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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 3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 1~4강

by 상팔자 2024. 4. 18.

EBS 위대한 수업 3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 1~4강

위대한 백열 두 번째 강연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 (시즌 3 서른한 번째)

 

 

(2024.04.12 방송)

 

 

루크 동커볼케(Luc Donckerwolke) 자동차 디자이너

푸조 디자이너 (1990~1992)

아우디·스코다 디자이너 (1993~1997)

람보르기니 디자인 책임자 (1998~2005)

세아트 디자인 디렉터 (2005~2012)

벤틀리 디자인 총괄 (2012~2015)

현대 자동차 그룹 글로벌 디자인 본부장 (2003~)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 (2020~)

현대차, 기아차, 제네시스 디자인 담당 (2018~2020)

현대차 디자인 센터장 (2016~2018)

 

 

1강  슈퍼카 디자이너의 탄생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자라 주변에는

스포츠카나 고급 자동차보다 실용적인 차가 훨씬 많았다

아버지가 카레이서에 관한 프랑스 만화책을 갖다 주셨는데

네 살 때 그 만화를 보고 상상의 세계에 불을 지폈다

 

다른 세계에 나 자신을 투영했다

스포츠카가 존재하는 환경을 만들어 낸 것이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고 관심사는 자동차뿐이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을 공부하려고 조언을 구했는데

 

"alt":"루크 동커볼케가 들은 조언"

 

처음부터 계획을 부정당한 셈이었다

계획을 실현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차선책으로 택한 건 내가 좋아하는 기술이었다

 

그래서 벨기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터라

유럽에서의 생활은 엄청난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공학을 공부한 후에 아프리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님을 뵈러 볼리비아에 갔다가

간염에 걸리는 바람에 취직이 늦어졌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 요양하다가

 

"alt":"스위스의 디자인 학교"

 

한밤중에 벨기에에서 스위스까지 차를 몰고 갔다

그리고 부모님께 전화해 다시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22살부터 26살 때까지 다시 대학에 다니며 산업 디자인을 공부했다

 

18살이 될 때까지 10개국에서 살았다

주변 환경이 계속 바뀌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문화와 국적, 

다양한 사고방식을 대하는 법을 키워야 했다

 

이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첫 단계였다

디자이너는 여러 환경에서 생존해야 한다

끊임없이 배우고 항상 질문해야 한다

장난감의 작동 원리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가 제일 좋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할수록 더 나은 팀이 된다

디자인에서 최악의 상황이란 다른 관점이 전혀 없는 경우이다

 

그래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함께 하는데

이 말은 이동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도 함께한다는 뜻이다

여러 환경에 적응한 경험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이 부족하다

 

반면 일정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정체성이 강한 경우가 많다

문화 충격은 창의성에 큰 도움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겐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서 특정 배경을 배제하고 싶지 않다

 

▶▶ 창의적인 생각은 다양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다양성이 과거의 자동차 산업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자동차 산업이 국제적이지 않았다

 

"alt":"이탈리아와 독일의 다른 디자인"

 

미국에서는 미국 생활에 맞게 디자인했다

당시 자동차들은 서로 전혀 달랐다

미국 디자이너는 달 여행을 꿈꾸며

 

"alt":"미국의 자동차 디자인"

 

미래를 꿈꾸며 어디든 갈 수 있는 차를 원했다

반면 이탈리아 같은 국가들은 소형차를 만들었다

그 나라는 도로도 좁고 체형도 미국인과

다르다 보니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미국 자동차처럼 먼 거리를 달릴 필요도 없었다

 

그랬던 상황이 세계화로 달라졌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자동차를 평균에 가까운 상품으로 만들어야 했다

모두를 만족시킬 때와 하나에 집중할 때는 그림이 다르다

모두의 마음에 드는 상품의 크기와 사용방식을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이 지나친 수준에 이르렀다

80년대에 자동차 제조사들이 국제적인 자동차

만들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끔찍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가 취향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런 현상을 '스위스 칼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alt":"스위스 칼 신드롬"

 

