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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 3 (밤의 역사) 1~5강

by 상팔자 2024. 4. 12.

EBS 위대한 수업 3 (밤의 역사) 1~5강

위대한 백열 한 번째 강연 '밤의 역사' (시즌 3 서른 번째)

 

 

(2024.04.05 방송)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 피사 고등사범학교 명예교수

이탈리아 역사학자

미시사의 개척자

저서 <밤의 역사>, <치즈와 구더기> 등

 

 

1강  마녀의 탄생

 

 

 

 

밤과 낮 어둠과 빛은

동서고금의 모든 인류가 몸소 겪어 아는 대립 관계이다

하지만 밤과 낮의 대립은 은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역사엔 오랜 세월 외면받은 어두운 이면이 있다

 

여성과 농민의 역사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게 기록된 문서를 본 적이 있나?

답은 아주 명확하다

 

기록을 남길 권리는 사회적 위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근데 초기의 유럽에선

여성과 농민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기록은 특권층에 의해 편집 및 왜곡됐다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려면

학자들은 역사적 기록의 행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유대계 독일인 철학자 겸 평론가인 발터 벤야민이 한 말이다

"결을 거슬러라"

기록자의 의도를 거스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 다룰 증거들은 대부분 종교 재판 기록이다

 

&quot;alt&quot;:&quot;종교재판&quot;

 

재판관은 도미니코 수도회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였다

억압하는 자가 남긴 기록을 분석해서 피해자의 입장을

알아내겠다는 게 상식에 반하는 모순적인 일처럼 느껴질 것이다

 

종교 재판관들은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면

고문 같은 신체적, 심리적 폭력도 동원했다

마녀재판을 다룰 때 특히나 그랬다

 

&quot;alt&quot;:&quot;마녀재판을 다루는 재판관들의 고정관념&quot;

 

오늘은 예외적인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모데나 국립 문서보관소에 보관돼 있던 종교 재판 기록이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모데나에서 1519년에 열린 재판이었다

재판의 주인공은 농민 여성 키아라 시뇨리니이고

마녀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재판관은 도미니코회 수도사인 바르톨로메오 스피나였다

그는 특히 마술에 관심이 많아서

이 재판이 끝나고 몇 년 후 라틴어로 된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키아라는 저주를 건 혐의를 받았다

 

&quot;alt&quot;:&quot;키아라 시뇨리니의 마녀 혐의&quot;

 

그런데 재판을 받던 키아라가 이런 말을 한다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성모 마리아를 만났다고 말이다

무릎 꿇고 기도하는 키아라에게 자신을 경배하라 말했다고 한다

키아라는 시키는 대로 땅에 입을 맞췄다

재판관은 키아라에게 물었다

"성모에게 너와 네 재산을 보호하고 해를 끼친 자들을 응징해 달라고 빌었나?"

"성모님이 복수를 약속하고 제게 해를 입힌 자들을 응징해 주셨습니다"

또 자신이 15살 때 성모에게 육신과 영혼을 바쳤다고도 했다

 

재판에서 이런 문답이 수없이 이어진다

재판관의 심문은 목적과 수법이 노골적이었다

자신의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들을 했다

적에게 복수하는 행위

육신과 영혼을 바치는 행위를 진술하도록 유도했다

키아라의 대답은 애매한 감이 있지만

재판관이 보기엔 충분히 사악한 이야기였다

그들은 키아리가 만났다는 성모를 악마 같은 존재로 치부했다

키아라는 재판관의 의도에 따라 얌전히 심문에 응했다

그러면 처벌을 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키아라의 진술은 지어낸 거짓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귀중한 정보를 준다

바로 당대 민중의 신앙에 대한 간접적인 정보이다

 

재판은 이틀 뒤 재개된다

짧은 문답이 이어졌는데 거기서 키아라는

자신에 대한 마녀 혐의를 완전히 부인했다

재판관은 고문을 통해 심문을 이어가려고 했다

밧줄에 묶인 채 고문 도구를 본 키아라는

자백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지주를 어떻게 저주했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관은 더 많은 걸 알길 원했다

 

혹시 키아리가 악마의 계시를 받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키아라는 악마가 청년의 형상으로 나타나

모든 욕망을 털어놓으라 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키아라는 지주를 저주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경작하던 땅을 뺏은 지주 마르게리타 판차나 말이다

 

재판관은 전과 같은 기술적인 심문을 이어간다

키아라의 답변을 은연중에 유도했다

악마가 도움의 대가로 숭배를 요구하진 않았는지

그래서 키아라가 정말로 악마를 숭배한 건 아닌지 물었다

키아라는 악마가 시킨 대로 그를 숭배했다고 대답했다

지주를 저주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재판관이 키아라에게

전날 저녁에 진술한 내용을 확인하라고 하자

키아라는 모든 걸 부정한다

자기가 한 모든 말이 거짓말이었다고 했다

고문이 무서워서 지어낸 얘기라고 말이다

 

재판이 계속되고 고문과 부정도 반복된다

그러다 키아라는 감옥 안에서 악마를 만난 적이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에 키아라는 어느 날 아침 악마가 나타났다고 했다

까만 옷을 입은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녀에게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 말했다고 했다

어차피 종교 재판관에게 화형 당할 테니 말이다

재판관은 그 밖에도 악마가 감옥에 나타난 적 있는지 물었다

키아라가 말하길, 처음에는 이런 목소리만 들렸다고 한다

"견뎌라,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라."

