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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 4 미하엘 초코스 (죽음을 읽는 법의학) 1~4강

by 상팔자 2025.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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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위대한 수업 4 미하엘 초코스 (죽음을 읽는 법의학) 1~4강

위대한 백서른 세 번째 강연 '죽음을 읽는 법의학' (시즌 4 열세 번째)

 

 

미하엘 초코스(Michael Tsokos) 법의학자

베를린 주립 법의학·사회의학연구소 소장

<죽음의 키보드>, <차단>, <죽음의 흔적> 등

 

 

 

 

 

(2025. 01. 08. 방송)

 

1강  연쇄 살인범의 주말 농장

 

 

 

 

평소에 법의학과 전혀 접점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법의학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하다

부검은 왜 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유족에게 큰 위안을 준다

범죄 가능성을 조사하고 사망자의 신원도 밝혀낼 수 있다

결국은 시신을 제대로 찾아서 묻어 주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논픽션 책과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법의학자가 하는 실제 일에 대해 대중들이 얼마나

지적 갈망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법의학계 자체가 워낙 폐쇄적이다 보니 

어떤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에게 법의학에 대해 알릴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려면 과학적인 정확성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실제 범죄를 다룬 팟캐스트가 참 많은데 

막상 들어 보면 진행자들이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30년째 법의병리학자로 활동하며 경찰과 검찰을 도와

외인사나 사인 불명의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 법의병리학: 부검으로 사망 원인을 규명하는 법의학의 한 분야

 

⊙ 법의 병리학

법의병리학자는 시신이 발견된 장소나 범죄 현장에도 간다

거기서부터 실제 업무가 시작된다

법의병리학자는 경찰을 도와 현장에서 수사를 진행한다

사고나 살인 혹은 자살인지를 판단하고 

병사 여부는 물론 사망 시각까지 판단한다

시신이 발견된 범죄 현장에서의 작업은

법의병리학자에겐 무척 중요하다

부검실에서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 법의독물학

하지만 부검실에서 사인을 못 밝힐 수도 있다

그럼 법의독물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조사하는 사건 중 상당수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힐 수 없는데 보통 시신이 부패해

내부 장기까지 손상됐기 때문이다

사망원인이 심장 발작인지 폐색전증인지 암인지

밝혀낼 수 없다

남아있는 장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독성 화학 물질에 대한 독물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가설 1) 누군가가 음료에 탄 고농축 수면제를 무심결에 마시는 사례

가설 2) 마취와 관련된 의료 사고

가설 3) 요양원의 부주의로 노인에게 약물을 지나치게 투여했거나

애초에 엉뚱한 약물을 투여했을 수도 있다

그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게 바로 법의독물학이다

 

⊙ 임상법의학

법의학은 살아있는 사람도 조사한다

임상법의학(생존자의 상처나 부상 원인을 조사)

지금은 법의학의 필수 분야가 됐다

사망자에게 적용하는 조사 기준을 생존자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누군가가 죽이려다 실패한 걸까? 자해한 걸까?

아이는 넘어진 걸까? 맞은 걸까?

심각한 화상과 피부 병변이 있다면 아동 학대일까? 사고일까?

그 해답은 임상법의학적 조사를 통해 찾아낸다

 

⊙  법의학자의 중요 업무

사망자의 신원 확인

아파트에서 불에 탄 시신이 발견됐다고 치자

시신이 불에 심하게 탔다면 원래 그 아파트에 살던 임차인인지

혹은 집주인이나 다른 누군가인지 알 수 없다

외부를 검안하는 것만으로는 성별조차 판단할 수 없다

※ 검안: 시신의 외부 손상을 조사하는 것

이 경우에는 법의학 고유의 신원 확인 기준을 적용한다

시신의 치아 상태, DNA나 지문을 참고하는 것이다

불에 탄 시신뿐만이 아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시신이 며칠, 몇 주만 집에 방치돼도

외관상 식별이 불가능해진다

경찰도 사진을 대조해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부패로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면 법의학자가 

신원을 밝혀내야 한다

 

⊙ 법의유전학

DNA 검사는 수많은 법의학 기관에서 실시하는

일상 업무 중 하나이다

살인 사건이라면 흔히 미량의 DNA가 남기 때문이다

시신이 발견된 범죄 현장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고 치자

그럼 그 담배는 피해자가 피운 걸까? 범인이 버린 걸까?

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

"발견된 것들이 범죄와 관련 있을까?"

 

&quot;alt&quot;:&quot;법의학의 분류&quot;

 

오늘날 현대 법의학은 수 세기에 걸쳐 발전한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발사와 세신사는 현대 외과 의사의 전신이었다

그들은 법정에서 일부 상처 검사를 맡아 살인인지 사고인지

판단해야 했다

그런 역할을 독일에서는 처음에 병리학자가 맡았다

하지만 병리학자는 법의학자가 아니다

 

20세기 초반, 베를린에는 한 시체 안치소가 있었다

시내에서 신원 미상으로 사망한 시신들은 모두 이곳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선 창유리 너머로 복도에 시신을 전시해 뒀다

실종된 친인척을 찾는 베를린 시민들은 그 시체 안치소로 갔다

시신을 본 유족들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실종된 우리 삼촌이에요!", "저분은 우리 이웃이에요!"

