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위대한 수업 4 그레이엄 하먼(철학의 최전선) 1~5강
위대한 백스물 네 번째 강연 '철학의 최전선' (시즌 4 네 번째)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 철학자
LA 서던캘리포니아 건축 학교 철학 교수
가장 영향력 있는 현존 철학자 50인(The Best Schools, 2016)
(2024. 10. 21. 방송)
1강 재앙적 사고는 왜 위험한가
⊙ 재앙적 사고(Catastrophism)
어떤 상황에서 최악의 결과에 집중하는 경향
미래를 대비할 때는 예방 차원에서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잠재적 재앙에 너무 집중하면 어떻게 될까?
일어날 확률이 훨씬 높은 중간 및 큰 규모의 위기를 놓치게 된다
몇몇 허무주의 철학자는 우주 전체가 결국 열죽음을 맞아
어떤 흔적도 없을 테니 모든 삶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이 급진적 주장은 겨우 몇십 년 된 물리학 이론에 기반해
훗날 크게 수정될 수 있지만 어쨌든 재앙적 사고의 한 예이다
2024년 4월 16일 옥스퍼드 대학은
인류 미래 연구소를 폐쇄했다
2005년에 스웨덴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설립해
운영했던 연구소이다
연구소에선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를 연구했다
(핵전쟁, 팬데믹, 인공지능의 반란, 소행성 충돌 등)
이런 위험을 걱정하고 재앙을 막는 연구를 하는 건 중요하다
최근 미국의 저널리스트 애니 제이콥슨이
'핵전쟁: 시나리오'라는 책을 썼는데 저자는 핵전쟁의
끔찍한 결과뿐 아니라 우발적인 핵전쟁 예방법과
의도적인 전쟁이라도 덜 위험하게 무기 수를
줄일 방법을 논의한다
이런 걱정 역시 재앙적 사고이다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부터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티머시 모튼은 2013년 '하이퍼객체'에서 말했다
'무한대라고 외치기는 아주 쉬워'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1~10,000까지 세기는 아주 어려워'
요점은 기후 위기가 지구를 영원히 파괴하는 게 아니다
우리 앞으로 서너 세대의 인간 수명을 뛰어넘는 긴 시간에 걸쳐
지구를 심각하게 훼손할 거라는 것이다
2021년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보고에 따르면
당장 탄소 배출을 중단해도 해수면은 수 세기 동안 상승한다고 한다
즉 세계의 많은 해안 도시가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우리 행동은 미래 세대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먼 미래에 대한 무거운 책임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세상은 약 30~40년 뒤만 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기후 위기도 지금 시각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
허무주의 철학자는 먼 미래의 일 때문에 비관적 태도를 취한다
모든 물질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거나
모든 원자가 수십억, 수조 년 후에 썩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의견은 드물고 대부분 철학자는
죽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인간은 대부분 100년 안에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도 그런 경우다
그는 철학 전문가뿐 아니라 초심자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는 우리가 내적 자아에 거의 진실하지 않다는 걸 꿰뚫어 봤다
우리는 대부분 문화적 진부함과 습관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진정한 나의 삶이 쇠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남을 따라 한다
죽음이란 우리가 최후라고 믿는 심오한 것이다
누군가는 과하게 받아들여 묘지에서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하이데거의 말은 일리 있다
죽음을 떠올리면 불안하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자유와 해방감을 느낀다
하지만 동시대 철학자 헬무트 플레스너는 이에 반박했다
플레스너의 요점은 반재앙적 사고의 좋은 예이다
우리는 블랙홀과 원자, 미지 물질의 지식을 통해
우주의 종말이 와도 세심히 대비할 수 있게
몇십 년 안에 준비할 것이다
재앙적 사고는 일종의 조급한 사고이다
먼 미래를 예측하려면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을
고려해야 한다
그 일들이 미래에 대한 우리 인식을 바꾸기 때문이다
우리는 1440년에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하기 전에
어떻게 글을 썼는지 안다
근대 인쇄 문화가 어땠는지도 안다
하지만 두 시대 사이, 과도기에 대해 아는 건 훨씬 적다
잠재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40년 뒤 모두가 전기차를 몰 거라고 상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수반할지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잘 모른다
냉전 시대, 1950년대나 1960년대 초반에는
모두가 핵전쟁에 철저히 대비했다
애니 제이콥슨은 책에서 여전히 그 가능성을 경고하며
책 후기에 한 미국 군사 권위자의 말을 인용했다
실제로 미국과 소련이 각각 두 개의 핵무기를
우주에서 폭발시켰다고 한다(쿠바 미사일 위기, 1962)
서로 겁주려는 의도였겠지만 하마터면 존 F. 케네디 정권에서
일어날 뻔한 핵전쟁을 실제 촉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최악에 대한 공포는 핵무기로 일어난
실제 변화를 가려 버린다
군사적 절차 같은 뚜렷한 변화나 대규모 핵 재앙에
대비해 작성한 비상 시나리오 같은 것들이다
미국에서 1960년대에 핵무기 때문에 헌법을 개정했다
새로 수정한 헌법에는 대통령직 승계 순서가 명시됐는데
