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스물네 번째 강연 '공정을 말하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마이클 샌델
<정의는 무엇인가> 저자
제4강 질의응답
■ 학생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Q. (코로나19 확진자 시험 감독관이었던 질문자) 형식적인 공정함에는 집착하면서
학생들의 행복한 삶에는 무관심한 현실. 학생들이 행복하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A. 학생들은 방호복을 입고서라도 시험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험 결과에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린 학생들을 너무 압박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학 학위를 과하게 중시하고 대학 학위를 성공의 지름길로
여긴다. 고등 교육 기관인 대학에서 평생을 일한 사람으로서 고등 교육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믿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대학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건 중요한 사명이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건 우리가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는 물론 배움 그 자체를 사랑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가 걱정하는 건 대학이 일종의 분류 기계로 전략하는 것이다. 각종 직업과 기회에 사람들을 각각 분류하는 것이다. 분류 기계가 된 대학은 교육의 본질적인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 왜냐하면 이러한 분류 기계는 학생이 관심사를 탐색하고 자신의
삶에서 뭐가 중요한지 어떤 방향을 추구해야 할지 성찰할 기회를 잃게 한다. 교수, 학생, 학부모 그리고 우리는
고등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점점 더 생각하지 않게 된다. 대학 교육을 자격증 정도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좋은
직업과 고액 연봉을 얻을 수 있는 티켓. 자격을 인정해 주는 대학의 기능은 대학의 교육적 목적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 코로나에 걸린 학생도 대입 시험을 쳐야 한다. 모든 게 시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승자와 패자의 분열이 심해질 때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SKY 캐슬>도 봤는데 특권층 가정 사이의 극심한 경쟁에 관한 내용이다. 자녀를 명문 대학에 입학시키려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이 드라마의 인기의 원인은 우리가 균형을 잃었다는 걸 깨닫게 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대학
교육의 본질을 놓치고 있다. 본질은 배움에 대한 사랑을 키우는 것이다. 대학은 인맥을 쌓고 학위를 취득하는 분류 기계로 전락했다.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인 배움, 성찰, 탐구, 비판적 사고를 위협한다. 이게 대학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인데 말이다. 능력주의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다양한 형태의 일을 더욱 인정해야 한다. 명문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의 일을 더 대우하고 존중해야 한다. 민주적 평등의 조건을 확장하고 모두를
평등하게 존중해야만 대학 입시 제도에 존재하는 경쟁의 압박을 줄일 수 있다. 다양한 직업과 사회적 역할의 가치를 인정하고 모든 일의 존엄성을 인정하기 위해 논의해야 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 능력주의의 폭압이 향하는 곳
Q. (고등학교 사회 교사) 정의에 대해서 수업시간에 이야기할 때 학생들이 질문을 한다. 능력주의가 정의롭지 않은 건 알겠지만 다른 대안이 있는가? 대안이 없는 비판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묻는데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고 사회를
건설적으로 비판할 방법은?
A. 경쟁이 치열하고 압박이 심한 시장 사회에 대한 대안을 학생들이 얼마나 찾기 힘들어하는지 직접 목격하셨네요.
이제 우리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학생들이 겪는 압박감을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압력을 가할수록 이 사회를 향한 아이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혹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압력을 가할수록 이 사회를 향한 아이들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어렵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부모와 교사, 대학 입시 제도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떨까? 몇 시간이고 밤을 새워 공부하고 학원에 다녀서 수능을 잘 치는 거라는 얘기. 학생들은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상상하기조차 힘들 것이다. 자신이 인생에서 이룬 건 무엇이든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주입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문제이다. 뉴욕의 어떤 지역에서는
부유층 부모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싼 명문 유치원과 보육 시설에 아이를 입학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야 나중에 명문 고등학교에 갈 수 있고 대학 입학시험도 잘 치를 거로 생각한다. 부유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불평등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가진 게 없어 고전하는 사람에게만 부담을 주는 게 아니다. 능력 주의의 폭압은 승자에게도 피해를 준다. 아이들이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며 성취에 대한 부담으로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 명문 대학에 입학한다고 해도 이미 상처를 입은 상태이다.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도 어린 시절부터 압박에 시달려 정서적 안정과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긴 채 입학한 한생이 있었다. 경쟁의 압박 속에서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경쟁의 압박 한
가운데 있다. 한국의 청소년 사망 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자살)입니다. 미국에서도 고의적 자해가 청소년 사망 원인 2위이다. 우울, 불안 같은 정신적 문제와 정서적 상실감이 있다.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느낀다. 능력주의의 폭압이 성공하지 못한 사람뿐 아니라 성공한 많은 사람에게도
고통을 주고 정신적 상처를 입힌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리고 혹독한 능력주의 경쟁과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받는다는 걸 사회가 깨닫는다면 아마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
제5강 질의응답
■ 대학 입학시험은 객관적인가?
Q. 대학 입시 제비뽑기 제도 도입을 제안했는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노력의 동기가 약해진다.
운이 결정하는 제비뽑기로 하면 능력주의의 장점이 훼손되지 않을까?