키아라는 그게 성모인 줄 알았다면서

성모가 자주 하얀 옷을 입고 자신 앞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마녀 혐의를 받던 키아라는 결국 패소했지만

마녀라고 단정 짓기에 진술은 충분치 않았다

키아라는 흑과 백, 악마와 성모를 하나처럼 묘사했기 때문이다

또 재판관이 키아라의 진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심문 기술과 고문을 통해 말이다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방금 본 키아라의 사례처럼

피고인이 재판관의 의도에 완전히 넘어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키아리는 악마를 소환하고 영혼을 바쳤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마녀다운 범죄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마녀 집회에 가거나 악마와 동침하는 것

교회 예식을 모독하고 신앙과 세례를 부정하는 것 말이다

키아라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대답했다

앞서 자신이 진술한 범죄만 인정했다

 

키아라의 사례가 양면적이라고 생각한다

키아라의 사례는 마녀재판이 문화적 고정관념의

극단적 예시라는 걸 보여준다

성직자와 민간 재판관들이 만들어낸 이 고정관념은

상징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을 통해 하층민 남녀에게 덧씌워졌다

 

반면 키아라의 재판은 아주 이례적인 사례기도 하다

가끔은 농민 여성의 주장도 받아들여졌다는 걸 보여준다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말이다

 

키아라는 성모가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응징한다고 믿었다

키아라와 남편을 경작지에서 쫓아낸 마르게리타 판차나 같은 적 말이다

 

모데나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키아라의 재판 기록을 발견했을 때

이런 예외적인 사례가 엄청나게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문화척 측면을 드려내 주기 때문이다

 

키아라의 믿음처럼 기록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측면들 말이다

이렇게 많은 예외적 사례를 심층분석하는 미시사는 

역사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렇게 우리는 거대한 일반화에 도달하고

세계 역사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2024.04.08 방송)

 

 

 

2강  베난단티와 마녀의 전투

 

 

 

 

이탈리아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하층민 문화 이론을 연구했다

19세기 프랑스 역사학자인 쥘 미슐레는 마녀를 저항의 상징으로 봤다

 

1963년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돌며 종교 재판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마녀재판 기록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하루는 종교 재판 기록을 찾다가 베네치아 국립 문서보관소에서

1591년 메니키노라는 사람의 진술을 발견했다

그는 라티사나 지방의 목동이었다

 

메니키노는 자신이 양수 주머니를 뒤집어쓴 채 태어났다고 했다

 

&quot;alt&quot;:&quot;베난단티&quot;

 

베난단티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종교 재판관이 그 뜻을 물었다

메니키노가 설명하길 베난단티는 1년에 3번 꿈을 꾼다고 했다

"꿈에서 여호사밧의 초원에 갔습니다

정말 드넓고 아름다운 들판에 있는 느낌이었죠

향기도 났습니다. 땅이 좋은 냄새를 뿜어냈죠

장미와 꽃들이 흐드러지게 펴 있었어요"

그리고 덧붙여 말했어요

 

"거기서 마녀와 싸웠습니다

서로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고 주먹질을 하고, 넘어뜨리고

회향 줄기로 때렸죠"

"왜 싸운 건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요. 하지만 어떤 신앙인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베난단티가 이기면 풍년이 듭니다"

재판관의 심문은 점점 교묘해진다

"그 땅에서 다른 일은 없었나?"

메니키노는 없었다고 대답한다

다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마녀와 싸웠다고 했다

 

이것은 농경문화에 관한 민중의 믿음을 기록한 자료였다

편견이 섞이지 않은 기록이었다

종교 재판관이 놀라워하는 반응은

마녀에 대한 고정관념과 메니키노가 묘사한

밤의 전쟁 사이의 간격을 보여준다

 

꿈속에서 벌어진 베난단티와 마녀들의 전쟁은

신앙을 지키고 풍년을 부르기 위한 전쟁이었다

이건 비유적으로나 말 그대로나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내는 사례이다

 

메니키노의 종교 재판 기록은 아주 특별한 자료다

그 뒤 사례를 모으기 위해 우디네에 있는 문서보관소에 갔다

우디네 대교구 참사회 문서보관소에도

수많은 종교 재판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중 다수가 남성과 여성, 베난단티에 대한 재판이었고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 의해 16~17세기에 주재됐다

