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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푸른 수염의 방

by 상팔자 2023.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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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방

지은이 홍선주

펴낸곳 나비클럽

값 15,000원

 

 

 

진짜 공포는 일상에 있다

 

 

 

이 책은 총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의 추리소설들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쫓는 구조를 취하는 것과 달리 주인공(가해자 혹은 피해자일 수 있는)의 시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객관적인 사실들을 보여주고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소설들과 차이점을 두면서 어딘가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푸른 수염의 방은 동화 푸른 수염의 현대판 버전으로 여성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마무리된다. 자신만의 잣대로 여성을 재단하고 살인을 자행한 남자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과정을 색다른 구성으로 보여주고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단지 살인 그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지속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며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이 복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너야? 정말 또 너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불가능하다고!_p.18

 

 

G선상의 아리아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주인공이 K라는 새로운 존재와 만나면서 자신 안에 또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되는 내용을 조현병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실제 조현병을 겪는 사람의 심리가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예민한 주인공의 모습이 매우 잘 드러난다. 유난히도 폭력에 취약했던 주인공은 결국 그 폭력에 길들여져 자신 또한 폭력적으로 변한다. 

 

 

내 인생을 통틀어 나를 가장 무시하고 업신여기던 사람이 엄마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_p.70

 

 

연모는 사이코패스의 사랑이야기 같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집착과 소유욕에 대한 이야기로 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 사제지간으로 만난 주인공들은 서로에게 강한 끌림을 느끼지만 소형의 자퇴로 한동안 만날 수 없었다. 이후 스타트업 회사의 CEO가 된 소형과 기자가 된 민우는 9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만남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난다. 연모가 가지는 또 다른 단어의 의미를 통해 반전을 보여준다.

 

지독하게 강렬한 열망. 소형의 눈동자가 품고 있는 것은 그 자체였다. 그 기운이 얼굴 전체로 퍼지며 빛이 발산되고 있었다. 찬란했다.
(중략)
"선생님은 신기한 분이네요. 흠미로워요, 무척이나."_p.98

 

 

최고의 인생모토는 효율에 집착하는 안선웅 대리의 이야기이다. 일머리 없는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자기가 일을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이 다섯 가지 에피소드 중 가장 현실에 근접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효율을 따지지만 사실 업무에 실수가 잦고 자신의 동료들에 대한 존중도 없는 자기애가 충만해서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특히 요즘 시대에 굉장히 많이 접하게 되는 부류 중 하나인 듯하다. 과거에 비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짐과 동시에 흔히 인간관계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성이 결여된 사람들이 많다. 아무리 잘난 인간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아니꼽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차리고 살아야 한다. 주인공의 자승자박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이라 그다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단지 재미를 위해 주인공을 속인다는 것이 좀 소름이 끼치기는 한다.

 

"재밌잖아, 아하하!"
(중략)
"우리 안 대리, 그 인생 모토를 계속 유지하시려나?"_p.204

 

 

자라지 않는 아이는 재취자리로 들어간 여성이 겪게 되는 감당할 수없이 벅찬 현실의 막막함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의외로 많다. 결혼을 도피처로 삼아 불운한 가정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여성들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남편은 죽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입장에서 임신까지 한 난감한 상황. 삶이 고통일 수밖에 없는 여자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 몇 개나 되었을까. 

 

 

처음 본 순간 자신의 마음을 모두 가져가버린 아이였지만 그 감정을 누르고 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주게 되면 자신을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드는 행위라고 여겼다._p.228

 

 

악의라는 것은 상황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조현병과 같이 인격적 결함의 형태에서 기인하는 경우도 있지만 폭력이나 생활고 등 불우한 상황에서 생기는 경우도 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람의 진짜 본성이 드러난다고 한다. 바꾸어말하면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소설 속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먼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결핍이 있고 우연한 기회에 그것이 확대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연애, 결혼, 취업, 육아, 학업 등 생에 걸쳐 하나쯤은 맞닥뜨려야 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깊이는 다르더라도 한 번쯤 느꼈을만한 인간의 공포와 두려움 불안 등의 심리가 잘 드러나는 소설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행복이나 희망 사랑의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소설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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