핵 습격으로 대통령과 부통령 등 고위 각료가 사망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핵무기는 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끼쳤다
"1945년 최초의 원자 폭탄 사용으로 예술과 철학에서
인본주의가 사라졌다"_피터 아이젠만(미국 건축가)
모든 논의의 중심에 인간을 두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끝났다는 뜻이다
아이젠만은 이후 실용성을 최소화한 건물을 설계했다
심지어 식당이나 안방 가운데에 기둥을 세우기도 했다
인간이 쓰기 위한 건축에서 벗어나
인간과 관련 없는 독립된 건축 객체로 초점을 옮긴 것이다
※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자 폭탄
새롭고 강력한 비인간 객체의 등장으로
인간의 존재가 위협받으면서 역사는 근본적으로
바뀌고 둘로 갈라졌다
오펜하이머와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팀은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폭탄 제조의 기술적 문제와 세계적 재앙에
다 초점을 맞췄다
여기에 기후 변화의 교훈도 있다
최근 '멸종 저항'이라는 단체의 소식이 많다
이름대로 우리 생애에 인류가 멸종하지 않도록
저항하는 청년 단체다
사실 인간 멸종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가이아 이론을 세운 두 과학자도 비관적이지만
전망을 내놨다(제임스 러브룩, 린 마굴리스)
※ 가이아 이론(Gaia Theory):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연결됐다는 이론
"2100년 인구는 약 10억 명만 남을 것이다"
인구가 거의 90%는 감소한다는 뜻이다
생존자는 거의 뉴질랜드와 아일랜드 같은 섬나라에
살 거라고도 했다
무서운 결과지만 멸종은 확실히 아니다
짐작건대 인류는 10억 명만 남아도 잘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많은 해안 도시가 사라지고
더 심각하게는 불안정한 기후 패턴으로 식량 공급이 줄어들 것이다
대규모 이주와 정치 불안정이 초래될 것이다
우리는 문명의 종말에 불안해하는 대신
심각한 피해와 급진적 변화가 다가오는 걸
걱정해야 한다
그러면 절망이 마비되지 않고 희망의 빛을
찾기도 더욱 쉬워진다
유능한 전문가들이 멸종 문제를 다루는 동안
나머지는 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에
집중하는 편이 좋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재앙적 사고의 반대 개념도 있다
★ 유토피아 주의(Utopianism)
가끔 완벽하려고 애를 쓰다가 오히려 꽤
좋은 상황을 망친다는 뜻이다
재앙적 사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으로
우리가 아끼는 사람과 사물에 대해 최악의 결과를 걱정한다
이는 재앙 예방에 도움은 되지만 일어날 확률이
더 큰 중대형 문제로부터 우리 주의를 분산시킨다
재앙적 사고는 인간의 본성일까?
역사의 특정 시점에 나타난 경향일까?
이 경향을 뒷받침하는 심리 요인이 있다
'재앙에 집중하면 일어날 가능성이 큰 진짜 문제를
직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바꿀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철학자는 세상을 구하려 애쓰는 대신 문명을 완전히
바꿀 변화를 인식하고 잘 다루도록 도울 수 있다
우리 생애 내에서 말이다
하지만 대개 철학자에게 가장 유익한 일은
사람들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중간 규모나
큰 규모 위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인류는 멸망할 거라는 믿음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2024. 10. 22. 방송)
2강 AI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 Chat GPT
2022년 말 챗GPT가 공개됐다
학생들의 과제가 갑자기 수상하게 훌륭해져
대학교수에게는 위기였다
우수한 과제가 챗GPT의 결과물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학생들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부정행위 기술에
접근한대도 학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는 잠재적인 더 큰 문제에 비하면 사소하다
작년에 '인공 지능의 대부'로 불리는 제프리 힌턴은
자신이 개발을 도운 기술이 두렵다며 구글에서 퇴사했다
힌턴은 인공 지능이 인간 멸종을 이끌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30년 안에 멸종할 확률이
10%라고 말했다
⊙ AI 위험
1. 악의적인 AI가 세계 지배를 위해 고의로 인간 말살
2. 해커가 이익을 위해 AI 시스템에 침투
3. AI가 소프트웨어 오류 또는 경쟁국의 과장된 위협으로부터
주인을 지키기 위해 핵전쟁
4. AI로 인한 대량 실업과 사회 불안정
우리는 늘 힌턴과 다른 사려 깊은 전문가들이
최악을 고민하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대안으로 보이는 순진한 기술 낙천주의는
지능적 사고 기계의 좋은 면만 보려고 한다
의료 진단의 혁명이나 치료제의 신속한 개발 등을 기대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재앙적 사고의 위험성이 있다
일어날 확률이 더 큰 중간 수준의 일에 집중 못 하게 한다
♧ AI 기술은 인간의 노동과 창작의 지위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1990년대 초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 당시 건축 대학원
학장은 스위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였다
추미는 컬럼비아에서 최초로 종이 없는 작업실을 열었다
학생들은 새로운 컴퓨터 기술로 작업법을 배워
오래된 종이와 연필 작업의 시대를 끝냈다
당시 많은 선배 건축가는 이를 무시했다
"그건 진짜 건축이 아니야!"
"손을 쓰지 않으면 컴퓨터가 모든 결정을 내릴 거야
결국 기계의 꼭두각시가 되겠지"
이 보수적인 걱정은 근거 없다고 판명 났다
30년 후 지금 모든 건축가가 컴퓨터를 쓴다
종이에 직접 그리는 건 아주 드물다
더 좋은 기술을 쓸 수 있는데 왜 피하겠는가?
