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2(역사를 바꾼 무기들) 1강~2강 요약정리
위대한 쉰 번째 강연 '역사를 바꾼 무기들'(시즌2 여덟 번째)
맥스 부트 역사학자
미국 외교협회 석학회원
미 국방성 자문위원
미 외교관계위원회 국가안보 선임연구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외교 담당 칼럼니스트
<새로운 전쟁 : 무기, 전사 그리고 현대 세계 형성> 저자
1강 화약혁명과 유럽의 부상
- 군사혁명(지난 500년간 군사 혁명이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가?)
· 현대 사회는 문화를 포함해 경제, 기후, 질병, 지리학 같은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 군사력, 군사 기술의 역할 또한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지만 중요하다
· 지난 500년 동안 아주 중대한 네 가지 군사 혁명이 있었다
화학혁명 / 18세기 후반 제1차 산업혁명 /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제2차 산업혁명 / 20세기 중반부터 현재 정보혁명
· 군사 혁명은 군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기술과 전술, 조직구조, 훈련방법, 군사교리가 변하는 걸 뜻한다
이 모든 것이 함께 적용하면 전쟁의 양상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 국가가 지정학적 성공을 거두고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군사 혁명의 이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군사 혁명과 혁신에 실패한 나라는 세력에서 밀려나는 대가를 치르고 자유와 독립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최신 군사 기술을 활용하지 못해서이다
● 화학혁명
· 15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화약 혁명, 화약이 도입되고 나서 세계는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 1450년 유럽은 전 세계의 15%밖에 지배하지 못했으나 1914년에는 84%를 통제했다
→ 서구 열강이 과학 기술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게 큰 요인이었다
→ 유럽 국가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군사 기술이었다
· 1450년 정도까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는 몽골이었다
몽골인은 훌륭한 기병이자 뛰어난 전사였다, 하지만 기술이 없어 총을 만들지 못했다
화약 기술의 부상은 몽골 제국의 종말을 뜻했다
· 화약은 중국에서 발명됐다, 하지만 화약을 적극 활용한 건 서구였고 이건 중국 역사의 비극이 됐다
· 중국은 자신들이 발명한 화약에서 군사적 이득을 얻지 못했다 → 1500년 이후 중국이 약해진 이유
· 화약이 유럽에 들어온 건 1267년경이었다, 처음에는 폭죽처럼 오락거리로 사용
· 1326년 유럽인들은 화약으로 총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 화약의 이득을 본 건 유럽인만이 아니었다, 세계 많은 나라가 화약 기술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 초기 화약 기술이 만든 가장 놀라운 결과 중 하나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몰락이다
오스만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다, 그들은 총포를 쏘고 만들 줄 아는 헝가리 용병을 고용했다
2천 년 로마 제국 역사가 막을 내리고 오스만 제국이 중동의 통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 당시 유럽에서는 화포와 함께 기사 계급의 지배가 종식했다
대포가 봉건 질서를 무너뜨리고 유럽에 강력한 국가들을 건설했다
· 화포가 등장하기 전 유럽은 작은 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봉건제의 권력은 영주에게 있고 왕의 힘은 아주 적었다
두꺼운 성벽이 영주를 지켜줬었는데 화포로 무장한 군대로부터 지킬 순 없었다
· 1519년 니콜로 마키아벨리(이탈리아 정치철학자)는 이렇게 썼다
"제 아무리 두꺼워도 대포가 무너뜨리지 못하는 성벽은 없다"
· 16세기 유럽을 지배하고 봉건제를 무너뜨린 본질적인 변화가 되었다
·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사회, 정치, 경제를 지배한 기마 기사들은
사실 이런 불만은 모든 군사 혁명에 늘 있었다, 군사 혁명이 일어나면 신흥 전사가 과거의 전사를 대체한다
과거의 전사는 늘 자신의 방식이 정당한 신사들의 전투라고 생각했다
혁신가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부정하게 싸우는 거고 전쟁의 규칙과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런 변화와 혁신은 500년 동안 이어져 왔고 화약에 적응하지 못한 봉건 기사들은 세력에서 밀려나게 됐다
