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일상의 철학) 제4강~6강 요약정리
위대한 서른아홉 번째 강연 '일상의 철학'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독일 공영방송 ZDF [프레히트 쇼] 진행자(2012~)
<나는 누구인가>(2007)-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
<사냥꾼, 목동, 비평가>(2020), 의무란 무엇인가(2021)
제4강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가
■ 인간은 도덕적 존재인가, 아닌가?
-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 인간이 악하다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은 예외라고 한다
자신을 인간으로 규정하면서 본인은 선하고 다른 사람은 악하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요한 네스트로이(1801~1862)
: 사람은 한 명만 보면 착한데 무리를 지으면 불량배가 된다
· 자신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선하다는 것이 사실이 되진 않는다
· 우리 사회는 선의 이념을 갖고 있다, 선한 행동은 보상을 받거나 높이 평가되고 존경받는다
악한 행동을 선한 행동보다 높이 평가하는 문화는 없을 것이다
이것이 보편적인 것이라면 선한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무언가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한 듯하다
- 사람은 도덕성을 타고나는가
·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사람은 도덕성을 타고난 존재라고 했다, '사람은 선하게 행동해야 한다'라고 호소도 했다
사람에겐 선한 기질이 있는 것 같다
· 선한 행동이란 무엇일까?
☞ 흔히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말한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길 바라고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선한 행동이라고 한다
이런 행동은 어디서 나올까, 생물학적 관점에서 답을 하면 인간은 무리 지어 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표범처럼 혼자 살았다면 선과 악의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영장류 사회의 필수적인 사회 규범을 알아야 한다, 다른 이들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타인에게 갖는 도덕적 기대뿐 아니라 타인이 내게 갖는 기대도 존재한다
기대를 기대하는 건 타인과 '사회적 체스'를 둘 수 있는 근간이 된다
▶▶ 사회적 체스란, 복잡한 사회적 교류관계를 맺는 걸 의미한다
· 꼬리감는원숭이(브라질에서 서식하는 신대륙 원숭이) 실험
일반적으로 신대륙원숭이는 구대륙원숭이보다 지능이 낮다고 여겨졌다(인류가 구대륙원숭이인 유인원으로부터 진화)
: 네덜란드의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 박사가 미국 애틀랜타주 에모리 대학에서 실험
: 두 마리의 꼬리감는원숭이를 우리에 넣고 훈련을 시킴
연구진은 우리 안에 돌멩이를 던졌고 원숭이가 돌멩이를 돌려주면 보상으로 오이나 포도를 줬다
원숭이에게 오이는 그저 그런 맛이지만 포도는 최고의 맛
규칙을 파악한 원숭이는 받은 돌멩이를 돌려주고 보상받았다(오이보단 포도를 받았을 때 훨씬 좋아했다)
2번 원숭이가 오이를 받더라도 다른 원숭이가 포도를 받아선 안 되는 조건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꼬리감는원숭이가 공정을 안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공정을 안다면 1번 원숭이가 받은 포도의 절반을 2번 원숭이에게 줬어야 한다
☞ 2번 원숭이가 놀이를 그만둔 이유는 아마도 모든 영장류가 불공정을 감지하는 감각을 타고났기 때문일 것
· 인간의 뇌는 2~3세가 되면 성숙해지며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거울 뉴런이 발달한다, 거울 뉴런은
우리가 느끼는 무서움, 아름다움, 불편함 등을 같은 공간의 타인도 동일하게 느낀다고 상상하게 해주는 신경세포
우리는 이 거울 뉴런을 통해 불공정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공정의 감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물론 우리에게 득이 될 때에 한해서
이런 모습은 아이들이 공정한 행동을 했을 때 보상으로 나타난다(가정, 가족, 유치원, 학교에서)
사탕을 혼자 먹는 아이는 야단맞지만 타인과 나눌 줄 아는 아이는 칭찬받는다
공정함은 인간의 행동 방식이지만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 그래서 실망하게 할 확률이 높다
공정한 사람도 감옥에 수감되거나 해적이 된다면 덜 공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공정한 행동에 보상이 없으면 대부분 사람은 행동을 멈춘다
☞ 우리의 행동이 선한지, 악한지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의 기준은 타인의 행동이다
- 사회적 행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어떤 행동이 보상받고 어떤 행동이 벌을 받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 서구 문화권의 대표적인 두 명의 도덕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 영국철학자 | 임마누엘 칸트(1724~1804) 독일철학자 |
도덕적인 행동이 유용하기 때문에 도덕적이어야 한다 | 보상의 문화가 도덕적 행동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타인의 행동이 기준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도 나를 보상하지 않고 박수 쳐주지 않고 나의 선한 행동을 비난하더라도 나는 선하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
