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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_최은영

by 상팔자 2024. 4. 1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지은이 최은영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6,800원

 

 

 

 

 

7개의 단편집이다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_p.19

 

희원은 영어로 에세이를 수업에서 우연한 기회로 강사와 친분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과거에 썼던 에세이를 읽게 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을 타인처럼 여기고 있었고 

솔직한 그녀의 글을 보며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희원은 생각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_p.31

 

희원은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 두려워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그녀는 희원의 글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고 했지만

희원은 그것이 그녀의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일이 계기가 되어

혹은 아주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되어 

자신의 앞일을 정하게 되는 경우가 사실 의외로 많다고 생각한다.

희원은 영어 에세이 수업을 들은 이후 강사였던 그녀의 삶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희원은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더 가보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 몫 >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당신은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나날이 길었다._p.59~60

 

해진은 정윤이 쓴 글을 읽고 그 글을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해진은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희영의 글은 문제의식이 분명하고 날카로웠으며 개성이 있었다.

해진은 희영과 같은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을 느낀다.

 

편집부에서 만난 세 사람은 서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선택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어디까지가 자기 몫인가, 나는 어디쯤에서 안주하고 있는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종종 타인과 대립하거나 동조하기도 하고

외면하거나 타협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관철한다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 담는다는 것,

글을 넘어선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각각 다른 이야기 같지만

결국 어떻게 자신의 삶을 정의하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나와 같거나 다른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 일 년 >

 

자신에게 경계를 허물어준 다희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숨김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다희의 마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_p.98

 

다희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무리를 해서라도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다희의 태도가 직장 동료로서의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지만그녀 또한 점점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된다.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_p.115

 

인턴사원이었던 다희와 정규직 삼 년 차 사원이었던 그녀의 직급의 차이만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사이는 점차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쩌면 그들의 관계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허락된 다정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고립된 차 안, 한정된 시간이 주는 특별한 분위기가

알 수 없는 사이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마치 그 시공간 속에 묻힌 듯

그 다정함이 다른 곳에서 이어지진 않는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그 시간들은 잊을 수 없는 건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기 힘들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답신 >

 

그런 너를 보며 나는 너의 세상에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구분이 생겼다는 걸,
사람의 감정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리 잡았다는 걸 알았어._p.151

 

나는 내가 유일하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조카에게 편지를 쓴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너는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언니에게 화가 났고

언니의 인생을 망친 형부를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결국 상처받은 것은 언니였고 죗값을 치르는 것은 내가 되었다.

나의 변호인은 자기 자신을 벌주려는 짓은 더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내게 스스로한테 미안한 줄 알고 살라고 했다.

나를 위해 희생해 준 언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이모에게 >

 

"희진이 네가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넌 여자애야.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널 두려워하게 하는 편이 훨씬 좋은 거야."_p.219

 

이모는 살가운 애정표현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면 이불을 살짝 들어 올려 작은 굴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건강을 위해 싸구려 주전부리는 금지하면서도 좋은 성적을 받으면

그 또한 허락해 주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게 감정이 있긴 하냐고 묻지만

이모는 내게 여전히 마음이 여리다고 말한다.

이모는 내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이모가 바라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이모가 그렇게 믿기를 바랐다.

 

 

이 단편들은 각각 다른 시기에 나왔지만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껴졌다.

같은 사람의 글이라서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사랑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다.

단편들은 여성들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의 언니, 나의 동료, 나의 조카, 나의 이모, 나의 스승, 나의 엄마.

또한 단지 여성의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녹여 현실성을 더했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나 나의 장래가 바뀌기도 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맞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잃기도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을 하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상처 주기도 한다.

정의롭지 않은 일을 숨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솔직해지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은 자신의 문제일 수도 있고 미처 깨닫지 못한 사회의 관습일 수도 있다.

 

나의 감정은 단순히 나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나와 나를 구성한 세계,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이 모든 것에 나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쓴다는 행위는 중요한 매개가 되기도 한다.

아직 인상 깊은 어떤 인연도 애틋한 어떤 일도 경험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 글은 친밀함을 느끼게 한다.

삶에 깊게 닿아 있는 느낌이고 굳이 애써 말하고 싶지 않았던 치부를 들킨 느낌이다.

그래서 좋으면서도 싫은 그런 기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꼭 필요한 기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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