 

그 시절엔 신분증이나 휴대폰이 없었다

누군가의 신원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거나

신원의 단서가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

하노페르셰가의 그 시체 안치소는

당시 대단한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시신을 전시해 뒀으니 마치 관광지 같았을 것이다

20세기 초에 그렇게 보도된 기록도 있다

그 방법이 바로 현대 법의학 중 신원 확인의 시초였다

 

독일의 범죄 드라마나 책을 보면 언제나 상투적으로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다

시작은 꼭 영안실에서 덮게에 싸인 시신을 보여 준다

이어서 불안한 표정의 유족이 들어오면

법의학자가 극적으로 그 덮게를 들춘다

유족에게 시신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고 한다

현실은 전혀 다르다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광경으로

유족에게 큰 충격을 안겨줘선 안 된다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가까운 가족의 부패한 시신이나

크게 다친 모습을 유족에게 보여 줘선 안 된다

그런 건 진부한 설정으로 실제 신원 확인은

완전히 다르다

 

독일에서는 시신이 발견되면 이런 절차를 따른다

우선 유족이 의사에게 연락해 물어본다

지금이라도 심폐소생술로 살릴 수 있을지

아니면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할지 말이다

만일 의사가 검사를 실시하다가

폭력 범죄였다고 판단하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면 그 장소는 범죄 현장으로 분류돼

가족은 물론 그 누구도 접근 못 한다

발견 당시 그대로 아무것도 손대면 안 된다

그렇게 증거 훼손을 방지한 후에 경찰을 부른다

가장 먼저 출동하는 형사들은 현장의 상황을 살펴본다

경찰은 수사 결과를 하나의 사건 파일로 취합한다

사인이 불명확한 그 사건 파일은 검찰 쪽으로 넘어간다

그럼 담당 검사가 부검 실시 여부를 판단한다

 

사실 이 단계에선 정해진 기준이 없다

부검을 실시해야 할지 여부는 오롯이 검사가 결정할 몫이다

부검을 실시하는 기준은 상당히 까다롭다

독일에선 전체 사망자 중 약 3~4%만이 드물게 부검을 받는다

(한국 부검률 3.5% / 출처:대한법의학회지_2022)

검사가 부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면

담당 판사는 반드시 부검 명령을 내려야 한다

번거로운 제도적 절차를 여러 번 거쳐야 하다 보니

독일에선 부검하기가 썩 쉽지는 않다

이때 유족에겐 결정권이 없다

"종교적인 이유로 가족의 시신에 칼을 대고 싶지 않습니다"

부검을 거부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시신은 이미 인계됐고 검찰이 결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왜 합리적일까?

전체 살인 사건의 80% 이상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용의자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외인사를 초래했을지도 모르는 당사자가

고인의 부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면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그 사람이 거절하면 모든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quot;alt&quot;:&quot;미하엘 초코스가 잊지 못할 사건&quot;

 

지난 30년간 법의학자로 활동하면서 평생 못 잊을 사건이 있다

2015년에 연쇄 살인범 질피오 슐츠의 피해자들을 조사했다

그의 주말 농장에서 한 아이의 시신을 파냈다

축축한 상자 안에 아이가 있었다

법정에서 전문 감정인으로 증언하게 될 때 

뒤에는 살해된 아이의 부모가 앉는다

부모들은 내 아이를 어떻게 유인했느냐며 절규한다

앞에는 피고가 앉아있는데 그런 경험은 평생 못 잊는다

특별한 사건이야 굉장히 많았지만 아이가 살해된

사건은 차원이 달라진다

장담컨대 위대한 수업을 시청하신다면

지금껏 전혀 모르셨던 많은 지식을 배우게 될 것이다

시신 조사와 그 필요성, 그 의미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2025. 01. 09. 방송)

 

2강  트렁크 속의 여인

 

 

 

 

사망의 종류와 사망의 원인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우선 사망의 종류는 세 가지뿐이다

병사 / 외인사 / 사인불명

병사: 내과적 질환으로 인한 사망

심장 발작, 암이나 뇌졸중처럼 내과적 질환으로 인한 죽음

외인사: 외부 원인으로 인한 사망

교통사고나 총격으로 인한 사망

어느 노부인이 가방 날치기를 당해 넘어졌다

그때 대퇴골 골절로 입원했는데 며칠 후 사망했다면

그것도 외인사다

보통 검안으로 병사, 외인사, 사인 불명을 판단한다

사인 불명: 검안으로 병사인지 외인사인지 판단할 수 없는 경우 

사인 불명도 외인사와 마찬가지로 법의학자에게 배정된다

병사는 형법상 의미가 없으니 배정되지 않는다

심장 발작이나 암으로 사망한 경우라면 말이다

사인 불명이라면 살인이나 자살로 사망했을 수도 있고

사고사일 수도 있고 자연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에 부검을 권장해서 실시한다