새로운 세대의 학생은 미드저니 같은
인공 지능을 쓰게끔 권유받는다
※ 미드저니(Midjourney): 생성형 AI 이미지 소프트웨어
하지만 1994년 종이 없는 작업실에
쏟아진 비판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 학생들은 건축을 하는 게 아니야
컴퓨터가 대신 생각해 주는 거야"
어쩌면 건축 학교 입장에서 훨씬 무서운 사실은
곧 컴퓨터가 건축가를 완전히 대체할 거라는 공포감일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재앙적 사고이다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이 어떨지 탐험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마취제 초기, 수술 중 고통은 정신적 가치가 크다고
반대한 비평가처럼 AI 기반 건축을 반대하면
또 다른 가능성을 놓치는 것이다
여러분은 이미 달리(Dall-E) 같은 소프트웨어나
특정 설명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AI를 써 봤을지도 모른다
※ 달리(Dall-E): 생성형 AI 이미지 소프트 웨어
힙합을 무시하는 음악가들은 다른 사람의 음악
샘플을 사용한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물론 라이브 연주자가 존경할 점이 많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한다지만 이런 비판은
인간 활동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것이다
음악은 조직화된 소리 패턴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조직해 긴장과 이완이 교체하는 패턴으로 청중의 감정적
참여를 유도하는 예술이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음악을 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름답고 낭랑한 소리를 내도록 정교하게 만든
물체를 사용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학생들은 거장이나 공인된 학교에서 배우며
익숙해진 악기로 음악을 만드는 기술을 익혔다
하지만 이 작업을 신시사이저나 노트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런 가능성을 잘못된 일로 봐야 할까?
AI 그림이나 건축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술이 예술의 범위와 힘을 확장한다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장려해야 한다
최근 수십 년간 전 세계 많은 미술학도는
전통적 미술 실천보다 큐레이터가 되는 데 중점을 뒀다
타인의 작품으로 생각을 자극하는 전시 기획을 배운다
처음에는 이런 추세가 흔해 걱정되고 혼란스러웠다
모두 큐레이터가 되면 미래의 예술은 누가 창조할까?
그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예술인 힙합이 떠올랐다
초기 창작자인 흑인을 넘어 널리 퍼져 나갔다
최근 이란 힙합 가수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저항 음악의 힘이 여성 권리 옹호에 쓰였기 때문이다
창작과 큐레이션이 손잡을 수 있다는 명확한 사례다
타인 혹은 컴퓨터 작업으로 얻은 샘플도 소리나
형태를 모자이크처럼 조합하면 인간이 만든 음악과
똑같이 강력하거나 그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
우린 큐레이션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큐레이션은 예술에 위협이 아니다
근대 건설 장비의 발명이 건축에 위협이 아니었듯 말이다
예술가는 수고를 상당 부분 덜어냄으로써
더 근본적인 인간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량 생산된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지 선택하면서 말이다
철학에서는 머지않아 컴퓨터가 인공적으로 쓴 수많은
철학책이 우리를 압도할지 모른다는 새로운 우려가 있다
하지만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별하기 위해 다 읽진 않으므로
철학 큐레이터에게는 분명 미래가 있다
예술과 과학처럼 최고의 철학을 결정짓는 건
개인의 안목이다
방대한 출판물과 자료 사이에서 가장
의미 있는 걸 골라내는 능력이다
21세기의 우리는 낡은 방식을 고수하는
재앙적 보수주의를 선택하거나 게으르게 화면만 바라보는
재앙적 마비를 선택할 필요가 없다
미래의 철학은 샘플링과 새로운 자료를 조합해
과거보다 뛰어난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인간 큐레이터가 있다면 고급문화도 힙합의
창의성을 차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인공 지능이 드레이크와 셰익스피어 작품을
진짜처럼 모방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진실과 현실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인간은 오래전부터 예술가의 작품을 내용으로 평가했다
평생 일정량의 작품만 발표했고 그건 직접 만든 거였다
예술가가 창조하는 건 작품 자체가 아닌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스타일은 다른 인간이나 인공 지능이 흉내 낼 수 있다
현대 사건을 다룬 셰익스피어의 신작
희곡 10편을 읽는다고 상상해 보자
당연히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그가
직접 쓴 것처럼 느껴질 만큼 명백한 그의 스타일이다
셰익스피어 학자인 위트모어는 오랫동안 워싱턴에 있는
셰익스피어 도서관장이었다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을 문법적으로 분석해 연구를 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오셀로'를 읽어보니
놀랍게도 다른 작품보다 더 많은 농담을 발견했다
희극으로 기획됐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인간의 머리로 얻기 힘든 이런 통찰력은 컴퓨터의
도움으로 얻을 수 있다
스타일을 분석해 상상 이상으로
기술적 정확성에 도달할 수 있다
가짜와 속임수의 위험이 있겠지만 이는
예술계와 학계에 멋진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물론 AI를 실행하는 것에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악한 정부나 탐욕스러운 기업이 이익을 위해
AI를 악용하는 건 상상이 쉽다
다행히 제프리 힌턴 같은 인물이 계속
경고하고 경각심을 심어준다
AI는 육체노동이라는 덜 중요해진 역사적
동향으로부터 초점을 옮긴다
음악, 건축, 철학을 창작할 때 그렇다
우리가 정한 기술 지침에 따라서
인간의 에너지를 가장 필요한 곳인
AI가 만든 결과물을 고르고 버리고
조합하는 일에 쏟게 한다
산업혁명이 인간의 노동을 위탁했고
AI 혁명이 인간의 창작을 위탁한다면
인간에게 뭐가 남을까?
카를 마르크스는
"인간 소외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 답은 이렇다, 선택, 큐레이션
컴퓨터로 작업하는 걸 소외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 보면 된다
그러면 몇 달 동안 컴퓨터 자판으로 책을 쓰는
힘든 노동을 안 해도 된다
대신 AI의 작업에서 편집, 선택, 결정을 통해
대중에게 적합한 것을 고르는 더 중요한 역할에
집중할 수 있다
가장 큰 걱정은 AI의 성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간의 모든 역할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노동과 생각, 우리가 필수라고 여기는 모든 걸
빼앗긴다면 인간에게 뭐가 남을까?