당시 남성 베난단티의 진술은 재판관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들은 영혼 상태에서 마녀와 싸웠다고 말했다

여성 베난단티들은 영혼의 눈으로

죽은 자의 행렬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베난단티는 꿈속에서 경험한 걸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게다가 이 기록물들은 보존 상태도 아주 좋았다

유럽 민중의 문화사를 재건하려는 사람에게

베난단티의 종교 제판 기록은 보물 창고와도 같았다

이만한 사료는 지금까지 그 어디에도 없었다

 

1581년, 바티스타 모두코라는 자가 종교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다른 베난단티들과 1년에 4번 사계재일 밤에 전투를 하러 가죠

싸울 땐 육신을 남겨둔 채 보이지 않는 영혼의 모습으로 갑니다"

 

&quot;alt&quot;:&quot;베난단티의 회향단&quot;

 

베난단티의 말을 듣고 종교 재판관들은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마녀와 싸운다는 그들이 마녀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코가 설명을 이어간다

"베난단티와 마녀들은 한 번은 밀과 온갖 곡식을 걸고

한 번은 가축을 걸고 또 한 번은 포도밭을 걸고 싸웁니다

그러게 4번에 걸쳐 이 땅의 모든 양식을 걸고 전투를 벌인다"

그리고 베난단티가 이겼을 때 그 작물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즉, 배난단티의 야간 회합은

농사 주요 절기에 맞춘 일종의 풍년 기원 의식이었던 것이다

 

베난단티는 모두 양수 주머니를 쓰고 태어난 자들로

그들이 20살이 되면 소집된다고 했다

마치 병사를 모으듯 북을 울려서 말이다

이 의무를 거부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종교 재판관은 베난단티를 곤란하게 할 목적으로 묻는다

 

&quot;alt&quot;:&quot;베난단티에 대한 재판관의 질문&quot;

 

여기서 우리는 수도사가 거리를 두며

자기가 모르는 '베난단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두코는 굴하지 않고 말했다

 

&quot;alt&quot;:&quot;베난단티에 대한 모두코의 대답&quot;

 

모두코의 말에 놀란 재판관이 물었다

"베난단티가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말하라"

모두코가 대답한다

"그저 영혼이 육신을 떠나 돌아다닐 수 있게 될 뿐입니다"

 

베난단티들은 자신의 영적 체험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종교 재판관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답과

베난단티가 하는 진술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싶어 했다

고문까지 동원했다

 

베난단티는 마녀의 적이 아닌 마녀 그 자체라는 진술을 받으려고 말이다

이런 일은 50년에 걸쳐 일어났다

베난단티들은 수많은 재판을 겪으면서

마녀의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됐다

 

1618년 메니키노가 태어난 라티사나 마을에 소문이 퍼진다

'배불뚝이 마리아'라고 불리는 마리아 판초나가 마녀라는 소문이었다

마리아는 종교 재판에 회부돼 정말 마녀냐는 질문을 받았다

마리아는 처음에 혐의를 부정했다

"저는 마술이나 요술은 모릅니다

저는 베난단티여서 마녀나 마술사에 맞서 싸우죠

마녀들은 3달에 한 번 여호사밧의 초원에 모이고

저도 다른 베난단티들과 그곳에 갑니다

우리는 목요일 밤에 그곳으로 출발하죠"

 

하지만 며칠 뒤 상황이 바뀐다

마리아 판초나가 마녀 입회식에 대해 진술하기 시작한다

"마녀가 되고 싶은 자는 한밤중 마녀 집회에 갑니다

거기서 공중제비를 세 번 넘어야 하죠

하지만 그전에 악마를 소환해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신앙을 세 번 부정한 뒤 손에 침을 뱉고 두 손을 세 번 비벼야 하죠

그러면 악마가 영혼을 끄집어내고 생기 없이 죽은 듯한 육신만 남습니다

악마가 다시 영혼을 몸에 넣어줄 때까지요"

 

마리아는 악마를 소환해 이 모든 절차를 밟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리아는

자신 같은 베난단티와 마녀를 은근히 구분하고 있었다

"모든 마녀는 신앙을 부정하고 악마에게 자신을 바칩니다

하지만 대부분이 즐거움을 위해 하는 거죠

남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요

저는 저주받은 이들을 치료하려고 악마에게 힘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프리울리주에서 발견한 이 사례를 찬찬히 따라가 보면

종교 재판관이 농민들의 민간 신앙에

어떻게 사악한 마녀 이미지를 덧씌웠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일은 유럽 전역에서 일어났지만 증거를 남기진 않았다

 

그래서 프리울리에서 발견한 게 엄청난 사료라는 것이다

재판 기록이 1천 건이 넘고 베난단티 관련 재판 기록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역사적 증거로서,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아주 독특한 자료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이런 독특한 사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024.04.09 방송)

 

 

3강  마녀집회에선 무엇을 할까?

