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지은이 무라카미 류
옮긴이 안재찬
펴낸곳 예하 출판사
값 4,000
니브로울, 하시시, 메스칼린, 모르핀, 헤로인, LSD 대충은 짐작은 가지만 알 수도 없는 낯선 단어들. 그 못지않게 낯설었을 이 소설. 1976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작가가 24살에 썼고 우리나라에서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을 만큼 이전에는 없던 느낌의 새로운 소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류, 릴리, 레이꼬, 오키나와, 요시야마, 케이, 모꼬, 가즈오 들은 어울려 마약을 하고 난교 파티를 하며 지낸다. 내용은 이것이 전부다. 모여서 놀고 놀다가 싸우고 폭력사건을 일으키거나 약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보여주는 내용. 그렇게만 보면 사실 남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이 세간에 화제가 되었을까. 단지, 음란성이나 자극적인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전후 일본에는 미군이 주둔하던 곳이 있었고 소설은 그곳을 배경으로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류가 자신이 미군의 인형이 된 것처럼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들이 하라는 대로 여장을 하고 춤을 추고 성적인 요구도 들어준다. 패전국이었던 일본에게 미국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한 무력감을 소설에 반영한 것이 아녔을까 싶다.
내 자신이 인형이라고 하는 느낌이 더욱더 강해진다. 나는 생각한다. 그래, 저 녀석들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면 돼. 나는 가장 행복한 노예야.
소설 전반에 걸쳐 계속 파티를 하고 내키는 대로 살며 지나가는 사람을 폭행하고 추행하는 일상들은 단 한순간을 위한 폭주로 보인다. 주인공 류는 결국 약에 취해 쓰러져 피에 물든 유리 파편을 바라본다. 류는 자신도 유리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리가 투명해 보였던 것도 순간에 불과하다. 하늘이 밝아 오고 투명함은 사라진다. 희망은 없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을 위해 무작정 달리고 무모해 보일지라도 당장의 고통만 잊고 살자. 삶의 목적도 의미도 그대로 사라진다.
피가 가장자리에 묻은 유리 파편은 새벽 공기에 물들어 투명에가깝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를 필두로 한창 붐을 일으켰던 일본 문학이 국내에서 인기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는 청춘의 아픔과 상실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후 일본은 아시아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패전국으로서의 열등감이 있었고, 그리고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는 상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 또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지만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외감이 있었다.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으나, 열망은 누구보다 가득했을 그때의 청춘들이 그 허깨비를 쫓는 듯한 심정을 대변한 것이 그즈음의 소설들이 아닐까 싶다. 극한의 우울은 눈물이나 분노가 아니라 침잠한 일상 속의 무의미한 삶이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는 그 우울에 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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