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 3 (자본주의 세계 지배사) 1~5강

by 상팔자 2024. 2. 15.
반응형

(2024.02.08 방송)

 

 

EBS 위대한 수업 3 (자본주의 세계 지배사) 

위대한 백세 번째 강연 '자본주의 세계 지배사' (시즌 3 스물두 번째)

 

 

 

도널드 서순(Donald Sassoon) 런던대학교 퀸메리 칼리지 유럽 비교사 명예교수

<사회주의 100년> 도이치상 (1997)

<유럽 문화사> 알라시오 인터내셔널상 (2009)

나폴리 평생공로상 (2017)

Acqui Storia Award(이탈리아 문학상) 수상 (2019)

 

 

 

 

 

 

 

1강  자본주의 등장을 반긴 사람들

 

 

 

 

세계 자본주의의 출현

 

 

 

세계화란 세계가 통합되어 가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수 세기 전에 시작됐다

무역과 생산이 대규모로 확장되고 전례없는 눈부신 성장과

소비의 증대, 획일화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점점 비슷한 물건을 사고 비슷한 음식을 먹는다

햄버거, 피자, 초밥, 김치, 카레, 타코, 쿠스쿠스처럼 말이다

콜라, 커피, 차, 맥주 등 음료도 비슷한 걸 마신다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을 읽고 비슷비슷한 음악을 듣고

엇비슷한 텔러비전 방송을 본다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몇몇 자본주의 기업이 있다고 자본주의 사회가 되진 않는다

산업혁명에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건 논란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가 언제 시작됐는지는 논란거리다

전쟁이나 정권과 달리 정확한 날짜에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예를 들어,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직조공이 일꾼을 고용해서

일할 도구와 원료를 주고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자

그럼 카를 마르크스는 이 사람을 자본가라고 할 것이다

 

생산 수단자본을 가졌고 일꾼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옷을 팔아서 마르크스가 말한 잉여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자본주의 경제라고 말할 사람은 없지만

그 당시에도 주요 도시에 직조공 13,200명이 있었다

기원전 2,000년 무렵이다

 

&quot;alt&quot;:&quot;영국 기술 발전의 횃불&quot;

 

석탄 생산이 영국 발전의 주된 요인으로 손꼽히지만

석탄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었다

문화, 법, 종교, 확립된 소유권, 기술, 높은 임금 수준,

기업가 혁신을 촉진하는 요인들, 해양의 개척과 정복,

재정을 지원하는 은행이 있었다

 

그리고 18세기 영국만의 두드러진 기술혁신도 있었다

증기 기관과 주철 산업이 그것이다

노예무역도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그 모든 요인이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뭐가 더 중요한지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제도 역시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강력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를 장려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자본의 발흥에 관한 하나 불변의 요인도, 예정된 요인도 없다

어쩌면 이런 특성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이

불안에 시달린다고 할 수 있다

 

불안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속적인 속성이며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 체제의 일부이다

 

 

과거에는 변덕스러운 날씨와 기근, 전쟁, 역병 등이

불안의 주요 원인이었고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불안에 떨었다

새롭고 예상치 못한 것들은 모두 경계 대상이었다

그 옛날에는 산을 원망하거나 죄지은 자를 탓하거나

불운 탓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 자본주의는 다르다

명확하게 인간이 만든 체제고 개인이 내린 수많은 결정이 모여

자본주의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혁신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생겨난다

만성적 불안정은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지

체제의 결함이나 우연히 생겨난 부작용이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자본주의가 세계에 기세를 떨쳤다

영국은 더 이상 10세기 초에 그랬던 것처럼

거의 유일한 산업 강국이 아니었다

독일이 따라잡고 있었고 미국은 이미 영국을 따라잡아

현대에는 독보적인 강국이 되었다

 

사람들은 현존하는 경제체제만 사회를 돌아가게 한다고 믿는 것 같다

자본주의는 작동하지만 곳곳에 불만이 만연해 있다

요즘 부자들은 빈민을 드러내놓고 착취하지 않는다

 

일부 빅토리아 시대의 사업가나

19세기 미국의 '날강도 귀족'과는 다르다

 

♣  날강도 귀족(Robber Baron)

; 19c 후반 ~ 20c 초 착취 관행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미국의 사업가

 

제3세계 나라에서 비참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높은 소득을 버는 서구 노동자 사이에 하나로 연결된 사슬이 있다

하지만 이 사슬이 너무 길어 보이지 않을 정도다

 

&quot;alt&quot;:&quot;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사슬&quot;

 

요즘 부자는 억압받는 저임금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일이 드물다

억압받는 저임금 노동자는 머나먼 타국에 산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이렇지 않았다

 

카를 마르크스는 '자본론'의 인상 깊은 한 대목에서 온갖 분노를 표출하며

과로로 사망한 20세 재봉사 메리 앤 위클리의 사례를 설명한다

메리 앤은 하루 평균 16시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성수기인 3월부터 7월에는 작업실에서 우아한 드레스를 여러 벌 만들어야 했는데

왕세자빈 축하 무도회에 맞춰 귀부인들이 입을 드레스였다

메리 앤의 죽음은 주요 신문마다 보도되었다

 

보수적인 논조의 '펀치(영국의 주간 풍자만화 잡지)'조차 마르크스만큼 분개했다

 

&quot;alt&quot;:&quot;펀치에 실린 만평&quot;

 

어쩌면 메리 앤을 사망케 했을지도 모를 드레스를 입던 귀부인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다가 경악하고 만다

과로로 쓰러진 재봉사의 주검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뒤에 서 있던 여자가 안심시키는 말을 한다

'저희는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부인을 실망시키지 않을 거예요'

'드레스도 멋지게 완성됐네요'

 

이처럼 당시, 메리 앤이나 그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은

노동의 산물을 소비하는 자들과 멀지 않은 곳에서 일했다

150년이 지난 현대에도 여전히 메리 앤 같은 노동자는 존재하지만

소비하는 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다

 

일부 공산주의 경제는 성공적으로 산업사회의 기반을 마련했지만

현대 소비 자본주의가 이룬 성과에 견줄만한 것은 없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날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동독과 서독의 무너진 장벽을 처음 넘어간 사람들은

