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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여름_이디스 워튼

by 상팔자 2021.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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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지은이 이디스 워튼
옮긴이 김욱동
펴낸곳 (주)민음사
값 12,000
 
 

여름
여름과 함께 찾아 온 사랑

 
 
 
"모든 게 지긋지긋해!"
다섯 살 때부터 이 마을에 살았던 채리티는 노스도머에서의 삶이 지루하기만 하다. 채리티는 후견인 '로열'씨가 '산에서 데려온 아이'로 네틀턴에 가본 이후로 자신이 살던 곳이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깨닫게 된다. 로열 부인이 죽자 그의 후견인은 채리티를 아내로 맞으려 하는데 이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고 그 집을 떠나기 위해 돈을 모으려 하고 마침 자리가 빈 마을의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6월의 어느 날  도서관에 건축가 '하니'가 찾아온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이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세밀하고 아름답게 표현된 작품이다. 미국 문단에서 여성의 성적 열정을 다룬 최초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1917년에 출간된 소설이라 지금의 시각에서는 그다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만 시대적인 배경을 생각하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이런 오후에 채리티 로열은 햇빛이 비치는 계곡 위 언덕바지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드러누웠다. 그러면 풀밭의 따뜻한 기류가 몸속을 타고 흘렀다.
이렇게 수액이 부글부글 끓고 잎집이 훌훌 옷을 벗고 꽃받침이 터질 듯 타오르는 모습이 온갖 향기에 실려왔다. 
(중략) 이 모든 것이 햇볕을 받아 거대한 짐승의 숨결 같은 촉촉한 흙냄새와 하나로 어우러졌다.

 
직접적인 성적 묘사보다 어쩌면 자연에 빗댄 이러한 은유가 성적 열망을 대변하는 듯싶기도 하다. 채리티가 하니와 만나 마을 곳곳을 소개하며 같이 다닐 즈음에 등장하는 묘사이다. 대지의 숨결과 내 마음이 동화된 듯한 느낌이 들며 막 사랑이 싹트는 여성의 심리를 드러낸 부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길어 생략했지만 꽃, 나무 등 숲에 숨 쉬고 사는 존재들의 생명력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늘 사랑이란 혼란스럽고 비밀스러운 무엇이라고 생각해 온 채리티에게 하니는 사랑을 여름 공기처럼 밝고 싱그러운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은 몰래 폐가에서 은밀한 만남을 이어가며 사랑을 싹 틔운다. 은연중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채리티는 이를 외면한다. 사랑이 사라진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하니(이름도 하필이면 하니야 짜증나)의 감언이설에 속은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속아주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시작과 달리 점점 불안해진다.
 

목사가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흰 날개를 펄럭거리자 그와 동시에 램버트 솔러스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올드 랭 사인]의 첫 소절을 연주했다.

 
응. 올드 랭 사인. 석별. 왜 그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고향 맞이 주간 행사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앉아 있는 하니(XXX). 폐가를 찾아 온 로열씨가 하니에게 언제 채리티와 결혼할 것인지 묻자 대답 하지 못한다. 쓰레기 냄새 나는 하니 끝까지 채리티를 속이고 떠난다. 지금의 시각으론 매우 열이 받는 상황인데 이게 또 그때 이 시대에는 신분의 차이 때문에 어차피 이루지 못할 사이이고 그 동안 좋았으니 됐다. 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그냥 하니가 쓰레기.
 
※ 올드랭사인 : 뭐 다시 만날 날을 희망하고 그날의 기쁨을 노래하는 곡이라고는 하는데 어쨌든 지금은 헤어지는 거 맞잖아
 

파삭파삭 소리를 내는 첫 단풍잎들이 해처드 부인네 잔디밭을 가로질러 나뒹굴기 시작했고, 해처드 기념 도서관의 담쟁이덩굴이 하얀 현관을 온통 자줏빛으로 수놓았다.

 
가을이 왔고 사랑은 끝났다. 앨리에게 하니의 결혼 소식을 듣는 채리티. 황금빛 찬란한 9월에 채리티는 결혼을 약속했다면 애너벨 볼치와 결혼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하니에게 보낸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고 그의 아이를 가졌음에도 체념해 버리는 채리티. 
 
결말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채리티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벼랑 끝에 몰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시대의 탓을 하는 수밖에는 없겠다. 씁쓸한 뒤끝을 남기기는 하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지 깨닫게 해주는 빛과 같은 문장들이 곳곳에 심어져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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