 

 

 

 

우디네 대교구 참사회 문서보관소의 16~17세기 재판 기록들은

종교 재판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심리적, 신체적 위협을 통해

베난단티를 세뇌하는 데 성공했다는 걸 보여준다

그들 자신이 사실 마녀고 '밤의 전투'는 일종의 마녀 집회라는 걸 말이다

 

 

♣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가설

수수께끼 같은 프리울리의 재판 기록들은

유럽 전역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훌륭한 증거이며

'마녀 집회'의 정형화된 이미지풍요, 사냥과 관련된

고대의 민간 신앙에 덧씌워졌다

 

이 가설은 면밀히 분석하고 검증할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마녀 집회의 이미지 역시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야밤에 남녀가 모여 짐승 형상의 악마를 숭배한다는 이미지가 생긴 걸까?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특정한 사건을 발견했다

1321년 기독교에 반하는 세 종류의 음모론이 프랑스 전역에 떠돌고 있었다

 

♧ 첫 번째 음모론

당대 한 역사서를 보면 프랑스 왕국 전역에서 나병 환자들이 감옥에 갇혔고

교황으로부터 죄인 선고를 받아 화형 당했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집에 구금됐다

몇몇 나병 환자는 신분을 막론하고 건강한 기독교도를 모두 죽여서

세상을 지배하려 했다는 진술을 했다

 

♧ 두 번째 음모론

유대인들이 나병 환자와 손잡고 분수와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쓰여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유대인이 나병 환자들과 함께 화형 당했다

 

♧ 세 번째 음모론

그라나다 왕국의 무슬림 왕이 유대인과 손잡고

기독교를 무너뜨리는 대가로 거액을 제시했다

유대인들은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직접 행동할 순 없었다

유대인은 항상 의심받는 존재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계획을 실행하는 건 나병 환자들에게 맡겼다

나병 환자는 기독교도들과 가까이 지내서

물에 독을 풀기도 쉬울 거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나병 환자의 지도자를 모아

악마의 힘을 빌려 신앙을 포기하게 하고

성체를 갈아 치명적인 독을 만들게 했다는 것이다

 

☞  이 세 가지 소문 때문에 나병 환자와 유대인들은 고문을 받고

억지 자백을 했으며 폭도들에게 습격당하기도 했다

 

그라나다와 튀니스 왕국의 왕이 썼다는 가짜 편지도 나돌았다

바나니아스라는 유대인에게 보낸 편지로

기독교인을 독살할 계획이 자세하게 적힌 편지였다

 

이 기록을 시작으로 유럽 역사에선

이와 같은 음모론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기독교 사회에 반하는 이 만들어진 음모는

많은 경우 유대인을 속죄양 삼았다

 

하지만 1321년부터 시작됐을 거라 추정되는

나병 환자, 유대인, 그라나다 왕에 대한 이 음모론이

정치적, 종교적 권력자의 진짜 음모를 숨기려고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논리이다

 

이 음모론은 아래서부터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유대인과 나병 환자에 대한 오랜 편견을 가진 대중들로부터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탄압이 신속하게 확산됐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도보나 노새, 말로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 말이다

소문이 퍼져나간 거리도 생각해봐야 한다

 

&quot;alt&quot;:&quot;음모론 소문이 퍼져나간 거리&quot;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행동을 통해 민중의 불안을

원하는 방향으로 확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사건에서 의도는 중요하지도 않고

확인할 방법도 없다

고문을 통해 날조된 진술을 받아 내거나

원하는 결과를 위해 증거를 위조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벌어지는 일이다

 

선한 의도로도 얼마든지 저질러지는 일이다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진실을 증명하려고 말이다

몇십 년 뒤인 1348~1349년 흑사병이 전 유럽을 휩쓸자

음모론이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많은 유대인이 재판에 회부되고 고문 끝에 자백했다

자신들이 우물과 강에 독을 풀어 질병을 퍼뜨렸다고 말이다

이때 나병 환자들은 주목받지 않았다

이 음모론은 알프스산맥 서부에서 시작됐는데

근 50년 만에 새롭게 퍼진 음모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대인들은 빠르게 혐의를 벗었고

그 화살은 마녀에게 향했다

남녀 불문 고문을 받은 많은 이들이 밤중에 집회를 열었다고 자백했다

 

&quot;alt&quot;:&quot;브로켄산에서의 마녀 집회&quot;

 

아기들을 죽이고 난교도 벌였다고 했다

이렇게 생긴 마녀 이미지는 전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졌고 수백 년을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마녀 이미지는 고대 신앙에 덧씌워진 것이고