상점에 물건을 사러 갔다

 

신앙심이 깊은 시대였다면 되찾은 자유를 감사하며

대다수가 성당에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이미 1860년대에 엘리트 정치인들은 산업화가 불가피하다는 걸 알았다

이런 엘리트들은 다양한 정치 진영으로 나뉘었다

계몽 보수주의를 포함해서 당시 가장 중요했던 정치 집단인

자유주의나 반동주의, 사회주의로 나뉘었다

 

자유주의 엘리트는 자본주의 그 자체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였다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루면 귀족이나 성직자의 특권 같은

봉건제의 잔재가 사라지고 기업가의 정신이 자유로워져

경제성장이 가능해지고 국가가 군사적, 정치적으로 강해질 것이라고 봤다

산업화를 가능케 하고 과학을 장려할 셈이었다

그런데 1880년대에 이르자, 영국에서조차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세력의 무제한적인 발전에 대한 신념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 신앙과 같이 신봉되는 게 아니라

자국 자본주의 발전에 적합할 때에만 실용적을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사회 정치적 개혁 정책으로 자본주의를 다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자본주의에 정치적 개입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경제학자들은

단순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단순히 하나의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가 번성하기 위해서는 사회 기반 시설이 받쳐줘야 하고

폭넓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자본가는 자기 힘만으로 이런 조건을 달성할 수 없었다

국가와 제도를 누구보다 필요로 했던 건 자본가였다

새로 떠오르는 자본주의 체제는 행정력을 갖춘 중앙 집권 국가와

상비군, 그리고 상업을 규제할 법률 제도가 필요했다

노동자를 규제할 강제 계약과 소통체계를 위해서이다

 

과거 18세기 귀족과 농민들은 국가 구조에 그만큼 의존하지 않았다

국가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발전에 높은 공공 비용이 발생하거나

시장 체제에 대한 일정한 개입이 필요하다면

비용을 들일 가치는 충분히 있지만 얼마만큼이 적절한지는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가 도를 넘어 개입했는지 끝없는 논쟁이 시작됐다

 

사회주의 엘리트는 남김없이 모든 것이 바뀌길 원했지만

자유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필연성은 받아들였다

자본주의를 진보적인 힘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처럼 사회주의자도 자본주의가 전통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고

농촌의 미신과 불가사의한 종교적 믿음이 부서지는 것을 칭송했다

 

사회주의자는 자유주의자와 달리 자본주의 자체를 목적으로 받들지는 않았지만

계층과 특권이 없는 미래 사회를 예견하게 하는 체제로 봤다

사회주의자는 마르크스를 따라 자본주의 사회 질서는

사회주의 사회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대기실로 믿었다

자본주의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생기거나

혁명 봉기가 일어날 거라고 봤다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에 맞서는 세력이 반동주의자이다

반동주의자는 산업화 이전 시대로 돌아가길 원한다

옛날이 항상 더 좋았고 변화는 늘 나쁜 쪽으로 일어난다고 믿었다

반동주의자는 시장의 새로운 힘에 반감을 품는데

귀족의 가치 대신 돈의 힘을 특권화한다는 이유였다

반동주의자는 누구나 본분을 알던 이상적인 과거를 그리워했다

새로운 것이면 뭐든 달갑지 않게 여겼다

그들이 항상 틀리지는 않았다

 

역사는 변화하지만 변화를 부정하는 게 불건전하진 않다

느리든 빠르든, 변화가 모두에게 이로운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반동주의는 19세기 말이 세력이 약해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견해는 모든 정치에 영향을 미쳤고 현재까지도 그렇다

그들은 변화를 비난함으로써 변화의 속도를 늦췄지만

반대 세력인 자유주의나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라는 근대성을 피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2024.02.09 방송)

 

 

 

2강  어떻게 하면 미국처럼 강해질까

 

 

서구화

 

18세기말, 일부 동아시아 국가는 유럽보다 크게 뒤처지지 않았다

중국은 여러 과학 분야에서 유럽을 앞섰다

아시아의 인쇄술은 구텐베르크보다 수 세기를 앞섰다

 

&quot;alt&quot;:&quot;중국에 교역 장벽을 낮춰달라고 사신을 보낸 조지 3세&quot;

 

건륭제가 왕에게 보낸 친서는 현재까지도 유명하다

 

&quot;alt&quot;:&quot;중국의 건륭제의 말&quot;

 

건륭제는 호의의 표시로 차를 비롯한 몇몇 교역품을 가져가라면서

하대하듯이 덧붙인다

 

&quot;alt&quot;:&quot;영국을 하대한 중국&quot;

 

하지만 머지않아,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러시아와 미국까지

중국이 아편 무역을 허가하도록 압박하며 아편 전쟁을 벌였다

 

&quot;alt&quot;:&quot;제1&#44;2차 아편전쟁&quot;

 

2차 아편 전쟁의 최종 국면이었던 1860년에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베이징 유적지 원명원을 파괴했다

1850년대에 여러 조약에 따라 중국은 자유 무역을 강요당했고

수많은 항구를 서구에 억지로 개방하고 홍콩을 영국에 넘겨줘야 했으며

선교사와 서양 상인이 제약 없이 중국을 드나들게 됐다

 

중화 제국, 네 바다로 둘러싸인 땅 죽, 그 자체로 세계인 중국은

2,000년의 역사를 지녔지만 서구의 반식민지 신세가 되었다

 

 

일본은 서구화가 다르게 전개됐다

서구의 진보에 열광하는 물결이 일본을 휩쓸었다

근대를 향한 혁명도 일어났다

이른바 1868년의 메이지 유신으로

낡은 봉건제가 산산이 무너지고

근대 일본 국가를 위한 근간이 만들어져

일본의 민족주의가 탄생했다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은 제3세계의

당대 엘리트와 유사하게 서구를 향한 동경과

증오 사이에서 괴로워했다

이들은 과감히 과거를 단절하고 2세기에 걸친

자발적 고립상태를 깨고 개방했다

 

