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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무진기행_김승옥

by 상팔자 2021.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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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지은이 김승옥
펴낸곳 문학동네
값 13,000원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1964년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 소설이며 한국 문학계에서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가 뿜에서놓은 입김과 같았다.

 
무진은 주인공인 윤희중이 서울에서의 실패로부터 도망해야 할 때거나 새 출발이 필요할 때 찾았던 그의 고향이다. 안개가 가득한 무진이기에 도망치기 좋은 곳이지 아니었을까. 인간은 누구가 살면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안정적이지만 지루한 삶을 살 것인가 불안정하지만 흥미진진한 삶을 살 것인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일탈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빽 좋고 돈 많은 과부를 물어' 팔자가 폈다고 하는 주인공 또한 그렇다. 일상에서 벗어난 그는 무진에서 하인숙과의 연애로 일탈을 꿈꾼다. 겉으로 보기에는 흔히 말하는 출세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에는 그 저열한 욕망이 들끓고 있는 사람. 전쟁에서 도망치고 차인 여자에게서 도망치고 새 출발을 위해 도망치다 결국엔 자신이 정한 한정된 책임만을 지기로 한 비겁한 사람. 아니, 비겁하다기에는 잠시의 일탈에서 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겠지만 인숙의 입장에서는 비겁하다 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의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 그럴싸하지만 별 볼일 없는 남자가 무진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무책임하게 떠나는 것이 전부인 내용이다. 그러나 문장의 표현력이 뛰어나고 매우 감각적이라 그 추함을 마치 무진의 안개처럼 가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실은 누구나 인간에게는 그런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있을 것이다. 다들 대놓고 드러내진 않을 뿐. 혹여라도 드러나면 사회적 지위니 체면이니 해가면서 자기변명하기에 바쁠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언가 쓸쓸해 보이는 일면 가엽고 추하지만 공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실상이 아닐까 싶다. 때론 감추어져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있다. 무진의 안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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