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2(다문화 사회가 왔다) 4강~6강 요약정리
위대한 예순세 번째 강연 '다문화 사회가 왔다'(시즌2 스물 한 번째)
윌 킴리카 퀸스대학교 정치철학과 석좌 교수
1996 캐나다 정치학회(CPSA) 맥퍼슨 상 수상
1996 미국, 정치학회(APSA) 랄프 번체 상 수상
2021 캐나다 왕립학회 피에르 쇼보 메달 수상
정치에 대한 무관심의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_플라톤
4강 다문화 민족국가는 가능한가
- 인권 혁명과 다문화주의 실험
· 과거에는 수많은 국가가 한쪽만 얻고 한쪽은 포기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민족주의적 연대, 안정을 선택하거나 소수자 보호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 다 이룰 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수자의 희생을 불가피한 일로 보았다
그렇게 해야만 강하고 안정적인 민족국가로 단결해 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지난 50여 년에 걸쳐 그 관점이 변해 왔고 민족주의적 연대와 소수자 권리 중에서
굳이 한쪽을 저버려야 하는지 그 개념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민족주의적 연대라는 핑계로 소수자를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반감이 커지는 데는
몇 가지 원인 혹은 이유가 있는데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1. 인권 혁명
첫째는 인권 혁명이다
"이 선언은 인간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정신적 사실에 기초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 연합에서 세계 인권 선언을 채택한 후 국제 사회가 뒤이어 수많은 문서를 통해
국가가 시민을 대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규정한 과정을 가리킨다
국제 사회가 인권 존중을 위해 노력하며 인간에게 이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정한 것이다
이는 일종의 법적 변화였고 이제는 인권을 보호하는 국제법도 제정됐다
사람들이 어떤 대우를 하거나 받는 것이 바람직한지 기준을 설정하게 했다
인권 혁명은 근대 세계를 뿌리째 바꿔 놓았다
소수자 문제에 두 가지 영향을 끼쳤다
첫 번째,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을 걸었다
따라서 지금 이 시대에는 국가가 과거와 같은 도구를 활용해서 소수자의 힘을 빼앗을 수 없다
두 번째, 민족과 인종 관계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민족국가 내에 위계와 패권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명백히 존재했다
캐나다의 경우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은 캐나다로 건너왔을 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서 마주친 토착민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굳게 믿었다
식민주의의 바탕이 바로 그런 믿음이다
전 세계의 지배 집단들이 다른 집단은 결점이 많고 열등하고 뒤떨어진다고 믿었다
그런 생각을 구실로 내세워 소수자를 부당하게 대하고 지배 집단들이 권력을 독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인권 혁명은 민족과 인종 위계질서의 모든 이데올로기를 부당한 것으로 만들었다
인권 혁명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며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를 똑같이 누린다
그 덕에 소수자들은 2등 시민의 지위를 갈수록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인권 혁명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누구도 2등 시민으로 밀려나선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최초로 발생했으며 가장 놀랍고 영향력이 컸던 사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민권 운동이다
아프라카계 미국인들이 인종 분리 정책에 저항한 것은 캐나다의 원주민과 토착민에게도 자극을 줬다
미국 내 '블랙 파워 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으면서 캐나다에서도 '레드 파워 운동'이라는
토착민의 권리 찾기 운동이 일어났다, 2등 시민 지위에 반발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례는 중부와 동부 유럽의 로마족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인권 혁명은 일본에 거주하는 소수 집단인 재일 한국인을 자극해서 2등 시민의 지위에 반발하게 했다
인권 혁명은 세상 자체를 바꿨다고 봐야 한다
인권 혁명으로 국가와 소수자 양쪽의 질서가 뒤바뀐 것이다
2. 다문화주의 실험
지난 60년 사이에 발생한 두 번째 변혁은 많은 국가가 소위 '다문화주의 실험'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박 같은 모험이었지만 각국은 소수자 문제에 새롭게 접근하는 모험을 해 보기로 했다
세 가지 유형으로 다문화주의 실험을 정리해 보자
① 토착민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은 토착민의 자리를 대신하려 했는데 그 바탕은 제거론이었다