큐레이션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항상 중요한 역할로 남을 것이다
언젠가 AI가 더 똑똑해진다고 해도
사물에 대한 우리 자신의 평가와 취향이 더 중요할 것이다
미래에 우리의 취향을 컴퓨터에 위탁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인공 지능이 인간에게서 빼앗기 가장 어려운 역할일 것이다
철학자들의 가장 유의미한 기여는
인공 지능의 영향에 대해 재앙적인 것을 포함해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것이다
진지함이 항상 비관주의를 의미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2024. 10. 23. 방송)
3강 왜 사물의 정치인가
정치는 큰 변화를 겪을 또 다른 분야이다
많은 사람이 정당한 이유로 민주주의의 쇠퇴와
독재 정권의 부상을 걱정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변화는 정치의 중심이
인간이 아닌 것들로 향하는 것이다
현대 정치는 답답하거나 심지어 폭력적이다
대개 좌파와 우파로 나뉜다
이들의 갈등은 해결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좌우 구분은 오래되지 않았다
프랑스혁명 시기 의회의 좌우편에 앉은 게 계기였다
더 급진적인 정치인(좌), 더 보수적인 정치인(우)
좌파와 우파는 인간 본성에 관한 전혀 다른
두 이론에 따라 나뉜다
⊙ 사물의 정치(Politics of Things)
- 정치적 좌파
현시대의 수많은 나쁜 특징을 두려운 눈으로 본다
환경파괴, 기업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 기후 변화, 핵전쟁 위협
좌파 다수는 결국 국민이 힘을 갖는 혁명을 바란다
좌파의 주된 신념은 이들 사상가가 고안했다
존 로크(영국), 장 자크 루소(스위스), 카르 마르크스(독일)
"인간의 번영을 막는 건 사회의 내재된 부패나 이익을 위해
노동을 착취하는 지배 계급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좌파에겐 낙관적인 면이 있다
"인간은 천성이 선하고 동정심이 많으며
다른 생물의 고통에 공감하지만 불공정한 체제 때문에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
해결책은 로크와 그의 추종자인 미국 독립운동가들처럼
경제적, 사회적 자유를 개선하는 것이다
아니면 루소가 프랑스혁명에서 주장했듯
계급 평등을 개선하거나 마르크스와 그의 영향을 받은
혁명들처럼 노동 계급이 장악해 버리는 방법이 있다
- 정치적 우파
인간 기질에 관해 더 비관적이다
니콜로 마키아밸리(이탈리아), 토머스 홉스(영국), 카를 슈미트(독일)
"인간은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종이자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한 존재이다"
"유토피아를 세우려는 시도가 전례 없는 범죄로 이어져
역효과만 난다"
스탈린이 일으킨 우크라이나 기근과 숙청을 생각해 보라
폴 포트가 저지른 캄보디아 자국민 집단 학살도 마찬가지다
우파의 유일한 해결책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강력한 군사력과 경찰력에 기반해 안정을 유지하고
종교와 전통적 성 역할을 지키며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것이다
- 정치 중도파
둘 사이에서 실행 가능한 절충안을 찾으려 한다
최근 출간된 '모든 것의 새벽 : 인류의 새로운 역사'에서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는
이 상황을 분석해 비판했다
두 저자가 무정부주의에 동조하다 보니 이 책은
좌파에 더 가깝게 보이지만 그들의 분석에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다
최근 발견된 고고학 기록을 조사한 둘은 좌파와
우파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 인간의 천성을 선하거나 악하다고 할 수 있을까?
고고학 기록에 따르면 인간은 선악을 모두 행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인간은 매우 민주적이거나 매우 억압적인 체제를
모두 실험했다는 것이다
계절이나 해가 바뀔 때마다 번갈아 가면서 말이다
여름에는 잔인한 독재를 하며 지도자가 시민의 생사를 좌우하다가
겨울에는 완전히 평등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천성이 선하냐 악하냐와 관계없이
본래 실험적이고 창의적이다"
♣ 그런데 왜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에 자본주의가 결합한
정부 형태만이 현 시대에 실행 가능하다고 여길까?
저자에 따르면 이는 현 체제 꼭대기 층에게만 유익하다
두 사람은 근대적 양자택일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지적 실수'는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이다
저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오래된 두 이론을
자신들의 새 이론으로 대체했다
"인간은 실험적이고 창의적이다"
이 정치 이론의 중심에는 여전히 인간이 있다
정치 단위를 형성하는 건 오직 인간이니
이 정치 형태에서 이익을 얻는 건 당연히 인간이다
새로운 비인간 객체가 정치 행위자가 된 걸 떠올려 보라
고대 그리스가 동전을 도입했을 때이다
큰 물건을 직접 교환하는 대신 금속 몇 개로
거래할 때 인간 문명은 크게 변했다
이 점은 기후 변화를 봐도 명확하다
오늘날 영향력 있는 세계 지도자들보다
더 중요한 정치 행위자가 있다
이산화탄소, 해조류, 메탄, 시베리아 영구 동토, 전기차의 미래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는 국가에 따라 분리되지 않는다
즉 탄소 오염을 더 많이 하는 나라가
오염을 덜 하는 나라의 생존 확률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몰디브, 방글라데시,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해수면 상승이 특히 심각한 위협이다
반면 다른 나라는 탄소 배출을 줄일 동기가 적을 것이다
탄소 오염의 신속 중단을 원하는 나라와 이를
덜 시급하게 보는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까?