따라서 국제화와 보편화는 밋밋하고 특성 없는 상품으로 이어졌다

이때 생산된 자동차들은 카멜레온처럼

모든 시장에 적응한 탓에 고유한 정체성을 갖지 못했다

이에 대한 반례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차들은 개성이 강했다

 

"alt":"영국의 자동차 미니"

 

"alt":"미니의 시그니처 디자인"

 

영국이 아닌 곳에서는 그 디자인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런데도 세계 어디서나 주목받아 영국의 가치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

 

"alt":"포르쉐911와 폭스바겐 비틀"

 

이 차들은 강한 개성 덕분에 모든 국가에서 사랑받았다

이런 상품은 이동 수단으로써의 기능만 충족한 게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런 상품이 진정으로 보편적으로 보인다

가치를 전달하는 능력을 갖춘 상품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콘셉트가 강해야 한다

 

일단 콘셉트가 강하면 어디서든 그걸 활용해 판매할 수 있다

취향이 담기지 않은 상품을 나는 '잡탕'이라고 하는데

이런 상품은 시장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

잠깐이라면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이런 상품을 다른 걸로 대체한다

인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alt":"루크 동커볼케가 생각하는 디자이너의 역할"

 

람보르기니가 특유의 거친 개성을 잃어버린다고 해 보자

엔진 구동의 특성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말이다

그렇다면 람보르기니는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강한 정체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게 아니다

람보르기니의 생명은 엔진이다

 

"alt":"람보르기니의 생명은 엔진"
"alt":"람보르기니의 엔진"

 

람보르기니의 핵심은 엔진이니 디자인도 그 점을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엔진의 특성을 훔치려 해선 안 된다

 

처음 람보리그니에서 일한 게 1998년이었는데

그땐 람보르기니에 디자인 스튜디오가 없었다

회사에서 소개한 테스트 드라이버는 이탈리아 대통령보다 유명했다

다른 사람이 디자이너라고 나를 소개하자

그분이 "엔진 덮개를 디자인하러 온 친구로군"라고 했다

"아니요! 저는 자동차 전체를 디자인할 건데요"

그러자 그 분이 말했다

"우리가 엔진을 만들면 당신이 덮개를 만드는 겁니다"

 

람보르기니에서 차체는 엔진 덮개에 불과했다

엔진이 차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람보르기니가 엔진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

 

디자이너는 미니멀한 블랙 드레스를 만들 뿐이라는 것이다

공기역학적, 미학적 기능을 갖출 수는 있어도

자동차의 중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것이다

 

람보르기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엔진이다

따라서 람보르기니에서 디자인할 때는

엔진의 특성을 디자인에 반영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성이 담긴 디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그런 개념에 언제나 반대해 왔다

그건 낡은 개념이다

만약 디자이너가 감성적 가치를 상품에 반영하지 않고

오직 기능으로만 상품을 규정한다면 오래가기 힘들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새로 출시된 상품이라서 호기심을 보일 순 있지만

감성이 없으니 관심은 금세 사그라들 것이다

 

기능이 우선이라기보다 기능과 디자인은 하나다

 

양쪽이 같은 가치를 갖고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

디자인과 기능이 양극단을 향하면 성공에 걸림돌이 되니

디자이너는 그 균형을 찾아야 한다

 

 

 

 

(2024.04.15 방송)

 

 

2강  기술은 어떻게 디자인이 되는가

 

 

 

 

디자이너는 예술을 하지 않는다

예술적 언어인 그림을 이용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주고받긴 하지만

가장 먼저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문제점을 발견하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그게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이다

기술은 디자인의 일부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여러분이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영감을 얻었다고 하자

그건 시작일 뿐이고 그 아이디어를 쓸모 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걸 구현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죽어 버린다

아이디어를 보호하고 실현할 기술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설명을 해야 한다

누군가가 내 아이디어에 반할 거라고 기대하지 말고

근거를 대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합리적 요소가 필요하다

기술, 비용 등이 합리적 요소에 해당한다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고 타인의 삶을 개선하는 것

이런 것들이 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alt":"기술에 뿌리를 둬야 한다"

 

