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지은이 델리아 오언스
옮긴이 김선형
펴낸곳 (주)살림출판사
값 16,000원

추리소설인 줄 알고 찾아 읽었는데 읽다 보니 가족소설이었고 다시 성장소설이었다가 생태학 논픽션 같기도 한 변화무쌍한 소설이다. 습지의 판잣집에 사는 카야의 외로운 투쟁의 이야기이며 자연과 삶, 삶과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가벼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는데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이게 단순히 스토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문학적 표현에 있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아무래도 번역본이다 보니 시적 표현에서는 특히 그런 느낌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있다. 스토리에 있어서 크게 대단한 반전이 있다거나 추리소설로서의 긴장감을 기대하고 읽는 것보다는 그저 카야의 삶을 조용히 따라가는 느낌으로 읽다 보면 숨겨진 자연의 보물을 발견하듯 소설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을은 자연과 다투다가 지쳐 떨어져 철퍼덕 주저앉은 꼬락서니였다._p.29
엄마의 가출을 시작으로 언니와 오빠 모두 집을 떠났다. 괴팍한 아버지와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카야는 그 작은 마을에서조차 편견과 차별을 피할 수 없다. 자연은 카야의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격리시키는 장소이기도 하다.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더 깊은 데로 파고들었다. 카야는 숨을 쉬는 촉촉한 흙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_p.49
혼자 지내던 카야는 녹슨 못이 발에 박히는 사고도 혼자 감당해내야 했다. 파상풍을 걱정하면서도 병원에 가지도 못하고 일주일 내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습지의 소금물에 발을 담그고 진흙이 들러붙은 발을 헝겊으로 칭칭 동여맨 채 공포와 아픔을 이겨낸다.그렇게 자연 속에서 스스로 치유하며 홀로 성장한다.
진흙을 파서 저녁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아이는 상상력이 납작해져 빨리 어른이 되나보다._p.111
엄마의 편지를 받고 혹시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 했지만 엄마의 편지는 오히려 아빠의 화만 부추겨 다시 술주정뱅이가 된 아빠마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완전히 외톨이가 된 카야는 혼자 먹고살 궁리를 하다 홍합을 따고 물고기를 잡아 판 돈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이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리는 일은 대견하기 보다는 너무 슬픈일이다.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중략)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_p.179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자, 깃털을 가져다주는 친구였으며, 첫사랑의 연인이었다. 그런 그마저 그녀를 떠나 버렸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에 잔인한 희망을 품던 카야도 결국엔 깨닫게 된다.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카야의 신호도 바뀔 때가 되었다.
타인의 기척을 기다리지 않는 건 해방이었다. 그리고 힘이었다._p.226
테이트의 빈자리는 체이스가 채워줬지만 카야는 또 기약 없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지치면 자신만의 안식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했다. 그렇게 카야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하나씩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기다림과 외로움의 시간을 채우는 것은 더 이상 타인의 존재가 아니라 나의 세계였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_p.267
실연의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카야는 스스로 급류에 휘말리기를 자처한다. 마음의 깊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공포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보다 깊은 장소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서 마침내 위기를 이겨내고 깨닫는다.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자연은 항상 자신을 위로하고 교훈을 주며 변함없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카야의 곁을 지켜준 사람들도 적지만 있었다. 습지의 생태는 완전한 고립의 상태는 아니다. 생존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인간과의 교류가 필요했다. 다만, 카야가 바라본 자연의 세계에선 바로 그 생존을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바꿀 수는 있다. 인간의 심판대에 오르는 일이 생기더라도 커다란 생태계의 영역에서는 그것의 죄를 물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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