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도하
지은이 김훈
펴낸곳 (주)문학동네
값 11,000원
옛 고조선 나루터에서 봉두난발의 백수광부가 물에 빠져 죽고, 나루터의 사공의 아내 여옥이 그 미치광이의 죽음을 울면서 노래했다. 나의 글은 강의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강의 이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대가요인 공무도하가는 떠나보낸 임을 그리는 슬픔을 담고 있다. 소설 공무도하는 해망이라는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들과 그에 얽힌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이야기는 물이 있는 곳에서 막을 수 없는 죽음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기자인 문정수는 해망에서 군 복무를 한 경험이 있으며 취재차 여러 번 그곳을 방문하게 된다. 개에 물려 죽은 소년의 엄마 오금자를 찾으러, 공룡 발자국을 따라, 크레인에 깔려 죽은 방미호의 위자료 행방을 조사하러, 도로 개통식을 보러, 해저 고철 인양사업 계획을 취재하러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길은 해망을 향해 있었다.
문정수의 기억 속에서 해망의 노을은 눈에 보이는 것들의 사실성을 풀어헤쳐서, 거기에 스치고 스미는 것들을 무력하게 주저앉혔고, 멀고 텅 빈 저쪽으로 달아나는 것들을 더이상 추적할 수 없었는데 오금자는 그 해망의 노을 속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이었다.
강의 이쪽의 사람들이란 미치지도 죽지도 않은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굴레에 적당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할 것이다. 정의로운 소방관 박옥출은 화재 현장에서 빼돌린 귀금속을 처분해 펀드에 투자했고 신장 이식을 위해 그 돈을 사용한다. 기자 문정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개에 물려 죽은 소년의 엄마 오금자는 해망에서 조용히 살다 아들 앞으로 나온 법원에 공탁된 위로금을 찾아갔다. 문정수는 오금자의 이야기도 기사화하지 않았다. 딸이 크레인에 치여 죽고 나서 받은 위자로 1억 2천만 원으로 방천석은 농협 빚을 갚고 해망을 떠났다. 출판사 직원 노목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삶에 지치다 못해 치인 듯 살고 있다. 강의 이쪽에서 살려거든 더러운 꼴도 비겁한 꼴도 봐가며 살아야 한다. 흠결 없는 인간이란 있을 수 없듯이 그런 삶도 있을 수가 없다. 이러저러한 사연들은 문정수에게로 모아지고 다시 노목희에게로 퍼진다. 노목희는 문정수를 어루만지며 그 사연을 더불어 위로하는 느낌이다. 소설을 읽으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여성에 대한 묘사에 있어 불필요하고 불쾌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몰라서 그냥 넘어갔었던 문장들이 유독 찝찝하게 남는다. 소설 전체적으로는 나와 무관해 보이지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속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위로해 줄 누군가가 없어도 우리는 또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살아간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마주 잡고 찢어 먹는 하찮음이 쌓여서 생활을 이루는 것인가. 그 하찮음의 바탕 위에서만 생활은 영위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소함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적의의 들판으로 생활은 전개되는 것인가. 그 사소함이 견딜 수 없이 안쓰럽고 그 적의가 두려워서 나는 생활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이렇게 쭈빗거리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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