람보르기니에서 처음 일할 때 만든 디자인은 조각품이었다

기술적 측면이 충분하게 반영되지 않았다

디자인을 끝냈는데 엔지니어들은 이렇게 말했다

"엔진의 냉각 기능이 필요량의 20% 밖에 안 돼요"

 

"alt":"람보르기니 공기 흡입구 디자인"

 

그래서 디자인을 수정하고 엔진을 냉각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디자인을 망가뜨리기 싫다는 게 문제였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지금은 공학과 부딪히는

디자인을 하고 있으니 양쪽의 균형을 맞춰야 했다

그렇게 무르시엘라고의 '움직이는 공기 흡입구'가 탄생했다

 

"alt":"무르시엘라고 움직이는 공기 흡입구"

 

움직이는 공기 흡입구로 디자인도 지키고

그 디자인에 기술까지 담아 아이디어를 구현했다

기술을 모르면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건 '디자인'이다

나머지는 스타일링 아니면 예술이다

 

스타일링은 미학적 측면만 다루지만

디자인은 미학과 기능을 모두 아우른다

 

훌륭한 상품은 이렇게 만드는 것이다

누가 상품을 보고 첫눈에 반했는데

날이 갈수록 기능이 맘에 들어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상품이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더 이상 이 상품을 쓰지 않을 것이다

삶을 더 좋게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아름다움은 기능에서 나온다

따라서 디자인을 매력 있게 만들면서도

소비자가 매일 사랑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할 때 상품은 더 좋아진다

 

디자이너가 자기는 멋진 걸 만들었는데

기술과 공학이 그걸 망쳤다고 비난하면 안 된다

디자인은 기술과 함께할 때 더 훌륭해진다

 

효율적인 상품은 사용자와의 관계를

매일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효율성이다

 

효율성은 잘 팔리는 디자인의 수일 수도 있다

자신이 꿈꾼 대로 상품을 디자인하는 것과

고객이 앞으로 무엇을 원할지 이해하는 건

서로 다른 일이다

그 답은 본인이 갖고 있어야 한다

 

이웃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고 무엇을 소비할지 예측해야 한다

그리고 디자인의 효율성이란

디자이너가 자신의 비전을 잘 팔리는 상품으로 바꿔

회사에 미래를 선물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일자리는 소비력으로 이어지니 곧 소비자도 생길 것이다

효율성 있는 상품은 이렇게 생태계를 만들어 낸다

 

"alt":"디자인의 효율성"

 

디자이너가 만든 것이 하나의 우주가 되는 것이다

'애플'은 필요해서 탄생한 게 아니다

하나의 생태계를 창조하며 스스로 등장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생태계와 자신을 동일시하면

생태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가 된다

이건 디자인 효율성의 완벽한 전형이다

 

 

디자인이 덜할수록 더 훌륭해진다고 생각한다

상품에서 디자인 요소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눈에 띄지 않고 자연스러운 게 좋은 디자인이다

어떻게 보면 모순이다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상품을 첫눈에 보자마자

구매하고 싶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는 덜어내되

감성적으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미학적인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완벽한 아름다움을 찾다 보면

상품의 개성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곤 한다

 

개성은 어떻게 창조할까?

다음 두 가지 표현으로 누군가 당신의 상품을 칭찬한다면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alt":"모욕으로 받아들여야 할 칭찬"

 

"시간을 두고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네요"

 

그건 디자이너가 만든 상품을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위험과 마주할 때 진화한다

 

그리고 소비자를 진화하게 해 주지 않는다면

퇴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날마다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 문제는 많은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1997년 디자인한 상품으로 2000년에 출시된

아우디의 A2를 예로 들어보자

 

A2는 시대를 앞선 상품이었다

때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당시 사람들에겐 역동적이고 감성적인 게 제일 중요했다

 

지속 가능성 / 배출저감 / 친환경

이런 것에는 아무도 관심 없었다

하지만 아우디는 이걸 콘셉트로 효율적인 차를 만들려고 했다

 

"alt":"아우디 A2"

 

풍동 실험으로 최상의 공기역학적 계수를 찾아

연비가 잘 나오도록 디자인했다

 

"alt":"풍동"

 

바람의 저항이 없어야 했다

 

"alt":"아우디 a2의 컴팩트 디자인"

