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지은이 양귀자
펴낸곳 도서출판 쓰다
값 15,000원
(소설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삶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절망의 텍스트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매 챕터마다 주인공 강민주의 노트가 등장한다. 그 기록을 통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한 원인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나름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매사 자신만만하고 무엇하나 아쉬울 것 없이 사는 그녀는 스스로 하늘의 대리인임을 자처한다. 자신은 절망의 텍스트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평생 자신의 외모를 가꾸며 살아가도록 태어나지 않고 평생 자신의 두뇌를 의지하며 살도록 태어난 것을 나는 하늘에 감사한다.
여성이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예나 지금이나 말들이 많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현실을 반영한 경우가 대부분인데도 그렇다. 이 소설이 벌써 30년 가까이 됐음에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회자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소설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는 것일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고 좋아졌고 여성 상위 시대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적 차별 위에 있고 뿌리 깊은 남성 우위의 체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인기 남성 스타 납치 사건의 주범이 20대 후반의 여성이라는 설정은 매우 파격적이며 일면 통쾌한 부분이 있다. 물론 납치당한 인물로서는 억울할 따름이겠지만 말이다. 인간 실현을 위한 여성 문제 상담소에서 일하는 강민주는 그곳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대학원생인 그녀는 고통에 대응하는 여성 특유의 폐쇄적인 정신 분석을 논문의 주제로 삼고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상담소에서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희생이라니, 고통의 인내는 미덕이 아니다.
그것이 미덕이라는 주장은 기득권을 쥔 자들의 염치없는 요구일뿐이다._p72
힘 있고 권력 있는 자들이 희생과 인내를 감수한 적이 과연 있었던가_p73
강민주 본인도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 어머니 덕분에 지금은 거액의 유산을 가졌고 똑똑하며 남성을 수하로 두는 사람이 되었지만 뿌리 깊은 남성 혐오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백승하 납치 사건은 강자에게 짓밟히는 약자를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결과만을 두고 보면 이 납치는 실패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은 결국 백승하라는 인물에 빠져들고 판단력이 흐려져 경찰에게 사건 단서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믿었던 황남기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두 남자 모두 그녀를 탓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생을 수족이 되어 헌신하던 충복인 황남기뿐 아니라 납치의 당사자인 백승하조차 그녀의 편에 선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떠들썩했던 납치사건은 시간이 지나고 잊히겠지만 소수의 몇몇 사람에게는 인생을 통째로 바꿀 만큼 큰 변화의 시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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