A. 명문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이 대학 입학에 성공한 것을 자신만의 성과라고 보는 경향에 맞서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제안했었다. 자격을 충분히 갖춘 지원자가 많이 몰리는 대학(매년 학생 5만여 명이 하버드대에 지원) 지원자 중 절반, 어쩌면 그 이상이 자격을 충분히 갖췄을 것이다. 학업을 잘 수행하고 성적이 뛰어나고 다른 학생에 도움도 줄 수
있다. 5만 명 중 절반이 그런 지원자라고 했을 때 그중에서 제비뽑기를 하자는 것이다. 열심히 공부한 적 없거나
성취한 것이 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 추첨이 아니라 자격 있는 지원자가 입학 정원보다 많으니 '유 능력자
제비뽑기'를 하자는 거다. 질문자는 노력의 동기가 약해질 것이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 유능력자 제비뽑기에 몇 명이나 찬성하는가? ☞참석자 투표 결과 찬성 26 / 반대 24 / 기권 1명☜ 질문자의 말처럼 열심히
노력하려는 의지가 줄어들 수도 있으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건 어린 학생들에게 좋은 경험이
아니다. 압박의 강도를 조금이나마 줄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여전히 학생들은 입학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한편으론 이러한 입시 제도가 능력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대학 입학시험이 실제로 뭘 예측할 수 있나? 대학이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건 누가 첫 학기에 좋은 성적을 받을지
정도이다. 졸업할 때 누가 가장 뛰어날지 연구 분야나 직장에서 누가 큰 성과를 이룰지도 예측할 수 없다.
입학시험이 얼마나 객관적이고 까다롭든 누가 대학에서 진짜 잘할지를 완벽히 예측할 수 없다.
나중에 누가 사회에 이바지할지는 더더욱 측정할 수 없다.
사례 1>1950년대 한 청년이 보스턴 대학교 신학 대학에 입학 원서를 냈다. 이 청년은 수사학과 언어 능력을 평가하는
입학시험에서 중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어쨌든 학교는 입학을 허락했다. 그는 보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이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연설가 중 한 명이 됐다.
뛰어난 언변 덕이다. 하지만 입학시험에서는 중하위권 점수를 받았다. 그러니 우리는 가장 객관적인 시험조차도 확실히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진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들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외에도 제비뽑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제비뽑기가 있든 없든 운이 많이 관여한다는 것이다.
♣ 마틴 루터 킹(1929-1968) : 흑인 인권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 낸 인권 운동가
사례 2>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 시험을 칠 때마다 선생님은 성적순으로 새 좌석표를 만드셨다. 시험 성적에 따라서
매주 자리를 바꾸는 방식 때문에 압박을 받고 성적에 집착하게 되었다. 성적 때문에 너무 경쟁하느라 배움에서 멀어졌다. 그때 만난 생물 선생님의 교실은 흥미로운 것(뱀, 물고기, 도룡뇽, 쥐)으로 가득했다. 동물이 자라는 걸 관찰하고 배웠다. 그때도 성적에 집착했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퀴즈를 냈다. 1~15까지 적힌 시험지에 참인지
거짓인지 답하라는 것. 문제가 안 적혀 있는데 시험지에 문장을 짓고 참인지 거짓인지 쓰라는 것이었다.
마치 제비뽑기와 같이 임의적인 것. 다들 불안해서 퀴즈가 성적에 반영되는지 묻자 선생님은 그렇다고 함.
선생님은 능력주의의 폭압에 맞서고자 하신 것이다. 성적이나 시험에서 벗어나 도룡뇽, 뱀, 물고기의
경이로움에 더 집중하고 무언가 배웠으면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제비뽑기에 영감을 줬다. 극심한 압박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대학 입학이나 인생에서 이루는 성공이 스스로 성취한 것이라는 믿음을 줄이고 싶었다.
■ 인재를 찾는 법
Q. (10년 전부터 항공우주공학에 푹 빠진 질문자) 로켓에 대한 열정으로 대학 입학에 성공하였으나 자신보다 성적이 더 높은 학생이 대학에 갔으면 로켓 제작에 필요한 지식은 그 학생이 더 많지 않을까? 성적이 더 높은 학생이 대입에 실패하는 게 공정한가?
A. 제도를 찾아야 한다. 시험 점수와 성적을 뛰어넘어 질문자가 지닌 열정을 측정할 제도. 그러나 그런 열정은 표준화된 시험에서는 측정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대학 입학 제도에서는 그런 면도 고려해야 한다. 탐구심, 호기심, 열정 그리고 어떤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배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이들이 기르도록 장려해야 할 자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은 교육시스템을 만들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창의성, 호기심, 열정이 필요하다. 물론 측정이 쉽지 않겠지만 학생을 전인적으로 평가하도록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질문자를 가르쳤던 선생님의 증언(학창 시절에 보였던 열정과 창의성에 관해서)을 평가에 반영하거나 자기 경험을 쓴 에세이를 참고할 수 있다. 객관적인 시험과 함께 이런 것을 고려해야 한다. 누가 가장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과학자, 예술가나 작가, 변호사, 의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겸허한 태도로 객관적인 시험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평가 방법으로 보완해야 한다.