 

하지만 이 차는 성공을 안겨 주지 못했다

당시 아무도 묻지 않던 질문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효율성 측면에서는 완벽한 디자인이었지만

당시에 내놓을 답은 아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덕분에 많은 걸 배웠으니 완전한 실패는 아니다

회사와 직원들에게도 배우는 기회가 됐다

한 일본인 디자이너가 말했듯이

따분한 성공보다는 흥미로운 실패가 낫다



 

 

(2024.04.16 방송)

 

 

3강  슈퍼카 디자인은 무엇이 다른가

 

 

 

 

 

"alt":"아우디 람보르기니 인수 뉴스"

 

그 소식을 듣고 람보르기니를 디자인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 생각을 지워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밤 10시까지 야근하고 있었는데 상사가 부르더니 물었다

 

"alt":"다른 나라에서 일하기를 권한 상사"

 

어떤 일인지도 모른 채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구체적인 얘기도 듣지 않고 승낙했는데

람보르기니에서 일하라는 것이다

 

"alt":"람보르기니 슈퍼카"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디자인 센터가 없었다

그때까지는 디자인 센터에서 팀원으로 일하는 게 익숙했었다

당시 5~6년 차 된 디자이너여서 혼자 작업할 준비가 안 됐지만

졸지에 차 전체를 혼자 디자인해야 했다

 

디자인 팀이나 센터 없이 모든 걸 해내야만 했다

디자이너와 손발을 맞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과 일해야 했다

그래서 무르시엘라고를 디자인하면서

람보르기니 디자인 센터까지 구상해야 했다

람보르기니 최초의 디자인 센터였다

 

바퀴와 운전대, 실내외를 혼자 디자인하고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동안 도움을 기대할 순 없었다

꿈꾸던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가 좋은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회사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람보르기니는 하나의 모델에 모든 걸 거는 기업이다

보기도 좋을 뿐 아니라 실제 작동하는 차를 만들어야 했고

회사의 유산을 이을 만한 수준이어야 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고 회사에 열정과 자부심을 담아야 했다

 

"alt":"유령 디자이너를 요구한 람보르기니"

 

람보르기니 디자이너는 이탈리아인이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때 람보르기니 디자인만 하면 상관없다고 했다

 

2001년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출시되던 날

회사는 젊은 벨기에 사람이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디자인은 인정받았다

 

이 차는 훨씬 일찍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내가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했다

아우디 경영진에 제안된 디자인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내게 맡긴 것이었다

프로젝트의 지연으로 판매할 차가 없어져 

회사가 위기에 처해지자 페이스리프트 모델까지 디자인했다

 

"alt":"디아블로 200vt"

 

미래의 람보르기니에 주력하면서 과도기의 모델도 디자인해야 했다

이 작업은 큰 도약을 하면서 작은 도약도 동시에 하는 일이었다

업적은 인정받았고 벤틀리에서도 같은 일을 겪었다

 

"alt":"벤틀리"

 

벤틀리는 영국인이 디자인하는 영국 자동차인데

나는 영국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특별히 벤틀리를 디자인하게 됐다

 

"alt":"벤틀리의 자동차"

 

디자인은 국경을 초월한다

디자이너가 어떤 사람이고 어디서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를 디자인할 때는

감성적인 측면이 중요하다

물론 기능성도 중요하지만 그 정의가 다르달까?

몇 명이 타고 얼마나 효율적인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달리고 큰 소리를 내며

감성을 자극하는지가 중요하다

 

따라서 스포츠카를 디자인할 때는

차를 보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 상품과 감성적 관계가 맺어져야 한다

감성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람보르기니를 만들면서 감성을 배제한다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 차를 사지 않을 것이다

 

평범하고 기능적이고 매일 몰 수 있는 차와는 다르다

그런 차는 감성을 충분히 자극하지 않더라도

이성적 요인이 감성적 측면을 보완해 준다

 

즉 접근법이 완전히 다르다

양산차를 디자인한다면 접근법이 또 다르다

이런 차를 디자인할 때는 높은 투자 집약도를

고려해야 한다

 

기계와 금형이 많이 동원되고 정교함은 줄어들게 된다

 

