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지은이 다카노가즈아키
옮긴이 김수영
펴낸곳 황금가지
값 15,000원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책이라 큰 기대를 갖고 읽게 됐다. 소설의 거대한 스케일과 다양한 등장인물로 인한 구성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아프리카에서 미국 일본을 오가는 이야기다 보니 분량도 만만치 않다. 소설의 분위기를 봐서는 어느 정도 결말이 예상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또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아버지가 남긴 비밀스러운 메일 속의 내용을 파헤치며 남겨진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고가 겐토의 이야기와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콩고 공화국에 들어간 용병 조너선 예거의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사건들을 둘러싼 미국 정부와 새로운 생명체의 대결 이야기
각각의 이야기는 번갈아 가며 전개되며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갈등이 고조되며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예거는 울컥했지만 화를 참았다. 다른 인종을 때리는 것에 저항감이 있었다.
게다가 믹이 왜 유인원을 쏘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린 원숭이의 고통을 없애 주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대장 원숭이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실제로는 그 어느 것도 아니라 하등동물에 무력을 과시하며 비열한 허영심을 만족시키려 한 것일지도 몰랐다._p.205
인간의 악함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알 수 없다. 타고났을 수도 있고 환경적 요인일 수도 있다. 예거는 살기 위해 택한 자신의 일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한 복판에선 그는 폭력을 피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끼지만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 또한 폭력뿐이다.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생물로서의 습성인 것이다.
식욕과 성욕을 채운 인간만이 세계 평화를 입에 담았다.
하지만 한번 기아(飢餓) 상태와 직면하게 되면 숨어 있던 본성이 그 즉시 드러났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사상가가 이미 주창한 대로
사람은 '부족하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나는' 생물이었다._p.317
이제 인간은 무언가 부족하지 않아도 싸움을 일으킨다.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위한 싸움이다. 자신의 강함을 내세우고 다른 이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이용된다.
"무서운 것은 지력이 아니고, 하물며 무력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이의 인격입니다."_p.415
작가는 일부의 등장인물을 제외하곤 이야기 전반에 걸쳐 주인공들의 성격을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별 볼 일 없는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고가 겐토는 자신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불치병에 걸린 아이들을 생각하며 신약 개발을 포기하지 않는다. 예거 또한 전쟁의 한가운데서 자기 아들 또래의 소년병들과 대적했을 때 자신이 죽을 수 있음에도 소년병들의 죽음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불가피하게 폭력을 행하지만 그에 대한 죄책감을 느낀다. 이야기의 해피엔딩을 예상하는 데에는 이러한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한몫한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주인공들과 같은 마음으로 사건이 무사히 마무리되길 마음으로 빌게 된다.
제약이나 군사 관련 전문 용어들이 좀 낯설기는 했지만 몰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SF 장르의 소설이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인간의 고민들을 담고 있으며 인류애가 넘치는 소설이다. 최근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라 일본 작가의 책은 멀리했었는데 이 책은 기존의 일본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있다. 소설에 한국인 등장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일본인 등장인물이 잔인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부분도 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어봤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통 소소한 일상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과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본 작가지만 일본 색이 묻어있지 않은 점이 이 소설의 특징이자 장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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