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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 3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 1~5강

by 상팔자 2024. 5. 10.

EBS 위대한 수업 3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 1~5강

위대한 백열 다섯 번째 강연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 (시즌 3 서른네 번째)

 

 

(2024.05.02 방송)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작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alt":"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작품"

 

 

 

 

1강  목소리 소설의 탄생

 

 

 

♧  책 탄생의 배경  ♧

 

2020년 8월 치러진 대선 이후 벨라루스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열렸다

벨라루스 법원은 시위에 참여한 민주화 인사와

언론인에게 잇달아 중형을 선고했다

이후 약 50만 명의 벨라루스인이 해외로 망명을 떠났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베를린이다

벨라루스에서 벌어진 시위 때문에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안 그랬으면 실형을 살았을 것이다

문화적 세계관이 형성된 과정을 얘기하자면

소련에서 보낸 유년 시절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내 책들은 30년 동안 조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소련의 현실과 삶, 소련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alt":"벨라루스"

 

항상 작가가 되고 싶었다

친척들의 기억으로는 세 살 때부터 작가가 될 거라고 했다고 한다

시도 몇 편 썼고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남들보다 읽는 법을 빨리 깨우쳤고 벨라루스의 자연을 보며 

사색하는 걸 좋아했다

지금 생각하면 시골에서 태어난 게 다행이다

 

그런 마을에 살았으니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런 마을에 살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알게 된다

 

기자로는 7년 정도 일했는데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다

소련 곳곳을 여행하고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그렇게 기자로 살면서도 어딘가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특히 소련의 언론은 정치적 제약이 심했다

 

 

♧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

 

내가 다루고 싶은 사람들은 기삿거리가 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다루고 싶었다

 

"alt":"보통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스베틀라나"

 

그 당시 언론에서는 늘 이녀메 얘기를 했지만

그런 데 거의 관심이 없었다

이념이 인간의 내면과 일상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심 있었다

 

정치 집회가 아닌 집에서의 이념 말이다

'이념'이라는 이 커다란 개념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했다

 

그때는 많은 사람이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내 책의 주인공들은 그랬고 나도 그 이념의 역사를 다뤘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각자의 인간적인 삶이 있으니

그런 인간적인 삶과 이념이 교차하는 걸 전달하고 싶었다

 

그때는 세대교차가 이루어진 새로운 시대였다

정확히는 스탈린이 비난받았던 20차 당대회 직후였다

 

"alt":"20차 소련 공산당대회 비밀연설"

 

우리 세대는 이념에 의존하는 정도가 덜했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와 완전히 다른 세대가 된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실존적인 문제들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란 무엇인가?

살인을 한 뒤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자비는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인가?

 

한 번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가 쓰고 있는 책에 대해 물으셨다

 

"alt":"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내 대답을 들으시더니 깜짝 놀라셨다

아버지도 기자였다가 교사가 되어 교장까지 하신 분이었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들이 당신 세대에는 무의미했다고 하셨다

 

그때는 모두 공산주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이다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책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댁에는 책이 아주 많았는데 훌륭한 작가들의 책을

제외하면 전부 부질없고 허황하게 느껴졌다

한 번은 방학 때 부모님 댁에 가서 

책장에 꽂혀 있는 수십 권의 책을 지나치고 

쭉 훑어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alt":"삶에 대해 알아버린 나에게 이 책들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래서 직접 책을 쓰고 색다른 걸 다루고자 생각했다

숱하게 여행을 다니면서 실제 사람들을 만났다

책을 읽고 평을 쓰는 게 아니라 현실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인생을 알고 싶다고 해서 꼭 톨스토이나 체호프,

로맹 롤랑을 읽을 필요는 없다

다른 것에서도 충분히 인생을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배웠고 이념에서 해방된 세대였다

 

 

♧  목소리 소설  ♧

 

"alt":"모든 것들을 기록해야 겠다"

 

참고로 러시아 문학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전통이 있다

페도르첸코라는 여성도 1차 대전에 관한 책을 썼는데

내 책과 성격이 다르고 뭔가 파편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디어 자체는 비슷하게 들어 있었다

