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호텔의 유령
지은이 강화길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4,000원
이런 식의 전개는 새로웠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사이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상황들의 반복. 이야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흡입력 있게 빨아들인다. 소설가인 주인공이 이야기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기이한 상황들과 과거에 대불호텔에서 벌어졌다고 하는 이야기는 어딘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니꼴라 유치원'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찾아오는 과거의 기억들과 악의(惡意)들. 이는 과거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셜리 잭슨이 겪는 고통과 닮아있다. '대불호텔'에 숙박하던 손님으로 그곳에서의 경험을 소설로 쓰려고 했던 셜리 잭슨. 이 소설은 인간이 지닌 공간의 공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람이 지나는 모든 공간에는 그 사람의 흔적이 쌓인다. 그 사람들의 원한이 쌓인 공간 중의 하나가 대불호텔이다. 인천이라는 공간적 배경과 전후라는 시간적 배경이 어우러져 원한에 대한 개연성을 더욱 높여준다. 한국에서 살지만 외국인이라 차별받았던 '뢰이한',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졌지만 선교사 아버지를 두지 못해 아메리칸드림을 이루지 못한 '고연주', 좌익이라는 이유로 가족이 몰살당하고 당숙모의 집에 얹혀살던 '지영현'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원한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의 말미에는 또 다른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악의'로 대변되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소설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나는 살아 있는 것들은 무서워하지 않아요. 살아 있는 것들이 남긴 것을 두려워하죠.
인간에게는 누구나 두려움이 있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욱 깊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인정욕구가 거부당하거나 무시되었을 때 분노하거나 우울감에 빠진다. 소설은 그런 감정의 어두운 면을 파고들어 '악의'를 끄집어낸다. 공간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지닌 고유의 습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냄새와, 습도, 공기의 흐름, 건물이 내는 소리들은 모두 그것이 지닌 시간과 그곳을 거친 사람의 흔적이 묻어 특유의 성질을 갖게 마련이다. 어쩌면 대불호텔은 변혁의 시기에 맞물려 그곳을 관통했던 사람들의 설움이 쌓인 곳이 아닐까 싶다. 시대의 불운, 태생의 한계 등의 이유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사람들의 한이 쌓여 공포의 공간을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포의 이면에는 인간의 나약함이 있다.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의 어쩔 수 없음이 나쁜 의도를 만나게 되면 공포에 안착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의외로 아주 작은 선의가 상황을 개선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억울한 자매들을 비롯한 수많은 원혼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원한을 풀어주었던 수령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상에게는 선해지기 마련이다.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장_최인훈 (0) | 2022.03.16 |
---|---|
대도시의 사랑법_박상영 (0) | 2022.03.08 |
좀도둑 가족_고레에다 히로카즈 (0) | 2022.03.05 |
가스라이팅_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0) | 2022.03.02 |
푸른 수염_아멜리 노통브 (0) | 2022.02.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