 

사망 원인은 전혀 다르다, 셀 수 없이 많다

사망 원인이 최근 일어난 심장 발작이라면

이는 관상 동맥 경화증 때문이고

또 그 원인은 일반적인 동맥 경화증이다

중요한 것은 사망의 원인이지 종류가 아니

예를 들어 결장암의 종양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간부전이 발생했다면 병사로 분류한다

암 발생, 전이, 간부전 순서다

하지만 마약 과다 복용으로 인한 간부전은

외인사로 분류한다

사망 원인사망 종류구분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사망 원인을 분석해서 간부전처럼 누군가의 

죽음이 병사인지 혹은 외인사인지 구분해야 한다

 

폐색전증(폐의 혈관이 막히는 질환)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사망 원인을 분석했는데 유전적 소인에 의한

폐색전증이 우심부전을 유발했다면 이는 병사이다

유전적 소인, 폐색전증, 내과적 질환의 순서이다

누가 길에서 밀치는 바람에 다리가 부러져 입원했다고 치자

거동이 어려워 병상에서 움직이지 못해 폐색전증으로

죽었다면 이는 외인사이다

법의학에서 어떤 사례들이 부검대 위에 오르는지

일반화할 수는 없다

높은 곳에서 추락사한 경우에도 부검을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명확한 자살로 보이지만 유족이

의구심을 품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명확하다'는 건 정황상 판단하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에서 유서가 발견됐지만

유족은 부인한다

그런 경우 타살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한다

한 요양원에서 노인이 사망한 사건이 있다고 치자

만일 그 요양원에서 사망자가 이례적으로 많이 나온다면

의문을 품어야 할 것이다

수술 후에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환자가 있다면?

심장 카테터 삽입 같은 일상적인 시술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마취에 문제가 있었나?

수술 시 절개 부위를 단단히 봉합하지 않은 걸까?

이런 부분을 확인해 봐야 한다

총기로 인한 사망 사건도 있다

실제로 법의학자에게 주기적으로 배정되는 사건들이다

 

Q. 부검은 어떻게 진행할까?

독일에선 반드시 두 명의 법의학자가 부검에

참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 네 개의 눈 원칙(The four-eyes princlple)

: 신뢰성과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두 사람 이상이 결정을 내리는 원칙

사진이 없던 과거의 관습이 이어지면서

현재 독일의 형사 소송법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부검은 두 명의 법의학자가 진행해야 한다

 

 

◆  부검 절차  

 

1. 외표 검사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신의 외부를 관찰하면서

이상한 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 내용을 전부 기록한다

(머리카락 길이, 양쪽 동공의 팽창 정도가 같은지 다른지)

동공의 팽창 상태로 뇌출혈을 판단할 수 있다

만일 귀에서 피가 나온다면 두개저 골절일 수 있다

※ 두개저 골절: 두개골 바닥의 골절

양쪽 동공이 극도로 수축했다면 헤로인 중독의 징후일 수 있다

 

&quot;alt&quot;:&quot;동공의 수축 정도&quot;

 

입에서 알코올 냄새가 난다면 알코올 중독 가능성이 있다

시신 표면에 두드러지는 변화가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치명적인 감전으로 전기 화상이 있을 수 있다

시반(사후에 중력으로 혈액이 가라앉아 생기는 반점)의

분포 모양도 봐야 한다

사람이 목을 매면 중력의 법칙 때문에

피가 밑으로 쏠려 시반이 다리와 팔뚝은 물론

손에 장갑을 착용한 것처럼 나타난다

목을 매단 시신에 그런 특징이 없다면

누가 사후에 시신을 건드렸다는 뜻이다

외표 검사에선 그런 부분을 파악한다

 

2. 내부 검사

내부 검사 때는 장기를 제거해 확인한다

이는 독일의 형사 소송법에 명시돼 있다

체강(인체 내부의 장기를 수용한 공간) 세 곳을

모두 개방한

두강을 열어서 뇌를 제거하고 흉강을 열어서 

폐, 인후 기관과 심장을 제거하고

복강까지 열어 체강 세 곳을 모두 검사해야 한다

만약 지금 재판을 위해 부검을 실시한다면

심장을 꺼내서 검사한 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는지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심장 발작을 발견한다 해도 부검을 끝낼 수는 없다

법의학자는 모든 장기를 검사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독일 형사 소송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내용이니 따라야 한다

다른 질병과 관련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  부검 후속 절차  

 

