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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사피엔스_유발 하라리

by 상팔자 2021.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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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지은이 유발 하라리

옮긴이 조현욱

감수 이태수

발행처 김영사

값 22,000

 

 

사피엔스 표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인류

 

 

드디어 해냈다. 이 책을 다 읽어내고야 말았어!(기특하다. 기특해)

 

 

인지혁명, 농업혁명, 인류의 통합, 과학혁명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은 그 내용도 내용이지만 586페이지(후기&옮긴이의 말 제외)에 달하는 엄청난(적어도 나에게는) 분량에 시간이 좀 걸렸지만,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그 발상이 매우 흥미로워서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워낙 내용이 많다 보니 후기도 좀 길어질 것 같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배경에는 인간의 직립보행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길인 산도가 좁아져 예정보다 여성은 이른 출산을 하게 되었고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 아이는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야 했다. 뿐만 아니라 직립보행 때문에 허리도 아프고 목도 뻣뻣해졌다. 물론, 덕분에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을 갖게 되었지만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이다.

 

다른 동물들도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인간 언어의 진화는 수다 때문이었다고 보는 이론도 있는데 동물들이 생존을 위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에 비해 인간은 전설, 신화, 신, 종교 등과 같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단순히 정보 전달 목적뿐 아니라 공유의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바로 '인지혁명'이라고 한다.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인지혁명은 집단 안의 정보를 통해 더 큰 무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신, 국가, 법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하게 하여 협력을 이끌었다.

 

고대 수렵채집인은 전염병의 영향도 덜 받았다. 농경 및 산업사회를 휩쓴 대부분의 전염병(천연두, 홍역, 결핵)은 가축이 된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농업혁명 이후부터다.

 

농사를 지을 때보다 수렵 채집 시 더 이상적인 영양소 섭취가 가능했을 뿐 아니라, 키도 더 크고 신체도 건강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게다가, 현재 사람들보다 노동 시간은 더 적으면서 기민하게 몸을 다룰 줄 알았다고 한다. 생존에 필요한 지식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뛰어났던 고대인. 게다가, 인간이 정착을 할 때마다 그 지역의 동물 종들이 대량 멸종이 발생했다고 하니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 걸까.

 

평균적인 농부는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아니, 이제 이기적이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 걸까. 농사를 지으면서 사람이 더 똑똑해졌다는 증거도 없으며 수렵채집인 보다 더욱 힘든 생활을 했다니 왜 고생을 사서 한 걸까. 물론, 식량의 총량은 나아졌으나 더 나은 식사를 할 수도 없고 여유시간조차 없어졌다. 정착 생활을 하면서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저자는 이를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농업혁명은 덫이라고.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준 무수히 많은 기계들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의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농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좀 더 편한 생활을 추구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농사를 하며 정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고 결과적으론 곡물 재배에 의존하도록 만든 것이다.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상상의 질서라는 것은 종교나 이념 같은 것을 말하며 실재하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인간의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려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기도 하고 욕망의 형태를 결정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휴가에 돈을 쓰는 이유 또한 다양성을 권하는 낭만주의와 소비지상주의가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또한 상상의 질서는 법, 돈, 신, 국가와 같이 상호 주관적이며 변화가 쉽지 않다. 

 

남성적 특질이나 여성적 특질은 대부분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회도 남성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여자로 쳐주지도 않는다. 

 

생물학적 범주에 속하는 남성/여성과 문화적 범주에 속하는 남자/여자의 구분은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18세기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스타킹에 하이힐, 긴 머리 가발을 쓰고도 남자다움의 전형이었듯이 문화적 차이가 그 특질에 반영된다. 결국에 그 사회의 남자/여자를 결정 짓는 기준 또한 그 사회의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고 그에 대한 정답 또한 없다. 이는 가변적이며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른 대안이 없을 때 순수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려는 경향은 남자가 더 크다

 

농업혁명 시대부터 부계를 중심으로 사회가 형성되었고 남성적인 것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성이 타고난 힘이 더 좋기 때문이라는 이론도 있지만,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여성이 더 강하다. 또한, 힘이 세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더 큰 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육체노동을 하층 계급이 맡게 되는 것처럼. 다른 가설은 폭력적인 경향이 남자가 더 크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특권을 통해 통해 민간사회의 통제권을 얻었듯이 말이다. 그밖에 생존전략이 달랐던 것 등의 이론이 있지만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평등을 보장하는 방법은 형편이 더 나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이외에 없다.

