어서 보편적 인권에 결사반대했다

    신앙을 중심으로도 의견이 갈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기권하면서 인권은 국제적 문서를 만들어 합의하고 이행하는 게 아니라

    신이 부여하는 권리라고 말했다

    세계인권선언은 보편적인 동시에 균열을 일으켰다

 

 

  ◐ 세계인권선언문의 원칙은 어떻게 정해진 걸까? ◑

 

      당시 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일어났다

      이게 세계인권선언을 인권 협정으로 법제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먼저, 탈식민지화 운동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940~50년대 대부분의 아프리카와 일부 아시아 국가는 유럽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독립하지 못했거나 새롭게 독립한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은 인권, 그중에서도

      민족자결권을 강조하면서 식민 지배에 대항하는 투쟁이 옳다는 걸 보여줬다

      소규모 민주주의 국가들과 연합도 형성했다, 신생 독립국도 이들과 손잡고 강력한 인권법을 요구했다

 

 

    ☞  인권 강화를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했을까?

 

        거의 세계 전역에서 전쟁을 치른 탓에 군사력을 통해 인권을 강제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또 누구도 자국의 인권 문제다른 나라가 판단하는 걸 원치 않았다(인권은 내정 문제)

        유엔 헌장도 비개입과 불간섭 원칙을 강조했다(유엔 헌장 2조 7항)

        그 결과 국제 인권법 관련 단체는 1940~50년대는 물론 60년대까지 힘이 별로 없었다

        유엔 인권 위원회는 20년 동안 국가가 인권 현황을 검토조차 안 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는 건 타국의 정책이나 법률 위반에 대한 대응으로 오직 국가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권 분쟁은 국가 간 문제가 아니다 

        국민이 자국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국가의 인권 문제를 정식 고발하는 일은 아주 드물다

 

        

    ☞  세계인권선언이 영향력을 더 발휘할 순 없을까?

 

        첫 번째 방법

        각국 헌법 개정에 영향을 준다, 1940~50년대에 많은 국가가 새 헌법을 필요로 했다

        정부 구조를 재정립하고 국가와 국민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답을 찾는 과정에서 세계인권선언에 초점이 맞춰졌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1945년 이후 작성된 헌법의 90% 이상세계인권선언에 있는 

        여러 인권 조항을 헌법에 포함했다

        세계인권선언 채택 전과 비교해 더 많은 권리가 각국 헌법에 포함됐다

 

        두 번째 방법

        인권 조약을 체결한다

        인권 조약은 여러 국가에서 법적 지위를 가진다, 어떤 곳에선 의회를 통과한 법안처럼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조약을 체결해 각 나라가 비준 여부를 선택하게 하고 인권 조항을 국내법에 포함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 이후 등장한 가장 초기 조약 중 하나는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협약이다_1969년 발효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_1976년 발효

        (독재적인 국가 권력에 맞설 법적 자유와 보호를 제공했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_1976년 발효

        (근로, 휴식, 교육, 의료에 대한 권리를 포함했다)

        이 모든 게 세계인권선언에 이미 명시된 권리를 쟁취한 사례이다

 

        하지만 두 가지가 달랐다

        하나, 조약은 국가 안팎에서 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둘, 감시기관이 존재한다

        국가는 조약상의 의무를 어떻게 이행 중인지 조약과 관련한 기관에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이렇게 국제사회는 일종의 책임감을 갖게 됐다, 또 이와 관련된 절차도 생겨났다

        국내 단체가 대안적 기관 역할을 하며 국내법을 통해 인권 조약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했다

 

 

    ☞  그런데 조약이 진정한 해결책일까?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조약을 만드는 전략에도 한계가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국가가 조약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조약을 채택할지 말지 비준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선택은 국가의 몫이다

        조약을 비준할 때 예외나 배제를 요청할 수도 있다, 조약을 비준하되 특정 의무는 유보하는 것이다

        한국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비준했지만 입양 아동 보호에 관한 제21조는 유보했다(2017년 유보 철회)

        미국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을 비준했지만 비인도적 대우에 사형은 포함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조약은 보편적 효과를 보기엔 한계가 있다

