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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여자는 인질이다_디 그레이엄

by 상팔자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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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인질이다

지은이 디 그레이엄

공저 에드나 롤링스, 로버타 릭스비

옮긴이 유혜담

펴낸곳 열다북스

값 28,000원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다

 

 

스스로를 그동안 꽤 나름 열린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혔다. 그리고 이 책의 읽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꼈다. 그만큼 센세이션한 책이었고 일부는 너무 강한 논조에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약간 논문 수준의 글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좀 어렵다는 감도 없지는 않았으나 그 문턱을 넘어서면 조금 더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의 이야기들이라 더욱 빠져들게 되는 부분이 있다. 매 단락마다 메모를 다 해 두고 싶을 정도로 남겨두고 싶은 문장이 많았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이미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으로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자가 갖는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게 강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공포 상황에서 힘을 가진 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이 감정이 여자가 남자에게 갖게 되는 감정과 같다는 것이다. 

 

여성성은 지배 계급, 즉 남자가 기분 좋아하는 행동 조합을 말한다.
여자는 여성성을 통해 자신은 종속적 위치를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중략) 인질범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인질처럼 여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낀다._p.37

 

여성성이라는 말 자체가 사회적인 언어이다. 유전적,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상황에서 기인한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다양한 실증적 연구에 의하면 실제로는 본인에게 통제력이 없더라도
통제력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고 강한 끈기를 보였다._p.109

 

생존 전략으로서 가해자 혹은 납치범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데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인질범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고 고립되어 타인의 시각으로부터 차단되며 탈출할 수 없다고 인식한다면 조건이 성립한다.

학대받는 피해자는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고 결과를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포기한다. 피해자에게 포기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피해자는 생존을 위해 가해자의 환심을 사면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인지 왜곡을 하게 된다. 가해자의 사소한 친절도 크게 느끼고 가해자를 사랑한다고 믿기도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결혼과 관계를 철저히 분리해, 여자와 결혼은 하면서도
결혼한 여자와 그리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_p.195

 

남자가 여자에게 베푸는 친절은 진짜일까?

남자는 자신의 직장이나 취미에 여자가 들어오는 것을 꺼려한다. 남자는 성관계는 여자와 해도 남자끼리 갖는 유대감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성관계가 존중을 바탕으로 한 소통 방식이라면 이성애자 남자가 동성애자 남자를 싫어할 이유도 없다. 여자들은 남자가 성관계를 가질 때 가장 친절하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여자의 복종을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어쩌면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 발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종류의 친절은
남자가 폭력을 가하거나 폭력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트라우마가 생긴 직후에 베풀어지는 친절일 것이다._p.200

 

자신에게 베풀어지는 친절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더 가해자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간혹 진심으로 여자를 걱정하고 위하는 남자가 있을 수는 있지만 노예 소유주가 친절을 베푼다고 해서 노예 제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에게 필요한 남자의 친절은 여자의 투쟁에 참여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뿐이다. 

 

우리가 남자에게 숭배받으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여자가 개인적/집단적으로 생존하려면
남자의 선의가 꼭 필요하다는 뜻인데, 그건 부정하면서도
남자가 우리를 예술작품처럼 떠받들어준다고 고마워한다._p.243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특권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러나, 여자가 안전한 상황에 있다면 남자의 친절에 그다지 고마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남 관계가 근본적인 불균형 상태이기 때문에 남자가 주는 친절에 고마워하고 남자에게 유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분노 또한 숨긴 채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도 여자가 잘하면 운 탓, 남자가 잘하면 실력 탓을 한다는 것이다._p.275

 

사회적 스톡홀름 증후군을 일으키는 여성 심리 중에는 인질범의 시각을 내면화하는 것의 하나로 여자에 대한 낮은 기대치가 있다. 여자는 자신을 포함만 모든 여자에게 기대치가 낮아 같은 능력을 갖고 있어도 남자보다 자신의 능력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남성 문화가 주입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뿐만 아니아 일에 대한 성과에 있어서도 자신의 몫을 적게 잡는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만 봐도 여자가 집안일이나 육아를 더 많이 분담한다. 

 

여자는 대부분 남성 파트너가 없는 시기를 지날 때 공허한 감정이 든다고 토로한다.
이 공허함의 깊이가 바로 여자가 자아감을 잃어버린 정도라고 할 수 있다._p.278

 

남자의 시각을 받아들이고 산 여자는 본인을 여자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항상 남자의 욕구와 필요에 맞춰왔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여자는 개인으로서의 삶과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남자와 관계 맺는 걸 꺼렸다고 한다. 여자들이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이유는 가부장제 내에서 특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가 현실인 상황에서 여자가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인 것이다. 

 

 

정치적 독재자는 소통을 검열하고 종교적 독재자는 허구를 검열하듯
가해자는 피해자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시키는 동시에,
피해자가 책이나 공상에 빠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다._p.351

 

모든 인간의 행동은 본인이 처한 맥락 속에서 결정된다. 가부장제는 여자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없도록 고립시키고 남자에게 의존하도록 한다. 여자가 원래부터 의존적이었다면 남자가 온갖 장애물로 여자의 발목을 잡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힘은 힘이지 진실이 아니다.
너도 나처럼 사람이다.
나보다 더한 존재도, 덜한 존재도 아니다.
아무리 너라도 인간으로서의 과업을 회피할 수는 없다.
네게 그 진실을 상기시킨단 이유로 날 처벌하고,
죽인다고 하더라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_p.357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원인을 찾아가며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해가 부족해서 누군가는 외면하고 싶어서 당장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한번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그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나의 생애 내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불행하게도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그래도 과거에 비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싶다. 가부장제의 파괴는 남성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며 인지조차 하고 있지 못했던 종속 관계에 대한 해방이다. 현실에 입각한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고 더 이상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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