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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과 지식 사이

EBS 위대한 수업(공정을 말하다)제1강~3강 요약정리

by 상팔자 2022.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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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스물네 번째 강연 '공정을 말하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제1강 능력주의는 왜 폭압이 되었을까?

 

 

■ 능력주의의 폭압

 

우리는 보통 능력을 좋은 것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능력을 보상받아야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능력주의가 폭압이 되는 걸까?

 

★ 능력이 능력주의로 변하는 순간 능력은 폭압이 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시장에서 얻는 모든 혜택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능력주의는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는다면 폭압이 될 수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았다는 것, 성공에 보탬이 된 사람들의 역할을 잊어버린다

능력주의적 오만

    승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사람, 운이 안 좋은 사람을 무시

 

Q. 부자는 노력으로 부를 얻을까요? 행운으로 부를 얻을까요? (마이클 샌델의 질문)

A. 노력 : 19명 / 운 : 31명 (토론 참여자의 대답)

   노력이라고 대답한 자의 이유(일차적으로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이라고 대답한 자의 이유(기회의 차이가 성공의 차이를 가져온다) 

 

물질적 성공을 포함해 성공이 노력 때문인지 운 때문인지 논쟁하는 것은 더 큰 윤리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바로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사회가 공정한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핵심은 누가, 무엇을, 왜 누리는가에 답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자격에 따라 기회와 보상을 누린다고 했을 때

만약 가장 큰 보상을 받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라면 

성공한 사람은 어떤 미덕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는 '승자는 보상을 누려도 된다'라고 여길 것이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한다면 그 경주가 공평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운이 성공을 결정한다면 승자가 상을 받는 것이 

도의적으로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승자가 받는 혜택과 보상이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Q. 능력주의에 의문을 품게 된 계기?(참여자의 질문)

A. 제가 능력주의에 의문을 품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깊은 분열을 다방면으로 이해하고 싶어서이다.

   특히 2016년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사회 양극화에 대한 분노와 적의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분열의 근원을 이해하고 싶었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우리 사회의 풍조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심해졌고 우리를 서로 멀어지게 했다. 

   부분적으로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커진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성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과도 관계가 있다. 성공은 불평등의 심화를 동반한다. 세계화가 진행된 지난 40년간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성공을 스스로 일궈낸 성과이자 자기 능력의 척도라고 믿었다. 그래서 시장이 승자에게 

   주는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성공을 온전히 자신이 이뤘다고만 여긴다면 고전하는 사람,

   뒤처진 사람에게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될까? 그들이 그런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고 할 것이다. 승자가 보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면 패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한다. 성공을 이런 식으로 여기는 것은

   윤리적으로 가혹하다. 이런 사고방식은 겉보기엔 매력적인 능력주의 원칙에서 기인한 것이다. 능력주의 원칙에서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졌다면 승자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최근 수십 년 동안 승자와 패자의

   분열이 깊어졌다. 승자는 자신이 성공할 자격이 있다고 믿게 되었고 자신보다 운이 좋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전 이걸 이렇게 부른다. '엘리트 능력주의적 오만'이라고. 성공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빚을 졌다는 걸

   잊게 한다. 가족, 교사, 이웃, 지역 사회, 국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진 빚을. 성공 과정에서 빚을 졌다는 사실과 운의

   역할을 잊어버 릴 때 엘리트는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사회에 분열을 일으킨다.

   분노의 적의를 낳는다. 저는 사회에서 깊어지고 있는 분열을 진단하고 싶었다.

   특히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 이후로.

 

 

 

제2강 질의 응답

 

 

 

성공은 내 덕분?

 

Q. (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질문자) 너희의 능력은 노력 때문에 얻은 것만이 아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므로 일종의 공공재이다. 그러므로 부유세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치면 자신들도 노력해서 얻은 결과인데 그것을 왜 나눠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반응에 대한 질문 > 능력주의가 정말 정의롭지 않을까요?