▶▶ 흄의 말처럼 도덕적인 것이 꼭 유용한 것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비열하게 행동하는 게 오히려 득이 될 때도 있다
▶▶ 선에 대한 보상은 타인이 아닌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을 칸트는 자기 존중이라 말했다
· 우리가 선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는 선한 행동에 대한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영원히 악인이 된다는 건 견디기 힘들다
· 우리는 자기 행동에 대한 잣대를 바꾼다(이중잣대)
< 양심의 가책을 피하려 할 때 나타나는 행동 >
첫째, 나를 의심하는 사람을 깎아내린다
둘째, 나의 잘못을 인지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하다고 항변한다, 자기 행동을 타인보다 위에 둔다
셋째, 외면
☞ 우리가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했더라도 결국엔 자신을 선한 사람으로 평가하도록 만든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을 기만하지만 타인의 비난을 거부하며 평생 이 기만을 유지한 채 살아간다
Q. 오늘날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과거보다 더 커졌을까?
A. 비록 인간이 자신의 도덕성을 미화하고 이중잣대로 교정하는데 능숙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보면
문제에 대한 인식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이 나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더 민감하고, 신중하고 배려가 커진 사회에 살고 있다
주변에 도덕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집단에서 악한 사람으로 배제되지 않기 위해서
나의 노력도 커질 것이다
제5강 삶은 왜 고통스러운가
■ 고통과 죽음의 관점에서 삶의 의미
- 우리가 고통을 겪는 이유는 어린 시절 안정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 사람들은 공감을 갈망하고 안정감을 원하고 무조건적인 인정을 바란다
· 무조건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면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 낭만적 사랑의 관점에서도 무조건적인 인정을 기대하지만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 이것이 고통과 슬픔을 만든다
· 서구 문화권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길 바라는 욕구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기독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한다
- 고통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 철학적 관점에서 고통과 죽음은 의미가 없다
의미를 기대해서는 안 되는 문제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 생물학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고통 없이 살 수 없다
고통은 상처받아 생긴다(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고통을 느낀다는 건 생물학적 경고인 셈이다)
· 인간에게 두려움이 없어 부딪히고 상처를 입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생존이 어려울 것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위험에 무작정 달려들 것이다
☞ 존재한다는 건 고통이 따른다는 뜻, 죽음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된다
생명체가 태어났는데 죽지 않는다면 생물학적 체계는 붕괴할 것이다
지구는 인구 과밀화를 겪을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생물의 다양성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현재 실리콘밸리가 좇는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는 시도가 의미가 있을까?
현재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자원을 독차지하고 미래 세대를 희생시킬 것, 불멸을 시도하는 건 엄청난 이기주의다
인간이 얻어야 할 교훈 중 하나가 이기주의를 버리는 것이다
- 고통은 왜 존재하고 인간은 왜 죽어야 하는가
· 과거엔 죽음이 늘 사람들 곁에 있었다
아직까지 전쟁이 존재하고 범죄와 내전, 학살의 희생자가 있다는 건 유감스러운 일지지만
그 비율이 줄고 있는 건 사실이다 → 죽음은 우리 일상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 중세 시대 영국 남성 평균 수명 약 33세(출처:국제역학 저널_2005)
· 노년까지 사는 일은 극히 드물었던 시대에도 그들은 질문했다, 왜 삶은 짧고 가혹하며, 아이들은 일찍 죽는가
그에 대한 답은 한결같았다 → 중요한 것은 현생이 아니라 죽음 이후이다
기독교 관점에서 지상의 삶은 천국으로 가기 위한 시험대이다(천국을 갈지, 지옥을 갈지)
☞ 중세 시대 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천년을 살았다
· 부정적인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꾸는데 능숙했던 기독교는
'너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동에 뒤따르는 고역과 고난, 고통조차도 긍정적으로 그려냈다
너는 하나님의 보상을 위해 일하는 것이며 열심히 일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다
☞ 기독교는 소시민의 종교이다
☞ 사회로부터 자긍심을 느껴본 적 없는 이들을 귀하게 여긴 것이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가 된 이유일 것