· 화약을 사용하는 군대의 문제는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이제 군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무기로 무장해야 했다
· 무기 제조업자는 대포와 머스킷 같은 새로운 전쟁 도구를 만들었다
· 세금을 걷어 그 돈을 새로운 군대에 쏟아부어 강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강대국은 계속 전쟁을 벌이며 더욱 강해졌고 성공을 거두기 위해 관료 체계도 만들었다
이전의 봉건 영토를 다 통제하고 중앙집권 국가의 권력을 높이도록 했다
· 찰스 릴리(미국의 사회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 국가를 만들고 국가가 전쟁을 만든다"
· 이들은 모두 전쟁에 사활을 건 근데 초기의 유럽 국가들이었다
전쟁을 위해 세금을 걷고 전쟁을 벌여서 영토를 확장했다
새로운 땅을 약탈하며 더 많은 돈을 모았고 그 땅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더 많은 세금을 걷었다
·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 전투
스페인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강대국이었다, 16세기에 적극적으로 화약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지난 500년간의 역사에서 유럽의 군주로서는 최초로 가능한 넓은 유럽 대륙과 세계를 정복하려 했던 왕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은 범선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강철 칼과 석궁, 대포, 화승총으로 무장한 채 엄청난 신흥 제국과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1519년 예르난 코르테스(스페인의 정복자)는 병사 800명과 말 16마리로 아즈텍 제국(당시 인구 800만)을 정복했다
800만 명을 800명과 말 16마리로 정복한 것, 스페인이 가진 군사 기술 덕분이었다
아즈텍에게 핍박받던 토착 부족이 스페인의 동맹군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근본적 이유는 스페인이 군사혁명을 잘 사용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페루 쿠스코 지역에는 당시 최소 900만 명이 살고 있었는데
1523년 프란시스코 피사로(스페인 정복자)가 군인 180명과 말 80마리로 정복했다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적은 병력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했다는 사실은 당시 유럽과 남아메리카 국가들 사이
기술 격차가 컸다는 걸 의미한다
스페인이 앞장서서 기술을 사용한 결과 아메리카 대륙의 금과 은 귀금속들을 채굴할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 왕가로 들어온 금은보화는 그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다 → 권력을 쟁취한 것
16세기 후반 주위를 둘러보던 펠리페 2세는 방해 요소인 잉글랜드를 발견한다
2강 영국: 화약전쟁의 선구자
· 당시 잉글랜드는 가톨릭 교회와 단절을 선언하고 기세 등등했다
· 펠리페 2세는 자신을 세계 최고의 가톨릭 군주이자 기독교의 대변자로 여겼다
그는 잉글랜드를 굴복시키고 침략해 영토를 확장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함대로 영국해협을 건너야 했다
문제는 스페인이 지상전의 대가였다는 것이다
화약 시대 해상 전투의 양상을 바꾼 새로운 유형의 전투에는 익숙지 않았다
· 1588년 스페인 함대 전투가 일어나기 전 100여 년 동안 포를 장착한 함대가 개발되었다
고대 지중해식 갤리선 전투와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잉글랜드는 이 기술에 있어서 스페인보다 훨씬 앞섰다
· 16세기 초 잉글랜드는 유럽에서 그리 강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강력한 군주였던 헨리 8세(잉글랜드 국왕)가 야심을 갖고 정부를 개편했다
헨리 8세는 잉글랜드를 영국 군도의 지배자로 만들고 가톨릭 교황과 스페인에 저항하기 위해선
혁신만이 답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효과적인 관료제를 만드는 게 급선무였다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는 쓰러져가던 중세 잉글랜드 정부를 바로 세우고 현대 영국 행정부의 뿌리를 만들었다
해군성과 재무성 같은 관료 체제를 정립하고 해군을 새롭게 구성했다
스페인이 돛대 세 개 달린 갤리언선을 만든 것보다 훌륭한 혁신을 만들었다
· 영국은 스페인이 이용하지 못한 이 모든 혁신을 이용해 득세했다
영국의 함대는 특히 포격에 몰두했다, 스페인 함대는 적의 함선에 인접하고 올라타는 것에 집중했다
스페인 해군은 화승총으로 적을 공격하며 적의 배에 올라탔다
이건 당시 지중해에서 흔했던 전술이었는데 영국의 막강한 해군력이 부상하던 북대서양에선 통하지 않았다
프랜시스 드레이크, 존 호킨스, 월터 롤리 같은 영국 해군 장교나 사략선 선장은 새로운 해상 전술을 생각해 냈지만
스페인은 그러지 못했다
