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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분노의 포도_존 스타인벡

by 상팔자 2022.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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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지은이 존 스타인벡

옮긴이 김유순

펴낸곳 도서출판 육문사

 

목구멍이 포도청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 될 만큼 오래된 책이다.  몇 페이지 읽다가 지루해서 포기했던 책 중에 하나였다. 무려 600 페이지가 넘는 분량도 한 몫했다. 그런데 책을 사기 전에 우선 집에 있는 책을 둘러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도전해봤다. 진짜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 포기한 이유를 알만한 지독함이 있다. 이야기 자체가 주는 처절함도 있지만 글이 주는 지루함도 있다. 지루하다는 것이 나쁜 의미가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손쉬운 정보 습득, 빠른 전개, 자극적인 소재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런 지난(持難)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긴 시간이 필요했고 중간중간 찾아오는 졸음도 참아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고 싶은 욕심은 들었다. 대체 그놈의 포도밭은 언제쯤 만나게 되나 하는 심정으로 읽었지만 결국에 그들은 포도 한 송이 만져보지도 못했다.

 

 

이주 노동자인 죠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인간을 대신한 농촌의 기계화로 인해 살던 곳에서 쫓겨나 말 그대로 먹고살기 위해 길을 떠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온 가족이 모든 살림을 트럭 한 대에 모두 싣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들이 원한 것은 쉴 수 있는 집과 살 수 있는 먹을 것 그뿐이었는데 그들을 기다린 건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와 공간뿐이었다. 

오클라호마의 대지는 이미 소설의 불행을 암시하듯 척박하다. 잡초는 무성하고 옥수수 잎사귀들은 모두 고개를 꺾고 말았다. 태양마저 붉어 날이 새도 낮이 오지 않고 공기에 섞여 든 흙먼지는 사방을 덮었다. 교도소에서 막 출소해 집으로 돌아온 톰을 맞이한 건 고향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가족이었다. 트렉터는 수 십 가구의 삶의 터전을 대신했고 트렉터 운전사도 자신의 가족을 위해 하루 3달러의 일당이 필요했다.

 

땅은 쇠 밑에서 열매를 맺고 쇠 밑에서 서서히 죽어갔다._P50

 

 

소설의 시대처럼 밥을 굶는 시대는 지났지만 지금도 새로운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무인 상점이나 무인 기계가 점점 늘어나 인간을 대신하고 있고 단순한 노동 업무는 기계의 몫이 되었다. 머지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 과거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지만 결코 과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일거리가 넘쳐나고 품삯도 많이 준다는 광고를 보고 꿈의 땅이라고 생각하여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그들의 기나긴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기대했던 캘리포니아에서의 삶도 상상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애썼고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앞으로 여러 가지 생활을 하게 될 거다. 하지만 그것이 닥친다 해도 한 가지씩밖에 닥치지 않아.
너는 젊으니까 장래를 바라보고 살아야겠지. 하지만 내게는 생활이란 지나가는 이 도로와 같은 거야.
얼마나 빨리 모두가 좀 더 많은 돼지고기를 먹게 될까 하고 생각하는 게 내 생활이야."_p165

 

고된 노동과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하루 벌어들이는 돈은 점점 줄어갔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나마도 없어지는 일자리다. 폭우는 그들의 임시거처조차 휩쓸어 갔고 당장의 먹을 것도 구할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미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지만 죠드 가족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간다. 

 

파국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공포가 분노로 바뀔 수 있는 한 파국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_p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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