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 리뷰

작별하지 않는다_한강

by 상팔자 2022. 4. 28.
반응형

작별하지 않는다
지은이 한강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4,000원

나, 죄 어수다


솔직히 말하자면 피하고 싶었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읽고 나면 무언가 굉장 먹먹해지고 무거워지는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했었다.
광주 다음에 또다시 제주로 이어지는 건

너무 심리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지나고 보면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가 보다.
지나간 과거의 순간이 계속 현재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도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이야기가
필요한 순간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_p12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는 학살을 다룬 소설을 쓴 이후로

검은 나무가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경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작업을 했던 친구 인선에게

그 꿈에 대해 이야기하며 꿈속의 장면을 실현하기로

약속하지만 그 기회는 좀처럼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 와달라는 인선의 전화를 받는다.

영화일을 그만두고 목공소를 하던 인선은 다쳐서
갈 수 없는 자신을 대신해 제주의 집에 있는 새를

돌봐달라고 부탁한다.
오늘 당장 가지 않으면 새가 죽을 수도 있다며

단호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이야기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 제주에는 폭설이 내려
친구의 집으로 가는 길은 험하기만 하다.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 히영하게 묻엉으네······_p86


인선은 자신의 어머니가 겪은 일을 경하에게

하나씩 들려준다. 제주의 방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절절한 심정이

전해지는 듯도 하다.

[소년이 온다]에서도 느꼈지만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슴을 울리는 깊은 슬픔이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설에 다 담을 수 없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과
사연이 있었을까. 또 그것을 재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의 고통을 가져오게 하는 것일까.
간밤에 내린 눈이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덮어

얼어있었던 기억을 어머니는 잊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을 찾겠다고 얼어 있는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던 어린 날의 어머니는

눈이 오는 날마다 그날을 떠올린다.

 

내가 죄지은 것도 어신디 무사 눈이 흐리곡 침이 말라신디 모르주.
몰른다곡 내보내야 하는 것을 알멍도 이상하게 대답을 하고 싶었져.
꼭 내가 그 사름을 기다렸던 것추룩.
누게가 이걸 물어봐주기만 기다리멍 십오 년을 살았던 것추룩.


그날의 두려움과 공포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낯선 이의 방문이 달갑지 않을 텐데도
어느새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도 없고 기억하지 않으려 해도

떠오르는 것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기록해야 하고 그날에 대해서 끊임없이

뒤돌아봐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이대로 작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른 학살의 이야기로 괴로워하는 경하를
또 다른 학살의 참상을 들어줄 마지막 청자로 선택한

인선이 너무 가혹한 거 아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경하이기 때문에 인선이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 여름이 코앞인 시기인데도 소설을 읽다 보면
쌓인 눈에 젖어버린 시린 발이 느껴지는 듯해 몸을 움츠리게 된다.
마지막 심지에서 불꽃을 일으킨 경하처럼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가녀린 날갯짓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