1. 독성 검사

부검으로도 사망 원인을 확실히 못 밝힌다면

독성 검사를 시행한다

이때 부검의로서 어떤 검체가 필요한지 판단해야 한다

심장혈과 정맥혈, 위 속에 있는 내용물이나 약물 잔여물

방광 상태를 확인해 채취한다

방광에 소변이 가득하다면 중독사 가능성이 있다

혼수상태로 오랫동안 살아 있었으니 방광이 가득 찬 것이다

부검 후에는 이러한 후속 검사가 진행된다

 

2. 현미경 검사

심장 발작은 현미경 검사가 가장 필요한 예시다

월요일에 한 남성이 사망했는데 그 원인으로

심장 발작이 추정된다고 해 보자

아내는 그럴 리 없다고 경찰에게 말한다

4일 전인 금요일에 남편이 주치의를 찾아갔다

오후 4시에 갔더니 의사가 끝났다면서 진통제를 주고

월요일에 다시 오라고 했다

남편은 월요일 아침에 죽었다

의사가 실제로 진찰하고 심전도를 했다면

확인이 될 것이다

법의학자는 심장 발작이 일어난 시기를 파악해야 한다

병원에 갔던 금요일에 이미 심장 발작이 진행 중이었는지

월요일에 갑자기 발생해 누구도 도울 수 없었는지 말이다

이러한 의문은 현미경 조직 검사로 해소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 DNA인 게놈과 구조를 발견하고 해독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1980년대부터 범죄학과 법의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

지금은 아주 작은 피부 세포로도 완전한 DNA프로필을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용의자의 DNA 프로필을 특정할 수 있다

※ DNA 프로필: 개인의 고유한 DNA 서열 패턴을 분석한 정보의 집합

 

그런데 법의학의 발전, 혁신과 새로운 방식 중에서도

최근에야 도입돼 덜 알려진 것들이 있다

정형외과나 방사선 전문의가 쓰는 CT 스캐너를

법의학자도 똑같이 사용한다

컴퓨터 단층 촬영(CT) 덕분에 마이크로미터와

밀리미터 단위로 인체 전반을 재구성할 수 있다

그 어떠한 법의학 전문 기관도 그런 CT 장비 없이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

보통 부검실이 있는 부검동에 CT 장비가 설치돼 있어

모니터로 촬영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부검할 때 발사체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면 매우 유용하다

그러면 센티미터나 밀리미터 단위로 정밀하게 절개해

살해 흉기와 범죄 현장을 밝히는 데 중요한 발사체를

회수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스위스의 법의학자들이

컴퓨터 단층 촬영 기술을 한층 더 개선했다

법의학계는 당시 개발된 '가상 부검' 방식을 보편적으로 채택했다

※ 가상부검: 법의학적으로 개선된 CT나 MRI 같은 장비로 조사하는 비침습적 부검 방법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남편이

자녀들 앞에서 아내의 목을 벴다

3층 발코니에서 안뜰로 머리를 던져 버렸다

그 장면을 목격한 이웃과 아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quot;alt&quot;:&quot;아내 살인 사건 몸통 사진&quot;

 

당시 CT 스캔을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부검할 때 후두와 설골을 제거하는데

바로 그 부위에 부러진 칼날이 박혀 있었다

칼날의 존재를 몰랐다면 분명 크게 다쳤을 것이다

 

&quot;alt&quot;:&quot;가방 속 시신&quot;

 

성인인 두 자녀가 어머니의 실종 신고를 하면서 시작된다

두 자녀는 부모님이 다퉜고 그동안 갈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여자의 남편은 그 직후에 자취를 감췄다가

빈에서 인터폴에서 체포돼 베를린으로 송환됐다

아내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기 때문이다

남편은 아내를 폭행해서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는 경찰과 법의학자를 데리고 베를린 인근의

한 주차장으로 가서 매장된 장소를 알려줬다

거기서 여행 가방을 찾아냈다

그때 CT로 여행 가방을 검사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피해 여성의 시신이 담긴 비교적 작은 여행 가방이다

 

&quot;alt&quot;:&quot;다수의 골절로 인한 사망&quot;

 

이 사건을 평생 잊을 수 없는 건 시신을 직접 보기도 전에

사망 원인을 알았기 때문이다

CT 사진 덕분이었다

법의학자로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건

피투성이 부검 사진을 띄운 채 법정에서

전문 감정인 진술을 하면 판사든 참심원이든

참혹한 사진에 괴로워하며 귀를 닫아 버린다

※ 참심원: 판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진 일반인 판사

하지만 중립적인 흑백 CT 이미지라면

법의학적 소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2025. 01. 10. 방송)

 

3강  살충제 독살 사건

 

 

 

 

법의학 수사의 핵심 중 하나는 사망 시각을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은 정확한 시점이다

이는 목격자 진술과 대조할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또한 비디오 기록이 있다면 사망 시각과 비교해

난폭한 범죄의 가능성을 확인하거나 배제할 수도 있다

살인 사건이 나면 법의학자도 범죄 현장으로 출동한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출동한다

그런 업무를 도맡는 긴급 대기조도 있다

 

법의학자는 시신이 발견된 범죄 현장에

'현장 조사 키트'를 가져간다

 