1970년대 이래로 식민지 정착민들이 세운 국가가 토착민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다
토착민도 땅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나날이 확대되고 있어 실제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거나
조약상의 권리를 재차 확인하는가 하면 새 조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동안 토착민의 법체계를 인정하는 법적 다윈주의가 등장했다
토착민을 몰아낸 정착민 국가가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 보상에 대해 합의했다
그렇게 과거를 바로잡는 화해 절차가 시작되었다, 이를 탈식민지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토착민이 한 나라 안에서 별개의 사회와 문화를 유지하고 독립된 집단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권리를 부여하는 개념이다
② 소수 민족
이러한 집단은 자신들이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산 민족이지만 어쩌다 국경의 반대편에 남는 바람에
남의 나라에서 소수자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집단은 국민 형성단계에서 곧장 표적이 되곤 했으며 국민 말살의 대상이 됐다
(이라크의 쿠르드족 말살 계획 등)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 전 스페인 총통)의 파시스트 독재 정권하에 극도로 중앙 집권화된
스페인은 한 언어를 쓰는 단일 민족국가였다
그러다 스페인은 민주화(1975년)를 겪으면서 소수 민족과 화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카탈루냐, 바스크의 주민들과 말이다, 그래서 스페인은 연방제를 도입했다
카탈루냐, 바스크에 지역 자치권을 부여했고 자치 지역에선 소수 민족의 고유 언어를
공용어로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으로 최근에는 네팔도 연방화를 통해 수많은 지역의 소수 민족을 인정하고자 했다
인도는 연방제를 재편해서 언어를 바탕으로 한 연방 단위를 형성했다
단일 언어, 단일 국가가 다언어 연방국으로 거듭난다
③ 이민자
이민국의 원조로 손꼽히는 캐나다의 예시를 들어 보자
과거에는 이민자가 기존의 주류 집단인 영국계에 동화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는데
이를 '앵글로 일체화' 이민 모델이라고 한다
캐나다인이 되려면 영국 문화에 따르라는 게 앵글로 일체화다
영국 문화에 따르지 못할 것 같은 집단은 캐나다로 건너올 수 없었다
이렇게 인종 제한적인 이민법을 시행하며 사실상 유럽 백인에게만 이민을 허용했다
백인은 영국 문화에 따를 수 있다고 봤지만 중국, 인도, 아프리카 출신은 그럴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앵글로 일체화, 인종 배제를 기본으로 한 이민정책이 오래 이어지다가
1960년대에 캐나다는 인종 제한을 폐지했고 앵글로 일체화 정책까지 철폐하면서 이런 생각을 받아들였다
'이민자가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 하는 건 정당하다'
자랑스러운 그리스계 캐나다인이 될 수도 있고 자랑스러운 한국계 캐니다인이 될 수도 있으니
본인의 민족적 혈통을 부인할 필요는 없고 그걸 감출 필요도 없다
출신 민족에 애착을 느끼고 당당히 드러내면서도 캐나다인이 될 수 있다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교과 과정도 바꿨다
이민자들의 언어와 문화를 인정하기 위해서 박물관 운영 방식도 바꿨고 이중 국적도 허용했다
또한 소수 종교의 관습을 더 폭넓게 수용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도입해 이민자의 이주만
허락하는 게 아니라 민족 정체성의 유지를 장려하는 것이다
캐나다는 이민자 집단을 위해 다문화주의로 전향한 최초의 국가이다
다른 국가들도 이후에 비슷한 길을 택했다
호주도 강력한 다문화주의 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고 뉴질랜드나 영국은 물론 핀란드 같은
국가도 한층 다문화적인 관점으로 이동해 기존의 동화 정책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 실험을 통해 증명됐듯 다문화 민족은 가능하다, 모순적인 용어도 아니다
과거에는 다문화주의가 민족국가나 민족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고 했지만
50년이 흐른 지금 전 세계의 실험 결과를 종합하면 다원주의적 다문화 민족국가 건설은 가능하다
5강 다문화주의라는 숭고한 위험
- 다문화주의의 미래
· 지난 50년간 다문화주의가 확산되면서 더 많은 국가가 더 다양한 소수자 집단을 위해 한층 폭넓은
다문화주의 실험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50년은 다문화주의의 상승기라고 할 수 있다
· 앙겔라 메르켈(독일 제8대 연방총리)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저 나란히 살면서 서로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다문화주의적 접근은 실패했습니다"
· 한 국가가 다문화주의를 채택하면 어떤 영향을 받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동료 정치학자 키스 밴팅(퀸스 대학교 정치학과 명예교수)과 함께
국가를 세 단계로 구분했다
다문화주의 수준이 높은 국가와 중간 정도의 국가, 다문화주의 정책 수준이 낮은 국가로 나눠서
이런 의문을 던졌다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인 국가들이 다문화주의를 반대해 온 국가들에 비해 특정 기준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는가?