 

A. 성공한 스포츠 스타 르브론 제임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돈도 많이 번다. 1년에 4천만 달러(약 470억 원) 이상을 버는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농구 연습을 했다. 그가 돈을 이렇게 버는 게 당연한가? 교사나 간호사보다 수천 배를 벌지만 교사나 간호사도 열심히 일한다. 다만, 누구나 그와 같은 훌륭한 농구 선수가 될 수는 없다. 노력이 전부는 아니다. 그가 사는 사회와 시대도 고려해야 한다. 그가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다면 사람들은 농구에 관심도 없고 돈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재능을 보상받는 시대와 사회에 사는 것도 스스로 일궈낸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

 

 

■ 과거의 엘리트 오늘날의 엘리트 / 역사 속 능력주의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Q. 능력주의의 단점이 엘리트 계층의 지배가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과거의 엘리트도 마찬가지였는데

    특별히 능력주의가 더 나쁜 이유는? 

A.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 상류층은 자기 자신이 상류층이 될 자격이 있다고 믿어왔다. 막스 베버는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한다. 자신들이 성공할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도 더 자격이 있다고. 상류층은 자신들의 위치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마이클 영)의 주장을 토대로 얘기하면 영국의 오랜 계급 체계가 무너지고 노동 계층의 젊은이에게도 경쟁할 기회가 생겼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얻을 기회. 그러나, 우리가 점차 동등한 기회를 만들어갈수록 승자는 기회는 동등했고 자신은 정정당당하게 이겼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뒤처진 사람들은 모든 기회가 주어졌지만 실패했고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할 것이다. 마이클 영이 말한 것은 바로 이 승자와 패자 간의 분열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이다. 사람들은 신화가 아닌 더 진실에 가까워 보이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스스로 되뇌게 될 것이다. 능력주의적 오만이라는 신념을 강화하는 건 완전한 신화가 아닌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노력과 동등한 기회에 관한 그럴듯한 이야기. 승자는 승리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고 고전하는 사람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능력주의 원리가 더 그럴듯하다. 그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어째서 엘리트의 오만이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통제하는지. 귀족 사회의 소작농과 농노도 자신이 밀려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운이 나쁜 것이라고 여겼다.   

 

♣ 마이클 영(영국의 사회학자) : '능력주의'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 <능력주의의 부상>(1958년)

 

Q. 과거에도 하류층은 자신이 지배받는 것을 내면화지 않았을까?

A. 그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비교하고 있는 각각의 사회에 질문을 던져보자.

    신이 계급 구조를 내려준 사회와 능력이 계급 구조를 결정하는 사회. 그 두 사회에 던질 질문은

    정말 신이 승자를 선택했냐, 성공한 자들이 정말 성공을 누릴 자격이 있냐

    두 사회 모두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제3강 질의응답

   

 

무엇이 능력인가?

 

Q. 능력의 정의부터 명확히 해야 하지 않을까? 능력이 선천적인 것이라면 능력주의는 정의롭지 않다

    후천적인 것이라면 정의롭다고 생각한다.

A. 능력이란 특성, 미덕, 재능, 기술, 사회적 명성, 주어진 시기의 요건이 사회적 역할에 요구되는 자격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걸까?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수능 같은 표준화된 시험은 능력을 측정하는 한 방법이다. 대학 입시에서 인정하는 능력, 기술, 지적 능력,

    지식을 얻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능력은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이 똑같이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가정이 부유한 지 가난한지 또 가족이 공부를 장려하는지

    무관심한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기회의 측면에서 큰 차이가 생긴다. 즉, 능력을 얻으려는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충분치 않다. 대학 입학이든 좋은 직업이든 돈을 많이 버는 것이든. 노력은 단지 일부일 뿐이다. 마이클 조던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마이클 조던만큼 훌륭한 선수가 될 수는 없다.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누군가로부터 얻은 

    재능은 스스로 얻은 게 아니다. 노력뿐 아니라 재능도 능력의 일부라는 점에서 보면 사회가 인정하는 능력을 스스로 

    얻었다고 할 수는 없다. 스스로 얻은 능력이 아니라면 운이 좋아서 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능력을 얻었다면 그들이 

    보상을 모두 독차지할 자격은 없다. 그 대신 재능을 통해 얻은 이득을 모두와 나눌 의무가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

    부족한 사람 모두와 말이다. 