그 신앙은 옛 대중문화에 기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엔 한밤중에 열광적으로 여신을 숭배하는 문화도 있었다

오리엔테, 디아나, 리켈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신이다

14세기말 밀라노에서 있었던 한 재판을 예로 들어 보겠다

 

시빌리아와 페이리나라는 두 여성의 재판이었다

오리엔테는 추종자에게 병을 치료하는 약초와 치료법을 가르치고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물건을 찾는 방법과

저주를 푸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지식을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

피에리나는 오리엔테가 추종자들의 주인이라 말했다

마치 그리스도가 온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말이다

오리엔테는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을 되살리는 능력도 있었다

오리엔테의 추종자들은 가끔 소를 죽여 고기를 먹고

그 뼈를 모아 죽은 동물의 가죽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오리엔테가 지팡이로 가죽을 건드리면 소가 바로 살아났는데

밭일은 할 수 없는 소였다

 

이런 미신과 의례에 관한 소문은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도축한 동물의 뼈를 최대한 완벽하게 모으면

동물을 되살릴 수 있다는 미신은 특히나 널리 퍼졌다

완전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캅카스 지역의 압하스 왕국에도

사냥과 숲을 관장하는 남성 신의 전설이 있다

 

이 신은 가축이 아닌 사냥당해 죽은 야생 동물을 되살리는 신이다

이런 믿음은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극 지방의 수렵 민족이 치렀던 특정 의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quot;alt&quot;:&quot;동물을 되살리는 신 이야기의 전파&quot;

 

유라시아 대륙에서 기원한 밤의 여신 신앙이

시베리아 사냥꾼들의 미신 및 의식과 비슷하다는 게

의외이긴 하지만 이들을 별개로 봐선 안 된다

 

특히 유럽 여신 숭배자들의 종교적 황홀경은

시베리아나 라피 지역의 남녀 주술사들이 생각나게 한다

두 지역의 전설엔 같은 요소들이 있다

영혼이 날아서 사후세계로 가거나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동물이나 마법의 힘이 깃든 것을 타고 다니는 모습들 말이다

 

 

'마녀 집회'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이미지

즉 마법적 비행이나 변신 같은 것들이

유라시아 오지의 민간 주술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수천 년 전부터 사후세계로의 여정은

수많은 미신, 시, 황홀경 체험, 종교의식, 그리고 동화의 소재가 됐다

 

이런 민담과 관련된 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부활한 동물은 다리를 전다는 점이다

이런 요소는 다른 형태로도 나타나는데

유명 동화 '신데렐라'에도 유사한 상징이 나온다

구두를 잃어버린 신데렐라의 모습은 부활 후 다리를 저는 동물과 닮았다

 

신데렐라는 사후 세계, 즉 왕자의 궁전을 방문한 뒤 구두를 잃어버린다

만약 '이야기'가 어떤 사건을 비유적으로든, 실제로든 경험한 뒤에

그 경험에 기반해 전달되는 것이라면

이승과 저승을 왕래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많은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 모든 잠재적 이야기의 기반이 될 것이다

 

 

 

 

(2024.04.10 방송)

 

 

4강  늑대인간에 대한 보고서

 

 

 

 

먼 옛날부터 유럽의 밤은 초자연적 힘을 지닌 존재들의 무대였다

마녀나 베난단티, 그리고 늑대로 변하는 늑대인간 같은 존재들 말이다

 

늑대인간 전설에 대한 기록은

'루가루', '베르뵐펜', '루피 만나리', '웨어울프', '로비조멩' 등

다양한 이름으로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양한 늑대인간 전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변신은 일시적이다

비록 기간은 다를지라도 말이다

아르카디아에선 9년, 중세 아일랜드에선 7년이고

게르만과 발트 국가에선 12일이라고 한다

 

둘째, 늑대인간이 되는 의식

늑대인간은 옷을 벗어 참나무에 걸거나 바닥에 내려놓은 뒤

그 주변에 소변을 보고 연못이나 강을 건너간다

물을 건너는 것 같은 일련의 행위는 일종의 통과 의례다

더 정확하게는 입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저승의 강을 건너는 거라 볼 수도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구분하는 강 말이다

 

늑대인간은 흔히 사악하고 악마적인 존재라고 알려져 있는데

소와 양을 공격하고 때로는 아기들도 해친다

마녀와 유사하다 그리고 마녀 이야기가 그랬듯

늑대인간 전설도 다양한 민간 신앙에 사악한 이미지가 덧씌워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 기독교적 시각에서 돌아본 마술 >이라는 제목의 연구서를 보자

 

&quot;alt&quot;:&quot;기독교적 시각에서 돌아본 마술&quot;

 

중세 발트국가인 리보니아 출신의 비테킨트는 리가 대학의 교수였다

그는 감금된 늑대인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그자는 미친 사람처럼 웃고, 뛰어다녔다"

늑대인간이 놀란 비테킨트에게 말하길

자신은 부활절 전날 밤 늑대로 변해 족쇄에서 빠져나왔고

창문으로 탈출해 거대한 강으로 갔다고 했다

"그러면 왜 감옥으로 돌아왔지?"

