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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_파트리크 쥐스킨트

by 상팔자 2021.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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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지은이 파트리크 쥐스킨트
옮긴이 강명순
발행처 주식회사 열린책들
 

무취의 향수 수집가

 
예술과 낭만 그리고 악취(?)의 도시 파리. 실제로 18세기 프랑스에서 악취가 가장 심했던 도시가 파리였다고 한다.
실제 사건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로 마치 숨겨진 야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흐름에 따라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았다. 실제 소설에는 각 부마다 이름은 없음.
 
제1부 악마의 탄생
 
그르누이는 머물다 간 자리마다 죽음의 씨앗을 남긴다. 그를 낳은 어머니는 영아 살인죄로 참수되었고 그를 맡은 보모 또한 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던 방식의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다. 보모 다음으로 맡은 무두장이 또한 술에 취해 물에 빠져 죽었고 향수 제조사도 건물이 무너져 죽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마치 죽은 이들의 생명을 빨아들인 듯 진드기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악착같이 살아남고 버텨낸다. 이는 본인 스스로는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세상의 온갖 냄새를 구분하고 수집하는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저들도 아동학대 노동력 착취 등으로 그를 이용한 대가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소리를 질러 댐으로써 그는 오히려 사랑을 <거부하고> 생명을 <선택한> 셈이었다."  - p.29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냄새가 없는 대상을 지시하는 추상적인 개념어들, 특히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뜻을 지닌 단어들을 익히는 일이었다." - p.33-34

 
제2부 자각
 
그르누이는 역겨운 인간의 냄새를 피해 동굴 속에서 은둔 생활을 자처한다. 그 안에서 상상만으로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과거의 향을 되새기고 추억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견딜 수 없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사실. 다른 인간의 냄새는 악취라고 여길 만큼 치를 떨면서도 스스로에게 냄새가 나지 않음을 공포로 느낀다.
 

완전히 자기 자신의 냄새에 파묻혀 있는데도 어떤 방법으로도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중략)
무서워 죽을 지경이였다. 진짜 죽음의 공포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렸다. 비명 소리가 안개를 흐트러뜨리지 못했다면 아마 그는 자신의 냄새에 빠져 익사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제3부 수집
 
인생의 행로를 확실하게 정한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향을 하나씩 수집해 나간다. 향을 추출하고 수집하는 과정을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코가 마비될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얼마나 좋을지 궁금하면서도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다. 타인의 눈으로는 명백한 살인 행위이지만 그르누이 자신에게는 단지 냄새를 저장하는 일에 불과했다. 
 

그 소녀의 향기라고 해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모든 향기들 중 가장 귀하고도 가장 연약한 그 향기를 원래의 상태 그대로 사용해서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제4부 소멸
 
세상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향수를 손에 쥐었지만 결국 자신은 그 향수의 영향력 밖에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일생을 거쳐 오직 향 하나만을 위해 모든 걸 걸었지만 다 의미 없는 되어버리고 만다. 강력한 사랑의 향수는 결국 스스로를 좀먹는 일이 되고 만다.
 

그러다가 처음에는 은밀히, 잠시 후에는 공공연하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프랑스 배경이라 프랑스 소설인 줄 알았는데 독일 작가였다. 실제 작가는 두더지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차단하고 세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매우 꺼려한다고 한다. 어딘가 주인공과 닮아 있는 듯도 한다.(아, 모럴은 있겠지만) 그만큼 자기만의 예술관이 확고하고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향수는 영화로도 제작이 됐을 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인데 영상으로는 냄새의 미학을 표현하기에 많이 부족한 거 같다. 차라리 상상력으로 그 깊고 다양한 향을 맡아보고 음미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 근데 어떻게 만들면 사람이 미치는지 그 향수 갖진 못하더라도 한번 맡아는 보고 싶네. 읽는 내내 둥둥 주위를 맴도는 거 같은 향기들에 흠뻑 취해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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