변화를 향한 추진력은 정치성을 띠었다

일본 정권은 나라의 주권을 지키고자 산업 발전을 택했는데

이는 군사적 필수품 같은 것으로 일본이 식민지 또는

중국처럼 반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본이 자국을 다른 나라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시대는 끝났다

서구를 열심히 모방하려 했지만

이는 일본 역사상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5세기에는 유고나 불교와 같은 종교, 건축, 행정, 한자 등을

중국에서 도입했다

종종 한국을 거쳐 들여오기도 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저절로 발달하지 않았다

일본 상인은 위험을 무릅쓰기 싫어했고

새로운 상품에 투자하길 망설여서 철보다 비단 생산을 선호했다

그래서 메이지 정부가 개입해 자본주의를 적극 구축하려 했다

시험용 설비를 짓도록 자금을 대서 산업에 투자하고

여러 사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은행 설립을 장려했다

 

산업을 기반으로 경제가 성장 하기에는 천연 에너지 자원이 부족했던 터라

일본은 자국 경제를 지원하고자 대만과 한국을 지배할 공식 권한을

확립하는 방식으로 원자재를 확보하고 이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중국은 실패했지만 일본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건설해서 주변국에

변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민간 주도로 변화를 일궜지만

민간이 이끌어 산업화를 이룬 나라는 극소수이다

영국, 벨기에, 스위스 정도다

산업화는 전 세계에서 일어나며 나라마다 다른 수준의 성공을 이루었는데

순탄하지 않고 종잡을 수 없고 무계획적으로 진행됐다

 

 

일본과 중국이 술렁이는 동안 오스만 제국도 마찬가지였다

 

&quot;alt&quot;:&quot;오스만 제국&quot;

 

1839년, '탄지마트'라는 개혁 정책을 지지하는 자들은

정권 주도의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제국의 쇠퇴를 막으려면 불가피하다고 본 거다

하지만 엘리트 계층의 반발이 일본보다 더 거셌고

결국 개혁은 실패로 돌아갔다

'유럽의 병자'라는 표현은

오스만 제국을 묘사하기에 부적절한 말은 아니었다

 

&quot;alt&quot;:&quot;유럽의 병자&quot;

 

 

일본과 중국이 그러했듯이 유럽을 눈여겨본 것은

근대화 중인 터키나 이란, 이집트만이 아니었다

유럽 주변국 즉, 동유럽도 중심국을 주시했다

중심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을 말한다

남유럽인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모든 나라가 미국을 주시하며

같은 의문을 품는다

 

&quot;alt&quot;:&quot;어떻게 하면 미국처럼 부강해질까&quot;

 

경제적으로 말하자면 선두는 그 자리를 지키려 한다

선두를 쫓는 후발 주자라면 선두 자리에 오르려고 애쓸 것이다

상위권 국가라는 범주에 들지 못했다면

그 안에 들어가려고 할 것이다

심지어 이 시대에 서구를 가장 소리 높여 반대하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 지지자들도

민족 국가의 사상과 서구의 공화국 형태를 도입했다

 

사상은 가장 쉽게 들여올 수 있는 수입품이다

 

19세기 후반에 수입이 쉬운 이 상품을 전 세계에서 활발히 주고받았다

사상을 들여오는 이들은 흔히 낙후 지역의 지식인이었다

자신들의 뒤떨어짐을 인지하고 부끄러워하며

들여온 사상이 변화를 일으킬 거라는 낭만적 믿음에 매달렸다

 

 

러시아에서는 지식인들이 차르 독재에 맞서기 위해 집결했지만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해야 할지를 두고 분열되었다

 

&quot;alt&quot;:&quot;크림전쟁&quot;

 

러시아가 크림 전쟁에서 패한 이후

러시아 엘리트 계층은 독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산업화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quot;alt&quot;:&quot;러시아 농노 제도 폐지&quot;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이미 훨씬 전에 농노제를 없앴다

농노 해방은 2,000만 농노를 속박에서 풀어주었고

지주의 독단적인 권력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다수의 소작농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신분해방 상환금을 갚아야 해서 오히려 빚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 상환금은 농노해방에 따른 지주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나라에서 지불해야 했던 돈이다

 

어쩌면 러시아가 발전이 너무 느렸던 건지도 모르겠다

러시아 엘리트 계층이 너무 빠르게 행동에 나섰다는 의견도 있다

러시아사를 연구한 프랑스 사학자 아나톨 르루아 볼리외가

1881년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quot;alt&quot;:&quot;불가강의 배끄는 인부들&quot;

 

"이렇듯 러시아 사회의 엘리트들은 서둘러 전진했다"

 

&quot;alt&quot;:&quot;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내용 중&quot;

 

서두르지 않았다면 러시아 국민은 산업 사회 건설과 더불어

국민 구성원 형성에도 참여했을 것이다

 

 

유럽의 산업 성장은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간

서구의 일부 지역에 편중되었다

서구와 일본 외에는 근대 제조업이 거의 없었다

산업화를 꽉 잡고 있는 곳은 서유럽과 미국이었다

유일하게 일본만이 이 패권에 도전할 수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현재 '제3세계'라 불리는 나라들은

전 세계 산업 생산량의 2~3%도 채우지 못했다

서구의 성장은 주변국과 비교하면 두드러지지만

자본주의의 진정한 황금기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시기와 비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황금기에 유럽과 북미의 선진 경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로 전환할 환경을 만드는 데 국가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쟁을 규제할 입법 기관이 체제 전환의 전제 조건인 이유는

자본주의가 다른 경제 체제와 달리 무정부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짐승과 함께 살려면 먼저 길을 들여야 한다

자본가는 자본주의를 규제하지 않는다

자본가는 사회 및 경제관계 안에 갇힌 존재이며

그 관계 안에서 경쟁자보다 지위를 높이려고 애쓸 뿐이다

 

일본과 러시아, 프로이센

이후 한국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주도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정한 근대 국가는 제대로 기능하는 국가여야 하며

효율적인 관료제와 여러 제도

대중을 통제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방법들

명확하게 규정된 사적 또는 공적 소유권

산업 경제, 그리고 교육받은 인구가 필요하다

 