 

"alt":"소피아 페도르첸코의 전쟁 속의 사람들"

 

전쟁은 너무 방대한 자료라 짧은 구성으로 담아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목소리의 코러스가 내 귀에 울리는 듯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술 장르는 계속 변한다

초상화로 시작해서 설치 미술까지 발전했다

음악도 변한다

 

"그런데 왜 문학은 틀에 갇혀 있어야만 할까?"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새로운 형태의 문학이 필요하다

 

"alt":"목소리 소설"

 

하나의 사건이 플롯이 되는 과정을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건 주변으로 펼쳐진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얘기하는데 그건 다 작은 이야기다

 

오랫동안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한 끝에

목소리 소설이란 형식을 찾았다

책에서 가장 불필요한 내용은 사람들의 이야기 옆에

사족처럼 붙는 내 의견이기 때문에 글에 내 이야기는 없다

 

파르티잔 여성이 나치 독일군에 붙잡힌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줬다

(※ 파르티잔(Partisan):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소련의 비정규군)

당시 독일군은 자기들 앞에 포로로 붙잡힌 주민들을

세워 놓고 전진했다고 한다

파르티잔 여성의 기억에 따르면 그녀의 어머니는

키가 크셨고 흰 머릿수건을 하고 계셨다

파르티잔 여성은 이어 말했다

 

"alt":"파르티잔 여성의 이야기"

 

여기에 무슨 얘기를 하겠는가?

그저 듣고 최대한 정확히 이들의 시련을 전달할 뿐이다

어머니의 머릿수건을 떠올리는 이런 이야기에는

어떤 말도 덧붙일 수 없다

 

"alt":"목소리를 읽는다"

 

30년 아니 어쩌면 40년 넘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책을 썼다

체르노빌, 전쟁, 제국(소비에트)의 붕괴 등을 다뤘다

제국의 격렬한 붕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90년대에 우리는 순진하게도 공산주의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공산주의는 살아남아서 마지막까지 버텼다

내가 인터뷰했던 전차병 출신 여성분이 계신다

오랫동안 수소문했던 분인데 대단한 여성이었고

대단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분은 모스크바에 살고 계셨는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첫마디가 이거였다

 

"alt":"모스크바의 여성 이야기"

 

난 선생님의 인생 얘기를 들으러 온 거라고 말했다

왜 재향 군인회에 가야 하냐고 말이다

전쟁에서 끔찍한 일을 겪으면 사람이 그렇게 된다

 

다섯 권의 책을 쓰면서 붉은 유토피아의 역사를 다뤘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이 많다

 

왜 우리의 아픔은 자유로 승화하지 않는 걸까?

왜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는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시대를 살고 있다

 

"alt":"변하지 않은 세상"

 

작가들 중에는 바깥의 제삼자로만 존재하면서

러시아 일에는 침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에는 총대를 메려는 사람이 없지만 작가라면 나서야 한다

수백 명의 작가들이 나라를 떠나는 것도

전쟁의 공범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조국에 남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쟁에 반대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데 형량이 말도 안 된다

12년에서 25년을 살아야 한다

벨라루스도 똑같다

그렇기에 작가는 그래도 작가라면 반드시

 

"alt":"작가라면 경종을 울려야 한다"

 

 

 

 

 

(2024.05.03 방송)

 

 

2강  붉은 군대의 여자 병사들

 

 

 

 

♧  전쟁 속 여자들의 이야기  ♧

 

"alt":"독일의 소련 기습 공격"

 

전쟁이 끝났을 때 마을에는 남자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여자들의 이야기만 들으며 컸다

책을 보면 온통 남자들의 이야기뿐이었지만

내가 들었던 여자들의 이야기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기자가 됐을 때 신문사에서 전쟁에 관한 글을 써 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역시 남자 이름을 내밀길래 항상 왜

