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터스위트
지은이 수전 케인
옮긴이 정미나
펴낸 곳 (주)알에이치코리아
이 책은 제목 때문에 선택한 게 제일 큰 거 같다. 비터스위트한 맛을 좋아한다. 단 거는 꼭 쓴 커피랑 먹어줘야 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쓴 커피를 먹기 위해 달달한 디저트를 찾기도 한다.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는 내 취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에서 쓴 맛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하다. 단 맛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달콤 씁쓸함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순간적인 감정이나 사건이 아니다. 조용한 힘이자, 하나의 존재방식이며 역사가 화려한 전통이기도 하다._p.25
일평생을 고통 없이 살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살다 보면 반드시 시련과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고 그것을 버텨내는 힘이 필요하다.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자기 안에서 승화시켜 더 나은 나로 나아가는 것이 어쩌면 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도 모르겠다. 책은 그러한 고통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 그로 인해 달라지는 생의 변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랑하는 아이에게 하듯 다정한 태도로 자신에게 말을 건네보자._p71
당근과 채찍질, 인간의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경향이나 미치는 효과가 다를 수는 있지만 자책보다는 다정한 태도가 스스로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한다. 남들을 돌보듯이 자신을 돌보는 것. 우리의 신경계는 자신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거의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민은 고통을 함께 한다는 뜻이며 인간의 결속을 높이는 중요한 도구이다. 스스로에게 다정한 사람일수록 타인에게도 다정하게 대한다. 고통의 순간에 자신을 가엽게 여기고 다독거리는 것이 타인에게 또 한걸음 나아가는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맑은 음악조차 슬픈 음악보다 심리적 보상 효과가 낮다_p.89
미시간 대학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좋아하는 노래가 밝은 곡일 경우 평균적으로 곡을 듣는 횟수가 175회 가량인 데 반해 '달콤 씁쓸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800회 가깝게 듣는다고 한다. 슬픈 음악은 교감과 경외감을 고양되게 끌어내 주는데 두려움,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그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슬픈 음악은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다만 슬픔 자체만이 아닌 슬프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것. 씁쓸함과 달콤함의 어우러짐이다. 연민은 애틋함에서 비롯된다.
패자는 곧 낙오자로 인식되었다.
온라인 어원사전 Online Etymology Dictionary에 따르면 "실패가 습관화된 불행한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_p205
단순히 '손실을 입은 사람'을 의미했던 loser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졌다. 실패를 개인적인 기질의 문제로 보고 승자의 방식만이 성공을 위한 길이며 긍정적인 태도와 생각만이 옳은 것이라고 점점 받아들이게 되었다. 슬픔은 감추고 억지로라도 웃으며 기분 좋은 듯이 굴면 실제로 기분도 좋아지고 그것이 성공과도 연결된다고 믿은 것이다. 의도적으로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도록 했다. 심지어는 '노력이 필요 없는 완벽함'이라고 하여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승자처럼 보여야 하는 압박감까지 있었다. 실제로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을 해야 한다. 상실이나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모든 것이 아주 좋은 것처럼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긍정의 횡포'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을 겪으며 더욱 심해지고 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인간에겐 반드시 필요하다. 외면해서는 안 된다.
뜻밖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슬픈 와중에도 얼마나 많이 웃게 되는지를.
그 웃음은 우리 가족끼리만 통하는 말과 단단히 엮여 있다.
이제 우리는 웃으면서 아버지를 기억하지만 그 웃음의 이면 어딘가에는
희미하게 이 상황이 거짓말 같다는 느낌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 웃음소리가 점점 잦아진다._p.296
죽음 이후에 오는 감정은 단순히 슬픔뿐만이 아니라 매우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고 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 받아들이는 방식은 개인의 신념, 종교적,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드러난다. 다만 죽음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들은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과의 공감을 통해 연결된다.
애초에 모든 피조물이 신성한 빛으로 채워진 그릇이었으나
그 그릇이 깨지면서 흩어져 이제는 신성함의 파편들이 우리 주변에 흩뿌려져 있다는 것이다._p358
빛은 때론 어둠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둠 속에 가려진 빛의 파편들을 찾아가면 된다. 이 내용을 보니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자,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부정 속에는 단지 부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긍정 속에도 단지 긍정만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세계에는 선과 악이 존재하듯 인간의 세계 또한 빛과 어둠의 세계가 존재한다. 둘은 서로 상반되는 개념이지만 운명 공동체이기도 하다. 빛이 없이 어둠을 설명할 수 없으며 어둠 없이 빛이 존재할 수 없다. 거대한 우주의 섭리나 신성한 종교의 교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느 쪽도 과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 방식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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