        조약은 비준하려는 국가만 비준하고 유보를 통해 예외 조항을 만들어 특정 내용에 구속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조약은 여러 장점도 있다

        국제 조약을 만들 때 국가의 동의 여부는 문제이자 강점이다

        조약은 비준을 거치는데 그러면 국가는 조약에 구속된다, 공식 기록이 남기 때문이다

        법적인 책임뿐 아니라 자국 안에서의 책임, 국제적 평판에 대한 책임이 생긴다

        국민도 조약을 통해 자국이 특정 권리를 더 신경 쓸 거라 기대한다

        국내법을 통해 인권이 보장될 가능성도 커진다

        조약이 법적인 지위를 갖도록 헌법에 명시된 경우 법원이 조약상 의무를 강요할 수 있다

        조약은 법적, 정치적 도구를 만든다(국제적으로도 국가 안에서도)

 

  · 이런 현상은 1970년대부터 두드러졌다, 인권과 권리 옹호 운동의 전환점이 됐다

    일부는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정치적 변화 때문이었다

    당시 소련은 쇠퇴의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1970~80년대)

    동시에 반체제 운동과 권리 개혁을 요구하는 집단이 성장했다

    서방 국가는 이런 주장을 이용해 전략적 이점을 취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소련 블록에 불붙은 인권 신장 요구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중요한 외교적 합의도 일어났다

    '유럽안보협력기구' 회담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헬싱키 협정을 채택한 것이다

    이 협정은 소련이 국가 시스템을 쇄신하도록 압박한 걸로 알려져 있다

    정부에 인권 신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소련 국민에게 힘을 실어줬다

    다른 나라들도 중요한 사건을 경험하면서 인권 문제가 정치적으로 더 중요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970년대에 걸쳐 억압적인 독재 체제가 이어져 왔다

    이 때문에 국가 내 저항 운동이 일어났다

    풀뿌리 운동이 일어나 고문에 반대하고 강제 구금과 반정부 인사 실종 문제에 저항했다

    보통 이런 운동은 자국 내에서 그렇게 효과적이지 않다, 하지만 유엔이나 다른 나라에 찾아가는 게 도움이 됐다

    국제 언론에 자신들의 요구를 알리는 방법으로 억압적인 정권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렇게 라틴아메리카는 정권에 대항하는 조직적 운동의 부흥기를 맞았다

    덕분에 사상 최초로 인권이 국제 정치에서 주목받았다(대중 의식은 물론 법과 정책적 지원 모두에서)

    

  · 국제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면 미국이 맡은 독특한 역할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미국인은 늘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는 우리만의 역할이 있고 인권 보호의 롤 모델이야'

    '인권을 옹호하고 지지하고 근사한 주장을 하고 다른 나라의 인권 개선을 압박하려고

    원조나 무역에 조건을 달기도 하지'

    '미국은 이런 조약에 동참할 필요가 없어!', '인권 모범국이 되려고 조약을 비준할 필요가 없지'

    미국은 이렇게 인권 조약에 아주 오랫동안 참여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국제 인권 체제에 대한 미국의 접근법을 공중 버팀목 같다고 표현한다

    미국은 인권을 뒷받침하길 원한다(정치적 수사와 민주적 원조 그리고 정치적 지지를 통해서)

    하지만 인권을 뒷받침한다면서 체제 안으로 들어가 법적인 의무를 지진 않는다

 

    미국이 동참하지 않은 협정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동 권리에 대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

    미국은 꽤나 유별난 입장을 취해 오고 있다

    인권을 지지하지만 조약을 통해 의무를 지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 1970년대에는 인권 단체와 인권 운동이 증가했다

    새로운 조약들이 세계로 퍼져나가고 비준되면서 1990년대엔 국제 인권의 전망이 밝아졌다

    시민 사회가 국내외에서 자기 목소리를 찾아서 1990년대에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90년대에는 냉전도 끝났다, 이 무렵은 인권 신장에 있어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3강  인권은 어떻게 퍼지는가(상)

 

 

- 국가를 독려한 방법들

 