비테킨트가 물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주인님이 명령했으니까요"

 

비테킨트의 설명에 따르면 그 늑대인간은

'주인님' 얘기를 유독 강조했다고 한다

비테킨트가 늑대인간과 나눈 대화와 비슷한 기록은

5년이나 앞선 카스파르 포이처의 연구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늑대인간들은 자기가 나비로 변한 마녀들에 맞서 싸웠다며 자랑했다

주장에 따르면 늑대인간들은 '늑대의 여정'에 올랐다고 한다

성탄절과 예수 공현 축일 사이의 12일 동안

절름발이 아이 형상의 명령을 받은 수천 명의 늑대 인간이

무쇠 채찍을 든 키 큰 남자를 따라 거대한 강둑으로 갔다고 한다

그들은 물에 젖지 않고 강을 건넜는데 키 큰 남자가 채찍질로 

물을 갈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늑대인간들은 가축을 공격했지만 사람은 해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모습은 유럽 정반대 편에 위치한

프랑스령 바스크 지방에서도 찾을 수 있다

17세기 초 바스크 지방에선 마녀 사냥의 광풍이 몰아쳤다

몇 년 뒤, 마녀재판의 판사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보르도 의회 왕실 고문 역할을 한 피에르 드랑크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서를 펴냈다

 

&quot;alt&quot;:&quot;악한 천사와 악마들의 변덕에 대한 보고서&quot;

 

또 늑대인간과 사악한 변신에 대한 기록도 많이 남겼다

특이하게 마녀의 적을 자처하는 늑대인간에 대한 기록도 있다

드랑크르의 책에 기록된 13살 소년 장 그르니에는 

1603년 늑대인간 혐의를 쓰고 재판에 회부됐고

종신형을 받아 수도원에서 남은 생을 보냈다

그르니에는 나이가 어려 고문은 당하지 않았다

 

1610년, 호기심에 이끌린 재판관 드랑크르는

청년이 된 그르니에와 깊은 얘기를 나눠보기로 한다

드랑크르는 그르니에의 외모를 생생하게 묘사했고 이렇게 썼다

그르니에는 절대 바보가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순순히 털어놓은 이야기는

자신이 늑대인간이며 숲의 주인이 시키는 대로 자연을 누볐다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누구에게나 솔직히 하고 다녔다

 

드랑크르가 계속 설명한다

옛날 사람들은 숲의 주인이 마녀와 마술사를 사냥한다고 믿었다

마녀들이 죽은 뒤에도 관에서 끄집어내 괴롭히고 쫓아다니길 즐겼다고 한다

드랑크르는 젊은 늑대인간에 대해 이렇게 덧붙였다

숲의 주인은 그르니에가 악마의 이름을 가리려고 지어낸 게 아니다

드랑크르는 숲의 주인이라는 까맣고 덩치가 큰 남자가

그르니에에게 늑대인간의 힘을 준 악마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숲의 주인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자신이 읽었던 발트국가 전설에선 늑대인간이 마녀에 맞서 싸운다고 말이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리보니아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드랑크르의 발견을 뒷받침해 준다

 

1692년 리보니아의 유르겐스부르크에서

티스라는 80세 남성이 주민들에게 이단 혐의로 고발당한다

취조 과정에서 그는 재판관에게 자신이 늑대인간이라고 자백했다

 

1년에 3번 성녀 루치아의 축일, 성 요한대축일, 오순절 밤에

리보니아의 늑대인간들은 지옥에서 악마들과 싸운다

늑대인간들은 무쇠와 채찍으로 무장하고

말총으로 감싼 빗자루를 든 악마와 마술사를 사냥한다고 했다

 

늑대인간들의 전투에는 그해의 수확이 걸려 있는데

마술사들이 작물의 싹을 훔쳤을 때

그걸 되찾아오지 못하면 흉년이 찾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그해엔 리보니아와 러시아 양쪽에서 늑대인간이 승리해

보리와 호밀은 풍작이고 생선도 모두가 배불리 먹을 만큼 잡힐 거라고 했다

 

재판관들은 티스에게서 악마와 계약했다는

자백을 받으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티스는 완강하게 말했다

자기 같은 늑대인간은 악마와 마술사의 천적이며

죽어서는 천국에 가게 될 거라고 말이다

회개하길 거부한 티스는 채찍질 10번을 선고받았다

 

티스의 재판 기록에는 수면 중 환각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17세기에 라이프치히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발표한