남자여야 하냐고 반발했던 게 기억난다

여자 이야기를 쓰게 해 달라고 했다

여자들도 싸웠으니 말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니 남자들은 그 사실을 잊었다

거의 백만 명의 여성이 전장에 나갔는데도 말이다

입대를 하고 파르티잔으로 활동하고 지하 조직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여자들은 잊히고

남자들은 승리를 만끽했다

여자들은 오랫동안 침묵하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다들 놀라셨다

이제야 얘기할 수 있다며 기뻐하셨다

 

이렇게 말없이 어둠 속으로 스러지지는 않겠다면서 말이다

여자 병사들의 이야기는 어쩐지 더 다채롭고 더 애처로웠다

여자들의 전쟁에는 특유의 색깔과 냄새가 있다

 

예를 들어 남자들은 꼭 건물을 탈취한 이야기,

사령관이 죽은 이야기를 한다

남자들에게 감정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전쟁이 남자들의 문화였단는 건 사실이다

 

"alt":"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간호병으로 복무하신 분이 들려준 얘기이다

러시아군이 승기를 잡았을 때 독일군을 생포했는데

심하게 다친 부상병이 많았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다친 독일군을 치료해야 한다고 자기 마음을 다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alt":"독일병을 치료해야 했던 간호병의 심경"

 

그런 감정들은 내가 들었던 전쟁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지금까지의 전쟁 이야기 말고 내가 관심 있는 것에서 출발했다

 

"alt":"전쟁 속의 각자의 삶"

 

예를 들면 어떤 간호병이 전쟁 중에 결혼식을 치렀는데

있는 옷이라고는 군화나 군복, 누비질한 면바지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병사들이랑 같이 붕대를 모았는데

그분의 결혼식을 위해 간호사, 의사 수십 명이 

낡은 붕대를 빨아서 드레스에 쓰라고 줬다고 한다

그분 댁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일어나서 다른 방에 가시더니

50년 동안 간직한 그 웨딩드레스를 가져오셨다

 

"alt":"전쟁 속의 인간적인 이야기"

 

그래서 전쟁이 더 끔찍하고 무의미한 것이다

 

과거의 전쟁 문학은

전부 간단히 축약해서 누가 커다란 건물을 빼앗았고

도시, 마을을 점령했다는 사건만 다룰 뿐이다

 

하지만 그걸 점령한 이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죽어 가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런 얘기는 없었다

인간의 복잡한 내면에 관심을 가지는 게 우리 러시아 문학의 전통이다

그런데 소련 시절 문학에서 그런 부분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수백 명의 사람을 만나 수백 가지 이야기를 듣고 수백 가지 세계관을 접했다

그래서 책을 쓸 때마다 최소 6~7년씩 걸린다

그동안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한다

그렇게 만나게 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삶들은 

도스토옙스키조차(스베틀라나가 가장 존경하는 작가)도

감히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건 삶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alt":"전쟁 속의 여인들의 이야기"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소중했던 순간은

그분들의 집에 갈 때였다

차를 마시기도 하고 어떤 분은 만두를 빚어 주시기도 했다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게 우리 문화이다

그러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장 어려웠던 건 인터뷰 특유의 진부함을 없애는 거였다

다들 이야기를 시작할 때는 기자를 대하듯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런 진부한 얘기다

나쁜 문학 작품이나 프로파간다 신문에서 읽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 단단한 껍데기를 어떻게든 벗겨야 했는데

어떨 땐 반나절이 걸리기도 했다

 

 

♧ 전쟁에서 가장 끔찍했던 일

 

"alt":"인터뷰 시 던지는 질문들"

 

한번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뭐가 가장 끔찍했나요?"

