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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28_정유정

by 상팔자 2021.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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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지은이 정유정

펴낸곳 (주)은행나무

값 14,00원

 

 

잔인해

 

 

링고와 스타의 슬픈 사랑이야기야 이건.

 

스타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던 순간, 나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눈을 맞댄 첫 순간, 링고는 환각처럼 나타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환하게 비쳐드는 달빛 너머에서 친근한 것이 꼬리를 살랑거리고 있었다. 낯설고 부드럽고 꿈결 같은 느낌이었다. 

 

링고는 아픈 줄도, 피가 흐르는 줄도 몰랐다. 알았다 한들 달라질 것도 없었다. 자신의 상처를 쓰다듬을 여유가 없었다. 장애물 하나를 넘고 나면 스타와 코를 맞대고 숨결부터 확인하느라 바빴다.

 

스타가 코를 들고 목을 문질러주거나, 입술을 핥아주거나, 온화한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면 링고의 가슴에는 한여름 밤하늘처럼 찬연한 별들이 뜨고는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건, 지금처럼 스타와 몸을 맞대고 엎드리는 때였다.

 

 

 

인수공통전염병. 인간에서 동물, 동물에서 인간, 동물에서 동물, 인간에서 인간 모두 전염시킨다는 병. 동물하고 사람 어떤 목숨이 더 귀하고 우선인걸까. 화양시에는 붉은 눈의 환자들이 갑자기 생겨난다. 병의 원인이 개에 있다고 판단하고 화양시의 모든 개를 산채로 묻어버리는 일까지 벌이고 만다. 뉴스에서 가끔 돼지를 살처분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동물에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이다. 학살이나 다름없다.

급기야 화양시는 고립되고 인간도 동물도 모두 갇힌 신세가 된다. 거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잔인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구체적인 상황의 묘사가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부분도 있다. 전체적으로 소설은 좀 잔인한 편이라고 본다. 극의 절정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묘사를 제외하고서라도 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묘사가 더러 있다. 특히, 개에 대한 학대 묘사라던지 수진에 대한 성희롱 및 성폭행의 묘사가 그렇다. 7년의 밤에서도 느꼈지만 그게 작가 나름의 스타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악인이 등장하고 그 악인에 대한 폭행의 묘사가 등장하고 악의 근본까지 파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소설에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새끼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사람이 나온다. 말도 못하는 개를 자신만의 트라우마로 학대하고 죽이고 결국에는 사람까지 해치는 동해. 그리고 동물을 인간 못지않게 사랑하는 사람 재형. 동물을 보호하고 지키는 입장의 재형 또한 최후의 순간에는 인간을 선택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인간의 생명이 개보다는 우위에 있다는 관념을 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동물을 사랑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던 동물을 죽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책을 덮는 마지막 순간에 느낀 감정은 잔인함이다. 인간의 잔인함도 그렇지만 소설 묘사의 잔인함도 포함한다. 그래서, 그저 링고와 스타의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야기(기왕이면 해피엔딩이길 바랬지만 정유정 작가가 그럴 리가 없다)로 기억하고 싶다. 그래야만 상처 받은 마음이 치유가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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