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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위험한 비너스

by 상팔자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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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옮긴이 양윤옥

펴낸곳 현대문학

값 14,800원

 

 

 

 

 

수의사인 하쿠로가 일하는 동물병원으로 어느 날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연락이 뜸했던 동생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동생의 아내라는 가에데라는 인물의 전화였다. 게다가 동생인 아키토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소설은 하쿠로가 동생의 아내인 가에데와 동생 아키토의 행방불명 사건을 밝혀 나아가는 게 주 내용이다. 하쿠로는 화가인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그의 동생인 아키토는 어머니가 의사인 야가미 야스하루와 재혼해서 낳은 아들이다. 형제라고는 하나 어머니만 같고 성이 다른 형제인 것이다. 가에데는 명문가인 야가미가에 아키토의 행방불명과 관련한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쿠로에게 동행을 요청한다. 이야기는 아키토의 행방을 찾는 데에서 시작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하쿠로는 동생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가에데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위험한 비너스라고 해서 처음부터 가에데를 의심했었다. 미인으로 묘사가 되어 있기도 했고 객관적인 입장에서도 가장 수상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그런 의심에 확신이 들만한 내용이 추가되는 한편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설마 그런 뻔한 설정을 할 리가 없다고는 생각했다. 다만, 일부러 가에데를 의심하도록 유도한 거 같다는 생각은 든다. 읽고 나서의 생각은 비너스가 상징하는 것의 단순히 여성이나 아름다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 그 중에서도 꽤나 학술적, 예술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것, 삶을 통째로 갖다 바쳐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가치 있는 어떤 것. 이를테면 살인마저도 불사르게 하는 힘을 가진 가치 있지만 그래서 위험한 것. 소설은 처음에는 유산을 둘러싼 어떤 음모인가를 생각하게 하다가 의사였던 야스하루의 비밀스런 실험으로 옮겨가기도 하고 의혹투성이인 가에데의 실체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으로 의심스런 정황들을 펼쳐놓고 있다. 다소 영역이 확장되었다는 느낌은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소설을 읽는 데 큰 부담이 느껴지는 요소는 아니었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 서번트 증후군이나, 리만 가설, 프랙털 도형, 울람나선 등 다소 낯선 용어나 익숙하더라도 잘 알지 못하는 단어들을 포함하고 있기는 하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실마리이자 어쩌면 위험한 비너스라는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존재가 바로 화가였던 하쿠로의 아버지, 가즈키요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관서의 망이라고 생각한다. 관서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죄와 허물 등을 너그럽게 용서한다는 뜻이다. 어쩌면 이 소설의 시작과 끝은 이 작품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복선으로 서번트 증후군이나 리만 가설 등의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쿠로의 이모부인 수학과 교수 겐조는 가에데와 하쿠로가 집에 방문했을 때 리만 가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만 가설이란 수학계의 최대 난제야.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다음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과연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를 정도의 난제.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인생을 걸고 뛰어들 만한 가치가 있어.”_p.126

 

한편, 이케다 동물병원의 원장 이케다는 다람쥐를 키우는 커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중략)반려동물로 오랜 세월 살아남아 온 개나 고양이와는 달리 다람쥐는 사람 손에 키워지는 것보다 야산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자네들은 애초에 이 다람쥐에게서 삶의 환희를 빼앗은 것이다.(중략)”_p.134

 

겐조가 평생을 수학의 연구에 몰두하며 수학 가설의 학문적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수의사로 평생을 지낸 이케다는 다른 존재의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떤 삶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해서였든 의사로서의 사명이었든 가즈키요에 관련한 야스하루의 치료에 관해서도 관서의 망을 통해 그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그것의 말로가 비극적이기는 했으나 최소한 시작에 악의는 없었다는 것. 아마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천재가 반드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불행한 천재를 만들어내기보다 행복한 범재가 좀 더 많아지도록 노력하고자 한다._p.474

 

 

범재는 천재의 우수함과 희귀함을 찬양하거나 높이 사곤 하지만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해서 반드시 삶의 행복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것, 흑은 학술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 훌륭하고 뛰어난 것에는 그 이면이 존재한다. 마치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환자들이 하나를 잃고서야 하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과 같이 말이다. 경이로운 매력이 있기에 경계해야 하며 내 삶을 빼앗기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거대한 업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매일의 삶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개인의 삶의 가치는 비록 남들에게는 보잘것없더라도 내게는 가치가 있다. 그것처럼 비너스라고 칭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생애를 바칠 만큼 가치가 있을지 모르나 그 존재를 모르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보잘것없다. 삶은 결국 관점의 문제일 수 있다. 가치는 그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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