▶▶ 신의 뜻대로 산 대가, 고통의 대가로 구원이 보장된다면 현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 오늘날 죽음 이후의 삶을 위로받으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 현세에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에 내세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 사람들이 행복하고 장수할수록 신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교회와 종교계에 불리하다
· 오늘날에도 신자 대부분은 여전히 가난하고 다수의 무신론자는 부유하다
· 부유하고 성공한 사람은 가난한 이들보다 신앙을 갖는 경우가 적다
·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행복이나 고통의 부재를 종교에서 찾지 않는다
· 지난 수천 년간 사람들은 최대의 행복을 바란 적이 없다, 당시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독일의 철학자
: "아무도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직 영국인만 행복을 추구한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 철학자들은 지난 수백 년간 철학이 생겨난 이래로 행복은 찾는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해왔다
☞ 오락 같은 극적이고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것에 연연하지 않을 때 비로소 얻게 된다
· 임마누엘 칸트(1724~1804) 독일 철학자
: "중요한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사람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어야 한다
행복이 끝까지 함께 하든 안 하든 나 자신부터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혜는 삶을 의지대로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과거처럼 고통을 피하는 게 행복보다 중요하다 말하는 건 의미가 없다
·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 중요한 것은 인생의 작은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화려함을 좇는 게 아니라 삶의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에서 신비로움을 찾는 것
☞ 이것은 오늘날까지 유효한 행복의 공식이다
제6강 철학은 어디에 쓰는가
■ 철학은 왜 하는가?
- 철학은 지혜의 가르침이며 진리에 대한 질문이다
· 임마누엘 칸트(1724~1804) 독일 철학자
: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시대를 초월해 인류가 마주해온 질문들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철학이라고 불렀다
Q. 철학은 왜 필요한가?
A. 사람들이 실용적인 것을 기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당장의 어떤 효용
사람들의 걱정을 덜어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 하지만 그건 철학에 대한 오해이다
그건 자기계발서의 역할이다
☞ 철학을 자기계발서로 취급하는 사람은 철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철학이 다루는 커다란 질문을 생각해보자
☞ 철학은 커다란 질문에 쉽게 답을 주지 않는다
· 철학을 깊이 있게 다루다 보면 내면의 풍요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
내면의 풍요로움이란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고찰을 완성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성찰하는 방법을 새롭게 하는 것
· 초창기 철학자는 물리학자였다, 그들의 관심사는 물질적인 문제였다
댐은 어떻게 만드는가? / 달력 계산은 어떻게 하는가? / 어떻게 자연을 지배할 것인가?(철학의 시작)
· 기원전 4세기 어쩌면 그 이전인 5세기부터 사람들은 형이상학적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수학과 물리학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들(어떻게가 아니라 왜에 대한 질문들)
→ 이 순간, 철학은 물리학에서 분리된다
· 플라톤(기원전 5세기~4세기, 그리스 철학자)부터는 형이상학이 독립된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상의 세계는 감각으로 지각되는 불완전한 세계로 이데아(초월적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 플라톤은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한 세상이 진짜 현실이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저 척추동물로서 뇌가 인식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
· 인간의 인지 방식과 감각적 인식에 대한 의심은 형이상학의 출발점이다
사물의 근본까지 안다는 것은 감각적 인식이라는 토대에서 벗어나
오직 사고를 통해서만 파악되는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 형이상학의 질문
진리는 무엇인가 / 진짜 현실은 무엇인가
→ 형이상학은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질문을 다룬다
고대 그리스에서 다뤘던 중요한 질문들처럼
(선이란 무엇인가 / 선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 선한 공존이란 무엇인가)
·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학자의 과제란 이런 것이다
감각적 경험이라는 한계의 동굴을 벗어나 감각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우리는 왜 아름다움을 찾는가 / 우리는 왜 인정받고자 하는가 / 우리는 왜 신성한 것을 찾고 성스러움을 느끼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감각적인 인식에 불과한가)
