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지은이 서머싯 몸
옮긴이 송무
펴낸곳 (주)민음사
값 9,000원
달과 6펜스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상징하는 단어라고 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상인 달과 같은 둥근 모양이지만 영국의 가장 낮은 단위의 화폐로 유통되던 은화 6펜스. 런던의 증권 거래인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린다며 집을 나간 소설의 설정은 바로 이런 달과 6펜스가 상징하는 서로 다른 세계로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책 표지에 핵심적인 내용이 다 스포가 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빼앗겼다는 것이다. 오래된 고전이라고는 해도 나처럼 모르고 읽는 사람에게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아마도 훌륭한 시민,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 정직한 중개인일 수는 있겠지만, 그에게 시간을 낭비할 이유는 없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한 첫인상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평범하다 못해 따분해 보이는 그에게 예술적 감성이나 괴팍함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던 그가 어떻게 갑자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예술의 길을 택할 수 있었을까. 사람에게는 누구나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있다. 어쩌면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단지 그림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의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는 진작부터 그런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에게는 배신과 다름없는 일이겠지만 그림 외에 찰스에게 의미 있는 일이란 없었다. 또한, 세상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트릭랜드 부인과 달리 찰스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렇게도 다른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습관이 오래되면 감각도 무뎌지게 마련이지만 그러기 전까지 작가는 자신의 작가적 본능이 인간성의 기이한 특성들에 너무 몰두하는 나머지 때로 도덕적 의식까지 마비됨을 깨닫고 당혹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때가 있다. 악을 관조하면서 예술적 만족감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고 약간 놀라기도 한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질문이 있다. 예술가의 작품을 평가할 때 그의 인격적 모순점에 대해 함께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아동 성범죄를 저지른 감독의 영화를 단지, 영화적 시선에서만 보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작품은 작품으로만 봐야 하고 사람에게 죄가 있다면 죗값은 따로 치르는 게 맞긴 하지만 그 업적으로 인해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은 경우라면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 우리는 천재적인 예술가들에게는 성격이 괴팍하고 별스런 데가 있는 것을 묵인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으레 예술하는 사람들은 남다른 데가 있어서 이해를 해줘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있는 듯도 하다. 인간은 무언가 한 가지에 몰두하게 되면 약간 현실성을 잊게 된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어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곳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찰스 스트릭랜드 또한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는커녕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조롱한다. 여자 따위는 필요 없다던 양반이 남의 부인과는 불륜을 저지르는 모순 덩어리의 인간이다. 그의 그림 또한 사후에 인정을 받게 되지만 훌륭한 화가라고 치켜세우기에는 찝찝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보다는 현실의 벽에 수없이 부딪히면서도 자신의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관철시키는 사람의 이야기일 것이다. 형편없는 남자임에 틀림없는 찰스 스트릭랜드 일지도 모르지만 화가라는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에는 거침이 없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돈만 생기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당장 일을 때려치울 정도로 오로지 그림 하나만을 보고 죽는 순간까지 몰두한다. 전도유망한 의사였던 아브라함 또한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기 위해 어느 날 갑자기 의사를 그만두고 정부 관리로 들어간다. 그 또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결정에 후회가 없으며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삶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누자면 적당히 현실에 타협해서 사는 부류와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인 안목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꿈을 좇는 사람들이 무모하고 철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 높은 이상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에겐 물질적인 풍요로 이루어진 삶의 여유가 크게 의미가 없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고 스스로의 선택을 확신할 수 있는 그 용기야 말로 타고난 천성이 아닐까 싶다. 다들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론 열망하고 시기 질투하고 깎아내리다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믿고 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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