그런데 갑자기 딱 각을 잡으시더니

애국 얘기만 늘어놓다가 이러시는 것이다

 

"alt":"그녀가 죽음보다 두려웠던 것"

 

무릎 밑까지 내려와서 너무 이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예쁜 여자애들이 여름에도

다들 그 못생긴 속옷을 입었다고 하셨다

그러더니 이 이야기는 책에 쓰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냥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말씀드렸다

"전쟁에서 끔찍했던 게 이거네요"

전쟁 내내 브래지어는 꿈도 못 꾸고 남자 속옷만 입은 것 말이다

군화도 220mm 같은 작은 사이즈 없이 250mm부터 시작이었다

그 작은 발로 큰 군화를 끌고 다닌 것이다

 

다른 여자 병사도 군화에 관한 일화를 말해 줬다

훈련을 하던 중에 지휘관이 뒤로 돌라고 해서

돌았는데 군화 코는 계속 앞을 보고 있었다

다들 웃고 난리였을 정도로 발이 작았던 것이다

 

"alt":"전쟁 후에도 겪어야 했던 고통"

 

내게 가장 소중했던 순간은 어떤 분이 앉아서 이렇게 툭 털어놓으실 때였다

"스베틀라나, 내가 이걸 기억했다는 걸 잊고 있었어

처음부터 몰랐던 것만 같아

전쟁이 끝나고 전승 기념일에 최전방 여자 병사들까지 모인 적이 있어

모두 기억을 못 하더라고

우리가 기억하는 건 승리뿐이었어"

 

그리고 내 책이 출간되자 최전방 여자들이 

항의 편지를 많이 보내왔다

"나는 아들에게 영웅이었는데 이제 영웅이 아니게 됐어!"

하지만 정작 그분의 아들과 같은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정부 측의 이야기보다 훨씬 강렬하다

 

하지만 최전방 여자 병사들이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나중에는 편지로 본인들이 겪은 일을 사실대로 남겨 줘서

고맙다고 하셨지만 바로 책을 받아들인 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진부한 소련식 삶에 익숙해진 분들이

기계적인 프로파간다에서 멀어지기 쉽지 않았다

신문과 나쁜 문학 작품들이 그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 경직된 사고를 깨려면 사회 분위기나 프로파간다뿐 아니라

내 여주인공들의 껍데기를 깨야 했다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도 중요하다는 말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어떻게 사랑했는지

어떻게 사랑하고 싶었는지

어떻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는지

어떻게 새 같은 생명체에 연민을 느꼈는지 말이다

 

그 책을 쓰고 나서 내 기억으로는 

3년 동안 출간이 안 됐을 것이다

너무 자연주의적이고 평화주의적이라는 이유였다

 

당시 검열관이 나를 불러서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쓴 책을 읽으면 누가 전쟁에 나가겠소?"

 

"alt":"출판 검열관과의 대화"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이 책을 쓰려는 거예요"

물론 검열관은 공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국가에 해가 된다고 했다

애국자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제가 쓴 모든 책이 말하는 건 사람이 가장 귀하다는 것이다

 

 

 

(2024.05.06 방송)

 

 

3강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온 병사들

 

 

 

 

♧  아연 소년들  ♧

 

"alt":"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전쟁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쓰고 나서

더는 그 아픔을 직면할 힘이 없을 것만 같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상병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전쟁에 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전쟁의 진실이 숨겨져서 사람들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전쟁 이야기를 계속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념에 붙들린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하자고 말이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왔다

전장에 직접 가서 글을 써 보라는 제의가 왔다

 

내가 타고 갔던 군용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중간에 전차가 있었는데 사슬로 묶어 놨다

병력 수송 장갑차였던 것 같다

양쪽 벽에 의자가 붙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흉상들이 군용기에 굴러 다녔고

초상화도 있었다

당시 소련 중앙 위원회 지도자들의 초상화였다

부조리극의 한 장면 같았다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돌기 시작했을 때였다

비행기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우리 비행기가 폭격당하고 있으니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격추당할 수도 있었다

그때 병사 몇 명이 일어나서 술에 취한 소령을 깨웠다

"일어나세요! 아니면 이러다 천국에 가실 겁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alt":"아연 소년들 중에서"

 

전쟁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러운 짓이다

 