&quot;alt&quot;:&quot;현장 조사 키트&quot;

 

처음에는 경찰 감식반과 신경전이 있다

경찰도 증거를 위해 빨리 현장에 접근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접착테이프로 섬유 흔적을 확보하고 현장 지문을 채취하며

사진도 찍길 원한다

하지만 법의학자도 현장 접근을 빨리 해야 한다

사후 초기에는 비교적 사망 시각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정확히'는 플러스 마이너스 2시간이다

예를 들어 한 아파트에서 시신이 나왔다

찢기고 찔린 상처가 발견돼서 정황상 살인 사건 같다

법의학자는 감식반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시작한다

사후 신체는 냉각되니 외부 영향이 적은 직장 온도를 먼저 측정한다

탐침이 긴 특수 체온계를 항문에 삽입하면 직장 온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주변 온도도 측정해서 두 가지 모두 기록한다

 

★ 직장 온도로 어떻게 사망 시각을 파악하는 걸까?

사람의 체온은 37도를 약간 밑돈다

편의상 37도로 가정해 보자

심장 박동이 멈춘 시점을 기준으로 사후에는

체온이 약 3시간 동안 일정하게 유지된다

중요한 건 체온이 쭉 유지되다가 시간당 1도씩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탐침봉으로 직장을 측정한 결과

사망자의 심부 체온(신체 내부의 중심 온도)이

30도라면 사망한 지 10시간이 지난 것이다

왜 10시간일까?

37도에서 30도로 떨어졌다면

시간당 1도씩, 7시간이 지났다

초반 3시간은 체온이 유지되니 10시간이 지난 것이다

 

또한 현장에서 시반의 형태와 사후 경직도 조사한다

※ 시반: 사후에 중력으로 혈액이 가라앉아 생기는 반점

사망하면 20~30분 후에 사후 경직이 시작돼

약 4시간 후에 끝난다

즉 손가락이나 팔꿈치 쪽의 작은 관절은 물론이고

무릎 관절과 고관절 굴근까지 경직된다는 것이다

온몸이 사후 경직됐다면 최소 4시간 전에 사망했단 뜻이고

경직이 덜 됐다면 4시간이 안 된 것이다

시반도 정해진 패턴이 있다

사후 12시간 전까지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면

시반이 사라진다

약 20시간이 지나면 거의 불가능하고

24-30 시간이 지나면 아예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징을 포함한 모든 발견을 기록한다

 

동공 확장제나 동공 수축제를 시신의 눈에 주입하기도 한다

약리학적 흥분성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 약물을 넣어 동공의 수축이나 팽창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세부 정보를 소프트웨어에 입력하면

사망 시각을 계산해 준다

이상적인 경우 이 소프트웨어가 두 시간 내의 오차 범위로

사망 시각을 알려 준다

 

범죄 스릴러 드라마에서 법의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여성은 오전 12시 32분에 사망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게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여성의 사망 시각은 자정을 기준으로 두 시간 내외입니다"

사실 요즘은 사망 시각을 훨씬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워치 덕분이다

스마트워치는 사망자의 심장 혈관 계통과

혈액 순환을 추적 관찰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에서 한 남성이 실종됐다

나중에 그가 살해됐다는 사실과 정확한 사망 시각까지 밝혀졌다

사망자가 스마트워치를 착용했다면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늘 명심해야 할 점은 다른 의사들과 달리

법의학자는 환자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상은 언제 나타났고 언제 처음 시작됐죠?"

"여기랑 여기 중에서 어디가 더 아픈가요?"

법의학자는 시신을 바탕으로 단서를 찾아야 한다

누군가의 마지막 몇 분이나 몇 시간을 되짚어

추적해야 한다

법의학자가 마주하는 여러 상황을 보자

 

* 철로에서 발견된 남자

 

&quot;alt&quot;:&quot;철로 위의 시신&quot;

 

처음에는 모든 정황이 자살을 암시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살한 것인지 혹은 자살로 위장한

살인 사건인지 부검으로만 밝힐 수 있다

명백한 생활 반응 때문이다

※ 생활 반응: 살아있을 때 사고나 외상으로 신체가 반응해 생긴 현상

사람은 기차에 치여도 생활 반응이 남게 된다

피가 나는 상처는 물론 혈액을 흡입한 흔적도 발견된다

숨을 한 번만 들이쉬어도 이런 흔적이 남는다

머리가 절단된 시신의 기도에 피가 차 있다면

기차에 치였을 당시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만일 그러한 생활 반응이 없다면 이미 죽은 상태로

철로에 있었다는 의미이다

 

☞  여기서 관건은 다른 사망 원인이 있는가다

혹시 그전에 목을 졸렸거나 칼에 찔린 거라면

다른 상처는 없을까? 독살된 건 아닐까?

