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지은이 무라카미 하루키
옮긴이 양윤옥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5,800원
하루키를 읽을 생각은 없었다
내게 하루키는 뭔가 철 지난 문학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 뭔가 그 특유의 감성이 20세기에서
넘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 읽으려던 책을 찾지 못해서 우연히 고른 것이었다
어디선가 제목만은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7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1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륜이 소재로 등장한다
이쯤 되면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인 거 같다
남은 한 편의 이야기마저도 남성의 욕망이 중심에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은 여자가 사라져
곤란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거 같지만
어디서도 채우지 못하는 허무함의 감정을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졌다
특히 각자의 결핍을 숨기고 있는 남자들의 이야기
인생이란 묘한 거야.
한 때는 엄청나게 찬란하고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그걸 얻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내버려도 좋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혹은 바라보는 각도를 약간 달리하면
놀랄 만큼 빛이 바래 보이는 거야._p.211~212
셰에라자드는 하바라와 성교를 할 때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해 준다
자신이 전생에 칠성장어였달지,
자신이 짝사랑하던 남학생의 빈집털이를 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
그들은 만난지 얼마 안 돼 성교를 하지만
하바라는 성교 그 자체보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더 의미를 둔다
물론 그 관계마저도 언전가는 끝날 것을 알고 있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고
당연히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_p.226
기노는 아내의 불륜 현장을 직접 목격한 후 이혼한다
그리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아내의 불륜 상대가 회사의 동료인 탓에)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담아 자신의 이름을 딴 바를 차린다
그의 가게에는 기묘한 손님들이 찾아오고
기묘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리고 기묘한 사건들로 잠시 여행을 떠나게 된 그는
흐르지 않는 시간 속에 갇힌 후에야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중략)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 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_p.308
그레고르 잠자로 변신한 주인공은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갑자기 찾아온 열쇠 수리공은 이 세계가 무너져 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세계에 대해서도 스스로에 대해서도 아는 바 없지만
잠자는 그저 꼽추 열쇠 수리공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자신의 나약함에 안주해서 기회를 잃거나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모른 체하거나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비겁하게 굴거나
무지해서 실수를 범하거나
때론 무관심 하거나 교만해서 어쩌면 운이 없어서
다양한 이유로 여자와 이별한 남자들의 이야기에
사실 그다지 큰 연민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불안을 안고 시작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그걸 마치 몰랐다는 듯이 이제와 푸념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지 않은 가 하는 생각이다
가끔은 모르는 게 죄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어떤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냥 가볍게 분위기를 음미하면서 즐기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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