 

현대의 정치 질서라고 일컬어지는 평등과 자유의 가치는 서로 모순된다. 모든 개념의 가치는 완전할 수 없다. 결국에 그 가치는 인간에 의해 재정립 되거나 사회의 균형에 맞게 재단되기 마련이다. 완전한 자유도 완전한 평등도 불가능 할 수 밖에 없다. 

 

국경과 문화를 초월하는 단일 화폐 권역의 등장은 아프로아시아의 통일을 위한 기초, 결국에는 지구 전체를 단일 경제 정치 권역으로 통합하는 기초를 낳았다.

 

언어도 종교도 다르고 정치도 다르지만 금과 은을 신뢰하는 공통의 신념 덕에 세계 무역망은 존재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왜 금,은 같은 것들만 다른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보석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가치가 지금까지도 지속된다는 것은 매우흥미롭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반드시 인류의 복지가 개선된다는 증거도 없고, 가장 좋은 것이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문화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나 기생충처럼 보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적 아이디어는 퍼져 나가고 감염시킨 모든 사람을 이용한다. 

 

 신뢰는 신용을 창조했고, 신용은 현실 경제를 성장시켰으며, 성장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고 더 많은 신용을 향한 길을 열었다. 

 

인간은 부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으면서 파이를 늘려 갔다. 세상에 신용은 넘쳐났고 지구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믿음은 혁명이 되었다. 이제는 실물 거래가 아닌 가상 거래가 점차 더 많아지고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보니 돈에 대한 가치의 개념이 변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물건을 직접 보지도 않고 사고, 돈을 직접 지불하지 않고도 매매를 한다. 미래를 보고 형태가 없는 주식에 투자하고 불안을 담보로 보이지 않는 보험에 가입한다. 현재의 경제 사정으로는 구입할 수 없는 물건을 몇 개월에 나누어 구입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보이지 않는 신도 믿고 종교가 이미 하나의 거대한 신념으로 자리잡은 것만 보아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쉬이 납득이 갈만한 일도 아니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 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경제 성장에 나도 한몫하고 있다. 소비지상주의는 자본주의 경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윤리가 되었다. 이보다 쉬운 윤리가 또 어디 있을까. 모순인 것 같으면서도 덕분에 균형을 이룬 발전이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라 볼 수도 있다. 소비가 있어야만 또 생산을 하고 그래야 또 경제가 돌아가니까.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의 결과, 우리는 스스로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설계되었지만 불과 2세기 만에 우리는 소외된 개인이 되었다.

 

개인은 국가와 시장의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가족과 공동체 중심이었던 과거와 달리 개인 중심의 사회로 바뀌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더 나아졌는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이전보다 줄었지만 자살로 인한 죽음은 오히려 더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인지혁명에서 보면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 살면서 다른 동물 집단 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점점 개인의 삶이 중요시 되는 현대의 변화는 인간 사회를 더욱 약하게 만드는 결과인 걸까.

 

하지만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말이다.

 

너무나 소름 끼치고 무서운 이야기이다. 영원히 젊은 사이보그라니. 우리는 새로운 시대, 또는 인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준비가 되었든 그렇지 않든 과학혁명은 계속될 것이고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그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아직도 변화하고 있고 과거에 그랬듯이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될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공존과 상생에 있어 인류가 해야 할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과연 사피엔스가 언제까지 살아남아 어디까지 진보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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