(평화, 번영, 민주주의, 복지국가 측면에서)
다문화주의를 포용한 국가들은 이를 반대한 국가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잘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주의 쇠퇴론은 근거가 전혀 없다
'실패'나 '후퇴'를 운운하는 낭설만 가득할 뿐 그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이 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연구한 바에 따르면 다문화 전반에 걸쳐 후퇴나 실패는 없다
실제로 다문화주의를 도입한 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다문화주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는 물론 영국 등지에서도)
게다가 최근엔 새롭게 다문화주의를 채택한 국가들도 있다
핀란드, 포르투갈 같은 나라들은 다문화주의 이민 정책을 최근까지 거부했지만 이제 발걸음을 성큼 내디뎠다
· 여전히 많은 국가가 다문화주의에 이의를 제기하며 반대한다
다문화주의는 왜 일부 국가에서만 부상했으며 국가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걸까?
나라마다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어떠한 환경에서 다문화주의를 채택하거나 반대하게 되는 걸까?
많은 국가에 작용하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1. 정체성
정체성에 관한 사고방식은 두 가지로 나뉜다
① 첫 번째는 정체성을 제로섬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다시 말해 한쪽에 더 강한 애착을 느낀다면 다른 쪽을 향한 애착은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② 사회 심리학자들은 정체성이 상호보완적이라 한다, 양쪽 모두에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쪽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보니 반대쪽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수자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국가가 다문화주의에 관한 결정을 내릴 때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인정하면
어떤 영향이 뒤따를지 판단해야만 한다
오늘날 소수자들은 종종 낙인의 대상으로서 차별을 당하며 2등 시민으로 취급받기에
소속 집단에 양면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그러나 다문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소수자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소수자 집단의 소속감이 다문화주의 정책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를 채택해 소수자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강한 애착을 느낄 때
소수자의 애착은 민족국가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국가는 모든 시민이 국가와 사회를 향해 강력한 애착을 형성하길 바란다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며 기여하라고, 민족주의가 바로 그런 걸 요구한다
문제는 다문화를 채택해서 소수자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에 강한 애착을 느낀다면
민족에 대한 애착이 약해지느냐는 것인데 정체성의 제로섬 개념에 따르면 그렇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반면 다문화주의적으로 접근하자면 소수자 집단에게 소속감을 느끼게끔 할 경우
전체를 포괄하는 민족에게도 소속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소수자 집단에 충성과 애착을 표출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국민을 더 따뜻한 감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상호 보완적인 정체성의 개념이다
다문화주의가 성공하려면 제로섬 개념의 정체성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정체성이 필요하다
2. 정치적 가치에 대한 합의
다양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기본적인 정치적 가치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민주주의, 인권 존중 문제
소수자 집단에 비자유적, 비민주적 전통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무슬림 이민자과 관련해 서유럽이 이런 문제를 실제로 겪고 있다
일부 국가는 무슬림 이민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당신에게 시민권이나 정치적 대표성을 부여하고 공동체를 위한 지원금을 제공하길 바란다면
일단 이것부터 증명하시죠. 여성과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인간의 권리를 전적으로 지지합니까?"