구내식당에 갔던 일이 생각나는데 남성 작가 몇 명도 같이 있었다

우리가 밥을 먹는 곳이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갔던 대령이 한 명 있었는데

그때 보초를 서던 한 소년병이 대령에게 경례를 했다

30분 후 그 아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포탄 파편이 날아와서 이미 목숨을 잃은 후였다

 

그 순간이 지나면 저녁에라도 아름답다고 할 만한 순간이 있을지 모르겠다

포탄들은 하늘을 수놓았고 낮에는 훤칠한 군인들이

빳빳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처음 본 날은 잊을 수가 없다

입관하는 곳에 갔는데 처음에는 나무 관에 넣었다가 

고향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아연 관에 넣었다

※ 아연관: 시신을 운송하기 위해 아연으로 만든 관

 

거기서 내가 그런 말을 했다

"냄새가 너무 고약해요"

그랬더니 관을 만든 분들이 이러셨다

"네, 꼭 금방 죽은 돼지 냄새 같아요'

그 순간 깨달았다

전쟁에 낭만 같은 건 없다

 

모든 게 마르스의 장난이자 야만을 느껴졌다

※ 마르스(Mars):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우리는 아직도 야만인이었다

 

우리가 문명인이었다면 서로를 죽이지 않고 

다른 철학을 갖추었을 것이다

 

"alt":"아연 소년들 사병, 저격수의 말"

 

돌아다니다 보면 사방이 시체다

모래로 뒤덮여 있었다

무자헤딘이라는 전사들이 깨끗하고 예쁜 옷을 모두 잘 차려입은 채

모래밭에 누워 있었다

※ 무자헤딘(Mujahideen): 아프가니스탄의 반군 게릴라 단체

 

그런 걸 본 이상 전쟁에 대한 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젠 누가 어떤 말을 해도

전쟁이 숭고한 남성의 일이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그건 비인간적인 짓이다

 

"alt":"돌아온 소년병들"

 

소련이 본격적으로 흔들린 건 아프가니스탄 참전병들이 들어왔을 때였다

병사들은 프로파간다처럼 영웅 대접을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어머니들만 자기들을 위해 울어 줬다

 

"alt":"독일군이 된 돌아온 소년병들"

 

병사들이 인질이자 살인자가 되어 버린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건 참전병뿐 아니라 어머니들에게도 큰 모욕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미 시대가 변하고 있었다

아무도 소련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고향의 어머니들은 속은 것이다

프로파간다를 전하는 소련의 TV, 라디오, 뉴스가 속였다

어쨌든 소련 시대였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소련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믿었다

어머니들도 아들이 전쟁에 자원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들 2차 세계대전 같은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들이 조국을 지켜 냈던 전쟁 말이다

 

그런데 병사들은 모래와 바위가 나뒹구는 곳에 가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alt":"프로파간다에 속은 소년병들"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한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아들의 옷이나 공책 같은 것들을 학교에 가져갔다

아들이 헛되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뭘 위해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살인자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당연히 정부와 프로파간다 매체는 그 마음을 이용했다

내 책이 나와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키자

정부에서는 책을 헐뜯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는 검열이 폐지된 때라 출판 금지를 할 순 없었지만

어떻게든 책의 신빙성을 떨어트려야 했다

 

그래서 정부는 어머니들에게 영웅인 아이들을 내가

살인자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alt":"아연 소년들 소송 사건"

 

재판이 열리는 동안 수많은 인파가 법정에 몰려들었다

재판은 민스크에서 열렸는데 우리 아들들은 영웅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소규모 내전을 방불케 하는 재판이었다

 

재판에서 한 신부가 연설을 했는데 이런 말을 했다

 

"alt":"아연 소년들 소송 사건시 한 신부의 연설 내용"

 

보기 두려운 광경이었다

벨라루스 어머니들은 달려들면서

십자가를 떼어 내 버리고 신부를 배신자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너무 오랫동안 속고 살았던 것이다

 

그건 사람들을 병들게 했던 거짓이라는 독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몇 년 후였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5~10년 후에 체첸 전쟁이 터졌다

 

"alt":"체첸 전쟁"

 

