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지은이 조지오웰
옮긴이 도정일
펴낸곳 (주)민음사
값 7,000원
최근에 읽은 고전 중에는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다. <1984>를 매우 힘들게 읽은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의외이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 작품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런 정치·역사적 배경을 모르더라도 쉽게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마치, 우화와 같은 느낌으로 동물들이 나와 사건을 일으키고 다소 허황된 얘기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인간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소설은 존스가 운영하는 농장의 동물들이 모여 돼지들의 주도로 혁명을 일으키고 주인인 존스 부부를 내쫓고 이후 동물들 사이에 벌어지는 권력 싸움과 그로 인해 변화되는 동물농장의 모습을 인간 세계에 빗대어 그리고 있다.
인간은 생산하지 않으면서 소비하는 유일한 동물입니다. 그는 젖을 생산하지도 않고 달걀을 낳지도 않으며 힘이 부쳐 쟁기도 끌지 못하고 토끼를 잡을 만큼 빨리 뛰지도 못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동물의 주인입니다._p11
소설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현재 식량부족과 환경파괴의 주범이 된 인간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인간이 생산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고 계속해서 늘어난 인구는 점점 소비를 늘려갈 뿐이다. 단순히 먹고살기 위함이 아닌 그 이상의 착취와 불필요한 희생까지 요구하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동물들의 권리를 찾고 '동물주의'를 통해 인간을 위해서가 아닌 동물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물들의 우두머리인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의 권력 다툼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은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교묘한 선동과 위협으로 동물들을 이전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렇게 혐오하던 인간이 하던 짓을 따라 하고 인간과 거래를 하여 돼지들만 특별 취급하여 자신들만의 이득을 취하려 한다. 인간이 했던 착취 못지않게 혹은 더 심할 정도로 돼지들은 다른 동물들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물론,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두 발로 서서 걷기까지 하는 모습은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동물들의 우두머리가 돼지라는 점이다. 그들은 글자를 익히고 온갖 술수를 부리는 등 매우 똑똑한 종으로 분류되는데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쉽게 사육되고 또 그만큼 도살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처럼 인간과 친근하여 반려로 키우는 동물이 아닌 거의 식량으로 취급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소설에서 만큼의 차이는 아니더라도 실제로 동물 사이에도 계급이 존재하긴 한다. 더 쉽게 잡아먹히고 착취당하는 종과 인간의 보호 아래 그나마 편한 생활을 영위하는 종. 동물이 인간의 선택을 받게 되는 데에는 힘이나 지능보다는 외모나 온순한 성격 등이 더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자유로웠던 동물농장을 뒤로하고 마차를 끌며 인간에게 각설탕을 받아먹는 길을 선택한 말 '몰리'가 어쩌면 현실적으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현재의 사회적 위치나 역할에 따라 지배 계급에 감정이입을 하는 사람도 있고 노동 계급에 감정 이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작 사회의 일원으로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을 한 발자국 멀리서 보면 보이는 것도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사회 시스템에 휘둘리기도 하고 속는지도 모르고 속기도 한다. 소설 밖에서는 노동 계급의 동물들이 가엽고 답답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그게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선동되지 않으려면 독재자에게 다시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두 눈 똑바로 뜨고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 지금 살고 있다고 해서 권력을 장악하려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패한 권력은 과거보다 더 교묘하게 민중을 속이려 하고 다수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일만 하다가 죽지 않으려면 삶이 고달프더라도 주위를 둘러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그릇된 신념에 그것이 담기면 우린 또 어떤 희생을 치러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볼셰비키 혁명 :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러시아에서 일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
레닌이 지도하는 볼셰비키가 주동이 되어 페테르부르크에서 무장봉기하여 전국에 파급되었다.
그 결과 케렌스키의 임시 정권이 무너지고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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