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행적
지은이 니코스 카잔자키스
옮긴이 유재원
펴낸곳 (주)문학과지성사
값 13,000원
![](https://blog.kakaocdn.net/dn/bHnoQ4/btroHa7p1yy/pubP9sNNC35cVGpSl4kO00/img.png)
크레타 섬으로 향하려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낯선 이가 있다. 비웃는 듯한, 슬프고 불안하면서도 불타는 듯한 눈초리를 가진 그는 내가 찾던 사람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든다. 자신을 자유인이라고 말하는 그는 알렉시스 조르바. 길들여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
매 장마다 생소한 단어들과 이름들이 나열되어 초반에는 약간 몰입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주석의 벽을 넘어서면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가 춤추며 맞이하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어의 몰이해에서 오는 무지도 아쉽지만 작은 장벽으로 인해 더 큰 재미를 놓치는 것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란 없다고요. 분명히 말씀드리죠. 여자들은 병약한 존재고 불평꾼이란 말이오. 만일 사랑한다고,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당장 울음보를 터뜨려요
조르바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뭐, 과거의 이야기고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일단은 소설이 말하는 더 큰 주제에 집중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불어넣은 숨이 나비로 하여금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쪼그라진 채 미숙아로 나오도록 강요한 것이다. 그 나비는 때가 차기 전에 나와서는 절망적으로 몸부림치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내 손 안에서 죽어갔다.
어느 날 아침, 막 안쪽의 영혼이 벽을 뚫고 나오려던 고치 속의 나비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죽음을 재촉했던 일은 '나'에게 양심의 가책으로 남아있다. '나'의 조급함이 나비를 죽게 했고 모든 일에는 정해진 법칙이 있음을 깨닫는다. 제대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조르바가 느끼고 있는 고통을 부러워하며
'슬플 때는 진심에서 흘러나오는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고,
기쁠 때는 그 기쁨을 아주 가는 추상적인 체를 거르느라 망치지 않는,
뜨거운 피와 단단한 뼈를 가진 인간,
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과부의 죽음에 대해(정확히는 살인사건이지만) 필연성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현실세계에서 도망치는 '나'와는 달리 조르바는 진심으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한다. 조르바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하나의 부속품처럼 여기는 것은 아쉽지만)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매우 솔직하고 본능에 충실하다. '나'는 글쓰기에 몰두하며 자아실현의 욕구를 채우려고 하지만 현실은 외면한다. 그에 반해 조르바는 삶을 자신의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인 '나'와 현실적이지만 매우 자유로운 영혼인 조르바의 삶에 대한 태도는 과부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모든 것이 우리가 바랐던 것과는 정반대가 되었을 때, 우리의 영혼이 끈기와 그럴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우리가 느끼는 기쁨은 오히려 엄청나다.
전 재산을 잃고 빈털터리가 된 '나'는 오히려 자유롭다고 말한다. 얼핏 보면 처음 만난 낯선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처럼 보이는데 자기 암시에 가까운 행복 회로를 돌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바닷가에서 조르바와의 생활이 행복했다고 추억한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어찌 보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착도 소유도 없어 자유롭고 책임질 것이 없는 얽매이지 않은 삶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나'라는 인물이 가진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일군 것들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르바처럼 자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살고 싶은 이상과 달리 현실에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거나 섣부르게 한 무모한 선택을 후회하거나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이상에 빠져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자유가 주는 행복보다 구속이 주는 안전함을 추구할 때가 더 많기도 하다. 자유로운 삶의 추구가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목표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난 평생 하고, 또 하고, 또 했지만 결국 한 일은 별 거 없수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
잘 있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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