그건 미래만이 알 것이다
이미 정치적 힘이 막강한 비인간 사물을
어떻게 진지한 정치 논의에 포함시킬까?
비인간 사물이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는지 명확하진 않다
단순히 투표권을 주는 건 아닐 것이다
누가 오존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점박이 올빼미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겠는가?
비인간을 정치 영역으로 끌어오는 건 그들의 보존 문제를
정치 쟁점으로 도입하는 것과 더 관련 있다
이건 이미 전 세계적 문제로 민족 국가가 점점 쓸모없는
근대적 정치 형태가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문제는 핵무기와 함께 발생했다
"핵무기는 현대 인본주의의 종말이다"_피터 아이젠만
♧ 애니 제이콥슨은 책에서 한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러시아가 실수로
미국에 핵미사일을 발사해 워싱턴 D.C를 파괴하고
캘리포니아 중심부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상상이다
러시아가 미국 전체를 완전히 파괴하기 전에
미국은 이에 대응하며 두 나라에 보복을 한다
그 결과 전쟁과 관련 없는 한국과 중국의 수백만 명이
방사능 낙진으로 사망한다
명백히 부당하고 처참한 이 결과는 핵전쟁 본질에
내재된 것으로 이런 무기의 존재 자체가 연관된
나라를 넘어 인류에 위험이 된다는 뜻이다
바퀴벌레, 전갈, 초파리가 강인하게 생존하는 사이
살아남은 인간은 비참한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핵무기에 대한 논의가 줄어든 건 1989년 냉전이 끝나고
2년 뒤 소련이 몰락한 이후였다
하지만 이런 무기가 존재하는 한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는
불길한 정치 행위자가 될 것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개별 국가를 넘어 국제기관을 만들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런 국제기관은 특정 사물의 존재 여부와
그 대처 방안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해결책으로 '세계 정부'를 들 수도 있다
※ 세계 정부: 전 세계를 하나의 단일 정부가 통치하는 정치 체계
문제는 어떻게 그곳으로 갈 것인가이다
기존 국가들은 그런 정부를 쉽게 따르거나
결정하는 데 필요한 힘을 주지 않을 것이다
세계 정부 아래 승자와 패자가 있을 것이다
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정치가 그런 합의에
도달한다고 해도 결국 세계 독재가 될 수도 있다
국제 체계보다는 새로운 종류의 초국적 체계가 필요하다
세계 정부에 전권이 없는 체계를 말한다
축구를 총괄하는 FIFA나 많은 스포츠를 관리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제 규칙을 위반한 국가를
배제하는 제한된 처벌 권한이 있다
이런 기관의 더 강력한 정치 버전이 필요하다
FIFA, IOC, UN 같은 기관은 불완전하고
때때로 부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국가 기관과 비슷하다
모든 국가가 사전에 동의한 특정 규칙과 규정을
실제로 강제할 힘이 있지만 사람들의 모든 일상을
통제하는 억압적인 독재는 펼치지 않는다
이것이 현재 최선이며 이를 발전시켜
초국가 기관으로 만들 수 있다
(2024. 10. 24. 방송)
4강 초국적 정치 체제가 필요한 이유
전쟁은 인간 문명의 또 다른 오랜 재앙이다
인간은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거나
전쟁으로 닥칠 종말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전쟁은 대부분 중간 규모로 지속될 것이며
과거와 어떻게 달라질지 생각해 봐야 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처참한 전쟁을 겪었다
당시 아테네가 군국주의 스파르타에 패해
황금시대의 종말을 맞았다
이 전쟁(펠로폰네소스)의 역사는 교훈적으로 전해지며
인간사에선 일이 잘못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 동기는 전쟁의 참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가까운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이 현상은 기후 변화로 땅과 식량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원치 않게 기후 난민이 급증하게 돼
더욱더 심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군은 세계에 미칠 위험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는 기관 중 하나가 됐다
재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인간의 운이
다했다며 처참한 상황을 초래한 국가, 군대,
에너지 회사를 탓하느라 바쁠 것이다
낙관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인간이 여전히
일어설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행성을 망친 엘리트를 타도하면
전 세계 약자가 평등해질 거라 믿는다
둘 중 하나의 사고로 충분할까?
♣ 전쟁 동기 3가지
♧ 공포
이미 부유한 국가에서는 새로운 민족주의가 시작됐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극우주의
심지어 공개적 파시스트 움직임까지 있다
투키디데스가 말한 전쟁 동기 3가지 중
공포는 유럽 내 이슬람 영향을 증가시키는
거대한 난민 물결과 미국 내 증가하는
남미 인구와 연관된다
이 난민들은 부유한 국가의 경제를 지탱하기도 한다
2024년 초 네덜란드 선거에서는 공개적인
반이슬람 후보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당선됐다
빌더르스는 네덜란드에서 코란과 모스크를
금지해야 한다는 극단적 입장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시민 불안을 일으킬 선동적인 관점이다
네덜란드 선거 이후 뜻밖에 재미있는 일이 벌여졌다
많은 경제학자가 빌더르스의 경제 정책이 훌륭하다며
네덜란드 경제가 호황일 거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 결과 새 일자리가 생겨 더 많은 이민자를 들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빌더르스는 유럽계 백인 이민자만을 원할 거고
그 수는 충분하지 않다
♧ 명예
명예는 유럽 민족주의의 또 다른 일부로
과거 유럽 문명과 그 위대함을 찬양한다
새로운 세계 정세에 맞는 범유럽적 위대함을
재설계하는 게 아니다
국경을 넘은 끝없는 갈등을 고려하면 이 역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지어 그리스와 튀르키예 같은 NATO 회원국도
역사적 악연으로 갈등을 겪는다
♧ 이득
투키디데스가 주장한 가장 위험한 동기는 이득이다
유럽은 독일인 생활권을 넓히려 한 히틀러의 야망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가자 지구 간 갈등의
강한 동기는 더 큰 영토를 탐내는 마음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이익 논리는 공개적 집단 학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수없이 일어나다가 20세기 들어
대중의 윤리적 공포로 발전했다
가까운 미래에 몇몇 전쟁은 아마 불가피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전쟁은 과거와 어떻게 달라질까?