늑대인간에 관한 논문에는 그런 이야기가 언급된다

 

&quot;alt&quot;:&quot;종교적 환각에 대한 기록&quot;

 

라피지역의 주술사들이 보이는 독특한 특징 중 하나로

그들이 일종의 긴장증에 빠진다고 썼다

24시간이 지나고 영혼이 돌아오자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움직이지 않던 몸이 신음과 함께 깨어났으며

마치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고 썼다

그로부터 30년 뒤 작성된 익명의 진술서에도

몬팔코네 인근 마을에 사는 목동이자 베난단티인 토폴로 다부리가

비슷한 말을 한 게 기록돼 있다

 

그는 전투에 끌려갈 때 깊은 잠에 빠졌다고 했다

영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늘을 보며 잠이 들었고

마치 죽어가는 사람이 내는 듯한 신음 소리를 세 번 냈다고 했다

주술사와 종교의식에서 황홀경을 경험한 사람에 대한 기록은

유럽 대륙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영매로 여겨졌다

황홀경이라는 일시적인 죽음에서 힘을 얻어

잠깐 사후 세계에 방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미신이 여러 사회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각 사회의 생태, 경제, 사회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해 왔다

하지만 이후 마녀 집회 같은 사악한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교회와 민간의 재판관들은 심리적, 신체적 폭력을 통해

민간 신앙에 악마적 이미지를 덧씌웠다

 

비록 프리울리 재판에선 민간 신앙을 조금 인정받긴 했지만

베난단티를 마녀로 바꾸는 종교 재판관들의 시도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2024.04.11 방송)

 

 

5강  어느 방앗간 주인의 이단재판

 

 

 

 

밤의 역사의 비유적 측면

 

안토니오 그람시가 정의한 근세 유럽의 하층민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아주 특별한 사건을 예시로 들어보겠다

 

&quot;alt&quot;:&quot;메노키오 이야기&quot;

 

16세기말, 두 차례의 긴 재판 끝에 사형 선고를 받은 인물이다

우디네 대교구 참사회 문서보관소에 그의 재판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이 특별한 이유는

첫째, 메노키오가 아주 기 센 사람이었기 때문이고

둘째, 재판관과 메노키오의 대화가 아주 자세히 기록됐기 때문이다

 

&quot;alt&quot;:&quot;메노키오의 출생지&quot;

 

프리울리 산지 근처에 있는 포르데노네 바로 옆의 작은 마을이다

1583년, 그는 그리스도에 대해 이단적이고 불경한 말을 한 혐의로

이단 심문소에 고발당했다

메노키오는 사제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입막음해서

자신들만 이득을 본다고 말했다

 

메노키오의 과격한 발언은

16세기 종교 개혁의 여파가 프리울리에까지 미쳤다는 걸 알 수 있다

 

메노키오는 이상한 말들도 했다

주민들은 이 말들을 파편적으로 주교에게 전했다

대기가 곧 신이고 대지가 우리의 어머니다

신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신은 산들바람 같은 존재며 인간이 뭐라고 생각하든

세상 만물이 신이고 우리가 곧 신이다

 

이런 생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민들은 메노키오가 금서를 읽는다는 걸 알고 있다

16세기 방앗간 주인치고 메노키오는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책도 몇 권 갖고 있었다

 

재판관과 토론하던 메노키오가 계속 책을 인용해서

그중 몇 권은 제목도 알아낼 수 있었고

실제 책 내용과 메노키오의 기억에 차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예를 들어 두 번째 재판에서

메노키오는 자신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인정했다

기독교인으로 태어났으니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지

튀르크인으로 태어났으면 튀르크인으로 살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재판관님 제말 좀 들어보세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 아버지는 자신의 다양한 자녀를 사랑하죠

기독교인, 튀르크인, 유대인까지요

하느님은 모두에게 자신만의 법대로 살아갈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무엇이 맞는 법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종교재판관은 정말로 무엇이 맞는 법인지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메노키오가 답했다

 

"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앙확신을 갖고 살죠

무엇이 옳은 믿음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할아버지, 아버지, 가족들 모두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독교인으로서 제 믿음을 확신하며 살고 싶습니다"

 

참 놀라운 순간이다

이 재판의 모든 순간이 놀라움의 연속이긴 하지만

양쪽의 입장이 역전되는 이 부분은 특히 놀랍다

메노키오는 여기서 주도권을 갖고 재판관을 설득하고 있다

여기서 누가 지식인이고 누가 대중으로 보이나?