· 철학자들의 과제는 끝없는 들판을 답사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 철학자들이 떠나는 여행은 정해진 목표로 가는 법이 절대 없다, 그러나 여행 도중 종종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다
실제로 철학은 다른 학문이나 정신적 수행과 달리 목적지가 아닌 과정이 목표이다
· 철학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체계를 구축했다, 그 체계를 통해 그들의 고민을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체계는 실제 세계를 반영하며 진리의 요구를 충족하리라 믿었다
플라톤에서부터 헤겔까지의 철학자들은 그랬다
- 오늘날의 철학은 다르다
· 19세기를 지나면서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철학이 따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희미해졌다
다른 부족하고 잘못된 철학과 비교해 진정한 철학이 따로 존재한다는 인식이 흐려진 것
객관성과 진리에 대한 욕구가 강해도 철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주관적 통로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 우리는 척추동물로서 의식의 한계, 의식의 방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때부터 철학에 주관적 요소가 부여됐다
· 이 전환점에서 가장 중요했던 철학자는 객관적 세계에서 주관적 세계로의 접근을 시도했던 쇠렌 키르케고르였다
키르케고르(1813~1855, 덴마크 철학자)는 나를 중심에 뒀다, 대중이 아닌 개인을 논했다
'인류'라는 단어로 사람을 일반화하지 않았다
사람은 다 다르고 인류는 하나의 집단일 뿐 특정한 행동 방식에 종속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 카를 슈미트(1888~1985) 독일 정치학자 : "인류를 입 박으로 내는 자는 속이려고 하는 것이다"
· 사람들은 어떻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가? / 그것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이 질문은 19세기부터 철학 속 인식의 영역으로 들어왔고 현대 사상의 전환점을 통해 완성됐다
· 앵글로색슨 문화권에서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라고 불리는 것
: 언어적 구조를 고찰함으로써 행위자와 세계의 구조를 설명하는 언어철학으로의 전환
: 20세기 서양철학의 새로운 움직임
· 플라톤은 소피스트와의 대화에서 이미 깨우쳤던 사실이지만 철학은 항상 말을 통해 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언어에 종속돼 있다는 뜻
· 인간의 언어는 객관적 세계나 실체를 위한 이상적 도구는 아니다
진화생물학적으로는 언어는 태생부터 그런 기능(객관적 진실과 지혜를 깨닫는 능력)을 갖춘 적이 없다
· 언어는 다른 기능을 갖고 있다
중요한 정보를 소통하는 기능 → 우리의 언어는 종종 감각에서 유래한다
▶▶ 이 모든 단어는 기본적으로 신체적 표현을 담고 있다
인식론을 이해하기 위한 모든 단어가 감각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흥미롭게도 인간의 언어가 객관적 진실을 인식하는데 부적절하다고 깨닫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의 철학에 대해 훨씬 신중해진다
→ 객관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신중해진다
· 언어적 전회는 철학을 주관적으로 전환하면서 객관적 체계가 더 이상 철학의 과제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언어로 진리를 표현하는 일도 철학의 과제가 아니다
· 자기계발서는
1. 언어 고찰을 하지 않는다
2. 철학의 주관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철학자의 관점에서 이런 자기계발서는 세상을 다루는 가장 하위 단계에 있다
< 철학으로 깨닫는 것 1> 세상은 언어에 종속되어 있고 언어는 진실 표현의 수단이 아니다 < 철학으로 깨닫는 것 2> 모든 객관적 주장에는 주관적 한계가 있다 < 철학으로 깨닫는 것 3> 진실(과학적 사실 포함)은 세상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질은 타인에 의해 확인되어야 하는 정당성이다 |
☞ 이런 점들을 깨닫는다면 철학하기 좋은 갑옷을 갖게 된다
Q. 철학은 왜 하는가?
A. 자신과 지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 특정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끊임없이 전진할 뿐 좌절할 일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세상과 타인에 대한 고찰을 끊임없이 성과를 내는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심리적 욕구와 내적 성장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책을 보는 것은 타인의 두뇌를 탐구하는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연결하여
누구나 표현 가능한 객관적 관점이 아닌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할 때 우리는 비로소 철학자가 된다
https://home.ebs.co.kr/greatminds/index
위대한 수업
조셉 르두 공포란 무엇인가? - 불안, 공포 등 감정 연구, 세계적 신경과학자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느끼는 뇌> 저술
home.ebs.co.kr
70원의 기적 EBS에서 전 세계 최고의 지성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방송시간 EBS1TV 월~금 23:35~23:55 EBS2TV 월~금 22:00~22:20(재방)
토 09:30~11:00(종합) 토 22:15~23:45(종합)
월~금 15:05~15:25(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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