당시 독일에선 E605라는 특정한 살충제를 사용했다

이 살충제는 이른바 '검은 과부들(Black Widows)'

즉 남편을 죽인 여성들에 의해 쓰였다

그걸 커피에 타면 맛이 안 난다

그들은 시신을 철로 위로 끌고 가 남편을 자살로 위장했다

그런 시신이 발견되면 법의학자는 보통 현장으로

출동해 조사를 한다

 

* 목을 맨 여자

목을 맨 사람에게는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

진짜 살아있을 때 스스로 목을 맸을까?

독일에선 목을 매다는 게 가장 흔한 자살 방법이다

기차에 치였을 때처럼 목을 맨 경우에도

명백한 생활 반응이 남는다

예를 들어 타액 자국이 남는다

목에는 내장과 연결된 가장 큰 신경인

미주 신경이 있어서 압박하면 타액이 분비된다

그래서 사람이 목을 매면 종종 입가에 침 자국이 남는다

물론 목을 매단 자국도 명백한 패턴을 따른다

목을 매달았다면 자국은 목덜미 쪽으로 올라가고

누가 목을 조른 거라면 그 자국은 가로로 남는다

목이 졸리면 교살당한 자국이 남는다

 

< 교살의 세 가지 유형 >

1. 액사(손 조름)

액사는 한 손이나 양손으로 앞이나 뒤에서

타인의 목을 압박하는 것이다

2. 교사(끈 조름)

교사는 목에 올가미 같은 도구를 감아서

타인이나 자신의 힘으로 꽉 조여 질식시키는 것이다

3. 의사(목맴)

체중으로 인해 밧줄이 조여져 목이 압박되는 것이다

그래서 목을 매단 자국은 목덜미 쪽으로 올라간다

 

&quot;alt&quot;:&quot;교살된 사람을 매달기&quot;

 

사망자가 실제로 목을 맸는지 혹은 달리 살해됐는지는

법의학적 조사로 확실히 밝혀낼 수 있다

사망자는 이 도식처럼 교살된 걸까?

물론 경찰의 수사도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말기 암으로 투병했다면 그게 자살의 원인 아닐까요?"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었나요?", "실직했나요?"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느꼈나요?"

이러한 경찰의 수사 결과들은 모두 검찰의

최종 판단에 반영된다

전형적인 예시를 보자

 

&quot;alt&quot;:&quot;권총을 쥐고 죽은 시신&quot;

 

보통 총은 떨어진다

스스로 총을 쏘면 옆으로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트린다

이 사진에서 사망자는 계속 총을 쥐고 있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법의학에서는 한 가지 법칙이 있다

만일 자살로 보이는 사망자의 손에 총이 있다면

분명 자살로 위장하려고 누가 나중에 쥐어준 것이다

다만 늘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위 사진은 업무용 총기로 자살한

경찰의 손으로 총을 계속 쥐고 있다

법의학적 법칙으로 보면 자살 위장으로 의심해

살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이든 전체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사망자가 스스로 머리를 쐈다면 총이 흘러내려서

손과 몸통 사이에 있을 수 있다

이 남성은 숲에서 자살하면서 뒤로 넘어졌고

그때 총을 쥔 채로 손이 흘러내려 이렇게 발견된 것이다

 

법의학자는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야 한다

시신마다 사망 원인과 발견된 자세는 무궁무진하다

법의학자의 실제 사건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때로는 소설보다 현실이 훨씬 황당하다

 

한 남성의 시신이 베를린의 어느 막다른 골목

풀밭에서 발견됐다

사망한 남성은 머리를 다친 채 풀밭에 쓰러져 있고

5m 떨어진 곳에는 피가 고여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인 추정 1 > 개를 산책시키거나 출근하던 중에

갑자기 심장 발작이 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몇 미터 거리에 피가 고였을 리 없다

사인 추정 2 > 자살하려고 건물에서 뛰어내렸을 수도 있지만

근처에 가장 가까운 주택은 20m 거리이다

사인 추정 3 > 어쩌면 교통사고로 차에 치여 풀밭에 쓰러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막다른 골목이므로 이 거리에선 불가능하다

차가 고속으로 달려오기 힘들고 그렇다 해도 피 웅덩이에서

그렇게 멀리 날아갈 수도 없다

실은 누군가가 시신을 유기해 그곳에 둔 것이다

 

이 남성은 정신 질환과 심각한 심리적 문제가 있었다

당시 독일은 대마가 불법이었는데 그는

브란덴부르크주의 대마 농장에서 일했다

농장에서 일하던 그는 어느 순간 2층 창밖으로

뛰어내려 자살을 한 것이다

대마 농장주들은 고민했다

대마 불법 재배를 은닉하려고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한 것이다

의사를 불렀다간 냄새 때문에 재배 중인 걸 눈치챌 테니

베를린에 시신을 유기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망자의 신원이 밝혀지자마자

불법 대마 농장도 금세 꼬리를 밟혔다

 

이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시신이 발견된 장소가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알려 주는 건 아니다

 

 

 

 

 

(2025. 01. 13. 방송)

