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리타
지은이 요시모토 바나나
옮긴이 김난주
펴낸곳 (주)민음사
값 9,500원
그러나 그런 일들이 진정,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웃고 있는 본인의 내면에서 마음만이 가난해진다. 점점 벌레 먹은 자리만 커져간다.
음주운전에 수면제를 과다 복용한 상태로 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동생 마유의 죽음 앞에 과거를 회상하는 사쿠미. 아무렇지 않게 일상처럼 했던 일이라 전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었지만 이미 병들어 가고 있었던 마유.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그 내면까지는 알기가 힘들다.
죽은자는 산 자의 마음에 부드러운 그림자만 드리운다
이미 오래 전에 죽어 없는 아버지를 생각해보지만 아득하고 점점 멀게만 느껴진다. 친구의 결혼식에서라든지, 이웃에 사는 미야모토씨가 아버지와 걷던 모습이라던지 일상에서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 있지만 지나간 시간의 흐름만큼 감각도 옅어지는 것일까.
괴상한 생김, 이상한 속도, 금방 벽에 부딪히고 만다. 지금의 나 같다. 그렇게 생각한다.
서두르는 건 아니지만 종횡무진 마구잡이다
머리를 다쳐 과거의 기억을 잃은 사쿠미는 수족관의 개복치를 보고 위로를 받는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그렇게 또 아무일 없다는 듯이 시간은 흘러가고 개복치는 움직인다. 달라진 것은 없이 모두 그대로인데 변한 것은 사쿠미의 마음뿐이다. 같은 개복치를 보고 있지만 훨씬 여유롭고 느긋하게 느껴진다.
우리들이 백만 권의 책을 읽고 백만 편의 영화를 보고, 애인과 백만 번의 키스를 하고서야 겨우, <오늘은 한 번 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면, 단 한번에 깨닫게 하고 압도하다니, 자연이란 그 얼마나 위대한가. 구하지도 않는데 그냥 놔두면서 알게 한다. 누구에게도 구별없이 보여준다. 구하여 아는 것보다 훨씬 명료하게
등교거부를 하는 동생 요시오의 기분전환 겸 함께 코치로 여행을 간 사쿠미는 저녁노을을 보며 감동한다. 그 날의 온도, 빛, 색감, 분위기, 촉감 등의 에너지는 매일 보는 노을이라고 할지라도 딱 그 날 그 순간에만 가능한 경험이었다. 갑자기 동생에게 생긴 영적 능력이나 자신이 기억을 잃고 생긴 달라진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암리타는 신이 마시는 물이라는 뜻으로 신비로운 힘을 의미하고 소설에서도 그러한 현상들이 자주 등장한다. 죽은 영혼이 보인다던가, 꿈 속으로 찾아간다던가 하는 식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상황들이 주인공에게는 계속해서 발생한다. 또한, 그와 관련한 새로운 사람들도 연이어 만나게 된다. 갑작스럽게 닥친 가족의 죽음처럼 신비로운 영적 능력도 갑자기 생겨난다. 이것이 여행과 더불어 일종의 성장통을 치르는 방식의 하나로 선택된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자연과 영감 이를 통해 인연을 만들게 되는 계기가 생기고 한 발짝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더 다가서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느끼는 모든 감각들을 차곡차곡 쌓으며 성숙해 가는 이야기. 사실, 이 소설은 이야기 그 자체 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더 치중되어 있다. 저자 스스로가 말했듯이 읽으면서 어떤 감흥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본다. 일본 소설에 여지 없이 등장하는 불륜이나 죽은 여동생의 애인과 사귄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윤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신비로운 현상을 겪으며 느끼는 상황과 감정들에 더 중점을 두고 보는 것이 작품을 즐기는 재미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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