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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_에벌린 워

by 상팔자 2023.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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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

지은이 에벌린 워

옮긴이 백지민

펴낸곳 (주)민음사

값 15,000원

 

 

 

개인적으로 참 쉽지 않은 책이었다. 속도감 있는 소설 위주로 읽다 보니 고전도 좀 읽을 때가 되었다 싶어서 도전하게 된 책이었는데 너무 오랜만이어서였는지 원래 잔잔한 소설이라 그런지 다른 책에 비해 시간이 좀 걸렸던 거 같다. 실제로 페이지 수가 좀 많기도 하다.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나름 보람은 있다.

 

민음사 유튜브에서 알게 된 책이었는데 사실 BL의 고전이라는 말에 덥석 미끼를 물었다. 고전이다보니 아무래도 기대에 큰 부흥을 하지는 못했지만 잔잔하게 찾아보는 재미는 있었다.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는 주인공이 과거에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러면서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그 과거에서 자신의 청춘을 함께 했던 인물들과 그 당시의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청춘 소설이라고만 보기에는 당시 역사적 상황이나 사회적 통념 같은 것들이 종교라는 큰 줄기와 함께 버무려져 풋풋하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한 페이지의 반 이상을 채울 정도로 많은 주석이 달릴 만큼 낯선 단어들이 많아서 그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아무래도 초반에 그 장벽을 넘기가 좀 버거웠던 것도 같다. 

 

이 책의 부제는 '찰스 라이더 중대장의 성스럽고도 불경스러운 기억'이다. 어쩌면 이 부제가 바로 소설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인 찰스의 이야기는 실제 작가의 삶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작가가 겪었던 갈등의 흔적들이 곳곳에 담겨있는 듯하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역시나 찰스의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인물, 서배스천과의 만남일 것이다. 

 

서배스천이 다가오자 이 회삭 인물들은 자욱한 헤더꽃 속의 산양같이
소리 없이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지는 듯했다._p.52

 

 

이거 완전 순정만화 주인공 등장 장면 아니냐고. 이미 학교에서 서배스천은 미모와 기행으로 유명인사였고 찰스도 모를 수가 없었다. 비록 그 둘의 첫 만남은 과히 아름다웠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술 먹고 찰스 방에 토한 서배스천) 이후에 친해진 두 사람은 서배스천의 집에 함께 가게 된다. 그런데 왜인지 서배스천은 자신의 집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또한, 찰스가 자신의 가족과 만나는 것도 몹시 꺼려했다. 자신의 집, 브라이즈헤드에서 멀어질수록 서배스천은 편안해했다. 

 

여름방학을 계기로 두 사람의 관계는 좀 더 가까워진다. 서배스천은 '심히 다침 즉시 올 것' 이라는 내용의 전보로 찰스를 자신의 집에 오도록 한다.

 

"우리 단둘이서 천국 같은 시간을 보낼 거야."_p.135

"언제나 이대로만 있을 수 있다면, 언제나 여름이고 언제나 둘뿐이고
과일은 언제나 익어 있고 앨로이시어스도 기분이 좋은 이대로만· · · · · ·."_p.138

 

 

찰스는 서배스천의 집에 머물면서 카톨릭교도들인 그의 가족들과 만나게 된다. 불가지론자인 찰스로서는 그들이 자연스레 나누는 종교 이야기와 그 안의 서배스천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공해에 떠 있는 배에서 만든 친구와 같았고, 이제 우리는 그의 모항에 도달했다._p.162

 

 

그러던 중 음주운전 사건을 일으키며 가족들의 엄한 감시를 받게 된 서배스천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점점 더 술에 의지하게 된다. 자신의 어머니와 가까워진 찰스마저도 미심쩍어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랑을 저버리지는 않았어도 내가 더는 그의 고독의 일부가 아니었기에 사랑의 기쁨을 잃었다._p.215

 

 

결국 둘의 사이는 멀어지고 찰스는 브라이즈헤드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차를 타고 떠나며 필시 내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 저택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 뒤를 돌아본 순간 나 자신의 일부를 등지고 떠나고 있다는, 아후에 어디를 가든 그 부재를 느끼고 가망 없이 찾아 헤매리라는 직감이 들었다._p.282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서배스천은 구제불능의 사람과 함께 살며 자신의 삶을 구제하려고 노력한다

 

"있잖아, 찰스." 그가 말했다
"사는 내내 돌봐 주는 사람들만 있다가
스스로 돌볼 사람이 생긴다는 건 상당히 기분 좋은 변화더라.
다만 물론 그 대상이 내 돌봄이 필요할 만큼 상당히 구제 불능이어야겠지만."_p.357

 

 

찰스는 서배스천을 잊은 듯 살았지만 실은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서배스천의 여동생인 줄리아에거서 그의 모습을 찾을 정도로 서배스천의 존재는 찰스에게 깊이 각인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네 사랑은 모두가 다만 전조와 상징일지 모른다.
다른 이들이 우리보다 앞서 밟아 간 지친 길을 죽 따라
문설주와 포석 위에 휘갈겨 쓰인 나그네의 언어일지 모른다'._p.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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