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2 한국
지은이 조원재
펴낸곳 (주)백도씨
값 18,500원
방구석 미술관 전편을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있어서 한국 편 또한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물론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책이었으나 한국 편에서는 전에 없는 갑갑함이 느껴졌다. 내용의 구성 때문이 아니라 시대가 주는 설움이 고스란히 느껴져 미술책인지 현대사 책인지 싶은 생각으로 읽었다. 보태어 예술가에게 시련이란 필수 조건인가 할 정도로 아픔이 없이는 탄생할 수 없는 심오한 예술의 세계에 대해 경이로움이 들기도 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주어진 조건조차 예술의 재료가 되는 건가, 너무 평화로우면 역작은 탄생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하여간 한국의 예술가들은 참 하나같이 서럽고 애달프다.
아무래도 이런 모순된 감정을 그림에 일관되게 담기 위해서는 화가 자신의 삶이 '비참한 고난 속 희망찬 분투'여야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_p.38
역동적인 소를 그린 작가로 유명한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외롭게 고군분투하다 자신이 무능하다고 여겨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죽기 전까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비운의 화가가 그린 소는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았을 것을.
시대의 완고한 벽을 넘지도 부수지도 못한 채, 가슴에 피멍이 든 선구자는 작별인사를 남기며 자꾸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합니다_p.88
조선에 서양화를 최조로 소개한 선구자로, 최초의 워킹맘으로, 최초로 유화 개인전을 연 예술가로 누구보다 앞서가다 보니 세월의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야만 했던 비운의 주인공. 자신이 처한 역경을 노력으로 극복하고자 했으나 너무나 큰 이상과 현실의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신여성 나혜석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길.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보지 않고, 흔한 것을 흔하게 보지 않길.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으로 깨끗하게 보면 평범한 것도 비범해지고, 흔한 것도 특별해지는 마법 같은 일상을 살길._p.216
한편, 그림 그리는 것을 일생의 수행으로 알고 평생을 수도자처럼 산 장욱진의 그림은 심플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림들을 그렸다. 욕심을 버리고 나니 주변을 더 세심하게 살피게 되고 우리가 익숙해서 지나치기 쉬운 것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그림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자유롭고 천진함이 묻어나는 그의 작품은 깊은 사색 끝에 자신 내면에 자리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론 버림으로써 진정 얻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세계의 역사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_p.345
파괴적 혁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조금은 과격하지만 창조적인 예술의 선구자 백남준은 우리의 사고 체계를 끄집어내서 마구 뒤섞은 듯한 느낌이다. 음악의 틀도 미술의 틀도 깨부수고 말 그대로 아예 새로운 룰을 만든 사람. 같은 생각을 가진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 그 덕을 봤다고 하는데 백남준이 그만한 깜냥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랬기에 비디오 아트라는 최초의 예술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첨단 기술인 통신으로 예술을 하면서 한국의 무속을 연결지은 것도 인상적이다. 전 세계 인류와 소통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인류의 화합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굿판을 벌인다는 발상 자체를 그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좀 더 고전적인 역사적 인물들이 나오지 않을까 했었는데 현대미술을 택한 것이 의외이긴 했다. 그러나, 펼쳐보니 알게 모르게 익숙한 이름과 작품들이 있었고 예술에 문외한인 나 정도가 알만한 정도라면 정말 새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들이며 현대미술의 역사에도 남는 소중한 작품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편에도 그러했듯이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잘 알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덕분에 한껏 예술적 소양이 조금은 더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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