 

4강  인도양 쓰나미의 희생자들

 

 

 

 

임상법의학은 비교적 새로운 법의학 분야이다

살아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하는데

보통 범죄 생존자를 대상으로 한다

아동 학대 피해자인 어린이라든가

가정 폭력 피해자인 여성이나 남성은 물론

성범죄 피해자인 여성이나 남성이 해당된다

요양원에서의 노인 대상 폭력도 다뤄진다

☞  생존자에게도 사망자와 동일한 검사 기준을 적용

활용하는 분야이다

 

머리의 찢긴 상처가 넘어진 건지 맞은 건지 판단할 때

임상법의학을 적용한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곳은 아동 학대이다

 

&quot;alt&quot;:&quot;일반적으로 아동이 다치는 부위&quot;

 

이 그림을 보면 학대 피해 아동이 일반적으로

다치는 부위를 확인할 수 있다

학대, 구타, 뜨거운 물에 의한 화상 등

외력에 의한 부상을 정리한 자료

등과 엉덩이는 물론이고 손의 신근 쪽이나

손등을 다쳤다면 아동 학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알다시피 넘어지면 손부터 땅에 닿아 손바닥이 다친다

 

&quot;alt&quot;:&quot;아동 학대를 암시하는 부위&quot;

 

파란색 표시는 낙상으로 다칠 수 있는 부위로

무릎이 포함된다

반면 빨간색 표시는 아동 학대를 강력히 

암시하는 부위다

특정한 형태로 남는 상처도 있다

이러한 형태학적 손상은 구타에 쓰이는

도구 때문에 생긴다

여기서 '도구'는 망치나 끌이 아닌 범죄에 쓰인 도구를 뜻한다

신발을 신은 발도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럼 신발이 범죄 도구니 신발 밑창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도구로 때린 자국의 경우 혈종과 상처의 형태가

구타한 도구의 윤곽을 그대로 닮는다

 

병리생리학적 원리는 굉장히 단순하다

길쭉한 물체로 표피를 때리면 혈액이 중심에서

측면 쪽으로 밀려난다

 

&quot;alt&quot;:&quot;표피를 때리면 혈액이 측면으로 밀린다&quot;

 

충격으로 순간적인 압력이 가해지면 혈관이

찢어져 두 줄짜리 윤곽이 생긴다

중간이 창백하고 양 옆이 붉은 두 줄짜리 윤곽은

막대기 같은 길쭉한 도구로 때린 전형적인 상처다

특정 부위에 두 개 이상의 상처가 생기면

'군집성 손상'이라고 하는데 국소적으로 나타나는

상처의 형태 중 특히 이런 두 줄자리 상처는

아동 학대를 강력히 암시한다

 

다음 사례를 보면 두 줄짜리 상처와

아동 학대의 또 다른 척도인 군집성 손상도 보인다

 

&quot;alt&quot;:&quot;두 줄짜리 아동 학대 상처&quot;
출처: 미하엘 초코스 제공

 

어린이가 엉덩이부터 넘어진다고 혈종이 생기지는 않는다

이건 분명한 학대의 결과이다

이러한 흔적이 명확히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quot;alt&quot;:&quot;손자국으로 나타난 가정 폭력 사례&quot;

 

신체 표면을 때린 손자국으로 가정 폭력 사례이다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얼마나 잔혹하게 구타가

행해졌는지 보여준다

 

법의학자의 핵심 업무는 사망자의 신원확인이다

아파트의 불에 탄 시신이라든지 부패한 시신을 예로 들었다

여기에 대형 재난 현장도 포함된다

법의학자는 열차 사고나 비행기 추락, 2004년의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에도 참여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한다

2004년 12월 28일에 태국 푸껫을 찾았다

독일 연방 범죄 수상청에서 독일 정부 대표로

사망자의 신원 확인을 돕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2004년 12월 26일에 동남아시아의 대부분을 초토화한

파괴적인 쓰나미가 발생하고 이틀 후였다

※ 인도양 쓰나미

: 인도네시아 해안 인근의 강진(규모 9.1~9.3)으로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해 인도네시아, 태국 등 14개국에서

약 30만 명이 사망한 재해

 

수만 명이 장기 합병증으로 병원에서 사망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신원 확인 프로젝트였고

지금까지도 이를 뛰어넘는 사건은 없다

나무에 매달린 시신을 수습하기도 했고

어디서든지 물만 퍼내면 20-30구의 시신이 나왔다

지구 종말을 방불케 하는 대참사였다

당시 우리 팀은 그런 상황을 감당해야 했고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서 부검을 진행했다