근대 초기 전쟁은 끔찍한 참상으로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략을 그린 고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전쟁은 전문 군대가 전장에
잔뜩 모여 눈에 띄는 제복을 입고 조직적으로
서로 총을 쏘는 거였다
어떨 땐 민간인이 전쟁터를 방문해 점심 도시락을 먹으며
안전한 거리에서 구경도 했다
이는 당시 군사 기술과 관련이 크다
기술의 발전으로 전쟁과 민간인의 위험이
완전히 변화됐다
1차 세계 대전 때는 방어적인 전술이 우세했다
프랑스군은 무모하게 고정 기관총 부대로 정면
공격을 하다가 젊은 세대 대부분을 잃고 말았다
질병과 해충이 만연한 지겨운 참호전 교착 상태에서
적국은 독가스와 화염 방사기 같은 비인간적 전술을
사용했지만 파리가 포격당한 사건을 제외하면
민간인은 대부분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안전했다
모든 건 2차 세계 대전의 폭발적인 화력으로 달라졌다
탱크의 발명은 적진을 돌파해 빠른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도시에서는 전략적 폭격으로 대량 사망이 발생했다
피해지는 런던과 코번트리 함부르크와 드레스덴
궁극적으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까지 포함된다
이후 우리는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치광이나
소프트웨어 결함의 인질이 됐다
전쟁에서 민간인 취약성은 훨씬 심각해졌다
LA 중심부에 가는 것만으로도 테러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멕시코 카르텔은 드론으로 카페에서 술 마시는 적을
표적으로 삼고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같은 나라는
무고한 민간인을 공격한다
사이버 전쟁이 시도됐지만 그 잠재력이 전부 드러나진 않았다
1989년 냉전 말기 미국의 잡지 '해병 가제트'에는
이러한 발전을 예측하는 기사가 실렸다
가까운 미래에 근대의 대규모 지상군이 구식처럼
보이게 되고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다
용의자 수색을 위해 개인 집을 표적하는 특수 부대
전쟁이 잦아질 것도 예측했다
새로운 세대의 전쟁은 이런 기술을 넘어설 것이다
근대 전쟁의 암묵적인 규칙은 적의 지도자를
공개적으로 표적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의문이 제기되며 규칙이 바뀌었다
전쟁이 통제 불능 지도자의 잘못이라면
도시를 표적으로 삼는 게 공정한가?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바그다드 외곽에서 회의 중이라고 알려진
사담 후세인 참수 작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거짓된 정보로 후세인은 없었고
작전은 실패했다
이젠 국가가 테러 지도자 개인을 표적으로
삼는 게 문제 없듯이 다른 국가 지도자도 흔히
표적이 될 수 있다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을
여러 번 암살 시도한 것을 보라
대학은 온라인 기술로 여러 도시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왜 국가는 공격받기 쉽도록 정부를
수도 한 곳에 집중하는 걸까?
점점 분산되는 정부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비밀 장소에 숨었다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는 것이다
공격 전략은 그 반대일 것이다
새로운 방어 전략이 자원과 지도부의 분산이라면
탁월한 공격 무기는 적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한 위치에 모이게끔 방법을 찾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가자 전쟁에서 하마스 최고 지도부를
못 찾고 있다(촬영일 기준 2024년 5월)
그 결과 근대 후기 전략으로 민간인 폭격을 무참히 하고 있다
하지만 무고한 사상자가 늘어나 지속하긴 어려울 것이다
이는 19세기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클라우제비츠의
전략이 다시 유행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폴레옹 시대에 살던 클라우제비츠의 주장이다
"전략의 목표는 적을 결정적인 대규모 전투로 유인하는 것이다"
이 의견은 몇십 년간 전장에서 큰 손실을 초래하며 인기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더 심오하고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전투에서의 이득은 적을 물리칠 때가 아닌 완패시킬 때 얻는다"
이 경우 군대는 적의 장비와 자원을 차지하고
포로를 잔뜩 잡아 전투에서 영구 배제시킬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군사 이론가 존 보이드 대령도
전투 승리는 적의 사망자 수가 아닌 포로 수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불편한 진실은 향후 몇십 년 간 전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후 변화에 따른 대규모 이주로 삶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집단 학살의 위험성도 더욱 커진다
우린 윤리적으로 항의하는 것을 넘어 조치를 취해야 한다
화학 무기를 생각해 보라
그 무기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끔찍한 죽음을 초래해
결국 국제 협약으(제네바 의정서_1925)로 금지됐다
그 후로 화학 무기가 사용된 건 소수의 사례와
의심 사례 몇 가지뿐이다
세상은 화학 무기 금지에 일부 성공했다
종전 후 수십 년 뒤까지 사상자를 내는 지뢰는
아직 끝내지 못했다
많은 이집트인이 2차 세계 대전 때 매설된 지뢰로
영구 장애를 입었다
인류 전체의 생존권을 보호하려며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 기관은 초국가적으로 국가보다 큰 규모로
운영돼야 한다
핵무기도 마찬가지다
사용 국가의 국경을 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앞으로 비핵 전투로 전환하면 대규모
재래식 전쟁이 더 이상 큰 위험이 아닐까?