"alt":"금형"

 

금형 작업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윤을 얻으려면 차를 수백만 대 생산해야 한다

생산량을 200~300만 대로 잡아야

투자 비용을 분할 상환할 수 있다

 

연구 개발 비용과 금형, 테스트 작업까지 고려하면

상품 생산 과정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로봇화와 자동화, 금형과 프레싱에 대량 생산의 논리가 적용된다

 

1년에 자동차 100만 대가 아니라

300대를 생산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면 금형 비용을 댈 수 없을 것이다

막대한 연구 개발 비용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테스트나 연구가 많이 요구되지 않는

훨씬 효율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동시에 도구나 로봇이 아니라

수작업으로도 생산하는 차도 디자인해야 한다

 

전혀 다른 생산 방식인 것이다

만드는 방법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수백만 대씩 생산되는 자동차의 경우

 

10~15초마다 기계가 스탬핑을 하고

조립 과정도 단계마다 초 단위로 빠르게 마무리된다

1분 이상은 걸리지 않는다

 

반면 스포츠카를 디자인할 때는 

시연용 차의 작업은 단계마다 1시간씩 걸린다

대량 생산 자동차의 도장 작업은

아무리 오래 걸래도 15뷴 안에 끝나지만

슈퍼카는 손으로 칠하기 때문에 최대 11일이 걸린다

 

노동집약적 작업이라

각 노동자의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다

따라서 차를 디자인할 때는 생산 라인의 사람들에게

가능 여부를 물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대시보드에 프레싱 처리를 하지 않고

가죽을 씌우려면 하루가 걸린다

사용하려는 가죽이 손으로 늘여도 괜찮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만약 벌레 먹은 자국이 있다면 가죽을 늘일 때

그 구멍이 커져서 문제가 된다

 

좋은 디자이너는 뭐든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alt":"환경에 나를 맞춰야 한다"

 

디자이너는 혼자이다

뒤에서 도와주는 팀 없이 혼자 해내야 한다

간섭이 없다 보니 장난감 갖고 놀듯 차를 디자인하게 됐다

나중에 프로젝트의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자

내 장난감을 공유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디자인 책임자가 아니라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서 팀을 꾸려야 한다는 걸 깨닫고

혼자 노는 건 그만둬야 했다

 

무르시엘라고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은

혼자 디자인한 마지막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그 후 람보르기니에서 동료는 3명에서 5명이 됐고

회사를 옮긴 후에는 45명에서 140명으로 많아졌다

 

지금은 전 세계 21개 스튜디오에서 1,225명의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니 장난감을 공유해야 할 친구가 많아졌다

 

 

 

 

(2024.04.17 방송)

 

 

4강  디자인에는 기업 DNA가 있다

 

 

 

 

벤틀리에서 일하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디자이너의 호기심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부담도 없었고 벤틀리를 떠날 이유도 없었으니 절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22년 동안 같은 그룹에서

일하다 보니 경력이 정체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연락을 받아 대화를 나눴는데 이야기가 점점 흥미로워졌다

현대 자동차 그룹은 대중적이고 훨씬 혁신적이어서

더 많은 걸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22년간 일했던 곳보다 제약도 덜 했다

 

그리고 또 놀라웠던 사실은 현대차 그룹이 세계 최초로

수소 연료 전지 자동차를 출시했다는 거였다

그런 일을 해냈다니 창의성을 발휘하게 해 줄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차그룹은 차만 만들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alt":"현대차그룹의 다양한 업종의 디자인"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우는 중이다

예상한 적은 없지만 대단한 경력 전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차그룹에 합류했을 때

제네시스의 디자인 책임자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꿈같은 일이었으니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 만든 브랜드를 위해 디자인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디자이너의 후임을 맡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최초로 하는 일이었다

 

우선 디자인의 정체성을 세워야 했다

②디자인 팀도 짜야 했고

세 번째로 디자인 프로세스도 만들어야 했다

 

'무'에서 시작한 것이다

디자이너가 된 후 처음으로

브랜드를 100% 책임진다고 느꼈다

출시 첫날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인재들을 데려와

제네시스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대차와 제네시스의 디자인 차별화를 위해

제네시스에는 날개 로고를 썼다

디자인 정체성을 확립해야 했다

 