제6강 질의응답
■ 겸손이 할 수 있는 일 / 사회적 기여도와 가치
Q.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겸손을 통한 공동선의 부활과 민주적인 공론장의 형성을 주의 깊게 보았다.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능력주의의 폭정을 넘어 보다 덜 악의적이고 보다 더 관대한 공적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타인을 설득하는 일일 것이다. 어디서부터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할까?
A. 능력주의식 경쟁에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대신 일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우린 공적 토론을 펼쳐야 한다. 성공의 사다리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데 젊은이들에게 사다리를 오르는 법만 가르쳐선 안 된다.
어떻게 삶을 더 안전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어떻게 일의 존엄성을 높일지 물어야 한다. 대학 학위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수십 년간 이어진 지금의 경제 구조는 잘못됐다. 이런 경제 구조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만
존중받는 일을 하고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그러니 우린 공적 담론과 정치적
담론을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일의 존엄성을 세울지 물어야 한다. 조세 제도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배당금, 자본이익보다 근로소득의 세율이 더 높다면 공정한가? 일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걸까? 이런 게 우리가
토론할 주제이다. 어떻게 정책이 변해야 하는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어떻게 해야 모든 노동과 기여를 제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만큼 돈을 번다는 가정에는 저항해야 한다.
앞서 말한 르브론 제임스의 예처럼 농구 선수의 사회 기여도가 교사나 간호사, 의사보다 천 배나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우리는 시장으로부터 진정한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어떤 사회적 기여가 가장 가치 있는지
묻고 민주 시민으로서 이런 주제를 논의해야 한다. 그게 조세 제도, 교육 및 의료 분야 투자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폭넓은 공적 담론이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능력주의 경쟁에서 눈을 돌려 일의 존엄성에 초점을 맞추고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모든 시민을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 성공에 대한 태도
Q. 좌절한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
A. 체제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대학입시나 사회적 기여도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고등 교육, 세금, 노동시장과 같은 사회적 수준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했으나 체재 변화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그건 바로 태도와 관련 있다. 공공 문화와 성공을 이해하는 방식. 이웃에 대한 의무와도 관계있다. 정말 내가 성공의 밑바탕이 된 재능을 가질 만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얻은
것인가? 운의 역할을 인정하면 겸손해진다. 나보다 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볼 때 겸손해진다. 출생의 우연이나
신의 은총 운명의 불가사의가 없었다면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도 있었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면 우연, 혜택, 행운,
기회에 감사하게 된다. 그 덕에 성공하고 재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운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조금 더
관대한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런 관대한 태도는 공동선의 정치에 보탬이 된다. 우리를 갈라놓는 분열을 치유할 수
있다.
■ 공동선의 정치를 위하여
성공이 우리의 성과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으면 동기(학생들이 노력하고, 대비하고 공부하고, 경쟁하고 성공하려는 동기)가 사라지지 않느냐라는 이의를 제기했던 질문이 가장 강력했다. 노력과 성실함을 보상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 노력과 성실함을 보상받고 싶어 한다. 그건 권장해야 할 덕목이다. 사람들이 운명론에 빠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운명론에 빠지면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믿게 된다. 의기소침해질 뿐만 아니라 에너지와 활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노력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권장하는 것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개인에게 지나치게 책임을 전가하면 성공한 자들이 오만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운이 있었기에 성공했다는 걸 잊고 성공에 보탬이 된 이들에게 진 빚을 잊게 된다. 우리를 성공으로 이끈 혜택과 특권, 타고난 재능을 얻지 못한 시민들과 단절된다. 결론적으로 '능력주의의 폭압'에 대한 주장은 공동선의 정치를 위한 새로운 시도이다. 세계 곳곳에서 민주사회를 위협하는 분열을 치유하려는 시도이다. 팬데믹은 불평등을 드러냈다.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걸 명백하게 증명했다. 특히 두 집단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집에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직장을 잃었거나 다른 사람 대신 위험을 감수하며 일하는 사람들 간의 차이. 병원에서 자신을 위험에 노출하며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진이 있다. 택배기사, 물류 창고 근무자, 식료품점 점원, 보육 시설 종사자, 트럭 기사도 있다. 이들은 보수가 많지도 사회적 명예를 누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는 그들을 핵심 노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공적 담론을 시작할 계기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그들의 사회적 기여를 더 인정하고 합당한 보수를 줄지 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의 능력주의적 오만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운의 역할을 더 많이 인정해야 한다. 행운에 감사하면 겸손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시민의 덕목은 겸손이다. 겸손은 우리를 서로 갈라놓았던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 될 것이다. 겸손은 관용을 베푸는 삶의 시작이 될 것이다. 모든 동료 시민들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고 겸손은 공동선의 정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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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업
조지프 르두 공포의 뇌과학 - 불안, 공포 등 감정 연구, 세계적 신경과학자 - <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느끼는 뇌>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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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원의 기적 EBS에서 전 세계 최고의 지성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방송시간 EBS1 TV 월~금 23:35~23:55 EBS2 TV 월~금 22:00~22:20(재방)
토 09:30~11:00(종합) 토 22:15~23:45(종합)
월~금 15:05~15:25(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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