스페인 함대의 사령관이었던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은 해전 경험도 없고 항해에 해박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전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귀족일 뿐이었다, 잉글랜드의 해전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는 그렇게 완패했다
스페인 함선 150척 중 70척을 잃었고 해군 2만 6천 명 중 1만 2천 명이 전사했다
이 전투는 해군 역사상 가장 일방적이자 중요한 승리로 알려졌다
·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은 펠리페 2세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들은 가히 설명할 수 없는 괴로움과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폐하"
· 영국의 승리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1588년 스페인 인구는 800만 명이었고 잉글랜드와 웨일스 인구는 400만밖에 안 됐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해전에 대한 이해가 더 뛰어났다, 스페인의 거대 병력을 물리칠 혁신을 만들어 냈다
· 스페인은 해전에서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고 지상전에서도 점차 뒤처졌다
· '팍스 브리타니카(Pax Britannica)'의 시대의 개막,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장악권을 가졌던 시기
◐ 18세기 화약은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
· 가장 큰 변화는 봉건적 군사 제도가 근대식 군대로 재편된 것이다
전투 기술과 지휘 방법을 연구하는 직업 군인이 등장했다
· 기술적 측면에서 화약 시대 초기에 사용하던 화승총을 넘어선 수발총이 등장했다
수발총은 18세기에 등장했는데 훨씬 치명적인 무기였다
군인 5천 명이 약 90m 거리에서 1분에 15,000발 정도 쏠 수 있었다
아주 치명적인 무기이긴 했지만 명중률이 낮다는 문제도 있었다(사정거리와 조준 사격에 있어 한계가 있었다)
총신 내부에 나선형 홈이 없는 활강총이었기 때문이다, 총신에서 총알이 불규칙하게 움직여 정확히 조준할 수 없다
그래서 화력을 높이려면 거대 병력이 촘촘한 대열을 유지하는 게 중요했다
"적군의 흰자위가 보이기 전에는 절대 총을 쏘지 말아라!" → 명중률이 낮아 근접 거리에서 쏴야 했다
당시 화력으로는 적을 공격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18세기 전투의 사상자 비율은 20%가 넘었다, 병력은 적었지만 사상자 비율은 아주 높았다
당시 전시 상황 의료 기술이 원시적인 수준이라 그렇기도 했다
효율적인 군대를 만들려면 강력한 규율과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웰링턴 공작은 병사들을 지구의 쓰레기라고 불렀다
쓰레기를 유능한 군인으로 만들려면 역사학자 존 린이 말한 참을성 있는 전투 문화가 필요했다
→ 18세기에 군대를 움직인 기조, 적의 코앞에서 끔찍한 벌을 내릴 의지와 그 벌을 기꺼이 받을 의지
→ 이런 군사 혁명으로 전투 방식이 중세시대와는 크게 달라졌다, 당시 다른 지역의 전쟁 방식과도 큰 차이가 있었다
· 1803년 아사예 전투
마라타 제국과 대영제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
영국은 인구와 병력에서 뒤떨어졌지만 기술에 있어선 앞서갔다
아사예 전투의 영국 사령관은 아서 웰즐리였는데 당시 34세였던 그는 훗날 웰링턴 공작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그의 군대는 4천5백 명 규모였고 그중 3분의 2는 인도인(세포이)이었다
마라타 병력은 5만이 넘었다, 영국이 수적으로 훨씬 열세였다, 기병 중심이었던 마라타군
야전포와 머스킷을 구비하고 유럽인 부사관과 장교도 고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아주 전통적인 기병 부대였다
영국을 상대로 18~19세기 초반 방식의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과적으로 양측 모두 큰 피해를 입었지만 마라타군은 도망치기에 바빴고 영국군은 끝까지 전쟁터를 지켰다
마라타군 사망자는 약 1,200명, 영국군 사망자는 500명도 안됐다
영국군의 승리 비결은 바로 전문적인 부사관과 장교였다
화약 전쟁 전문가 웰즐리 장군 같은 군인이 마라타의 족장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 화약 혁명은 세계 권력 구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고 인도와 중국은 영국에게 밀려났다, 이건 정복당하는 과정에 불과했다
유럽 내 권력 균형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화약 혁명 초기를 이끌었는데
18세기에는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네덜란드 같은 신흥 세력에게 밀려났다
19세기 유럽 강대국은 이 나라들이었다, 이들은 서로에 대한 지배력뿐 아니라 유럽 바깥의 나라들을 놓고 경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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