그때 길에서 한 여성분을 만났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들을 잃으신 분이었다

 

"alt":"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아들을 잃으신 분의 말"

 

"우리가 체첸에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러시아의 어머니들은 아들을 찾으려고 체첸으로 가기도 했다

결국 모든 진실이 드러나 사회에 알려졌다

 

진정한 문학은 현실을 정직하게 전하고

인간의 생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무의미하게 죽임과 기만을 당한 모든 사람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문학이다

 

 

 

 

 

(2024.05.07 방송)

 

 

4강  체르노빌의 사람들

 

 

 

 

"alt":"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체르노빌 사고는 그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체르노빌 원자로의 아버지로 불리던

알렉산드로프 같은 학자도 못 했다

소련의 원자로는 붉은 광장에 설치해도 될 만큼 안전하며

소련의 평화로운 원자력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평화로운 원자력은 없다는 걸 하루아침에 알게 된 것이다

 

다들 체르노빌 사고는 전쟁 같다고 했다

새로운 종류의 전쟁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에 처음 갔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꽃이 피어나고 나무에는 사과가 열렸다

이전과 같았다

그런데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강 쪽으로 모니까

오염된 물을 먹지 않으려고 소들이 돌아섰다

이런 일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나이 많은 기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

"이 일도 이제 못 해 먹겠어

새들이 눈이 멀었는지 창문으로, 차로 돌진하거든"

새들도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충격을 받은 사람들과 만난다

인류가 한 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사건에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꼭 써야 했다

 

그럴 힘이 없었는데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투르게네프 소설의 지주처럼

냉담하게 "내 힘 밖의 일이야"라고 할 순 없었다

체르노빌에서 사망한 소방관의 아내분께 들은 이야기다

 

소방관들이 체르노빌 발전소에서 불을 끄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일여덟 명이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의 화상을 입었다

소방관들은 특수 치료를 위해 모스크바로 이송됐다

아내분은 병원에 가서 남편이 있는 곳을 수소문했고

마침내 안에 들어가게 됐다

그런데 병원 관계자가 와서 남편에게 떨어지라고 했다고 한다

 

"alt":"체르노빌 소방관 이야기"

 

이젠 입 맞추는 것도, 만지는 것도 안아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체르노빌이 아니라 전쟁터에서 다친 사람이었다면

껴안을 수도 입 맞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산 사람과 모든 게 똑같지만 다친 것뿐이기 때문이다

 

 

원자로가 불탈 때는 다른 마을에 살던 사람들까지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불구경을 했다

세상이 불그스레 타올라 정말 장관이었다

물리학 교사도, 군인도 그 누구도 그게 죽음이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불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죽음이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낯선 죽음이었다

 

'체르노빌 후유증'이라는 개념을 그때는 생각지 못했다

사인은 다양했다

위장병, 위암, 심장병까지 온갖 병이 있었다

요즘 과학자들은 그 원인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오염인 걸 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나를 만나고 싶다고 먼저 연락했던 헬리콥터 조종사가 있었다

그분을 만났는데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긴 힘들었다

온몸이 벌겠다

 

"나는 곧 죽겠지, 그래도 내 얘기를 써 줘.

우린 그때 몰랐어 사람들도 모르는 게 있겠지

하지만 증언을 남겨야 해"

 

"alt":"체르노빌 유가족 추모 및 피해 보상 요구 행렬"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는 무엇이든 쓸 수 있었다

※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 1985-1991년, 고르바초프가 실시한 개혁 정책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쓸 순 없었다

인터뷰이나 나, 둘 중 한쪽은 이해를 해야 한다

이해 못 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체르노빌이나 핵에 대해 완전히 알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죽었는지 대해서도 말이다

 

"alt":"벨라루스에서 만든 선량계"

 

사람들이 선량계를 받아 집으로 가져갔더니

선량계에서 계속 딱딱 소리가 났다

체르노빌 피폭 지역에서 살기 싫다며 사람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거기 남았다

모두 아이들과 함께 죽어 갔다

 