통제 불능이 될 수 있는 지역 분쟁이나
국가 지원 테러만큼 큰 위험은 아니게 될까?
명심해야 할 위험은 창의적인 적은 두 전투 형태를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애국심이 강한 미 공군의 존 보이드 대령은
편을 떠나 마오쩌둥을 역사상 훌륭한 장군으로 존경했다
그는 재래식 전쟁과 소규모 테러 공격을 조합하는
마오의 능력에 주목했다
수완이 좋은 미래의 적은 마오쩌둥처럼 두 개를
교묘히 혼합할 수 있다
그러니 책임 있는 국방 정책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흔한 실수는 최신 동향을 기반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재래식 무기와 핵무기는 점점 먼 과거가 되고 있다
캐나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 연구처럼
역사는 종종 과거 관습이 복구되고 역전되면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현재 선진국의 많은 여성은 조산사와
가정 출산을 선호한다
수십 년간 병원 출산을 지향하던 추세가 끝난 것이다
미국에서는 구더기나 파리 유충으로 총상을 치료하는
의학 기술이 있다
이는 수 세기 전의 의학 같지만 사실 구더기는 생살이 아닌
죽은 살만 먹기 때문에 아주 효과적이고 저렴한 도구가 된다
우리가 구식이라고 생각하는 기술과 문화도
그것을 재창조하는 창의적 인물로 인해 새로운 방식으로 돌아온다
문명의 현 단계에서 몇몇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공포, 명예, 이득이 여전히 인간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군사 시설은 반드시 금지돼야 한다
핵 잠수함은 흔히 '종말의 시녀'로 불린다
그걸 없애면 기술 발전으로 줄어든 의사 결정 시간을
일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적국 인구의 전멸은 오늘날에도 실질적인 위험이다
히틀러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하다
각 국민의 생존권도 확장돼야 한다
거주 불가능해질 경우 새로운 거주지 마련 대책도 포함돼야 한다
(2024. 10. 25. 방송)
5강 제1철학은 미학이다
현대 사회의 전형적 특징은 지식 숭배이다
과학 혁명부터 계몽주의까지 지식이 증가하면서
미신은 사라지고 삶의 질이 개선됐다
일부는 폭발적 지식 증가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1차 세계 대전은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경고하는 신호였고
원자폭탄 투하는 더 큰 경고였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 지능과 환경 오염뿐 아니라
유전자 무기, 인간이 전쟁 도구로 만든
초강력 전염병도 두려워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지식을 잘 지켜내 '힘이 정의'라는 종교 광신도와
군사 독재자의 새로운 암흑기를 피할 수 있을까?
답을 찾으려면 지식의 한계가 뭔지
인간이 세계를 균형 있게 이해할 다른 인지 자원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이 재앙 시나리오는 인간의 지식에서 발생한다
지식은 과학 발전과 미래 개선을 위한 희망의 기초다
플라톤의 대화편 '메논'에서 주인공 메논은 '메논의 역설'
개념을 설명한다
지식 탐구란 무의미하니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는 것에
집중하고 권력, 돈, 쾌락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철학에 대한 고전적 변론을 한다
신이나 동물과 달리 인간은 진리를 부분적으로
소유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주장하고
세계적인 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스승도 아니라고 한다
더 명백한 사례는 예술과 건축에도 있다
미학적 작품 제작에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예술의 핵심은 새로운 무언가를 가르치는 게 아니다
예술은 결코 알 수 없고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객체를 창조한다
지식이 왕인 현대 사회에서 철학과 예술의 위상은 어떨까?
결국 세상에는 두 종류의 지식만이 존재한다
물리학처럼 사물을 최소 단위로 쪼개는 하향식 접근을 하거나
사회 과학처럼 사물이 다른 것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상향식 접근을 한다
두 방법 다 중요하고 기술, 의학, 사회, 정치 조직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사물 그 자체를 조명하지는 않는다
지식은 사물을 상향식 또는 하향식으로 접근해
많은 걸 얻지만 사물의 본질을 잊어버린다
인간이 지식의 진보로 거둔 큰 성공으로 인해
지식과 무지 사이에 극단적 대립의 벽이 세워졌다
메논이 믿었던 대로 알거나 모르거나이다
사물의 구성 효과를 알거나 아니면 무지해서
낡은 미신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지난 4세기 동안 철학은
과학이 되기 위해 더 노력했다
다른 일은 가치 없다고 믿었다
분석 철학으로 알려진 현대 철학의 주류 학파는
스스로를 과학 철학 또는 정밀 철학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그들은 자연 과학계의 문화를 모방해
최근 학자들과 교류하며 좁은 범위의 문제를 연구했다
수학적, 논리적 기호를 최대한 사용해 철저한 정확성을 추구했다
이 경향에 대한 답변은 이미 소크라테스가 제시했다
우리는 항상 부분적으로는 진실을 알고 부분적으로는 모른다
세계를 개선할 방법을 찾으려 애쓸 수 있지만
그런 세계는 짠 하고 떠오르기 힘들다
이런 존재 비평은 대안적 유럽 철학 이론의
주요 통찰 중 하나이다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와 프랑스의 자크 데리다가 이끌었다
예술은 어떨까?
