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나쁜 일_김보현

가장 나쁜 일
지은이 김보현
펴낸곳 (주)민음사
값 15,000원
 

 

인간 사냥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만난 것 같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정도의 느낌으로
읽기 좋은 책이었다
이야기 속의 분위기는 좀 어둡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등장인물이 좀 많은 편이라 헷갈릴 수 있긴 한데 사건 발생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했던 부분이었던 거 같기는 하다
 

돈이 없으면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이상한 나라.
그 이상한 나라에 자꾸 자신만 혼자 남겨지는 기분이 들었다._p.27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는 결국 돈이 있었다
탈북한 철식에게 자본주의 세계인 남한은 그저 행복의 나라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때로 자기를 뛰어넘는다.
뭔가에 빠졌을 때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_p.40

 
아내를 잃은 철식에게 남은 것은 복수뿐이었다
아내의 죽음에 관련된 한 남자, 성훈
 

"그냥 좀 평범하게 살게 내버려 두면 안 됩니까?"_p73

 
탈북자를 관리하는 보안과 형사는 서점례의 말이
내내 마음에 남는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국가
(심지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에서
탈북자인 이들이 원했던 것은
그거 하나뿐이었을지 모른다
그저 평범한 삶
 

삶이 또다시 그녀의 의지나 욕망과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희는 고통과 시련을 통해 단단해지는 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맷집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나운 운명이 정희에게 남긴 것은
트라우마와 두려움,
그리고 그녀 자신 말고는 아무도 그녀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는
초라한 자기 연민뿐이었다._p.82

 
병으로 아들을 잃고 신경쇠약에 걸려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해진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친다
남편이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은 후
정말로 남편이 실종된다
 

조 원장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것은
정이나 신의가 아니라
실리와 필요라는 것을 배웠다._p.197

 
우리 사회에 그래도 아직은 진짜 의사가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정신적, 육체적, 사회적으로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직업이라면
아직은 직업적 신념이 우선하는 사람들이 더 많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의 생사가 기로에 선 사람 중에 그걸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기대 볼 수도 있겠죠.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다정해요. 내가 너무너무 불행하니까."_p274

 
정희는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나약한 존재로 보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국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사람이다
정희는 두려웠지만 진실을 알아야 했다
 
 
소설의 제목인 '가장 나쁜 일'이라는 것은 아마도
인간의 가치가 돈으로 매겨지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닐까
등장인물로 탈북자가 등장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사정은 다르겠지만 살기 위해
남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좀 더 인간답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한의 생활 또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다시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응하기 어려운 사회였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 돈이 전부인 사회, 돈이면 사람 목숨도 사고파는 사회
 
비단 탈북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희생해서라도 남은 가족을 살리고 싶은 더는 갈 곳이 없어
나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책 표지의 '토끼 사냥'은
서로가 서로를 잡고 있는 그림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붙잡고
다른 사람을 붙잡기 위해 내가 붙잡히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포식자는 누가 죽든 돈을 번다
더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사냥꾼만 찾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사냥꾼은 누굴 죽이든 돈만 받으면 그만이다
 
소설의 흐름상 굳이 필요하지도 않고 연관도 없음에도 중간중간 들어갔던 이야기 중 하나가 유기견 이야기이다
불법체류자 리오가 키우던 '꾼'을 이어서 맡아 키우던 철식은 비용을 들여 장례를 치러준다
또, 버려져 다 죽어가는 개를 치료하고 입양한다
아마 이것이 소설에서 '가장 좋은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