정부는 그냥 선량계 제작을 중단시켰다

루카셴코(벨라루스의 대통령)가 체르노빌에 방문한 적이 있다

 

"alt":"루카셴코의 체르노빌 방문"

 

둘러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땅은 멀쩡하니 씨를 뿌려도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거기 사는 사람도 없는데 곡식을 심기 시작한 것이다

 

수확기 운전기사, 트랙터 운전기사가 투입됐는데 다 죽었다

몇 명이 죽었는지 아무도 세지 않았다

몇 명이 죽었는지 사인이 뭐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거기서 일하던 청산인들의 몸에도 방사능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매일 방사선량을 측정해야 했다

※ 청산인(Liquidator): 원자력 발존소 안팎의 오염물질 수거 작업에 투입된 사람들

 

방사선량이 꽤 높아도 집에 보내 주지 않았다

일을 계속했지만 방사선 축적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나중에 치료를 받기도 힘들었다

체르노빌에서 발급받은 의료 서류들은 무효였다

진실을 증명해 주지 못했다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는 큰 속임수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방조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은 아직 이 정도의 도전과 재앙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이에 대처할 능력이 없다

 

체르노빌 출입 금지 구역에서 일본인 과학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여기서 뭘 하냐고 물었더니 미래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alt":"후쿠시마 원전사고"

 

일본에도 원전 사고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나는 후쿠시마에도 갔다

거기도 상황이 똑같았다

수많은 사람이 집을 버리고 대피했다

주민분들이 예전에 살던 집 사진을 보여 주셨다

허가를 받고 어느 집을 방문했는데 크고 예쁜 집이었다

정작 그 집의 가족은 다른 곳에 있는 방 두 개짜리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이런 말을 하셨다

 

"alt":"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주민의 질문"

 

일은 일어나 버렸고 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땅은 방사능을 그렇게 빨리 정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백 년은 걸릴 것이다

방사능 핵종에 따라 붕괴하는 데 20년이 걸리기도 하고

100년이 걸리기도 한다

1000년을 가는 고방사능 원자도 있다

 

"alt":"일본에서 출간된 체르노빌의 목소리"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여기선 사고가 일어날 리 없다고 했다

조심성 없는 러시아 사람들과는 다르게

모든 걸 계산하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계산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어리석게도 사람들은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본도 자신들의 문명이 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해안의 쓰레기만 남았다, 문명이 남긴 건 그게 다다

전부 인류가 감당해야 할 결과다

 

현대의 진보는 어떻게 보면 전쟁이다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진보는 전쟁처럼 희생을 동반한다

 

 

 

 

(2024.05.08 방송)

 

 

5강  소련이 그리운 사람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의 붕괴

 

호모 소비에티쿠스

요즘 말로 '위대한 유토피아'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다

속임수의 시대

피바람이 불고 콜리마와 마가단이 묘지로 변했던 시대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소련이 특정 유형의 사람들을 양산하려 했다는 것이다

즉 호모 소비에티쿠스는 소련 사람이다

학교조차 단 하나만 가르쳤다

 

조국을 위해 죽어야 한다

 

전쟁이 나면 조국을 위해 죽어야 하고

우리는 그럴 준비가 돼 있었다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요리나 바느질하는 법 운전하는 법 같은

사람 냄새나는 건 전혀 못 배웠다

 

우린 총 쏘는 법을 배웠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업적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살았던 소녀들처럼 말이다

참 신기하게도 우리의 삶은 없는 것만 같았다

 

우리의 삶은 항상 수단이었고 한 인간의 삶 같은 건 없었다

집단만 있었다

각자 바라는 게 있는 서른 명의 개인이란 건 없었다

우리는 미개간지로 가야만 했다

광적인 분위기였다

'조국이 먼저, 그다음이 우리'라는 노래 가사도 있었다

 

"alt":"콤소몰의 전통"

 

정말 놀라운 건 우리가 노예나 다름없었단 것이다

하지만 가장 놀라운 건 우리가 노예 제도에 낭만이 있었단 것이다

 

 

아직도 90년대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광장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생생한데

모스크바와 민스크에 자주 갔었다

 

"alt":"모스크바 러시 민주주의 시위"

 

근데 우리 중 누구도 자유가 뭔지 몰랐다

평생 사회주의라는 수용소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던 사람이 누가 문을 열어 줘서 밖에 나오면 자유로워진 걸까?