  · 정치는 국가가 인권을 실현하고 기대에 부합하게 격려해 왔다

    여기선 강압, 사회화, 설득, 국가 내 정치적 동원과 같은 정치적 측면이 부각될 것이다

 

    1. 강압적 방법

        국가가 인권을 보장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무역으로 압력을 가하거나 다른 국가가 개입하거나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위험에 처한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힘과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인권 침해자의 행동을 바로잡고 책임지게 하자는 것이다

        (1990년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한 나토, 1994년 르완다 내전에 개입한 유엔)  

 

        국제학자들이 주장하는 대표적 예가 무역을 통한 압박이다

        인권 개선을 위해 무역을 사용하는 것 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해진 제재가 좋은 예시이다

        1970~80년대에 전 세계인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분노했다

        법적으로 인종을 구분하는 정책으로 흑인들이 남아공의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 없게 했다

        이에 많은 국가가 무역 및 금융 제재를 남아공 정부에 가했다

        기업들은 남아공에서 투자를 철회하고 민간단체도 제재에 가담했다

        결국 남아공은 심각한 경제난과 압박에 시달렸다

        세계 경제에 온전히 참여했다면 누렸을 이득을 얻지 못했다

        경제적 결핍은 정치적 압박으로 이어졌다, 인종 분리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늘어났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비용과 경제성, 비효율성 문제로 결국에는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 사회가 압력을 가하며 인종 분리 정책 유지에 크게 반발했고

        인종차별 정책을 유지하는 데 상당한 금융 비용을 안겼다

 

    ☞  남아공 제재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국가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까?

          강압적 방법으로 전 세계에서 인권이 신장할 가능성은 적다

          물리적 수단은 가능성이 적고 비싼 전략이다

          경제 제재도 돈이 많이 들긴 마찬가지이다, 국가는 물론 기업 입장에서도 말이다

          기업은 제재 전략의 희생양이다, 정말 필요한 변화를 이뤄내기도 힘들다

          다른 국가의 동참을 끌어내기도 어렵다, 여러 국가가 협력하지 않으면 제재는 무시될 수 있다

          (2022년 러시아에서 철수한 글로벌 기업들)

          누군가는 제재 대상 국가와 무역을 하거나 경제적 구호를 제공할 것이다

          즉, 강압적 방법은 심각한 집단행동의 딜레마를 수반한다

          경제 제재만으로 인권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바꾸는 것도 어렵다

          만만한 상대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닌 경우가 많다

          이런 건 외부에서 제재를 가한다고 뿌리 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권 존중의 좋은 본보기가 제시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강압적 방법의 마지막 문제점은 도덕성 퇴색이다

          외부의 강압은 저항과 민족주의 운동을 부추길 수도 있다 

          한 국가와 사회가 다른 나라로부터 표적이 됐다고 느낀다면 방어 태세를 구축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타국을 대상으로 민족주의적 자세를 취하고 힘닿는 데까지 저항할 것이다

 

          도덕적 우위를 차지하려면 정당성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인권 관행 개선을 위해 다른 나라를 압력 하려면 말이다 

          강압적 방법은 대상의 특성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이나 국가의 힘이 셀수록 물리력 동원이 불가능해진다

          미국이 경제 제재로 중국의 인권을 개선하려 노력한 사례를 보라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기 전 미국은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해 무역으로 위협했다

          미국은 매년 인권에 대한 중국의 관행을 검토하고 의회에서 토론을 벌이며

          중국의 최혜국 지위를 철회한다고 위협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국 무역 시장에서 혜택을 받아 왔다

          미국 시장에서 받는 그 혜택들을 보류하겠다고 위협한 것이다

          미국의 이런 태도로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지 못했다

          중국의 인권 문제와 관련한 미국 정부의 입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압박에도 중국의 인권 실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은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 대응이 효과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강압적 제재는 유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대상이 강대국일수록 사용하기 어렵고

          효과를 내기가 힘들다

 

 

    2. 사회화 전략

        설득에 중점을 둔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는 방식을 매력적인 통치 모델로 삼아서 강압보다는 설득을 통해 인권을 지지하게 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 구성주의자들이 펼치는 중요한 이론이 있는데

