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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보이지 않는 여자들_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by 상팔자 2022.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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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자들

지은이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옮긴이 황가한

펴낸곳 (주)웅진씽크빅

값 18,500

 

 

 

 

한 권쯤은 제대로 된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점도 돌아보고 도서관도 돌아보면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어떤 건 지극히 개인적이라 나와 무관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건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은 제목부터가 흥미로웠다. 너무나도 익숙하고 당연시 여겨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 일상의 모든(정말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일들에 대해서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하고 있어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워낙에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책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사회구조적으로 남자를 디폴트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에 주목한다. '별도 지표가 없는 이상 남성'이라는 접근 방식은 거의 모든 분야게 해당한다. 그 대표적인 것 중에 하나가 언어이다. 인간의 언어는 어쩌면 그 사람을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국적의 나라에서 남성형 통칭의 명사가 사용된다고 한다. man이라는 단어는 사람이라는 뜻을 포함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man이라는 단어는 "너무도 모호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남성을 가리키는지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지 판단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에도 우리가 의문을 가져본 적은 있으나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일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여자 화장실만 붐비는 이유이다. 얼핏 같은 면적에 여자와 남자 화장실을 설계하는 것이 공정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남자 화장실에는 소변기를 놓는 것으로 더 많은 효용을 가지지만 여자에게는 칸막이가 있는 화장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자 화장실이 더 많은 공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같은 면적을 주는 것은 결코 동등하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설계과정에서부터 여자를 소외시키는 일은 화장실뿐이 아니다, 피아노의 표준 건반, 휴대폰, 자동차의 머리 받침, 의약품의 임상실험 등에 있어서도 여자에 대한 데이터는 빠져 있다. 모두가 사용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구분을 할 생각조차 아예 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남자가 요직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고 여자는 기술에 무지하다는 고정관념도 한 몫한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전용 제품에서조차 데이터 공백이 존재한다.  

 

남자는 평생 경험할 일이 없는 무언가다. 그런데 뭔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그것의 필요성을 납득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_p.220
어쩌면 젠더 데이터 공백의 관점에서 가장 짜증 나는 일은 여자들이 훨씬 많이 앓는 병에서조차 동물시험에 암컷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일 것이다._p.258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여자의 무급 노동 시간이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연구에 의하면 여자들은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가계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무급 노동을 한다고 한다.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자는 가사 노동의 61%를 평균적으로 담당한다고 한다. 아이의 돌봄에 도움을 주는 회사들도 있지만 그런 회사는 극히 드물다. 평균적으로 남자들의 연봉이 여자들에 비해 높다 보니 육아를 하게 되는 경우 자연스레 여자가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무급 노동에 대한 데이터 공백은 경제적으로도 매우 큰 손실이다. 미국에서 GDP의 2%를 돌봄 산업에 투자하면 1300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한다. 

 

 싱글 남성과 싱글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비슷했다. 그런데 여자가 남자와 동거하기 시작하자 "여자의 가사 노동 시간은 증가하고 남자의 가사 노동 시간은 감소했다. 취업 여부와는 관계가 없었다." _p.105

 

그리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 2013년 국제연합(UN)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살인자의 96%는 남자라고 한다. 대중교통이나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성추행, 가정 폭력 심지어는 여성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정치적 괴롭힘까지. 국제의원연맹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국회의원의 66%는 지속적으로 남성 의원들의 여성 혐오적 발언에 시달린다고 한다. 여성 정치인들이 많아야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텐데 그 진입장벽조차 뚫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다. 

 

현 제도는 남자를 선출하도록 기울어져 있다. 그 말은 현 제도가 세계 지도자들의 자리에 젠더 데이터 공백을 영속화해서 그로 인한 모든 부정적인 영향을 인류의 반에게 미치게끔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다._p.350

 

똑같이 목소리를 높여도 여자가 말하면 시끄러운 것이 되고 남자가 말하면 자기주장이 있는 사람이 된다. 오래된 관습과 젠더 데이터 공백으로 인해 여자들이 설 자리가 위태로운 것은 사실이나 개선의 여지 또한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차별과 괴롭힘을 견디기 쉽지 않겠지만 여자의 사회 진출이 인류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실제로 여자의 유연한 사고방식이 어려운 문제를 의외로 쉽게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착취와 무시보다는 협력과 존중이 더 필요할 것이다. 동등한 권리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동등한 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 여자와 남자는 염색체에서부터 엄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설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의례적으로 또는 관습상 그렇게 해 왔던 일이라고 할지라도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서 조금 일이 복잡해지더라도 돌아갈 필요가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에서조차 우리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여성의 젠더 데이터 공백은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는 인식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는 가지고 있는 걸 뺏긴다는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진짜 자신의 것인지 맞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를 내어주고 둘을 얻을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여성성이라는 수수께끼"로 돌아가보면 해답은 처음부터 우리 눈앞에 있었다.
여자들에게 물어보기만 했으면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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