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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악의_히가시노 게이고

by 상팔자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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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惡意)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양윤옥

펴낸곳 (주)현대문학

 

 

 

 

악의. 살해 동기에 있어서 이보다 더 명확한 것이 있을까? 이 소설은 살인 사건의 범인을 일찌감치 밝혀두고 시작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왜 죽였는지가 더 중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미 제목에서 드러나 있듯이 소설에서 말하는 살인의 동기는 단순한 악의에 가깝다.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나 실제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살인범에게는 저마다의 살해 동기가 있다. 단지 살인이 좋아서 즐기는 연쇄 살인범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보통은 원한이나 금전적인 문제가 대부분이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는 행위 자체는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소설의 범인은 평소 그렇게 폭력적인 성향의 사람이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살해당한 사람은 자신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죽이고 싶도록 싫었던 것일까?

 

소설은 범인인 노노구치 오사무와 형사인 가가의 기록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같은 사건을 두고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사건의 진행 과정을 다룬 이야기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범인은 밝혀졌고 사건의 범인이 자백까지 했지만 가가 형사는 뭔가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도무지 살해 동기라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노구치 오사무의 과거를 탐문하던 가가는 과거 자신이 교사로 있었던 시절 담당 학생이 겪었던 왕따 사건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다. 가가를 더 이상 교단에 설 수 없게 만들었던 그 사건.

 

"마에노는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죽을 생각이었다는 거예요. 야마오카에게 왜 그렇게 마에노를 괴롭혔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대요. 왜 마음에 들지 않았느냐고 재우쳐 물어봤는데, 딱히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아무튼 마음에 안든다, 그 말만 자꾸 하더군요."_p316

 

범인은 총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신체를 훼손한 물리적 살인과 고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명예 살인이다. 어쩌면 첫 번째 살인은 두 번째 살인을 위한 도구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못마땅한 삶의 돌파구를 엉뚱한 데에서 찾았던 거나 다름없다. 그만한 정성을 기울일 노력을 다른 데에 썼다면 더 좋은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 우리는 남과 비교하여 불행해진다고 한다.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그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애초에 그게 가능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을 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이유 없는 악의에 가득 차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혹여 범행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도 결코 평탄한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앓던 이가 빠져나간 듯 악의를 품던 대상이 사라졌다 해도 오사무의 삶은 그 악의 자체로 버텨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위해 오로지 달려온 삶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거나 아니면 또 다른 악의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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