        토마스 리세(독일 정치학자) 같은 학자가 이 이론의 선봉에 서 있다

        그들은 강압이 아닌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성적인 토론과 설득의 기술로 인권에 대한 지지를 형성하고

        국제 인권에 대한 합리적 대화를 나눈다는 게 강압적 방법과 다른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효과를 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성사된다면 장기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는 방식이다

        라이언 굿맨(뉴욕대학교 법학과 교수)이나 데릭 징크스(텍사스 대학교 법학과 교수) 같은 학자들은 

        국가도 사회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평판과 위신을 세워주면서 인권과 관련된 긍정적 조치를 취하며 인정해 주면 된다고 한다

        반대로 냉대하거나 무시할 수도 있다

        만약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인권 규범을 무시한다면

        사회적 압력의 형태로 중요한 회의에 초청하지 않는 것이다

 

        즉 인권 개선을 위한 방식으로 미묘한 사회적 신호인 인정과 불인정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의 교류나 국제기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인권에 대한 올바른 방침을 배울 수 있게

        인권 실현을 우선으로 여기고 많은 민주 국가가 속한 기구를 통해서 말이다

 

        설득과 독려를 통한 방법도 외부 영향이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게 올바른 행동을 배우고 익히는 방식으로

        한층 너그러운 사회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사회화 전략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지만 분명 한계도 있다

        연구에 따르면 국민이나 국가는 부드러운 개입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비판의 정도가 높아지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그 비판의 주체가 정치적 경쟁자이거나 국가 내부 체제를 저격하는 외부 인사일 경우가 그렇다

        가혹한 비판 전략 혹은 정도가 지나치면 비난이라고도 하는데  이 전략은

        민족주의 운동이나 일종의 반발을 부추기게 된다

        비난은 저항을 유발한다, 비난받은 나라는 민족주의나 문화주의적 태도로 방어벽을 친다

 

        사회화 전략의 마지막 특징은 사회화는 늘 인권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반사회적 형태도 있다

        개인의 인권 규범을 외면하는 방식의 사회화는 본인에게 이로운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

        이것을 핑계로 타인을 존중하지 않을 수 있다, 인권을 초월한 종교적 가치도 존재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개인의 인권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런 규범들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겠지만 사회화의 의미를 약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사회화에 어긋나는 메시지를 형성할 수 있다

        인권이 세계로 퍼져나가는 또 다른 방식에는 부메랑 모델이 있다

        이 개념은 마거릿 켁과 캐슬린 시킹크의 책 <국경을 초월한 운동가들>을 통해 유명해졌다

        부메랑 모델에는 설득과 어느 정도의 강압이 필요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초국가 옹호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얘기한다는 것이다

 

 

    3. 초국가적 네트워크의 개입

        이 전략은 억압적 정권 아래 있는 국가 내부 주체가 인권 침해를 인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억압적인 정부는 항의를 들어주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협박하기도 한다

        국가 내부 주체는 밖으로 나가 초국가 인권 옹호 단체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면 초국가 단체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면서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는 것이다

        능력껏 정치적 압력을 이용해서 억압적인 국가를 압박하기 위해서이다

        이 경우 초국가적 주체는 억압적 국가에 있는 주체와 협력하면서 국가 안팎에 인권 옹호 단체를 만들어

        다른 나라와 국제기구에도 접근한다

        억압적 국가에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즉 압력이 국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가해지는 것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압박해 행동을 촉구하는 건 아주 어렵다

        특히 중요한 안보 관계를 형성했거나 전략적 동맹 관계라면 말이다

 

        국제사회의 외압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

        한 나라의 외교 정책은 다양한 목적을 갖는데 인권이 외교정책의 최우선인 경우는 별로 없다

        국가의 중대한 목표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정치적 동맹국이 자국의 인권을 개선하게끔 압박하는 건 쉽지 않다

        심지어 인권 단체도 전략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항상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에 주위를 기울이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인권 단체도 이익을 위해 국제적 관심이 높은 문제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해외 자금 지원을 끌어내는 사안을 다루면  활동을 이어가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억압받는 당사자만이 그 상황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된다

        비물질적인 압박도 역풍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외부 세력의 자원을 대체할만한 대안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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