누구도 한 적 없는 걸 만들어야만 했는데

그게 제네시스 로고였다

 

 

제네시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제네시스는 브랜드가 디자인이고 디자인이 브랜드이다

둘은 구분되지 않고 완전히 통합됐는데 그 점이 중요했다

 

디자인 업무를 계속하면서 브랜드 감독까지 맡아 달라는 

깜짝 놀랄 제안을 받았다

마케팅의 모든 면을 디자인과 통합하라는 뜻이었다

디자이너가 브랜드의 책임자가 된 전례도 없었고

내게도 매우 특별한 일이었다

 

나 자신이 브랜드와 동기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지고 아주 힘들었던 시절

나는 유럽에 갇혀 있었고 그때 제네시스가 출시됐다

제네시스가 선형의 두 날개를 펼치며 등장했다

 

동료들이 출시 소식을 전해왔다

 

"alt":"제네시스의 출시"

 

하지만 유럽에 있던 나는 볼 수 없었다

1년 후인 2021년에 한국에 돌아오니 

선형의 두 날개가 사방에서 보였다

두 날개를 보게 됐으니 꿈이 현실이 됐다

 

그렇게 제네시스에 합류한 지 3년이 지나고 

기아의 디자인도 맡게 됐다

처음 한 일은 몇 차례 의문이 제기된 바 있는

로고를 바꾸는 거였다

여러 사람이 예전 로고를 보고

창의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동차 몇 종을 디자인하고 일부 프로젝트의

재디자인을 요청하면서 2019년에 시연용 차에서

선보였던 새로운 로고를 제작에 쓰기로 했다

그건 단순한 아이디어 이상이었다

 

기아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기아는 언제나 가장 도전적인 브랜드였다

 

"alt":"도전적 브랜드 기아"

 

그런 가능성을 나타내기에 기존의 평범한 로고는 다소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흥미로웠다

다른 기업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로고는 기업의 중요한 부분이고 신처럼 절대적인 존재인데

그런 로고에 의문을 품는다는 데서 한국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독일의 기업이었다면 로고를 바꾸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로고 교체는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현대화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로고는 기업 전체를 뒤바꾸고 브랜드의 창의성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로고를 바꾸는 데 모두 동의한 순간부터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디자인은 단순한 조각품 이상이다

디자인은 기업의 DNA를 구현한 것이고 DNA는 로고에서 시작한다

 

"alt":"로고 교체와 기업 DNA의 변화"

 

지금부터 50년 전에 현대라는 기업이 설립됐고

현대자동차가 탄생했다

그 시작은 '포니'였다

이 모델을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나의 멘토이자 자동차 디자인의 영웅이고

최초의 현대차를 탄생시켰다

 

"alt":"국민차 포니"

 

당시 우리는 현대라는 기업을 재창조해야 했는데

그 방법으로 포니를 오마주하는 걸 택했다

기업의 뿌리로 돌아가 새로운 반세기를 시작하고 싶었다

 

아이오닉 5는 포니의 DNA를 재해석해 만든 모델이다

 

"alt":"포니를 오마주한 아이오닉"

 

미래를 지향하기 때문에 복고풍 자동차는 아니지만

최초의 현대차와 닮은 특징을 갖춘 만큼

정통 현대차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을 찍은 모델이기도 하다

 

아이오닉 5는 현대의 재탄생을 의미한다

주지아로를 초청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가 최초로 현대차를 디자인한 지 50년 만의 일이었다

 

2016년부터 아이오닉 5를 출시할 때까지 했던 모든 일은

현대차그룹의 다가올 반세기를 준비하는 작업이었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담당하는 브랜드의 DNA를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그 디자인 DNA를 이어받아서 미래를 향해 진화한다

-「위대한 수업」 인터뷰 중-

 

미래의 이동은 인간 중심이 될 것이다

어린이든 노인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차가 아니라 이동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판이 새롭게 짜이는 시대를 앞두고 있다

 

다양한 길이 열린다는 게 중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남고

이 도전에 성공해 승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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