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지은이 정유정
펴낸곳 은행나무
값 14,500원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였다'로 시작하는 소설.
음주운전, 면허취소, 무면허운전, 뺑소니에 이은 살인 얼핏 보면 주인공 현수는 그날 운수가 매우 나빠서 원래는 아들을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인데 재수가 없어서 그런 사고에 연루된 거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애초에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본인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빗길에 급커브에 무면허 음주운전 아무리 사고였다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살 수도 있는 아이의 목을 비틀어버리기까지 했으니 죄값을 치뤄야 마땅하다. 물론, 그에게는 어린시절의 학대의 경험과 아버지의 죽음에 연관된 트라우마로 내내 불안감과 죄책감을 안고 살았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긴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급박한 상황에 튀어나오는 법이라고 본다. 순간의 실수로 어린아이를 죽인 사람과 자신의 아들을 끔찍하게도 아끼는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고 해도 살인범인 것에는 변화가 없으며, 홧김에 아내의 뺨을 내려치는 사람임에도 변함이 없다. 그저, 살인자의 아들로 남겨진 아이에게 죄는 없다. 아버지의 죄에 대한 무게만큼의 죄책감만 있을뿐.
반 아이들은 내가 누군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열두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 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 주민 절발은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그 광란의 밤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
세령호에는 이전부터 외지인이 물속 마을에 침범하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언뜻, 보면 현수는 마치 아내 은주의 성화에 못이겨 억지로 떠밀려진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최현수의 인생에 들이닥친 재앙이 강은주라도 되는냥 오영제 못지 않은 빌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무능한 남편 덕에 억척스러워지는 아내들은 발에 차일 만큼 많다. 짦은 연애 후 심사숙고 없이 결혼을 한 게 그녀의 실수라면 실수일테지. 결국엔 그가 술을 안마시고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였다. 면허가 없다는 사실만 밝혔어도 욕을 들을망정 세령호에 가는 일은 없었을거다. 술에 관대한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을 엄한 사람을 탓하면 안된다. 결국, 떠도는 이야기처럼 외지인 현수가 세령호의 재앙을 만들고 말았다. 자신의 인생과, 아내의 인생, 그리고 그토록 소중한 아들을 궁지로 내몬 것도 그 자신이였다.
최현수라는 저 거한의 세상은 어째 이리도 좁은 것일까. 영혼은 수수밭 우물에, 삶은 철창에, 주검은 마티즈 운전석만큼 옹색한 관에 갇혀 있었다.
소설은 부성애 넘치는 최현수와 집착과 소유욕 쩌는 오영제의 대결구도가 스릴 있고 리얼하게 그려져 긴장감을 더한다. 면면을 살펴보면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상황이 실제 눈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7년이라는 시간은 오영제에게는 사건 후 복수를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고 최현수의 아들 서원의 도피의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악재를 겪게된다. 그 순간에 주인공처럼 잘못된 판단으로 나를 포함한 주변의 사람들을 위기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지나온 길에는 그 나름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남는다. 어떤 이에게는 복수의 방식으로 어떤 이에게는 도피의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루가 주어지지만 어떻에 살아내는야에 따라 그 밀도는 달라진다. 결국, 그 하루 하루를 쌓고 그 인생을 담아내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인성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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