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얼마나 닮았는가_김보영

by 상팔자 2023. 10. 2.
반응형

얼마나 닮았는가

지은이 김보영

발행처 (주)아작

값 14,800원

 

 

 

 

많지는 않지만 최근 들어 SF 소설을 몇 권 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SF 소설에서 한 발자국 더 멀어진 느낌이다. 개인적인 상황이나 기분 탓일 수도 있겠지만 집중이 조금 어려웠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초반에 읽는 동안에는 중단편인지 모르고 읽을 만큼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했다. 이야기가 주는 배경이나 분위기가 좀 비슷하게 느껴져서 인 듯도 하다.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

내게는 초능력이 있어.
나는 원자의 움직임을 봐. 분자와 이온의 흐름을 봐.
그게 내가 가진 능력이야._p.13

우리가 핏줄로도 그 무엇으로도 이어지지 않았는데도,
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이미 네 아버지의 몸을 구성하는
분자의 대부분은 내게서 온 것이었어.
그때 나는 나 자신의 죽음을 문자 그대로 지켜보며 울었어._p.15

 

꼭 필요한 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에게는 원자의 움직임이 보인다.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각 개인마다 고유의 능력이 있다. 또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할지라도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다 보면 서로 닮아가기 마련이다. 존재의 의미라는 것은 결국 공유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굳이 무엇이라고 규정짓지 않아도 말이다. 

 

 

<0과 1 사이>

그게 우리가 보는 세상의 전부야.
사람은 자신이 관찰한 것밖에 알 수가 없어.
누구나 일생 자신의 인생밖에 살아본 적이 없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온 세상을 보고 온 것처럼 큰소리치곤 한단다._p.31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의 나는 과연 과거의 나를 설득할 수 있을까.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를 믿고 따를 수 있을까. 어른들은 이게 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아이에게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곤 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삶 또한 한 번 뿐이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무엇이 더 나은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 또한 다르다. 겨우 몇 년을 더 살았다는 이유로 어떻게 타인의 인생을 재단할 수 있겠는가.

 

 

<빨간 두건 아가씨>

아가씨는 주목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자연스럽기를._p.75

 

합성신체를 파는 세상에서는 남자들만이 가득하다. 여성의 신체로 사는 것보다는 남성의 신체로 사는 것이 여러 모로 이로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희귀템이 되어버린 세상이 낯선 듯하면서도 묘하게 익숙하다. 동등하게 자신의 파이를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불합리라고 여겨지는 것을 어느 정도는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세상은 강요한다. 특별대우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나답게 있기를 원할 뿐인데 그조차 대가를 지불하라고 말한다. 

 

 

<고요한 시대>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이 멎는다.
배움이 멎은 사이에 세상은 변한다. 가르칠 것이 없다.
새파랗게 젊은 놈에게 배워야 한다. 불안, 두려움, 공허함._p.91

그래서 신영희는 언어학자가 되었다.
언어가 그날을 모독하고 현상을 바꾸었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고 사람의 마음은 언어에 담기며,
경험은 사라지고 언어만이 남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_p.99

 

보수주의자들은 세상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이 평생 살아온 익숙한 세상이 변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도 들 것이다. 자신이 이해해지 못하는 세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이 가진 것을 잃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이미 익숙한 세상일 수도 있다. 

 

 

<얼마나 닮았는가>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축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_p.288

 

기계는 확정적인 사고를 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 내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그에 반해 인간의 선택에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안고 있다. 다만, 기계보다 유기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며 기계는 인간이 제공한 정보 내에서의 선택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타이탄의 구조 신호를 받고 보급을 위해 우주를 항해하는 이들 사이에는 유사 인간의 유체에 들어간 AI가 함께 있다. 인간을 이해하긴 어렵지만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체의 반응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뭔가 달라짐을 느낀다. 자신을 변화를 느끼면서도 AI는 그것이 자신의 감각이 아니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말함에도 불구하고 AI에게서 자아가 있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비록 기계임에도 인간과 교감하고 있고 기계인 채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자아가 있다는 말은 과연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써야 하는 것일까.

 

 

SF 소설이지만 사실 우리의 현실과 결코 동 떨어진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이해가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결국엔 인간과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금 더 달라진 세상, 새로운 세상에 살게 될 우리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황에 따라서는 인간의 범주가 확장되거나 달라질지도 모르겠지만 삶은 계속될 것이다. 세상은 변화할 것이고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할 길은 없다. 결국 그 안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그 의미를 찾는 과정이 삶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찾는 것이 비록 삶의 윤택함과는 무관하더라도 아마 계속되지 않을까.

 

반응형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자는 인질이다_디 그레이엄  (0) 2023.10.16
제노사이드_다카노가즈아키  (0) 2023.10.07
한국이 싫어서_장강명  (0) 2023.09.25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_황모과  (0) 2023.09.17
귀신나방_장용민  (0) 2023.09.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