진정한 근대 국가라면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거나

투자가, 대출 기관을 모아 사회 기반 시설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산업화를 촉진시킬 수는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주의와 시민권이 거의 없이도 가능했다

스탈린 시절의 소련은 눈부신 산업화를 달성했다

독립적인 사법부나 확실한 재산권이 없었고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독립적인 중앙은행도 없이 이룬 결과였다

하지만 그 결과가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한국과 대만은 1960~80년대에 독재 정권하에 급격하게 성장했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이룬 경제 성장에

IMF의 권고는 기여한 바가 전혀 없다

일본의 경제적 성공이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알려진

1960~70년대의 홍콩, 싱가포르, 대만, 한국은

국가 보호주의에서 시작했다

 

간섭주의는 19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더욱 흔했다

국가는 유럽 곳곳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느라 바빴다

중앙 집권적 방식 덕분에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망 남작은

파리의 하수 시설을 5배까지 늘릴 수 있었다

흔히 그렇듯, 극단적 자유주의를 옹호하며 비협조적으로 나온 사람들은

신중한 학자가 아니라 대게 유명 소설가나 언론인이었다

언론인과 달리 경제학자들은 삶의 복잡함을 알았기에

진정한 자유방임주의와 거리를 두었다

 

미국에서도 연방 정부의 개입이 핵심 요소였다

정부는 철도 건설의 원동력으로서

자본을 투자했을 뿐 아니라 방어적인 법적 환경을 만들어

기업들이 서투른 판단과 부정부패 등에 휘둘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러시아도 경제 성장의 주역은 바로 국가였고

외국계 은행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의미에서 각 국가는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중심이 국민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독재 국가조차도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의 목적과 계획은

자국민의 삶을 더 낫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통치자는 국민을 대신해 행동할 것을 선언해야 하며

국민은 납세 의무를 받아들여야 한다

 

 

 

 

 

(2024.02.12 방송)

 

 

3강  자본주의에 반드시 국가가 필요한 이유

 

 

 

 

국가 건립

 

조세는 근대 국가의 핵심 과제이다

세금 없이는 국방이나 법, 질서도 없고

공공사업이나 복지, 교육, 공중보건도 있을 수 없다

 

&quot;alt&quot;:&quot;세금징수를 위한 인구조사에서 마리아와 요셉&quot;

 

세금이 필요하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반론이 강하지 않다

내 나라니까 세금을 내는 것이고 내게 필요한 편익을 나라가 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세금 징수는 국민이 성공적으로 구성됐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이다

실패한 국가는 세금을 거둬들이질 못하는 국가다

 

세무공무원이 쉽게 매수되고 사람들이 공모해서

탈세를 하며 탈세가 용인되고 정당하게 여겨진다

조세는 폭넓고 다양한 징수 체계에 달려있는데

국민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징수할 수 있다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루이 14세 밑에서

1665년부터 1683년까지 재무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quot;alt&quot;:&quot;장 바티스트 콜베르의 말&quot;

 

영국 본토에서는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없다시피 했지만

미국 식민지의 정착민들은 조세에 거세게 저항했다

멀리 떨어진 런던을 더는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 독립 혁명이 시작됐고

'대의권 없이는 과세도 없다'는 유명한 구호가 따라붙었다

 

&quot;alt&quot;:&quot;미국의 독립혁명의 시작&quot;

 

영국에서 조세 저항이 적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직접 소득세 납세자에게 준 의회 선거 투표권이었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다

 

철학적 자유주의자 사이에서도

부자가 빈민보다 세금을 더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애덤 스미스나 대부분의 정치 이론가도 같은 생각이었다

프랑스 정치 이론가 몽테스키외는 1748년에 출간한 저서

<법의 정신>에서 설명한다

세금은 시민이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이라고 말이다

어찌 보면 국가를 자릿세 뜯는 합법적 깡패로 묘사한 것 같다

세금을 내는 대신 우리 자산을 보호해 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현실적인 자본가는 대체로 자유 시장 경제를 강력히 지지했지만

한편으로 자유 시장 경제도 사회주의처럼 이론만 그럴싸하고

허울뿐인 걸 대개는 알고 있었다

 

사실 자본가는 경쟁 즉, 시장 원리에서 국가가 보호해 주길 원했다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자유주의자도 어떤 상황에서는

보다 인간적인 세상으로 개선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유 재산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유작 '사회주의론'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자본주의 체제의 불평등을 비판했고

부자의 게으름과 노동 계급의 빈약한 형변을 지적했다

개인의 이윤과 경쟁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생산 목표는 '공공선'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세금이 필요하다

약소국의 문제점은 과감하게 세금을 부과하지 못하거나

징세를 엄격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제정 러시아가 그랬다

제1차 세계대전과 혁명 이전 수십 년 동안

국가 총세입의 일부만을 직접세로 거뒀다

대부분은 보드카에 매긴 세금이었다

 

중국은 무려 2,000년 전부터 세금을 걷었다

제국은 폭군이 다스리는 거대한 관료 기구로 보일 정도였다

세금의 증가는 근대에 들어서도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이 보면 기겁할 수준으로 올랐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에서 이어진

신자유주의 반혁명 세력도 세금 증가 추세를 뒤집진 못했다

 

&quot;alt&quot;:&quot;OECD 국가의 GDP 대비 평균 조세 수입&quot;

 

세금을 줄이겠다던 대처와 레이건이 있었을 때도 올랐다

자본주의도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세금이라는 산소가 필요하고

효율적인 징세를 위해서는 국민이란 공동체가 필요하다

 

19세기 영국이 이룬 경제 성장은 널리 인정받고 존경받고 있다

영국의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맨체스터 자유주의 즉, 자유 무역으로 보인다

 

&quot;alt&quot;:&quot;맨체스터 자유주의&quot;

 

영국은 여러 분야에서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나라가 됐다

자국의 산업과 수출 덕분에 자국민들에게 

보다 부유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당시 다른 나라를 보면 프랑스는 빈번하게 정권이 교체됐고

미국은 내전을 겪었다

중국은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고 이탈리아와 독일은 통일 전이었다

하지만 영국 사회는 안전하고 정치도 안정적이었다

 

역사상 후발 주자의 운명은 꽤 흥미롭다

후발 주자는 선구자보다 외부 세계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선두를 따라잡아야 하지만 개척자인 선두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긴 힘들다

후발 주자는 기업가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만 기다릴 순 없다

국가가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각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근대에 진입했지만

스스로 시기를 택해서 진입한 것은 아니다

내부 세력이 우세할 때도 있었고

외부 압력이 결정적일 때도 있었다

잘 닦인 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공 비결이나 따라 할 본보기도 없다면

각 나라는 어떻게 근대라는 시대로 진입했을까?