해당 집단이 본질적으로 자유 민주주의를 충실히 따른다는 걸 보이라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가치 면에서 전체 사회와 일치하는 걸 확인하면 특정한 권리나 자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 대처할 수도 있다
소수자 집단 내에 내가 지지하지 않는 관습이 있고 그런 관습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해당 소수자 집단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에 참여하게끔 권하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당사자가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과학에서 자유주의적 기대라는 가설인데 그 기반이 되는 사상은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누군가를 포섭하고 싶다면 그 제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실천할 기회조차 없었는데 자유 민주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할 순 없다
일단 자유 민주주의를 배워야 그 가치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리를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중력'이라고 표현한다
· 이렇게 두 가지 요소로 다문화주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설명할 수 있는데
현 상황을 요약하자면 세계 각국이 두 갈래로 이동하는 셈이다
낙관주의 국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계획을 세워 모험을 하고 있다
소수자 집단을 향해 우호의 손길을 내밀고 먼저 다가가 소수자를 인정하고 수용한다면
소수자 집단은 그에 응답해 사회에 애착을 느끼고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받아들일 거라고 믿는다
그럼 신뢰의 순환이 반복된다
캐나다는 사회 과학자는 물론 정책 입안자까지 이런 문제에 대체로 낙관적인 입장이다
상호 보완적 정체성의 실현 가능성과 자유 민주주의의 중력에 대한 낙관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덴마크,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정책 문서를 보면 비관적인 입장이다
소수자의 정치 참여 유도는 너무 위험하다고 한다
다수는 소수를 불신하고 소수도 그걸 느껴서 자신을 불신하는 넓은 사회를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불신의 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 지금까지 사회 과학적 증거로 볼 때 많은 경우, 혹은 대다수의 경우 소수자를 신뢰하는 건
해 볼 만한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선 그걸 '숭고한 위험(The Noble risk)'이라고 한다
프랑스어로는 '르 보 리스크(Le Beau Risque)'라 하는데 정치는 확실한 게 없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일이 틀어질 여지도 있다
다문화주의 실험의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한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퀘벡주가 분리 독립에 찬성할지 모르고 캐나다의 토착민들이 폭력까지 동반해 거세게 들고일어날지 모른다
그래도 이러한 위험은 감수할 가치가 있다
우호와 신뢰의 손길을 내밀며 소수자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일의 바탕에는
상호 보완적인 정체성이 생겨나고 자유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합의가 유지될 거란 기대가 있다
과거와 같은 강압적인 동화, 소외, 차별이 인권 규범 하에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효과도 없으니 성공적인 미래 사회의 기반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모두 다문화 민족주의라는 숭고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6강 다양성이라는 판도라의 상자
- 미국과 캐나다의 이민 정책과 다양성에 대한 인식
· 공산주의의 역사 측면에서 소수 문제를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롭다
레닌과 스탈린 모두 다음과 같은 원칙을 강력히 옹호했다
"소수 민족도 생존권, 자치권, 자결권을 누려야 한다"
두 지도자는 꽤 흥미롭고도 중요한 글을 남겼는데 오늘날 소수 민족이라 불리는
비러시아계 소수자들이 자치를 펼치고 자기 언어를 보존하면서 대대로 살아온 땅을
지킬 권리를 보장했다
소수 민족을 보호할 근거를 공산주의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한 글을 보면 러시아를 향한 맹목적 애국심은 제국주의의 일종이며
공산주의는 그러한 맹목적 애국심에 맞서 싸우며 소수 민족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중국 역사에도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
마오쩌둥과 추종자들은 "진정한 공산주의는 소수자를 지켜야 한다"
중국이 소수 민족 문제에 접근해 온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도 흥미롭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소수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적도 있다
소수 민족은 한 자녀 정책을 면제해 줬다
중국이 다수 민족의 출산을 제한하면서 소수 민족은 더 많은 자녀를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한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또한 과거의 다른 사례를 보더라도 중국이 소수 민족을 인정하면서 수용하고자 노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공산주의 독재의 경우 그 특성으로 인해 다원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공산주의는 다양성과 양립할 수 없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들도 소수자를 보호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소수자를
공산당에 복속시켰다
그러니까 모스크바나 베이징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소수자 권리를 위한 정교한 체계는 오로지 서류에만 등장하는 형식적인 것이었고
다원주의나 다양성과 진정으로 공존할 순 없었던 것이다