 

 

■ 재능의 서열 / 일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법

 

Q. 사회적으로 인기 있는 직업 / 없는 직업이 존재 

    사회적으로 인기 없는 재능을 가진 학생들의 진로 지도는?

A. 경쟁이 치열한 시장 주도의 능력주의 사회에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우리가 다뤄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재능과 기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격려하려면 우리가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 주도의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명예와 보상에 서열 구조가 있다. 어떤 재능이냐 어떤 인지 기술이냐에 따라서

   말이다. 예를 들어 대학 입학시험이 평가하는 것들. 대학 학위를 따지 못한 사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 한생들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문제를 극복하기는 힘들다. 보통 고학력자는     학위가 없는 사람보다 보수가 많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얻을 기회가 많다. 물론 예외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사회에는 명예, 존중, 존경에 대한 서열 구조가 있다. 그리고 이 서열 구조는 최근 몇십 년간 더 가팔라졌다. 동시에

   성공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이는 아주 미묘한 방식으로 학위가 없는 사람들이 의지를 상실하게 만든다.

   교사로서 학생들의 특별한 기량을 칭찬하고 인정할 수는 있다. 그 기량이 중요하게 쓰일 직업군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자나 저와 같은 교사 개인이 설득력 있는 답을 하긴 어렵다. 우리 시민 사회가 일의 존엄성을 어떻게

   존중할지 폭넓은 공적 담론을 펼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쟁이 극심한 능력주의 사회에 대해 제가 책에서 제시한

   대안은 학력이나 대학 학위와 관계없이 일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이게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모든 일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있을까? 전문직이나 금융계, 법조계, 의료계뿐만 아니라 육체노동자, 건축가, 음악가,

   제빵사, 요리사가 될 학생들을 위해서.

   우리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모두에게 사회적 인정과 명예 존중을     약속하는 사회이다. 석·박사 학위를 가진 전문직 계층뿐 아니라. 

 

 

■ 불평등의 요인들

 

Q. 미국에서는 능력주의로 인한 분노가 소수자 우대 정책을 향한다. '공정한 경쟁'이라는 틀로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 혐오가 능력주의에서 기인한 포퓰리즘을 낳는다면 왜 혐오는 상류층이 아닌 약자를 향하나?

A.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은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의 형태로 표출되는 일이 잦다.

    때때로 그 분노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엘리트의 능력주의적 오만을 향한 분노와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로 표출되는

    오도된 분노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두 분노를 구분하는 한 가지 방법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에 여러 요인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겁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는 여전히 남녀 간의 불평등이 남아있어요.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내재한 어떤 혜택을 받죠. 이런 점은 점차 변화하고 또 나아지고 있죠. 성별 간의 불평등은 존재합니다.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항상 인종 불평등을 목격합니다. 이에 맞서고는 있지만 늘 성공하진 않는다. 교육 불평등도 존재한다.

    고학력자와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의 차이. 그게 불평등의 세 번째 요인입니다. 불평등의 네 번째 요인은 경제적

    계층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성별, 인종, 교육, 경제적 계층은 우리 사회에 분열을 일으키는 불평등의 네 가지

    요인이다. 어떤 불평등에서 기인한 분노와 적의는 보통 희생양을 만든다. 희생양이 되는 건 혜택을 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사실 그 혜택은 또 다른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인데 말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여러 가지 불평등 문제를 동시에 다뤄야 한다는 겁니다. 성별, 인종, 교육, 계층으로

    인한 불평등. 때로는 불평등이 서로 중첩될 수도 있다. 교육 특권을 누리는 고학력자는 유복한 가정 출신인 경우가

    많다. 불평등은 자주 중첩된다. 인종 불평등의 역사로 인해 인종 불평등과 계층 불평등을 동시에 겪기도 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 불평등이 한 가지 차원에서 오는 게 아니다. 불평등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다양한 차원의 불평등을 다뤄야 한다. 그리고 분노와 적의가 어떤 불평등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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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업

조지프 르두 공포의 뇌과학 - 불안, 공포 등 감정 연구, 세계적 신경과학자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느끼는 뇌>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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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원의 기적 EBS에서 전 세계 최고의 지성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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