 

근대는 굳건히 자리 잡기 전까진 지지자가 거의 없지만

몇 안 되는 지지자가 워낙 강력한 탓에

저항하는 다수를 무력으로 새로운 길까지 끌고 간다

이런 과정은 민주주의가 비교적 약할 때 더 쉽다

보통은 민주주의가 먼저 자리 잡고 자본주의가 뒤따른다

 

결국 산업화가 발전하려면 인간의 고통이 따른다

18세기 영국에선 지주들이 공유지에 울타리를 쳤다

 

&quot;alt&quot;:&quot;엔클로저 운동&quot;

 

지주들은 돈을 벌려고 아메리카로 노예를 보내 목화를 따게 했고

영국 제조업자들은 부자가 됐다

이렇게 생산된 면포는 대부분 인도로 팔렸다

인도는 산업 혁명 이전에 주요 목화 수출국이었다

울타리 치기로 땅을 잃은 농민들은 유해한 환경의 도시로 이동해서

새로 지어진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어떤 사람들은 바다 건너 식민지에 정착하거나

미국 같은 예전 식민지에 정착했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아프리카에서 원주민들을 몰살하거나

오지로 내모는 심각한 폭력이 계속 일어났다

산업 발전 과정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행위들과 함께 일어났다

 

&quot;alt&quot;:&quot;산업 발전과 비민주적인 행위들&quot;

 

1970년대에 프랑코 독재가 끝날 때까지의 스페인도 그랬다

 

'국민'이란 공동체를 확립할 방안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수십 년간 주요 정치 문제였다

다양한 전략을 실행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유한 국가에서만 가능했다

소비를 급격히 늘려 산업화로 얻은 이익을 빠르게 분배하는 방법이었다

 

'국민'이란 공동체를 설립할 다른 효율적 방법도 사용했다

민족주의로 모든 시민을 포용하려고 했고

식민지를 확보해서 민족의 자부심을 키우면서

시장과 이주 중심지를 제공하고 정부 지원 일자리를 마련했다

마침내 자본주의가 전 세계로 지배력을 확장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범세계적 경향성을

일찍이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언급했다

 

&quot;alt&quot;:&quot;공산당 선언 중&quot;

 

1891년에 이르자 세계주의 관점은 꽤 흔해졌다

유명한 경제사학 교수 윌리엄 커닝엄 목사가

'경제학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잉글랜드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quot;alt&quot;:&quot;윌리엄 커닝엄의 경제학의 민족주의와 세계주의 강연 내용 중&quot;

 

지식인을 비롯한 조국에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은

돈벌이를 정당한 국가 기반으로 장려하기를 꺼렸다

금융업자는 제조업자보다 더한 경멸의 대상이었다

품위 있는 사람이라면 생산 활동으로 돈을 벌 텐데

은행가는 돈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작물을 키우거나 물건을 만들지도, 팔지도 않았다

19세기부터 그 이후의 유럽 문학에는

금융업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득하다

미국 건국의 주역이자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아주 확실하고 맹렬하게 은행가를 비난했다

 

&quot;alt&quot;:&quot;금융업자에 대한 토머스 제퍼슨의 말&quot;

 

당연히 제퍼슨도 은행 없이는 자본주의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다

은행이 보편화되지 않았다면

독일,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는 지금만큼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은행이 없으면 국가도 없기 때문이다

 

 

 

 

(2024.02.13 방송)

 

 

4강  자본주의가 국민 형성에 앞장선 이유

 

 

 

 

국민의 구성

 

일단 국가가 수립되면 국가는 국민을 만든다

국민은 구성물이다

그 나라가 대대로 존재해 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구성물이다

국민을 구성하려면 필요한 게 있다

악랄할 적에게 희생된 역사나 용맹한 정복자나

문명을 가져온 역사적 인물이 그것이다

 

또한 교육 체계도 필요하다

고유한 역사와 단일 언어를 가르쳐

미래의 국민 구성원 사이에 공통성을 수립해야 한다

국민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민주주의라는 우산 아래 국민 전체가 단결하게 하는 것이다

 

민주화와 자본주의 성장 사이에는 대응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19세기에 여러 나라의 본보기였던 영국은

시민권이 확대되어 남성 노동계급의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프랑스는 민주화 과정이 순탄하지는 못했지만

영국보다 수준이 더 높았다

특히 제3공화국 수립 이후 안정을 찾자

1870년 이후 남성의 보통 선거권이 도입됐다

독일도 통일 이후에 남성 보통 선거권을 도입했다

 

미국은 '온 국민의 국가'라는 개념이 건국이념이었지만

그건 이념에 불과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노예도 투표권이 없었다

남북전쟁 이후 노예 출신과 그 후손들 역시

대부분 참정권을 얻지 못해 민주주의에서 배제되었다

 

어떤 형태로든 민중의 합의를 얻고 설득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은 이런 발전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구 자유주의를 표현한 거창한 표어들이 있다

 

&quot;alt&quot;:&quot;자유주의 표방 표어들&quot;

 

영국의 법치주의와 의회의 대표성은 전 세계 다른 나라에도 반향을 일으켰다

이런 멋진 표어들은 서구의 억압자나 잠재적 박해자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됐다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도 평등해야 한다

그 결과 20세기 내내 민주주의든 독재든

어떤 정치적 행위를 하든 국민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quot;alt&quot;:&quot;미국 헌법 전문의 시작&quot;

 

