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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_황모과

by 상팔자 2023.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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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지은이 황모과

펴낸곳 (주)문학과 지성사

값 14,000원

 

 

 

 

 

 

역대 최악의 성비를 기록한 1990년 '백말띠',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이유로 꺼려졌고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단지 성별 때문에 태어나지 못했다. 최근에는 여아를 선호하는 부모들이 더 많다고는 하나 노후에 여성이 부모를 더 잘 돌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요양원에 방문하는 80%는 딸이라고 한다. 이 또한 다른 방식의 차별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딸 바보'라는 말이 유행이 될 정도로 남아에 비해 온순해 키우기 수월하고 예쁘고 애교가 많아 키우는 재미가 있을 거 같다는 기대도 많다. 그나마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진 존재들을 생각한다면 세상이 좋아졌다고 해야 될지 복잡한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은 과거 남아선호사상에 의해 사라져야 했던 현실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90년대생 여성들이 태어난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 날 갑자기 진리의 친구들이 사라지고 진리는 사라진 친구들을 찾기 위해 과거의 자신의 부모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잊힌 이들의 잊히지 않기 위한 이야기이다.

   

 

어떤 일은 내 의지나 선호와 상관없이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따라붙는다. 가족이란 존재가 딱 그랬다._p.14

 

진리 베이커리의 사장 채필림씨는 자신의 빵에 대한 자부심만큼이나 자신을 닮은 딸에 대한 자부심도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에서 만난 진리의 아빠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엄마 기일이 내 생일인 바람에 나는 엄마의 삶을 물려받은 것만 같다. 내가 있으니까 엄마도 과거의 존재만도 아니라고 믿는다._p.19

 

진리는 자신을 낳다가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게 됨과 동시에 자신이 삶이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사는 세계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엄마의 삶과 자신의 삶이 의자 뺏기 게임에서 한 자리를 두고 싸우는 경쟁이 아닌 가 생각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이 이해된다는 건 복잡 미묘한 일이야. 어떨 땐 대책 없이 낙관적인 기분이 들고, 어쩔 땐 혼자일 때보다 더 버거운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_p.26

 

자신이 알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진리의 친구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기억조차 점점 희미해져 간다.

 

"조금 달라 보이는 사람에게 나대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겐 입 좀 다물라고 행정명령을 내렸으면 좋겠어. 좁은 세계에 갇힌 것 같은데 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갇혀 살라고 강요를 하지?
"자기만 갇힌 게 억울한가 봐."_p.231

 

 

우리가 다시 만난 세계는 현실에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세계이다. 우리가 아직 만나지 못한 평행 세계의 또 다른 과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에 소설 속 가상의 공간에서나마 재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과거가 아닌 현재의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들로 미래를 변화시키는 게 빠를 것이다. 비록 이해해 주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우리라고 칭할 수 있는 존재가 적게라도 있다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다. 과학적인 발견이나 역사적인 혁명도 시작은 그런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주인공인 진리가 구하려고 했던 것은 비록 자신의 친구들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시작은 점점 퍼져나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아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빛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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