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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종의 기원_정유정

by 상팔자 2021.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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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지은이 정유정
펴낸곳 (주)은행나무
값 13,000원
 

종의 기원 표지
운명 아니면 선택

 
 
소설은 성당에서 첫영성체 의식을 하는 유민, 유진 두 형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유진은 의식중에 정신을 잃고 만다. 외모를 빼고는 취향도, 성격도, 하는 짓도 모두 다른 두 아이. 어릴 적 사고로 아버지와 형 유민은 죽고 유진은 성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통제 속에서 생활한다. 그리고 유진은 계속된 약의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죽은 형의 빈자리는 형과 똑같이 생긴 친구 해진이 대신한다. 어머니는 해진을 양자로 들여 세 사람은 가족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진은 피 냄새에 잠이 깬다. 그리고 피의 흔적을 따라 내려간 거실에는 어머니의 시체가 있다.
 
 

어머니가 하염없는 두려움을 내 핏속에 쏟아 넣는 사람이라면, 해진은 내 심장에 노을 같은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이었다. 

 
 
유진에게 해진이 더 따뜻한 존재일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애초에 유진의 분노가 어머니에 닿아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자유롭게 다른 아이들처럼 키웠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형 유민은 기찻길에서 위험한 장난을 함께 하는 동지였고 유진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해진은 그런 형과 같이 황무지의 풀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머뭇대지도, 더듬대지도 않았다. 자를 대고 종이를 자르듯, 벌어진 상처 안쪽을 오차 없이 따라갔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복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의식이라도 치루듯 천천히 그리고 포를 뜨듯 세밀하게 묘사된다. 정유정의 소설을 읽기가 두려웠던 것은 전작에서 느꼈던 잔인함이나 폭력성 때문이었다. 사건 자체보다 살인 행위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행위에 집중되어 범인의 심리에 감응하도록 하는 듯 하다고 느꼈다
 
 

나는 남자보다 여자가 좋았다. 등 뒤에 대한 육감이 남자보다 두 배로 뛰어나면서 겁은 두 배로 많다는 점에서.

 
유진은 남을 괴롭히는 행위에 쾌락을 느끼고 타인의 두려움을 짜릿해한다. 그 기분을 확인하기 위해 어머니 눈을 피해 집 밖을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 동안 자신이 어머니에게 통제되고 억눌려 살았던 시간만큼 그 일탈은 달콤하다.
 
 
이 소설은 단순히 악인을 그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라는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유전자의 목적은 자신의 DNA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에 있다. 물론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자연의 당연한 이치같지만 반대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 사회가 생존의 가능성을 더 높였다고 본다.
주인공 '유진'의 피를 끓게 하는 것은 성욕 보다 강한 살인에 대한 욕구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마우스'가 떠올랐다. 거기에서도 사이코패스 프레데터인 주인공이 나온다. 거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친부는 자신의 DNA를 가진 아들에 대한 강한 집착을 갖고 있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인 '유진'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감춰진 채로 자라왔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늦었을 수는 있으나, 살인에 대한 욕구가 유전적 본능이라면 그는 무엇과의 경쟁에서 이겨 생존하려한 것일까. 과거에 인간이 적자생존을 위해 선택했던 것이 살인이었다면 소설에서 살인은 오로지 쾌락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부정당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방법이었을수도 있다.
 
또 중요한 화두는 과연 인간의 타고난 유전자는 양육이나 교육을 통해 달라질 수 없는 것일까 하는 문제이다. 어차피 달라질 수 없는 것이라면 소설에서처럼 애초에 그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통제하거나, 공익을 위해서 (가능하다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을까. 생후 3년 동안이 인간의 정서발달 과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시기라고 한다. 그 시기에 보통 인격이 생성된다고 하는데 만일 그 시기에 애정과 사랑으로 키운다면 달라질까. 한편으로는 개인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양육 과정을 거쳤다고 반드시 같은 아이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소설에서 어머니의 통제가 조금 덜 했다면 '유진'의 이른바 '개병'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공감능력이 없다고 해서 사이코패스인 것은 아니며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반드시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감정적으로는 부족하더라도 교육을 통한 교정도 가능할 것이다.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서 다양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는 이야기는 좋은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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