이보다 먼저 1789년 6월 프랑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제3신분(평민) 대표자 미라보 백작이란 인물이 있었다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성직자와 귀족이다

미라보 백작이 루이 16세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고 전해진다

 

&quot;alt&quot;:&quot;프랑스 미라보 백작의 말&quot;

 

 

국민 구성에 적합한 사람들의 필요성이 중국에서도 대두됐다

근대 중국의 아버지 쑨원은 국민당원과 공산당원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며

청나라를 멸망시킨 1911년 신해혁명의 주역이다

쑨원은 근대 산업 국가는 민주적이어야 하며

민족 통일과 민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quot;alt&quot;:&quot;삼민주의&quot;

 

민족 통일과 민생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이념이 유명한 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쑨원에 따르면 중국의 문제는 국민이 민족의식을 잃고

모레알처럼 흩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국민이란 구성하기는 어렵지만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발전에 여전히 꼭 필요한 과업이다

참정권은 처음에 남성에게만 주어졌지만

20세기 들어서 여성에게도 확대되면서

국민의 구성에 필요한 핵심적인 수단이 되었다

 

1867년 영국에서 디즈레일리 총리 아래의 보수당은

참정권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걸 깨닫자

남성 노동 계급 모두에게 선거권을 줬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달이 가져온 불안을

참정권으로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투표도 국민의 형성에 중요하지만 생활 수준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굶주린 사람들로 국민을 형성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14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서서히 합의가 이뤄졌는데 꾸준히 번영하리라는 가정하에

대체로 의견이 모아진 거였다

투표 이상으로 자본주의를 강화한 것은 소비였다

 

자본주의를 정당화한 거대한 합의의 진정한 토대는

시민이 소비자로 변한 것이다

소비사회는 자주 비판받지만 

이미 소비사회가 잘 확립된 곳의 사람들이 비판하지

소비사회에 진입하고 싶어 안달인 이들이 하지 않는다

 

미국은 유럽 국가보다 훨씬 앞서 소비사회를 구축했다

더 부유한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캐니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도

어느새 미국을 뒤따라 소비사회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십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번성한 여러 아시아 지역도 미국을 뒤따랐다

싱가포르, 홍콩, 한국, 일본 같은 나라들이다

 

하지만 민간 소비 그 자체로는 행복을 나타내는 지표로 충분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수입은 세후 소득만이 아니라

현물이나 현금으로 받는 복지 혜택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만약 병원비를 내야 한다면 수입이 같더라도

국가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사람보다 실제 수입은 적은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 수십 년간, 유럽은 물론이고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처럼 유럽인이 정착한 나라에서

근대 복지가 시작됐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복지 선진국이라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떠오르지만

초기 복지 국가로 잘 알려진 나라는 스웨덴이 아니라

극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가 이끈 독일이다

 

독일 복지 국가는 사회 개혁가 사이에서 널리 칭송될 정도였다

1890년 영국에서 출간된 윌리엄 도손의 '비스마르크와 국가사회주의'는

비스마르크를 유럽 정치인 최초로 사회복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원대한 전략을 시작한 인물로 본다

 

그의 전략은 복잡하면서 영악했다

저항하는 사회주의자를 다루려고 비스마르크는 채찍을 쓰면서

동시에 당근도 주는 식으로 강력한 사회 복지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연금 영역을 강조했다

1889년에 장애 및 노령 보험법이 제정되어

70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연금을 제공했다

당시에는 70년 넘게 사는 사람이 극소수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다

 

복지 국가를 만들려면 나라가 비교적 부유해야 하는데

20세기 초반에 대부분 나라는 부유하지 않았다

복지와 참정권은 '국민'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다

또 다른 수단은 '식민주의'이다

 

서구에서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식민주의를 받아들였다

카를 마르크스의 친구인 사회주의자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자유주의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정착민과 식민지 개척자가 저지르는

잔혹한 행위를 인정하면서도 식민화 과정을 용인했다

그게 그나마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상을 프랑스는 '문명화 사명'이라고 표현했다

 

&quot;alt&quot;:&quot;문명화 사명&quot;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지도자 장 조레스가

민족주의 사상에 동참하며 1903년에 공표하기를

프랑스는 모로코를 지배할 모든 권리를 가졌으며

"프랑스가 대표하는 문명은 확실히 우월해서

모로코 현 정권의 문명보다 우위에 있다."라고 했다

 

1985년에 영국 보수 진영의 식민지 장관인

조지프 체임벌린이 선언했다

"나는 대영 제국을 믿습니다. 나는 영국 국민을 믿습니다."

"나는 영국 국민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지배 국민이라고 믿습니다."

2년 뒤, 이렇게 덧붙였다

"문명화 계획을 실행하면서 우리는 우리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위대함은 과업입니다. 위대함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그것은 명예롭습니다."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라고 말하며 1845년에 텍사스 합병을 정당화했다

19세기말이 되자 식민지 경쟁에 일본이 등장한다

일본은 1895년 청일전쟁의 결과로 뤼순을 차지했다

그리고 한국을 잔혹하게 병합했고 이는 1910년에 공식화됐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하며 내세운 정당화 구실은

유럽의 식민주의자들이 둘러댄 것과 비슷했다

한국은 야만적이어서 죄인들을 비인간적으로 처벌한다는 것이다

죄인을 목까지 땅에 묻고 벌레에게 먹히도록 두는 식으로 말이다

그게 일본의 주장이었다

 

대만의 주민도 마찬가지였다

1895년에 중국이 일본에 대만을 강제로 양도했고

대만 주민은 사나운 야만인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독일의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워 호응을 얻은 주장이 있었다

독일은 국민을 통합하느라 뒤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다른 나라들, 특히 오만한 잉글랜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식민지가 독일 정착민들에게 일자리와 땅을 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것이 독일이 식민지 확보를 하려 했던 이유였지만

식민지를 확보하기만 하면 수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도 독일처럼 제국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남긴 거라도 차지하길

바랄 수밖에 없었는데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곳들이었다

심지어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 정복에 실패한다

 

&quot;alt&quot;:&quot;아두와 전투를 기념한 테피스트리&quot;