 

메노키오가 세 반지 이야기를 받아들인 방식은

재판을 더욱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메노키오는 이 이야기를 그냥 '어떤 책'에서 읽었다고 했지만

다음 심문 내용을 통해 책의 정체가 드러났다

 

"제가 읽은 책의 제목은 보카치오의 <센토 노벨레>입니다"

메노키오는 아는 화가에게 그 책을 빌렸다고 했다

하지만 메노키오는 세 반지 이야기를 조금 각색했다

보카치오의 의도와 달리 역사 속의 거대 종교뿐 아니라

이단까지 포용하도록 말이다

이건 당시 유럽 각지에 나타났던 극단적 관용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위대하신 하느님은 모두에게 성령을 내리셨다

기독교인, 이단자, 튀르크인 그리고 유대인에게까지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시고 모두 평등하게 구원받을 것이다

 

메노키오가 책에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는 책을 보고 싶은 대로 봤다

유물론에 고취된 농민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봤다

메노키오는 자기 사상의 뿌리가 된 우주 생성론

열심히 설명했고 재판관은 큰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태초에는 혼돈만이 있었고 그 혼돈이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마치 우유로 치즈를 만들고 치즈에서 벌레가 생겨나듯이

천사도 벌레처럼 태어났다

가장 위대한 존재가 신과 천사를 만들기로 했고

신은 그 수많은 천사 중 하나였습니다

신도 만물과 함께 창조된 것이다

 

재판관의 질문이 이어졌고 메노키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 신이 누군가 만들어낸 피조물일 뿐이라고 말하는 건가?

재판관이 물었다

>> 피조물일 뿐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도 혼돈 속에서 힘을 얻었고 불완전한 존재에서 완전한 존재로 거듭났다는 거죠

> 혼돈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 혼돈은 스스로 움직이죠

 

현대인들도 이 기록을 읽으면

당대의 재판관처럼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메노키오의 주장은 전례가 없었다

 

&quot;alt&quot;:&quot;단테 알리기리에의 신곡 연옥편 10곡&quot;

 

천사 같은 나비가 되기 위해 태어난 벌레들

하지만 우주의 기원에 대한 비유는 메노키오의 일상에서 나온 것이다

썩은 치즈에서 벌레가 생겨난다는 표현 말이다

그는 농민의 시선으로 책에서 읽은 걸 해석했다

메노키오의 재판 같은 특이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면

당대의 일반적 관점을 알아낼 수 있다

 

미시사는 거시사로 거시사는 미시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종교적 위계질서에 대한 메노키오의 당돌한 태도는

정치,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quot;alt&quot;:&quot;메노키오와 종교재판관의 대화&quot;

 

메노키오는 비꼬듯이 대답했다

"일도 안 하고 많은 걸 가진 분들이야말로 지상낙원에 사는 게 아니겠습니까"

 

1584년 5월 12일 1차 재판이 끝나고 메노키노는 감옥으로 들어갔다

며칠 뒤 메노키오는 재판관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지난 실수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다

세 달 전 아들이 반성문을 쓰라고 했을 댄 무시했으면서 말이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재판관 앞에서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방앗간 주인은 이웃 주민들의 신앙에 해가 되는 존재였다

"당신은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온갖 이단적 타락에 빠져있다"

 

메노키오의 재판 선고문은 그가 기독교 신앙에 

반기를 든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들은 물론 무지한 민중들 앞에서 말이다

결국 메노키오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 비용은 자식들이 부담하게 됐다

그는 콘코르디아의 감옥에서 2년가량을 보냈다

 

그 뒤 메노키오의 아들이 탄원서를 제출한다

메노키오가 직접 쓴 탄원서였다

콘코르디아의 주교와 프리울리의 종교 재판관은

메노키오가 진심으로 개종한 것으로 판단해

그를 몬테레알레로 되돌려 보내고 절대 마을을 떠나지 못하게 했다

본인의 위험한 사상을 남에게 얘기해서도 안 됐다

 

메노키오는 심신이 망가진 채로 몬테레알레에 돌아왔고

다시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겉으론 교회 의식과 예식을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여전히 예전의 자기 사상을 믿고 있었다

메노키오는 또 고발당해 감옥에 갇혔고 다시 재판이 열렸다

메노키오는 재판관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철학자이자 천문학자, 예언자라고 말했다

"저는 제가 예언자인 줄 알았습니다

악한 영혼이 저에게 허영심과 망상을 심어

천국과 세상의 섭리에 통달했다고 믿게 했기 때문이죠

저는 예언자란 천사의 말을 듣고 옮기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1597년 8월 2일 이단 심문소 재판관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메노키오가 배교자라는 결론을 내린다

재판관은 그에게 공범의 이름을 대라고 했지만

메노키오는 침묵했다

그는 65세의 나이에 고문에 시달리다 얼마 뒤 사형당했다

 

 

메노키오는 특별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살았고 또 죽었을까?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로 말이다

이 질문이 우리를 더 많은 증거로 이끌길 바란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와 이미 사라져 버린

구전 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역사적 지식에 이런 한계가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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