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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아가미_구병모

by 상팔자 2021.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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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지은이 구병모
펴낸곳 자음과 모음
값 13,000원


뻐끔 뻐끔



헤엄쳐야지 별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물어 빠져 버린 한 여자는 아가미가 있는 남자에게 구조된다. 인간은 원래 물고기에서 진화했다는 진화설은 있지만, 인간의 형태로 아가미가 달린 사람을 봤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믿지 못할 것이다. 뭐, 좋게 말하면 인어 왕자고 다르게 말하면 생선 인간 정도 될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소설이다. 왠지 물 속에서 살지만 비린내 안 날 것 같은 느낌. 아가미라도 뚫어야 겨우 숨통이 트일 것만 같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나름의 일탈을 주는 소설이다. 아가미가 있든 없든 우리는 살려면 발버둥을 쳐야 되거든.

석류 열매처럼 드러난 속살이 두근거리는 모습은
명백히 생명의 움직임이었다.



무언가 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간 노인은 자신의 손자와 함께 호수에서 아가미가 있는 아이를 건져내 집으로 데려온다. 경찰에 신고하자니 아이의 남다른 모습이 걱정이 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하며 당분간만 지켜보기로 했던 그들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한편으로는 당황스럽고 성가시다 생각도 들었겠지만 결국 아이를 받아들인 건 차마 어린아이가 몹쓸 짓이라도 당할까 하는 걱정과 보호의 의무 못지 않게  가족에게 소외된 소년의 처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두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꿈뻑꿈뻑 움직이는 아가미의 움직임이 마치 구조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제가 슬프다고 한 건, 저렇게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사람들마다
삶의 무게가 비슷하구나 싶어서입니다.  



비록 아가미가 있긴 하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사는 걸까. 인간의 무리 안에서 살고 있지만 절대 섞이지 않는다. 그는 항상 인간의 주위에 있지만 마치 풍경화를 보듯 관망하는 태도를 보인다.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이미 초월한 듯한 청년의 모습은 삶에 대한 애착도 소중한 것도 없는 듯히다. 그러면서도 절대 삶을 포기하지도 인간을 무시하지도 않는다. 가까이 다가서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딱 그 정도의 거리감. 그것이 남다른 '곤'이 인간 세계에서 사는 방법이다.

'싫어'라는 건 반드시 증오만을 가리키는게 아니에요.
그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에요.
그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방식
가운데 가장 범위가 넒은 거라고 봐요.


어린 시절 같이 살며 '곤을' 때리고 폭언을 일삼던 '강하'였지만, 그건 그 나름의 관계 맺음이었다고 말하는 '해류'. 사람이라고는 할아버지와 '강하' 그리고 '이녕' 뿐이었던 '곤'에겐 인간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모두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다시 만나지 말자고 말했음에도 '곤'은 자신의 위치를 계속 사진으로 보냈고, '강하' 또한 연락처를 바꾸지 않았다. 둘은 그들만의 유대감을 가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소통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본다.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곤' 자신이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야기 속 물고기처럼 새가 되어 날아갈까봐 한번 부르지도 못했던 어린 시절의 '강하'. 그랬던 그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곤'을 스스로의 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물을 둘러싸고 이어진 그들의 인연은 마치 정해진 강물의 흐름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였을지도 모르겠다. '해류'의 목숨을 구한 건 '곤'이었고, '강하'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 건 '해류'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사라진 할아버지와 '강하'의 시체를 찾으러 다니는 '곤'의 모습은 의미 없던 자신의 삶의 목표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꿈뻑꿈뻑 처음 만났을때 두근거렸던 생명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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