 

결국 이탈리아는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리비아 획득에만 성공한다

결국 제국주의에 찬성하는 경제적 주장은 설득력을 잃게 되는데

1945년 이후 경제성장이 가속화된 30년은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을 상실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제국은 최고 지위를 상징했다

제국이 의미하는 바는 강대국 중 하나라는 것이었다

디즈레일리는 제국이란 지위의 이데올로기적 가치를

잘 알았고 유명한 연설에서 이를 설명했다

1872년 6월에 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원리'라는 연설이었다

"잉글랜드인, 특히 노동자계급이

자신이 위대한 국가의 구성원임을 자부하고

국가가 위대함을 유지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민은 민주주의와 식민주의가 혼재된 토대 위에 형성되었고

국민을 결속시켜 다른 국민을 지배했다

 

 

 

 

 

(2024.02.14 방송)

 

 

5강  미국은 언제까지 승자일까

 

 

 

 

미국의 흥망성쇠

 

 

일부 국가는 자국의 세력, 지리적 위치, 경제력 때문에

이른바 패권을 갈망하기도 한다

패권은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주로 미국과 관련해서 쓰인다

오늘날에는 국제적으로 강력한 패권국이 없다

 

소련은 해체됐고 중국은 아직 힘이 부족하다

유럽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 기지 800곳을 뒀지만 그 때문인지 쇠퇴하고 있다

유럽은 이제 주변부에 속한다

유럽인은 유럽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유럽의 역할은 뭔지, 나아갈 방향은 어딘지 궁금해하고

미국이 앞으로도 유럽을 이끌지

새로운 패권국이 탄생할지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잊어선 안 된다

단 한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건 필연적인 게 아니다

 

사실 누구도 세계를 지배한 적은 없다

패권국이 패권을 잡아봤자 지배 지역은 한정적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 왕국,

고대 로마, 중화 제국, 칭기즈 칸의 몽골 제국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몽골은 역사상 가장 큰 육지 제국이었다

인도를 통치한 무굴 제국, 지금은 라틴아메리카에 속한 잉카와 아스테카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도 있다

 

영국은 18세기 말과 19세기 대부분 패권을 갖지 못했다

최강의 해군을 보유해서 바다를 지배했고

19세기말에는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자

주요 무역국이기도 했지만 세상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패권국이 아니었다

적어도 1900년 이후엔 가장 앞선 산업 강국이었다

1945년 이후에도 초강국이었던 건 분명하지만 공산권에 앞길이 막혔다

미국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중국에서 일어난 공산주의 혁명을 저지하지 못했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선언)

한국의 분단을 막을 수 없었다

(1951년 7월 27일 판문점 휴전 협정 조인)

베트남에서는 전례 없는 굴욕을 겪었고

(1955년~1975년 베트남 전쟁)

플로리다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공산국가 쿠바를 받아들여야 했다

(1959년 1월 1일 쿠바 사회주의 공화국 성립)

중동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인 이란의 왕이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추종자들에게 쫓겨나는 것도 막아주지 못했다

(1979년 이란혁명)

 

혹자는 미국의 패권 또는 위대함은 음악이나 영화 같은 

대중문화 분야에 있다고 말할 것이다

또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소프트웨어나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에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달러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람들이 미국식 사고를 받아들이긴 해도

미국의 물리적 생산물을 수용하는 건 아니다

 

유럽과 다른 나라에서 미국식 주방을 차용하지만

세탁기나 식기세척기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제품을 산다

텔레비전은 일본이나 한국 제품을 산다

19세기 동안 영국은 이상적인 근대 국가였지만

이 지위를 지키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미국과 프랑스는 적어도 영국만큼 근대화됐다고 여겼다

진정한 근대국가는 공화국이어야 하는데 영국은 군주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은 근대적이란 인상을 거의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과학과 산업의 발전을 끊임없이 전통을 유지하며 이뤘다

놀라운 열정으로 여러 전통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20세기 초에 근대의 횃불은 아메리카로 넘어갔고

수많은 유럽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과거가 없는 나라 미국은 미래의 나라가 되었다

 

남북전쟁 이후 30여 년 동안 미국은 급격하게 모습이 바뀌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국가로 우뚝 서며 영국을 앞질렀다

대규모 이민 덕분에 인구는 거의 두 배로 늘어났다

미국 신화는 특히 러시아 같은 낙후 국가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사회 개혁가들이 가장 미국 친화적이었다

 

1903년, 러시아 경제학자 이반 오제로프는 신랄하게 비교했다

러시아 관료의 오만함, 시민권 부재, 위험을 꺼리는 기업가,

술에 취한 러시아 노동자, 문맹, 원칙과 직업윤리의 부재를

미국의 창의성, 활력, 절주, 교육,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와 비교했다

 

&quot;alt&quot;:&quot;이반 오제로프의 말&quot;

 

1913년에 러시아 시인 알렉스드르 블로크는

'새로운 아메리카'라는 시에서

바다 저편에서 빛나는 위대한 모델에 비추어 러시아를 상상한다

 

&quot;alt&quot;:&quot;알레스드르 블로크의 시 새로운 아메리카&quot;

 

이게 바로 후발 주자가 생각하는 미국의 모습이었다

미국은 곧 미래였다

나라마다 미국처럼 되는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미국을 따라잡는다지만 남들처럼 되면서도 남들과 달라야 했다

어떤 길도 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수성을 주장하는 소리가 커졌다

역사 속 사례가 대부분 그렇듯

미국만의 행로는 독특해 반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미국이 이룬 뛰어난 경제 성과는

다양한 요인 덕분이지만 그중 핵심 요인은 광활한 땅과 영토였다

 

이 땅은 유럽 농촌 지역의 수많은 인구를 끌어들였고

그 결과, 미국의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했다

인구가 늘면서 생산자와 소비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임금은 그대로였다

1861년에서 1865년에 벌어진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주와 노예해방론자가 충돌한 격전으로 여겨진다