당연하게도 부검대는 없었고 CT 스캐너나 

엑스레이 기계도 없었다

불교 문화권에서는 독일만큼 부검이 흔하지 않다 보니

임시로 만든 나무 탁자에서 부검을 해야했다

현장 조사 키트와 도구는 각자 챙겨 갔지만

처음 몇 주간은 너무나 큰 난관에 부딪혔다

시신이 햇빛 아래서 며칠 만에 부패했다

대부분 시신이 까맣거나 초록색으로 변했고

부패가 심각했다

신원 확인을 위해 이런 현장으로 유족을 보내선 안 된다

"제가 직접 가서 푸껫 인근에서 휴가 중이던 부모님이 맞는지 확인할게요"

많은 유족이 이렇게 말했지만 그건 의미가 없다

얼굴이 워낙 부패해서 시신의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법의학계에선 검안으로 신원을 밝히는 게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당시 신원 확인은 우리가 도맡았다

1년 동안 전체 실종자 중 약 96%의 신원을 확인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만 약 30만 명이 사망했으니

일단 사망 가능성이 있는 사람부터 파악해야 한다

각 항공사와 호텔 및 여행사는 물론 현지 당국에도 연락해서

피해 지역에 머문 사람들을 파악해야 한다

동시에 검시를 통해 사후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리고 30만 명의 사망자와 대조할 신원 정보도 찾아야 한다

 

유럽 내지 독일에서는 살인 사건 수사과에서 실종 사건을

담당하는데 이런 정보를 입수한다

'XY의 가족 중 3명이 태국의 이 호텔에 묵었다'

그럼 그들은 유족에게 연락한다

"태국에 있던 가족 세 분의 의료 데이터가 필요한데 다들 어느 치과에 다니셨죠?"

"잘 모르겠어요. 어느 치과인지 기억이 안 나요"

그러면 경찰은 보험사를 통해 사망자의 치아 상태를 확인한다

치과 차트에는 충전재를 넣은 곳부터 보철 브리지 치료를 받은

위치까지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될 만한 치과 진료 내역이 담겨 있다

독일에선 거의 모든 국민이 치과 치료를 받는다

아시아 국가들은 식습관이 건강하다 보니 치아 상태가 좋았다

당시 현장 확인 결과 치아 상태가 좋으면 전부 태국인이었다

실제로 치아 상태가 나쁘거나 치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유럽인이었다

 

이어서 경찰은 사망자의 칫솔이나 빗을 구해서 

DNA를 분리한 후 DNA 프로필을 제작한다

그리고 경찰은 사망자의 수술 경력도 조회한다

심장 판막, 담낭 제거 등 각종 수술 기록이 있는지 알아본다

30만 명 전원에 대한 그런 데이터가 필요하다

생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입수하는 모든 정보를 입력한다

현장에는 전 세계에서 모인 수많은 법의학자가

검시 데이터를 모으는 임무를 맡았다

부검 과정에서 지문을 채취하고 치아 상태를 기록하며

사망자의 담낭이나 맹장은 있는지 인공 심장 판막을

삽입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 후에 양쪽의 데이터를 상호 대조하는데 

조사가 끝날 무렵에는 일치율이 굉장히 높아진다

실제로 우리 팀은 2004년 동남아시아 쓰나미 당시

전체 실종자 중 96% 이상의 신원을 밝혀낼 수 있었다

 

30년 가까이 법의학자로 활동해 오면서

굉장히 많은 해외 임무와 과제를 수행했는데

해외 임무는 특히나 더 의미 있다

2004년과 2005년의 동남아시아 쓰나미뿐만이 아니다

 

1998년에 해외 임무를 처음 맡았는데

헤이그의 국제 전범 재판소 대표 자격으로

스레브레니차 학살 피해자들을 위해 보스니아를 찾았다

※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1995)

: 구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 중 세리비아군이 약 8천 명의 이슬람 교도 학살

당시 현지에서 부검을 진행했다

구유고슬라비아에서 저지른 전범의 증거를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1999년에는 코소보를 찾았는데 구유고슬라비아의

준군사 조직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종 청소를 벌인 후였다

당시 여러 법의학 전문가가 시신의 신원을 밝혔다

 

2011년에는 카자흐스탄에서 연쇄 살인범의

피해자들을 조사했다

빈에 있는 어느 로펌이 석회토엥서 발견된 시신 두 구의

신원과 사망 원인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전용기로 카자흐스탄에 간다니 그때는 마냥 놀라웠지만

유력한 용의자가 대통령의 사위라는 건 몰랐다

그래서 구소련의 다른 법의학자들은

그런 위험한 임무를 맡지 않은 것이다

 

카메룬에서는 인터폴을 도와서 살해당한 걸로 

의심된다는 주교를 부검했다

 

이러한 과제는 특히 의미 있다

해외에서 일할 때는 현지 동료들과 친해져서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고 현지의 특성이나

법의학 체제도 알 수 있다

법의학자 입장에선 금상첨화다

 

인간은 타인에게 큰 고통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목격하는 장면들 때문에 우울해지거나

모든 인간이 사악하다고 믿는 인간 혐오자가 되진 않는다

주기적으로 죽음을 다루고 죽음의 다양한 측면을

매일 마주하다보면 삶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

그게 법의학자라는 직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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