 

"alt":"붉은 인간의 최후 중"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책에 나오는 많은 분이 자본주의를 거부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꿈꾸는 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다

 

그게 그 시절 사람들이 그리던 자유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전혀 다른 길로 빠져 버렸다

사회주의를 벗어나 자본주의로 접어들었다

참 독특한 역사다

 

소련 시대에 피의 대가를 치르고 얻었던 것들을 잃었다

여성 해방도 이루었고 다른 성과도 있었다

 

그 당시에 루뱐카에 있던 제르진스키의 동상도 철거했는데

 

"alt":"펠릭스 제르진스키의 동상"

 

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촬영 때문에

바이칼 아무르 철도에 간 적이 있다

철도를 건설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막사에 살았다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데

야외 화장실에 있는 막사에 살았다

 

거기서 많이 먹는다고 만두를 찌고

보드카를 조금 마시더니 다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콤소몰 노래를 부르면서 아주 뿌듯한 표정으로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 콤소몰: 전영방 레닌주의 청년 공산주의자 동맹

 

이 철도를 어떻게 지었는지 이 막사에서 어떻게 평생을 살았는지 말이다

사람들에게 자유가 뭐냐고 물어보면

다들 '민주주의', '자유'라는 단어를 말한다

러시아나 벨라루스에는 그런 게 없는데도 말이다

자신들은 자유롭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유 같은 건 없다

그냥 말뿐인 개념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그런 사람이 없었다

겨우 수용소 문밖으로 발을 내딛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alt":"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정말 놀랄 만한 일이 있다

요즘도 러시아에 사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서 질문하면

이런 믿음을 보여 준다

러시아를 공격하는 우크라이나로부터 조국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사는 곳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천 킬로 미터나 떨어져 있다

대체 왜 우크라이나가 부랴트를 탐내겠나?

"아니요, 분명히 공격했어요

우리 아들들은 영웅이에요, 우리를 지켰어요"

이게 낭만적인 노예이다

 

소련 사람들은 낭만적인 노예들이다

잘못된 이념을 주입당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바흐무트나 아우디이우카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젊은 사람들을 러시아 광신도들, 러시아 노예들이 죽인 것이다

 

"alt":"붉은 인간의 최후 중에서"

 

나는 평화주의자이다

당연히 어떤 전쟁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

 

푸틴이 저지당하지 않으면 발트 삼국과 몰도바를 점령하려는

계획을 실행할 것이다

1930~40년대에 있었던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때도 히틀러를 제때 막지 못해 그런 일이 일어났다

 

평생 잊지 못할 2차 세계대전 생존자가 계신다

그분은 교사였는데 명이 다하고 있다는 걸 본인도 알고 계셨다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는데 자신의 모든 훈장을

군사 박물관이 아니라 교회에 기증하셨다

 

"alt":"2차 세계대전 생존자의 이야기"

 

그렇게 조국을 지켜야 했지만 살인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평생 꿈을 꿨다고 했다

날아가고 싶은데 자신이 죽인 독일군이 

자꾸 다리를 붙잡아서 날아가지 못하는 꿈이다

평생 이 악몽에 시달리셨다고 한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일을 많은 사람이 자행하고 있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짓이다

전쟁은 사람의 짓이지 신의 계획이 아니다

 

이런 짓이 신의 계획일 리 없다

나는 작가로서 평생 악을 탐구해 왔다

그 악은 나의 조국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 악은 바로 공산주의 이념이다

 

여러분이 이 이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한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과거와 연결돼 있다

친구와 얘기하는 것처럼 편하게 들어 달라

내가 알게 된 세상의 진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테니

이 이야기에서 얻는 게 있다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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