전통적 사회(남부)와 새로운 자본주의(북부) 세계가

갈등을 일으킨 것이기도 하다

노예제를 고수하려는 남부의 정치 경제와

자유노동에 근거한 북부의 정치 경제가 맞붙은 것이다

북부의 승리는 곧 북부 자본주의의 승리였다

 

사실 남북전쟁은 자본주의가 최초로 승리한 국제적인 군사 전쟁이었다

북부의 승리는 민주주의 승리이기도 했다

해방된 노예가 백인과 같은 정치적 권리를 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았다

노예였던 흑인 남성은 이제 권리를 잃은 노동자가 됐다

학자이자 범아프리카주의자, 인권운동가인 W.E.B.듀보이스는

남북전쟁 이후의 상황을 두고 탄식한다

 

&quot;alt&quot;:&quot;남북전쟁 이후 상황을 두고 듀보이스가 한 말&quot;

 

 

미국은 소비사회가 되기 훨씬 전부터 온 세계의 부러움을 샀다

미국 시장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컸고

생산성은 훨씬 높았으며 마케팅 기법은 비할 데가 없었다

19세기말 무렵, 미국은 이미 본격적인 자본주의 국가였지만

잉글랜드는 여전히 자본주의를 경멸하는 척하는 귀족으로 가득했다

 

미국적 사고의 중심이 되는 신화는

허레이쇼 앨저가 쓴 삼류 대중 소설에 잘 나타난다

 

&quot;alt&quot;:&quot;미국 신화가 드러난 삼류 소설의 내용&quot;

 

무일푼에서 부자가 되는 줄거리인데

엇비슷한 소설이 거의 100편에 가깝게 쏟아졌고

대표적인 미국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긴 하지만 진짜 승자는 작은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제조회사

1910년에 제조 대기업은 가장 우세한 기업 형태가 되었고

이민자 유입보다 노동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자 높은 임금을 지불했다

대규모 국내 시장과 꾸준한 혁신, 생산성 증대가 결합하니 상대할 자가 없었다

자본가 개인으로 보면 노동자를 착취하고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지불하고

경제 상황이 조금이라도 바뀌면 해고하는 편이 이익이겠지만

집단으로 보면 자본가는 돈이 있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생산품을 구매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노동자 말이다

 

자본가는 기꺼이 공장에 다시 나타나는 불만 없는 노동자가 필요하다

얼굴에 미소까지 띠진 않더라도 최소한 다음 날 일터에 나오면서

생활 여건이 더 나빠지지 않고 좋아지리라 믿는 사람이 필요하다

포드 자동차의 대표 헨리 포드는 이러한 사실을 완벽히 이해했다

노동조합을 격렬히 반대하고 히틀러를 숭배하는 반유대주의자지만

20세기 자본주의를 진정으로 개척한 사람이었다

높은 임금은 투쟁심을 버리도록 노동자에게 주는 뇌물인 셈이었다

 

미국의 임금은 유럽보다 높았지만

유럽 선진국에 비해 미국의 복지 수준은 현저히 떨어졌다

1945년 이후 미국 자본주의는 전례 없이 성장하지만

미국을 따라잡지 못한 후발주자들은 각자의 자본주의를 발달시킨다

 

그중 가장 강력한 상대는 소련인 것 같았다

1917년 혁명 이후 완전히 새로운 기반 위에 산업 사회를 발전시키는 걸로 보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이룬 소련의 산업 성장

잔인한 정권 아래 너무 많은 인간적 대가를 치르고 달성된 거였다

또 다른 강력한 상대는 전후의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아시아의 네 마리 용 홍콩, 대만, 싱가포르, 한국이었다

각 나라는 경제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떠오르는 미국 패권을 크게 위협하지 못했다

 

공산주의 체제가 1989년에서 1991년에 붕괴하자

미국의 권력을 가로막을 것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국의 쇠퇴기가 시작됐다

새로운 상대는 중국이었다

그때 중국은 막 회복하는 중이었다

중국은 1950년대 후반의 대약진 운동과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큰 대가를 치른 바 있다

 

중국은 이른바 '중국식 사회주의'를 시작했다

시장 경제를 공산당이 관리하는 체제에 도입하는 형식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지배적인 자본주의 국가지만

미국의 국내 문제는 국제 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여러 문제 중 높은 살인 범죄율부터 보면

인구 10만 명당 5.4명이다

 

&quot;alt&quot;:&quot;인구 10만 명 당 살인 범죄율&quot;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비율이다

미국은 또한 전 세계에서 죄수의 수감 비율이 가장 높다

 

&quot;alt&quot;:&quot;인구 10만 명 당 죄수 수감 비율&quot;

 

불평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2016년에 오피오이드 위기는

약물 남용으로 인한 63,000건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이 수치는 베트남에서 사망한 미국인 수보다 많다

 

&quot;alt&quot;:&quot;오피오이드 위기&quot;

 

워싱턴은 이제 중국과 무역 전쟁을 치르고 있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세계자본주의에 필적할만한 체제는 없다

세계자본주의라는 게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충돌하는 상이한 자본주의가 있을 뿐이다

과거에 그랬듯 충돌은 위기로 이어지고 

매 위기는 자본주의를 재편하는 과정이 된다

 

지본주의에는 생산과 소비라는 세계적인 흐름이 있다

자본주의는 기능할 수 있는 곳, 즉 이익, 기회, 틈이 있는 곳에서 작동한다

어느 자본가의 실패는 다른 자본가의 성공이다

모든 위기에는 승자가 존재한다

모든 승리는 한순간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고객이 영원히 바뀌는 호텔과도 같다

 

 

 

 

 

 

 

 

 

 

 

 

 

 

 

 

 

 

 

 

 

 

 

 

 

 

 

 

 

 

 

 

 

 

 

 

 

 

 

 

 

 

 

 

 

 

 

 

 

 

 

 

 

 

위대한 수업 (ebs.co.kr)

 

위대한 수업 Great Minds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 전세계 최고의 지성을 한 자리에!

home.ebs.co.kr

 

EBS 1TV 월~금 23:40 ~ 24:00 (본방)

EBS 1TV 토 24:45 ~ 26:15 (종합)  /  EBS 2TV 금 24:00 ~ 26:00 (종합)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