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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홍학의 자리_정해연

by 상팔자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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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지은이 정해연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4,000원

 

 

모르는 게 약

 

 

추리소설 추천이라고 검색해서 찾아보니 많이 나오는 소설이라 읽어봤다. 와, 이 책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읽은 것이 매우 다행이었다. 편견도 한몫했겠지만 무지한 덕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거라면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접근하는 것이 가장 좋다. 나로서는 반전에 허를 찔렸고 덕분에 끝까지 흡입력 있게 읽었다. 홍학의 특성에 대해서 조금만 알고 있었더라면 어쩌면 조금은 시시했을지도 모를 이야기겠지만 마지막의 반전을 제외하고라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다.

 

45세의 교사인 준후는 호수에 시체를 유기한다. 유기한 것은 맞지만 죽인 것은 아니다. 과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다현은 준후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학생이며 유부남인 준후의 불륜 상대이기도 하다. 그런 다현이 죽고 그 죽음의 배후를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건 선생님뿐이에요."

 

 

부모도 없이 외롭게 자란 다현에게 준후는 유일한 존재였을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며 이 지독한 현실을 벗어나게 해줄 사람. 그래서 더 집착할 수밖에 없고 간절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에 비해 준후에게 다현은 일탈 정도였을 것이다. 이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혼을 하지는 않았고 설사 이혼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현과 함께 할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에게도 지독했던 현실을 잠시 잊게 해 줄 대상으로 필요했을 뿐이다. 기댈 곳이 필요했던 어린 학생을 희롱한 파렴치한 그뿐이다. 그런 그에게 내려진 죗값은 생각보다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 화가 나는 일이지만 어쩌면 그게 가장 현실적이기도 할 것 같다. 홍학의 자리는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으로부터 회복하려고 하는데에서 오는 오류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타고난 것이고 그래서 타인에게 의지하고 서로 보듬어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모든 것을 타인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자신을 잃고 얻는 자리는 온전한 자신의 몫이 될 수 없다. 준후의 아내 영주 또한 남편의 마음이 떠났음을 인정하면서도 결혼 생활에 대해 집착한다. 물론 둘 사이에 아이도 있고 이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벽증에 가까우리만큼 자신의 인생에 흠이 남지 않도록 발버둥을 친다. 결과적으로는 학생과 불륜을 저지르고 시체를 유기한 남편을 아이의 아버지로 두는 것보다는 이혼하는 편이 덜 흠집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은데도 말이다.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자신은 어떤 고난도 이겨낼 수 있음을, 그것이 스스로가 선택한 정의임을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또 한가지는 인간이 지닌 불안과 공포가 결국 사건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야 물론 이성적인 판단이 쉽지는 않겠지만 사건을 극악으로 치닫게 만든 것은 결국 자기 안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세간의 시선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두려움이 사건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버린 셈이 된다. 아마도 그런 의미에서 사제지간의 불륜이라는 소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홍학이라는 장치도.

 

 

사실이 알려지면 파멸이다.
안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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