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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백조와 박쥐_히가시노 게이고

by 상팔자 2022.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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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와 박쥐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양윤옥
펴낸곳 (주)현대문학
값 18,000원

진실을 위해 혹은 진심을 위해



추리소설을 읽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나오는 걸로 하나 골랐는데 생각보단 아쉬운 점이 더 많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의 대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며 그의 역작이라고 평가 받는다길래 좀 기대를 했는데 용의자 X의 헌신의 구성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겹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술술 읽히는 소설이기는 했다. 사건에 대한 긴장감이나 몰입도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구성하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한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건 자체보다는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살인사건을 저지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촛점이 맞춰진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범죄자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도덕적 관념은 차치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심리를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좀 있었다.

소설은 시라이시 겐스케라는 변호사의 사망 사건에서 시작한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구라키 다쓰로를 체포하고 그는 순순히 자백한다. 그의 살해 동기에는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난 33년 전의 살인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피해자의 딸인 시라이시 미레이와 가해자의 아들 구라키 가즈마는 구라키 다쓰로의 자백에 대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아버지와 다르다는 점에서 의문을 품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적과 다름없는 두 사람은 사건의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되고 그로인해 숨겨져 있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이 소설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얘기 같아요'_p421


(스포있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백조와 박쥐는 사건의 담당 형사 중 하나인 나카마치가 피해자의 딸과 가해자의 아들이 한 팀이 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며 하는 말이다. 두 사람이 구라키 다쓰로의 자백을 믿지 못하고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서로 함께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그런 공감을 넘어서 이성적으로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은 사실 좀 이해가가지 않는 부분이기는 하다. 굳이 소설에 필요한가? 싶기도 하고 그런 감정이 없었다면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없었다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마찬가지로 구라키 다쓰로가 아무리 과거의 과오가 있다고는 하나 자신의 아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에서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도 없는 오리에 가족을 위해 죄를 뒤집어 쓴다는 것은 좀 납득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일수록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싶은 마음이 앞서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라이시 겐스케가 저지른 살인 사건에 대해서도 너무 터무니없다고 느껴지는 것이 아무리 젊은 혈기에 저지른 우발적인 실수라고는 하나 가끔 찾아뵙는 할머니에 대한 애착에서 나온 분노라고 하기엔 좀 과하지 않나 싶었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도 아니고 평소에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실수도 아니고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것도 그렇지만 애초에 법대생이라면 무의미하게 하이타니를 찾아가서 추궁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찾지 않았을까 싶다. 하이타니가 순순히 돈을 내어 줄 인물이 아닌 것은 누가 봐도 알만한 사실인데 말이다. 게다가 피해자를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묘사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기에 구라키 다쓰로조차 살인에 동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도 유망한 젊은 법대생과 파렴치한 사기꾼 표면적으로 보면 누구라도 전자를 선택하겠지만 법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는 관점에서는 섣부른 판단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에 대한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또, 한가지 불필요하다고 느껴졌던 대목은 '이 세상 여자들은 모두 배우'라고 하는 부분이다. 형사라면 오히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알아채기 마련이기도 하고 아무리 태연한척 하려고 노력했다고는 하나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까지 모른 척 할 수가 있을까. 이건 형사가 감이 없거나 오리에가 철면피라는 이야기인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자신의 아들과 죽어버릴 생각까지했던 사람이 감정의 동요가 없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여자한테 호되게 당한 경험이라도 있는 것인가, 왜 여자의 모습을 저렇게 표현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단지,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습을 꾸며낼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거짓말이라면 구라키 다쓰로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을텐데.
표면적으로는 공소시효 폐지, 국민참여재판, 언론의 무분별한 취재 등의 사회 문제를 화두로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그런 사회적 논의는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사건을 둘러싼 인물의 심리와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고 상호관계성에 더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들긴 했지만 그래도 흡입력 있게 끝까지 끌고 가는 소설이었다.

"그때도 진범을 알면서도 도망치게 해주셨잖아요. 그게 애초의 잘못이에요. 거기서부터 모든 톱니바퀴가 어긋나버렸어요. 그렇죠?"_p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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