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지은이 한강
펴낸곳 (주)창비
값 12,000원
채식주의자(네 그루의 나무)에서도 느꼈지만
표지에서부터 내용의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못 느꼈는데 다 읽고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마치 관 위에 뿌려진 안개꽃 같은 생각이 든다.
추모의 의미 같기도 하고 그 영혼들 같기도 하다.
동호는 외할머니의 임종시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새 같은 무언가가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어린 새 같은 무언가.
쓰러진 정대를 두고 혼자 도망친 죄책감에 계속
찾으러 다니며 도청서 시신 수습일을 돕는 동호.
집에 가자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거기 남은 것은
친구에 대한 속죄의 의미였을까
혼은 자기 몸 곁에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그게 무슨 날개같이 파닥이기도 할까.
촛불의 가장자릴 흔들리게 할까.
떠나지 못한 정대의 혼은 죽어가는 자신의
썩어가는 몸을 보며 증오한다.
몸들의 탑을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어 쌓다 못해
결국에는 되는대로 쌓아 올려 불을 붙인다.
그때 알았어, 우리들을 여기 머물게 했던 게
바로 저 살갗과 머리털과 근육과 내장이었다는 걸.
몸들이 우리를 끌어당기는 인력이 빠르게
허약해지기 시작했어.
(중략) 우리들의 몸에서 뭉클뭉클 뿜어져나오는
검은 연기를 타고 단숨에 허공으로 솟아올랐어.
어떻게 첫 뺨을 잊을까.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은숙은 교정의 일로 고문을 당하고,
그 기억을 잊으려 하지만 과거의 기억과 맞물려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함께 잡혀가 고문을 당하던 진수의 자살 소식에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에 괴로워하는 남자.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있다는
치욕과 매일같이 싸워야만 한다.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하루에 열다섯시간
일하고 열여덟에 노동운동을 하다
사복경찰에게 맞아 응급실에 실려가고
벗어나려 했으나 또 끌려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모진 고문을 받고, 이십여년이 흐른 지금.
그 기억에 대한 증언을 요청받는 선주.
그날의 기억을 등지고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온 그녀에게.
그날 아들을 두고 그곳에 혼자 두고 온 것을
곱씹어 생각하며 가슴에 품고 사는 동호의 어머니.
목숨이 쇠심줄 같어서 너를 잃고도 밥이 먹어졌제,
이야기는 한 명 한 명 화자가 바뀌며
각 화자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그에 그 슬픔이 더 가중되고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차마, 그 고통의 깊이를 짐작 할 수도 없다.
소설이지만 현실에 기인한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 그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어느 정도 나름의 각오를 하고 봤음에도 힘들다.
이미 내용을 다 알고 다시 보는 것임에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그날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이에 대한
부채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지독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더욱 눈 부릅뜨고 역사의 증거 앞에
다짐을 해야 할 것이다.
잊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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