지난 10-20년 사이에 중국은 소수 민족을 훨씬 가혹하게 대했고
소수 민족의 언어적 권리도 제한하기 시작했다
특히 티베트와 신장 지구의 사례를 보면 소수 민족 사회를 무척 편협하게 대하고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표현하려는 소수 민족의 시도를 용납하지 않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가 중국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질 거라고 본다
과연 소수 민족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을지 탄압의 역사를 이어 갈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 퀘벡주의 독립운동이 극에 달한 시기에 자라면서 다양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캐나다는 퀘벡주 독립 문제로 붕괴 직전까지 갔으니 국가의 존속 여부에 대한 실존적 의문이 생겼다
대학 재학 당시 처음으로 토착민이 얼마나 심각하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깨달았고
그게 우선순위가 됐다
캐나다인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이러한 주장을 배우면서 자랐다
캐나다인이 미국인에 비해 토착민을 잘 대우했다는 것이다
미국인은 인디언 전쟁으로 토착민을 난폭하게 정복한 반면 캐나다는 토착민과 여러 조약을 맺었으니
한층 평온한 관계 속에서 정중히 대했다는 주장이다
역사를 통해 증명됐듯 그건 엄청난 과장이라고 본다
캐나다와 미국 모두 이민자 국가이니만큼 이민자 집단을 어떻게 대했는지 비교할 수 있을 텐데
그 기본 양상은 같았다
1960년 전까지만 해도 캐나다와 미국 모두 인종에 따라 제한적인 이민 정책을 펼쳤다
다시 말해 양국 모두 백인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그러다 1960년대에 캐나다와 미국은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인종 중립적인 이민 기준을 채택한 것이다
이민자 문제에서 양국이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의 경우 만일 이민자가 자신의 정체성, 언어, 종교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본인의 노력에 달린 문제일 뿐 사회의 도움을 기대하거나 요청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도와줄 책임은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민자 집단 문제에서는 미국이 참 흥미롭게도 난민 문제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보인다
이민자 집단의 경우 미국이 '선의의 무시' 정책을 고수하기 때문에 모든 게 이민자에게 달렸다
자기 언어를 계속 쓰려면 본인이 학비를 대야 한다, 학교나 지방 정부는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방임주의로 '선의의 무시'의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난민 문제는 다르다, 냉전 당시에 난민은 냉전 정치의 도구였다
공산주의 국가 출신의 다수의 난민을 받아들였고 그 난민들이 잘 지내길 바랐다
그래서 난민 지원 정책을 도입했는데 그 목적은 난민의 조국인 공산주의 국가를 난처하게 하려던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난민은 미국 정부의 다문화 지원을 받았는데 다른 이민자들은 그런 혜택을 못 누렸다
실제로 난민이라는 이유로 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집단은 캐나다의 이민자 집단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미 정부의 난민 지원이 캐나다 정부의 이민자 지원과 같은 효과를 낳았다
난민에 대한 미국의 전략은 성공한 것 같은데 왜 모든 이민자 집단에게 그 전략을 도입하지 않고
난민만 돕겠다는 정책을 고수하는지 잘 모르겠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채택했는데 이를 1971년의 다문화주의 정책이라고 한다
해당 정책을 보면 공공기관은 반드시 정체성과 관습을 유지하려는 이민자 집단을 지원하고
이들을 수용해야 한다고 한다
학교는 적극적으로 다양한 이민자 집단의 정체성과 관습을 가르쳐야 하고
이민자 집단의 종교적 휴일도 인정해야 한다
박물관은 이민자 집단의 언어와 문화, 정체성을 전시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캐나다에서는 공공 지원이 더 활발한 셈인데 재정적 지원뿐만 아니라 도의적인 지원도 펼치며
미국에 비해 각 민족의 정체성과 관습을 유지하고자 더 노력하고 있다
퀘벡주에서는 이민자도 프랑스어 구사자도 실제로 캐나다 정부를 정말 깊이 신뢰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토착민은 예외지만(자신들을 상대로 한 오랜 학살의 역사가 있으니)
미국 이민자는 정부를 덜 신뢰한다
(다만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들도 미국 정부를 안 믿는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흥미로운 건 미국, 캐나다 이민자들이 사회적 기준에 따른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캐나다인은 정부에 대한 신뢰가 두터우니 이민자도 정부를 두텁게 신뢰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미국 태생도 미국 정부를 믿지 않으니 이민자도 정부를 믿지 않는다
양국의 이민자 모두 각 나라에 들어가 살면서 섞이는 과정을 뿌듯해하며
토박이 시민들과 신뢰나 불신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민족, 인종, 종교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 시한폭탄 같은 주제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을 최소화하거나 숨기는 게 정답이라고 한다
그동안 실험을 실제로 수행하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런 문제를 두려워해선 안 된다, 어떤 방법이 효과적인지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근대 세계는 다양성이 클 수밖에 없고 그 다양성은 이미 계속 확대될 텐데 그래도 괜찮다
일부 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굉장히 불안하지만 그래도 캐나다와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환경에서는 평화롭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그런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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