비주류 사례를 빼고 예술은 자연계의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다
예술이 할 수 있고 더 많이 하는 건
정치계와 그곳의 다양한 억압에 관한 지식을 전달한다
요즘 미술 전시회에선 미술품을 가장한 정치 성명서가 흔하다
작품 대부분이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외교 정책에
항의하는 성명인 적도 있었다
차라리 에세이나 잡지 기사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지식이 전부인 우리 세상에서는
자연에 관한 지식, 또는 인간 본성과 악한 정치 행위에
관한 지식만이 중요하다
다른 모든 건 그저 무지로 취급된다
건축계도 마찬가지다
건축계 내외에서 건축가를 비난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다
기업, 억압적 정부, 부자만을 위해 창의적 건물을
설계한다는 이유다
그 사이 전 세계 빈민이 굶어 죽는다고 말이다
건축도 정치 행동주의로 변해야 한다고 요구 받는다
현시대 손꼽히는 스타인 고령의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파리에서 근사한 루이 비통 재단
건물을 공개했을 때 이런 질문이 쏟아졌다
"주요 도시에 대기업 본사를 짓는 것이 어떻게
전 세계 약자에게 도움이 되나요?"
게리는 욕을 하며 저속한 몸짓으로 불같이 대응했고
훗날 적절치 못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게리도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건축 환경의 99%는 쓰레기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건물이 우리를 매료시키거나 흥미를 끄는
일은 드물다
오늘날 건물은 대부분 지루한 기업 규격에 따라
짓거나 건축가를 고용할 생각이 없는 건설사에 의해
지어진다
미학을 경시하고 지식 성장에만 집중한 결과
우리는 아름다움의 긍정적 효과가 없는 지루하고
우울한 환경에 살게 됐다
기후 위기나 핵무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미적 감각을 개발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건축 환경은 90%
게리의 말대로 99% 쓰레기로 남을수도 있다
지식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미학으로 전환되면
건축 환경만 나아지는 게 아니라 세상에 평화가 찾아올까?
확실한 건 인간의 인지 기능은 문자주의 맥락에서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자주의란 사물에 대한 진실한 진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관점이다
※ 문자주의(Literalism)
: 비유나 상징을 배제하고 표면적 의미를 그대로 따르는 해석 방식
이것이 바로 지식이다
문자주의에 따르면 사물은 숨기거나 불가사의하거나
수상쩍거나 모호한 것이 없으며 누구나 합리적
사고 절차를 따르면 진실을 찾을 수 있다
이 접근대로라면 일종의 요령과 미적 기술을 지닌
인간의 능력은 소외된다
문자 그대로 번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타당한 이유로 스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 분야가 나라에 엄청난 경제 호황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대부분 경제 호황과 무관하다
하지만 예술은 전 세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미적 인식은 현실 자체의 모호성을 인식한다는 뜻이다
인간 문명의 미래는 인간과 AI의 협업에 달려 있다고 논의했다
인간 협력자가 꼭 필요하다는 건데 오직 인간만이
AI 결과물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취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학의 주제는 다시 인간 큐레이터로 돌아온다
근력이든 지적 능력이든 인간의 모든 능력은 미래에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
절대 대체할 수 없는 건 취향이다
인간은 인간의 취향을 소중히 여긴다
저는 어떤 영화나 노래가 최고인지 평가할 때
AI 의견보다 인간 전문가의 판단을 더 참고한다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1890년대에 이미 지적했다
우린 끊임없이 미적 결정을 내린다
새 차, 평생의 짝, 살아갈 동네, 여가 시간
출근 경로까지 미적 결정을 내린다
지식이 전혀 해답이 아닌 분야에서 지식을
정답으로 여기면 위험할 수 있다
물리학자이자 TV 진행자인 닐 디그래스 타이슨은
트위터에서 말했다
"세상엔 한 줄짜리 헌법을 따르는
새로운 합리주의 국가가 필요하다
모든 정책은 증거의 무게로 결정한다"
타이슨은 정치 분쟁이 무지에서 비롯되며
우수한 지식이 우수한 정치로 이어진다고 보는 듯 하다
하지만 현대의 증거는 그 반대다
몇몇 정치 문제는 탐욕적, 공격적 혹은 비합리적 소수가
이익을 좇다 망치는 걸로 보이지만 대개의 정치는
양쪽에 일부 진실이 있어 모호하다
♧ 나일강 용수권 분쟁
에티오피아가 나일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면서하류에 있는 이집트, 수단과 벌이는 갈등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얼마나 복잡한지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외교가 복잡하고 필수적이며 가치 있는 것이다
정치는 과학적 진리와 다른 영역에서 펼쳐지며
누구도 어떤 주제에 관해 순수한 진실을 주장할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건 지식이 약간의 무지와 섞여 조절되는 미래이다
지식은 인간의 생존과 발전에 중요하지만
높이 평가할 만한 유일한 인지 형태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과 달리
진리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술은 인간 문화의 중요한 분야로 세상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하지만 지식의 형태가 될 순 없다
예술이 정치 핸동주의로 변한다 해도 말이다
정치 문제를 비합리적인 소수의 탓이라
가정했을 때 나올 처참한 결과를 논의했다
지식과 무지의 극단적 대립은 삶을 단편적으로 재단해
복잡한 세상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
역사의 이 시점에 한국에 사는 건 엄청난 행운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문화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철학이 천직이라면 세계적 수준의 연구 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https://home.ebs.co.kr/greatminds/index
EBS 1TV 월~금 23:40 ~ 24:00 (본방) / EBS 1TV 금 13:30 ~ 14:10 (본방) / EBS 1TV 토 24:25 ~ 25:55 (종합)
EBS 2TV 금 24:00 ~ 25:30 (종합) / EBS KIDS 월~금 24:00 ~ 24:30 (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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