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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이문열 세계명작산책(2.죽음의 미학)_나라야마 부시코_후카사와 시치로

by 상팔자 2021.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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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 죽음의 미학

나라야마 부시코

지은이 후카사와 시치로

옮긴이 이호철

펴낸곳 (주)살림출판사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나라산의 노래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첩첩 산중에는 나라야마제(祭)를 지내며 사는 마을이 있다. 나라야마에는 하눌님이 살고 있고 그를 위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수확이 적어 백미는 이 제사 때가 아니면 여간해서는 먹기 힘들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제사에 대한 노래도 부르고 흰밥에 대한 노래도 부르고 산으로 간다는 노래도 부른다. 이 마을에서 산으로 간다는 것은 나무를 하러 산에 간다는 뜻 외에 그 하눌님이 계신다는 일곱 개 골짜기 너머의 먼 산에 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마을에서 제(祭)노래가 들린다는 것은 나라야마에 들어가야 하는 해가 가까워 오는 것을 늙은이들에게 알리는 의미이다. 이들 마을에서는 일흔 살이 되면 산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집 앞에 그루터기가 있어 그루터기 집으로 불리는 오린네는 외아들과 손자 넷, 오린이 함께 살고 있다. 올해 예순 아홉의 오린은 나라야마에 들어 갈 날을 기다리며 부싯돌로 자신의 이를 쪼아댄다. 먹을 것이 없는 형편에 이가 튼튼한 것은 흉이 되어버렸다. 홀아비가 된 아들의 며느리가 들어오자 신이 나 돌절구 모서리에 이를 맞부딪치기까지 한다. 

 

 "겨우 두 개뿐이야."
하고 실망했으나, 위 앞니 두개가 가지런히 빠졌으므로
입 안이 휑하게 비어 있어 그런대로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때론 삶이 죽음보다 더 두렵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입 하나를 덜기 위해 늙은이를 깊은 산에 버리는 것이 관례인 마을에서는 먹을 것을 훔치는 것이 가장 극악한 범죄일 정도이다. 오린은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기색없이 기꺼워하고 빨리 산에 가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손자인 게사요시는 빠를수록 좋다며 자신의 할머니가 산에 가는 것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아들에 손자까지 아내를 얻어 식구가 늘었는데 손자 며느리는 임신까지 한 상태이다. 아이가 나오기 전에 얼른 산에 올라야겠다 싶은 오린은 점점 초조해진다. 

 

산으로 가는 날이 정해지고 먼저 산에 다녀 온 사람들은 산으로 가는 예법을 지키라 알려준다. 산으로 가거든 아무 말도 하지 말 것, 아무도 모르게 나와야 하며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등. 기어이 산에 올라 어머니를 내려 주고 산을 내려가던 길 아들 다츠헤이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본다. 자신이 산에 가는 날에 분명 눈이 올거라던 어머니의 말이 생각나 산의 예법도 잊고 뒤돌아 다시 어머니에게 가서는 "어머니, 눈이 와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한다.

 

 

 눈이 와서 참 잘됐다. 게다가 찬 산바람에 쏘이느니
눈속에 묻혀 있는 편이 춥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냥 그대로 어머니는 잠들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근을 겪어보지 못한 시대에서 함부로 그들의 관습을 재단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이 굶주림에 식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마을의 공동체에서 그렇게 하기로 정해진 일이고 오랜시간을 그렇게 해왔다면 그들에게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도 결국은 인식의 문제이고 시대의 방식에 좌우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따지고 보면 생매장에 가까운 방식이라 거부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오린의 모습은 마지 수행을 위해 길을 떠나는 수도자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한다. 삶은 고행이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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